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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시4편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소서
2021년 09월 30일 (목) 08:29:36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정말 갈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모세 뒷모습만 보았지 예수님은 보았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요. 어떤 방법으로 보여 주여주지요. 제일 먼저 하셨던 일은 모세를 바위위에 세워 놓고 하나님이 지나가시려고 할 때 바위 틈 사이에 모세를 넣고 그리고 그의 눈을 가리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지나가십니다.
 
그리고 손을 떼자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지요. 뒷모습을 보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앞모습 보면 죽어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가 중요한데 앞모습을 보면 왜 죽어요. 왜 큰일 나요.
 
감당을 못해서 죄인이기 때문에 참 전형적인 대답이네요
그 말은 하나님의 앞모습을 인간이 보지 못했다고 하는 말은 앞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어떠한 분이시다 하고 규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누군가의 앞모습을 보았어 윤정씨의 앞 모습을 보았어 그러면 나는 규정해요. 윤정씨는 굉장히 예뻐 그렇게 자기 나름대로 규정을 하고 싶어지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말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뒷모습만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여 주셨다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당신의 모습을 사람에게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요. 사람은 그렇게 알 수 없지요. 그래서 늘 이야기 해 왔던 것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의 뒷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일까요. 상상할 수 있게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지나 놓고 나니 그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어 살다 보면 그런 경험들이 있지요.
 
내 인생이 너무 고단하고 힘겨웠는데 그래서 하나님도 나를 잊으셨나 그리고 아주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아 돌이켜 생각하니 하나님이 함께 계셨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뒷모습이어요.
 
그렇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이게 그러니까 여러분 정규씨처럼 하나님 얼굴 보여 주소서 그러지 말고 뒷모습 보게 하소서 좋은 데 우리가 해야 할 기도는 하나님 사람들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그렇지요.
 
그러니까 내 사는 모습을 보니까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이 계신지 잘 모르지만 저 사람 보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 같아 그렇지요. 바로 그게 무엇이냐 하면 선교여요.
 
예수 믿으세요 하고 뭐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만이 선교가 아니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냥 내 사는 모습이 하두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당신 삶에 비밀이 무엇이냐 나 하나님 믿는 사람이어요. 그렇지요. 나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비추어 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정규씨가 주여 당신의 환한 얼굴 보여 주소서 그랬던 것은 까닭이 있는 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시편 4편에 나오는 부르짖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 4: 1- 8 개역 개정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 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 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 보다 더하나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 다.
 
여러분 낭독 될 때 보지 성경을 보지 마시고 귀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눈으로 읽은 것도 좋지만 낭독되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의 울림이 커지요 성경을 읽은 때 좋은 방식은 소리를 내서 읽는 것입ㅁ니다.
 
성경은 본래 낭독되도록 기록된 책이라고 보면 됩니다. 처음부터 눈으로 보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고 성경은 듣기 위해서 소리를 내서 읽어 보는 것입니다.
 
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 시는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어요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비평가인 로드럭 프라이라고 하는 분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사람이 걸을 줄만 알면 시를 읽을 수 있답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기일까요 걷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조그만 언덕도 있고 둔덕도 있고 걸림돌도 있고 그런 데 뇌가 생각하지 않아도 걷지 않고 발이 알아서 지나가지요. 진창이 있으면 피해가고 이게 걸을 줄 아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걸을 줄 아는 것처럼 시를 본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시속에 있는 자연적인 리듬이 내 속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그 리듬은 소리를 내서 읽을 때만 찾아져요. 그 리듬이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시라고 해도 여러번 소리내서 읽다 보면 그 시의 리듬이 내 속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 시는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내어 보여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시는 절대로 눈으로 읽어서는 안 되어요. 소리내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낭독을 해 보는 것입니다.
 
다른 텍스트는 긴 텍스트를 하게 되면 우리가 다 읽을 수 없지만 짤막한 시를 볼 때는 네 종류의 번역본을 가지고 시를 읽는데 내용은 같지만 조금씩 표현이 달라지면서 우리의 마음에 심금을 울리는 부분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다양한 번역을 앞에 놓고 소리내서 반복해서 읽다 보면 시들이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말들을 한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알 수 있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시편 4편은 학자들이 흔히 이야기 합니다. 개인의 탄식시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탄식한다고 하는 것은 어떨 때 우리가 탄식하지요
 
누군가에게 핍박당했을 때 괴로울 때 자 말이 안 나올 때 맞아요 말이 안 나올 때 그것 참 맞는 이야기네요. 예 그러니까 말이 끊긴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탄식이어요. 아 이 정도
 
그런데 여러분 지난번에 우리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사람이 탄식하는 것은 이런 때이지요.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늘 우리 곁에 계셔야 하는 데 하나님의 부재 체험 하나님이 어디 가셨을까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하나님은 어디 계신 것이야 그렇지요.
 
그 때 우리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하게 되지요. 나 홀로라고 하는 생각이 외로움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사람은 탄식하게 되지요.
 
그래서 탄식하는 그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참 어려운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부재 체험이어요.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탄식이고요. 하나님이 정녕 나와 함께 계셔 그래서 내 마음 속에 기쁨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줄을 몰라요. 그래서 막 기뻐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현존 체험할 때 나오는 것이 결국 무엇이지요. 감사이고 찬양이지요. 감사 찬양 그래서 시에는 찬양시도 많고 탄식시도 많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더 많으냐 하면 탄식시가 더 많아요 그 말은 인생이 살기 쉽다는 말이어요. 어렵다는 말이어요. 어려워요. 인생이 살기가 어려워요. 그렇지요 인생이 왜 어렵지요. 내 마음대로 안 되어요.
 
그 마음이 무엇인데 그냥 놀고 싶을 때 놀고 돈도 내 마음대로 안 벌리고 계획한 대로 일이 안 되고 그냥 탄식만 나오지요. 살다보면 그 마음이 문제이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 마음을 싹 바꾸면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아요.
 
그렇지요. 저것을 내가 꼭 가져야 돼 이게 내 마음이 나왔어요. 그런데 소유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지 않아요. 그럴 때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 하면 나 이것 없어도 살 수 있어 이러면 이것이 나를 규정하는 힘이 훨씬 줄어들지요.
 
그래서 여러분 결국 종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을 원래의 자리에 갖다놓는 것이 종교여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신의 도움으로 얻어 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어요.
 
그렇지요. 때때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에게 구하여 얻어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없어도 될 것들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인생이 고단하고 어려워요. 탄식하게 되고 그렇지요. 그래서 정말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냐 그것들로부터 조금 자유로와진 사람이지요.
 
그런데 말처럼 잘 안 돼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냐 하면 탄식해요. 이것이 인간의 유한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런 유한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지요. 그것 때문에 우리들이 기도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 시를 읽다 보면 굉장히 어려워서 하나님 앞에 내가 힘겹습니다 하고 말하지만 나중에 가면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나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 시를 개인의 탄식시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시로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다 맞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시편 4편에 1절을 보니까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 내 의의 하나님이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수식하는 다양한 서술어들이 있을 수 있지요. 전에도 이제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하는 것을 읽을 때 한 달음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고 뒤로 가 버리지 말고 여호와를 목자라고 고백하는 저 사람의 삶의 자리는 무엇이었까 그 생각을 해 보는 것이어요
 
어떠했을까요. 길을 잃어버린 경험이 없다고 한다면 무엇인가 길을 잃어서 위험에 처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을 목자라고 고백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시편 23: 4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 주는 1절에서 고백했던 목자 되신 주 길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 삶의 위기에 처해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당혹감을 느껴 보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말 앞에서 무덤덤하지요
 
그러나 정말 내가 길을 잃어버렸던 절박함 속에 있었던 사람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지요. 알 수 있겠어요.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니 하고 말할 때는 지독한 어두움과 혼란속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주님이 나의 빛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지요.
 
주께서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할 때도 정말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 줄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신 것을 경험했기에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라고 하는 단어 하나를 얻은 것 아니겠어요. 이것이 참 중요한 것이어요.
 
성경을 읽을 때 그냥 읽지 말고 이분들은 어떤 경험을 했기에 이런 단어를 선택했을까 생각해 보면 여러분 그 단어 속에 담겨있는 스토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제가 글쓰기를 가르치거나 혹은 여러 목사님들에게 무엇인가를 좀 가르쳐 주어야 할 때가 있으면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병이 있으면 이것이 무엇이지요 하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사람들은 물병이요 하고 대답합니다. 내가 들고 있는 물건의 이름을 알지 않아요. 그런데 물병이라고 호명할 수 있다고 해서 이것을 다 안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짓 굳게 이야기 하지요. 이 물병에 대해서 지금부터 원고지 20매를 써 보세요 그러면 어떻게 쓸 것이어요 여기에 대해서 모양은 어떻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이고 온갖 이야기를 하겠지요. 자기가 아는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합니다.
 
저 물병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화학 기호로 하면 에이치 투오이고 화학기호로 하면 그런데 그것 해도 겨우 했는데 2매 밖에 안 돼 그러면 무엇을 할까요. 물과 얽혀 있는 자기의 경험 목말랐을 때 경험 목 말랐을 때 시원한 물 한잔의 기억들 물 한잔의 기억이 내가 어린 시절의 추억 이렇게 가지 않아요.
 
이렇게 가다 보면 똑 같은 동일한 사물인데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 것으로로 바뀌지요. 내가 무엇인가 안다고 아는 사실은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이정규 라는 이름을 안다고 정규씨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정규라는 사람과 함께 나누었던 삶의 경험들이 축적되고 그의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서 이 정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아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도 똑 같은 것이어요.
 
여기에 보니까 내의 의의 하나님이여 하고 말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의로라 표현한 까닭은 어떤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을 의로 고백해요. 정의로우신 분이여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어야 합니까? 무너진 정의를 회복 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겠지요.
 
그러니까 이 말 한 마디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요. 이 시인은 부당한 일을 겪었구나 내 의의 하나님이여 하고 하는 단어 한 구절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부당한 일을 겪었는데 그것을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요. 영혼의 외침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소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요. 세상에 누구에게도 부르짖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에게 자기의 무죄함을 밝혀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내가 어려움을 격을 때 마다 그가 부르짖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지난 삶을 돌아보니까 하나님이 내가 곤란을 당할 때마다 나를 너그럽게 대해 주셨어 내 품이 되어 주셨어 그러니 이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은혜를 베푸셔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요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지요.
 
하나님을 떠 올렸어요.
그러자 2절에 와 가지고 무엇이라고 시인이 이야기 하느냐 하면 “ 인생들아” 하고 말합니다.
 
인생들아 우리가 인생이라는 말을 어떤 사람에게 적용 했을 때 대게 어떨 때 쓰지요 아이고 인생아 이런 맥락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 뉘앙스는 무엇이지요. 너 왜 그렇게 살아 그런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인생이라고 하는 말은 그런 뜻은 아닙니다. 조금 오해하기 쉽게 되어 있기는 한데 그런 뜻이 아니어요. 베네이쉬라고 히브리어는 이야기 하고 있는 데 이 말은 일반 백성들 좀 어떻게 보면 천하게 여겨지는 사람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뜻할 때는 벤 아담이라고 이야기 하는 데 아담이라는 것이 사람이다는 뜻이거든요.
 
첫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베네이쉬라고 하는 말을 썼단 말이어요. 베네이쉬라고 말을 썼는데 이 말은 주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느냐 하면 유력자들입니다. 힘 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인생들아라고 이야기 할 때 이것은 보편적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고 보다는 여기에서 인생은 힘 있는 사람들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자기들의 욕망 충족을 위해서 그들을 수단으로 동원하는 사람들을 여기에서는 인생들아 하고 지칭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렇지요. 아이고 인생아 너 그렇게 사니 이렇게 하면 연결이 좀 되겠네요. 어쩼던 “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그렇게 말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니까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한다 하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한다는 것은 이때의 영광은 이것입니다. 영광은 무게이기도 한 데요 무게 무엇이냐 누구엔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구엔가에 영향을 주지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순수하게 만들고 그런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긴장 시키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리 분노하세요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이 나서요 그렇지요 있는 그 자체로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그래요. 상훈씨 절박하구나! 혹시 우리는 아니지요. 아닌 것 같아 아니다고 말 못하겠어요.
 
영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입니다. 무개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잘 살다고 하는 것은 보면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는 것이 아니고 나의 있음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나는 잘 사는 것이어요. 그게 진자 잘 사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 날 우리 재산 학위 그것 아무 소용없어요.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것만 중요하지 그렇지요. 그러니까 영광은 그런 것이어야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존경 같은 것들도 영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이 가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게 보아 줄줄 아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버릇이 있느냐 하면 에이 그 사람이라고 흠이 없겠어 그리고 우리는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가지고 갈작 갈작 긁어 가지고 피 흘리게 만듭니다. 너무 와 닿네요.
 
갈작 갈작 이게 무엇이냐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려느냐 시인이 그런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시가 참 와 닿네요 우리 삶의 이야기이네요. 보니까 그렇지요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사람들은 정말 마음껏 찬탄하고 기뻐해주고 경축하는 일을 너무 못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깎아 내리고 험담함으로 내가 높아질 것처럼 느끼는 것이지요. 이 시인이 경험하는 바가 그런 아픔인 것입니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 거짓말의 기본적인 것이 무엇이지요. 우리들이 거짓말을 합니까? 나를 의롭게 보이려고 하고 자기 방어이기도 해요 결국 보면 자기 확장입니다. 자기를 근사하게 보이려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대게 그렇지요.
 
정말 시인으로 하여금 사람들의 억울하게 하는 자의 삶의 패턴을 보니까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어야 자기가 여러분 전에도 이야기 했습니다만 자아할 때 아자지 않아요 이게 손수 자가 있고 창과자가 있어요. 이 아는 무엇이냐 하면 손에 창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창을 있다고 하는 것은 다가오면 찔리지요. 자아가 강한 사람 옆에 가면 우리가 상처가 납니다. 그는 언제인가 누구엔가에 상처를 줍니다.
 
예수님이 가장 불현 했던 사람이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평안해 지느냐 하면 너무 자기 방어적이지 않고 받아 드리는 사람 그렇지요.
 
우리가 구원함을 받았다는 이야기 하는 것도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탁 너 벌 받을 각오해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아이구 불쌍한것 이것이 구원 받은 체험이다는 말이어요..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고통스럽고 어려움 고통을 겪고 있는 시인이 그 자아가 강한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아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심을 들으시는 분임을 알았으면 너희가 알았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면 자아가 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이 왜 그런가 하면 무지하기 때문이다고 그러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무지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무지함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의롭게 바꾸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자기 스스로가 신처럼 되려고 하는 것이어요.
 
여러분 뱀의 유혹이 너희가 신처럼 되리라 그랬지 않아요. 그것 여러분 아담과 하와만이 들은 유혹이 아닙니다. 우리도 신 노릇하고 싶어요. 판단하고 비평하고 잘라내고 이게 무엇입니까 신처럼 되리라는 뱀의 유혹에 내가 넘어간 것이어요. 그렇지요. 이것이 사실은 무지함이다 그것입니다.
 
사실상은 그래서 시인이 그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하는 것이 무엇이냐 “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떨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제발 그렇지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으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자아가 강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들이 많아 너 왜 그렇게 믿어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시겠니 이러면서 막 이래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잘 못 믿는 것이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어서 우리들이 정말 그 믿음의 세계 속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그의 아픔을 내 속에 품어 안고 갈 수 있는 품이 생겨요. 폭 넓은 사람이 되어야 돼
 
그런데 여기 시인도 지금 보면 내가 너무 부당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저 인간들 좀 어떻게 해 달라고 할 것 같은데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권고합니까?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을 상기하게 되자 그들 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속에 생겨났어요.
 
그리고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라는 이야기는 여러분 의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그 동안 불의하게 살아 왔어요.
 
그런데 이제 불의함에서 벗어나서 의로움으로 자기의 삶의 길을 삼으라 하는 이야기이지요 의로움으로 자기 삶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무엇이냐 “ 여호와를 의지할 지어다” 하고 말하지요 여호와를 의지하라 의지한다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어요 지팡이도 생각나고 또 생각나는 것이 기대는 것도 생각나고 이 때 의지는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믿음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의 감정이다고 이야기 했어요.
 
어떤 신학자가 한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의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떻게 보면 탁 맡겨 버리는 것이어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요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되어야 된다 나는 이렇게 되어야 돼 하는 순간 맡길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맡겨 버리는 것이지요 여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호와를 의지하여라고 말하는 데 여기에서 그 의지한다고 하는 말은 영어로 트러스터입니다.
 
트러스트여요 푸트 어 트러스트 인 더 로드 그래요 너의 트러스트 신뢰를 하나님께 부어라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인생을 고단하게 살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방식을 가르쳐 주고 있어요. 하나님을 신뢰해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 저를 어떻게 하시든 저는 좋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고 하나님은 더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인이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이냐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수소서 하는 거쇼은 하나님의 빛이 세상에 아무리 어려워도 그 빛이 비추어 준다 시인이 그것을 이야기해요.
 
그리고 그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 줄 때 우리 내면에서 돋아나는 것이 무엇이냐 기쁨입니다. 이 하나님의 빛을 상기하게 되자 “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 왔어요.
 
우리 속에 평화는 결국 무엇이 가져다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빛에 우리 속에 비추어 지고 그리고 우리 내면에 기쁨이 생기는 것이지요. 생기 충만함이지요. 생기 충만하게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오늘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멋진 세계입니다. 처음에는 무엇으로 시작하였지요.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 하소서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기도했던 시인은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내가 평안합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없지요. 외적 상황이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떠 올리고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속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생겨났다는 하는 이야기이지요.
 
내가 말을 조심 스럽게 했어요. 그게 무엇이냐 “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낄 때” 그랬지요.
 
그런데 여러분 능동적으로 평화를 찾아 가는 사람들 하나님을 느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 나와 함께 계셔 주세요 할 것이이 아니라 하나님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게 하소서 내 삶의 패턴을 그렇게 능동적으로 바꾸게 될 때 나를 붙잡고 있던 고통은 물러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고 메시지입니다. 재미있지요. 이 시가 아무튼 오늘 시편을 통해서 우리가 여행했는데 이 여행이 여러분들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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