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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남은 자로 살기로 함
2013년 01월 31일 (목) 09:00:13 이수미 발행인 webmaster@cry.or.kr

   
▲ ⓒUPI 코리아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인물은 자베르가 아니라 민중들이었다. 젊은 혁명군들이 바리케이트를 지켜내지 못하고 도망다닐 때 숨겨달라 두드린 문을 매몰차게 닫아버린 그 사람들 말이다.

지난 연말 나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앓았다. 한동안 대선 결과를 믿지 못했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도둑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실은 죽었고 정의의 싹은 잘려 나갔으며 더이상 도덕적 가치가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더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켜야 할 교회가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내 감정은 더욱 비참해졌다. 공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에겐 과연 희망이 있는가.

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나는 막연했던 내 분노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바리케이트를 칠 수 있도록 가구 정도는 던져줄 수 있지만 실패한 혁명군들을 숨겨주고 싶지는 않은 그 민중들에게는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목숨을 내걸고 싸운 혁명가들을 오히려 민중들이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아파트값이 떨어질까봐 그늘진 역사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버린 이들도 있었고. 현세의 축복에서 제외될까봐 불의한 영적 지도자들을 덮어놓고 따르는 이기적인 성도들도 있었다. 나는 실패한 혁명의 원인을 그들에게 돌렸고 그 소시민적 행태를 떠올리며 나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분노가 과연 정당한가? 나는 왜 화가 난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천국을 묘사한 그곳에서는 장발장과 죽은 혁명군들이 함께 모여 평등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천국에서의 바리케이트는 더 크고 더 단단해 보였다. 결국 혁명은 천국에서 완성된다는 의미인가.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는 어떤 혁명도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인가.

실은 그랬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완벽한 정의가 뿌리내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늘 이해타산을 따지는 사람들이 넘쳤고, 기웃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사람들도 항상 있었다. 대선 결과를 보고 유난스럽게도 억울함을 느꼈지만 그것이 원래 내가 사는 세상이었다.

그동안 나는 자베르와 유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건지도 모른다. 법의 수호자 자베르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노역하는 죄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시와 통제, 이것이 자베르의 임무였다. 그는 법과 힘으로 그가 사는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장발장이나 판틴은 뜻하지 않는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게 되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는 이런 삶의 상황이 세세하게 보이지 않는다. 은혜와 용서를 체험한 장발장은 빈민굴을 직접 발로 걸어다니며 그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쓴다. 그러나 자베르는 그 빈민굴을 말을 타고 다니며 통제했다. 장발장은 판틴과 대화를 시도했고 그녀가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고 그녀를 도우려 하지만 자베르는 거리로 내몰린 판틴이 범죄했다는 사실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녀를 체포하려 한다. 나의 분노도 사실은 자베르와 같은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봤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자베르가 자신의 신념이 무너짐을 아는 순간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진 것처럼 나도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내가 규정한 정의로운 방향을 향해 가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안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며, 인간은 그 길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이루시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으로 역사에 참여한다. 인간의 제도나 법으로는 그것을 완성할 수는 없다. 물론 제도나 법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벽한 법과 제도를 만들 수도 없고, 아무리 훌륭한 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마음을 품는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방향과 어긋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걸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혁명이다. 예수님은 높은 보좌를 떠나 가난한 자들과 세리들, 창녀과 고아들 곁으로 오셔서 그들을 돌아 보셨지만 스스로 나라의 왕이 되어 한번에 통쾌하게 이 세상을 정리하지 않으셨다. 완성이 아니라 과정의 역사에 오신 것이며 실패처럼 보이는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다.

문을 닫아버린 시민들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던 젊은 혁명가들의 죽음도 사실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들이 흘린 피는 역사의 큰 줄기로 흘러 들었고 자유와 평등의 세계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과정에 있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현실 역시 인내하기 힘든 혹독한 시대일지라도 이것 역시 과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아직 아픔이 다 치유된 것도 아니고 분노가 완벽하게 가라앉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거룩한 인간은 아닌가 보다. 그러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는 말씀을 의지하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멸망과 포로될 것을 예언함과 동시에 반드시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겠다는 언약도 함께 선포한다. 지금의 절망이 끝이 아니라 이는 과정이며 반드시 구원해주리라는 그 약속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며, 혼탁한 세상만 바라보고 좌절하고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길을 기다리고 찾으라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걷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묵묵히 그들을 돕는 자들도 있고 거리로 나와 공의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맞서 싸우는 자들도 있다. 모두 그루터기와 같은 믿음을 지키며 사는 자들이다. 나는 내 믿음 하나 지키며 사는 것도 힘든 연약한 존재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때가 내 예상과 다르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르다고 좌절하지도 않겠다. 지금은 절망의 시기가 아니라 기다림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 안에서 나도 남은 자 중의 하나로 살기를 힘써 기도한다.

/ ccmer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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