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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왕의 몰락
2024년 04월 17일 (수) 09:29:26 김용민 목사 www.cry.or.kr
(사무엘상 31:1~6)
 
기회주의 언론에 둘러싸였음에도
‘윤석열 심판’ 매 든 민주시민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습니다. 낙선돼서 아쉬운 곳도 있지만 하나님이 이 역사에 개입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모든 언론이, 조선일보부터 한겨레까지 몽땅 윤석열의 이익을 대변해왔는데 우리 국민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설득 당해서 정권심판론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하긴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겨레도 없고, MBC나 경향신문은 전두환의 지배를 받았는데 국민이 직선제 개헌을 선택했어요. 민심은 천심이다. 천심이 곧 민심이다, 그 마음이 앞섭니다.
 
검사권력 사유화해 정치 집어삼키고
온갖 불의와 범죄 일삼은 윤석열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보 2면에 나온 내용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땅의 모든 언론이 정권을 찬양하고 야당을 짓밟았지만 이에 영향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결집한 국민은 정권에게 레드카드를 내밀었습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축출은 하늘의 뜻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 노도(怒濤)와도 같은 역사의 정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윤석열이 누구입니까? 검사 권력을 사유화해 정치를 집어삼켜 집권하더니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써 서울 양평 간 고속도로의 종착 지점을 처가가 소유한 땅 쪽으로 위치를 바꿔 지가를 높이고 해병대 병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게 온갖 흉계를 꾸리는 등 인간 이하의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민생 산산이 파괴하고 고통은 국민에 전가
비판하면 ‘입틀막’하는 현대판 연산군 윤석열
20등대 하던 무역수지를 200위대로 만들고, 치솟은 물가로 국민이 신음하는 때에 대파 한 단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1천조 넘는 거짓 약속을 남발했습니다.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수습도 해결도 못 하는 주제에 들쑤셔 놓기나 하고 그 뒤 발생하는 고통을 국민에 떠넘겼습니다. 이런 황당한 폭주에 비판하는 국민은 보는 족족 입틀막을 했고, 노골적으로 유치하게 비판 언론을 짓밟는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됐습니다.
 
삼류 무속인과 ‘금품수수’ 아내 판치는
최악의 정권 수괴 윤석열 끌어내야
이런 상식을 파괴하는 국정운영 배후에 천공이라는 허접한 삼류 주술적 무속인이 배후에 보이고, 디올 백도 스스럼없이 받는 배우자의 입김이 짐작됩니다. 한 표도 얻지 않은 이들이 국정에 그림자를 보여야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비선 정권을 타도한 우리 국민 아닌가요? 그 국민의 령(領)을 받들어 국정농단 세력 일망타진한 게 윤석열 일당이고요.
우리에겐 윤석열 일당을 일소함으로써 촛불혁명의 대의를 지킬 책무도 부여됐습니다. 남의 티끌만 한 잘못은 키우고 자기들의 들보를 덮어 버리는 참 범죄자들이 창궐한 정권에서 도대체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윤석열은 타도해야 하고 광장 역사의 심판정에 세워야 합니다. 그게 감히 하늘의 뜻입니다. ‘더 잘못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지’라고 할 겁니까? 구천을 떠도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채 상병이 안 보입니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이제 윤석열은 타도의 대상입니다. 협치의 대상 아닙니다. 저런 범죄자, 쓰레기하고 대화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과 닮은 사울왕
‘잠재 경쟁자’ 다윗 죽이려 술수
자, 오늘 그래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사울입니다. 사울에게 고난 당한 사람이 누굽니까? 다윗이지요. 들어가기에 앞서 다윗 이야기 좀 해볼게요.
다윗은 구약 시대 가장 빛나는 히어로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다윗은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이순신 같은 존재지요. 사울은 그런 대중의 신망이 다윗에게 쏠리자 점점 불편했어요. 동네 어린이들 조차 “사울이 천명을 죽이면 다윗이 만명을 죽인다”라고 칭송했어요. 사울은 처음엔 질투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다윗을 이렇게 처단하려고 했어요.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이기면 딸 메랍을 주겠다, 와 그렇게 되면 자기는 왕의 사위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겸손한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저는 양치기 출신이라 감히 임금님 사위가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다윗의 이 자세가 너무 아름답지요. 할 수 없이 포기합니다.
 
사울 둘째 딸, 다윗을 아이돌스타 마냥 추종
“블레셋 군인 100명의 성기 표피 잘라오면...”
그런다 둘째 딸, 미갈이 다윗에 너무 반했어요. 그래서 사울은 “딸이 너를 너무 좋아한다, 천한 신분 이야기하지 말하고, 한번 만나볼래? 그래서 네가 내 딸과 결혼하면 이 왕위를 내가 누구에게 주겠니?” 이렇게 말해요. 다윗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미갈과 결혼하려 하죠. 옳다쿠나 했던 사울, 이제 딜을 시작합니다.
“조건이 있다. 저 악마와도 같은 원수 블레셋 놈들, 그 놈들의 포피를 100개 가져와라.”
과거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의 목을 베어 가져오는 끔찍한 문화가 있었지요. 목은 아니었지만 100명의 남자 성기의 껍데기를 할례해서 가져오라는 거죠. 그런데 상대를 때려 눕히거나 죽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상대는 강성한 블레셋 군인들이었습니다. 아, 용맹한 다윗, 100개가 뭡니까? 200개를 잘라와요. 사울은 여기서 약속을 엎을 수 없어서 미갈과 결혼하게 합니다.
 
아버지 사울이 다윗 죽이려들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 남편 도주시켜
그런데 사울은 곧 숨겨왔던 마음을 드러내더니 다윗을 죽이려 듭니다. 아, 골 때리지요. 사위인데. 미갈은 이때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는 딸인가, 아내인가. 결국 미갈은 ‘나는 아내다’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래서 잡으러 온 아버지의 군대를 한눈 팔게 만들어요. 다윗은 그렇게 해서 광야로 도망하고요. 그렇게 생이별을 했지만 곧 다시 만날 날을 그리워하던 미갈,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도망간 다윗이 거기서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아요. 빡친 미갈은 할 수 없어서 다윗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다른 남자와, 특히 순정이 많은 남자 발디하고 재혼해요.
 
사울 죽고 이스라엘 2대왕 될 상황
아내 미갈 찾는 다윗 ... 왜?
그런데 결국 사울은 오라버니 요나단과 함께 죽지요. 다윗이 이제 백성의 뜨거운 성원으로 제2대 왕이 됩니다. 다윗은 이제서야 미갈을 찾습니다. 미갈을 원래 사랑해서? 그런 부질없는 소리가 어딨습니까? 다윗은 자기가 사울왕의 대를 잇는다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위라는 정체성을 확인 받으려고 미갈을 찾았어요. 미갈은 애증이 있지만 다윗에게 갑니다. 아니, 미갈은 재혼했다고 했지요? 남편 발디는 웁니다. 울면서 “여보 어디가? 가지마” 이랬대요.
 
춤추다 바지 내려간 다윗에
꾸짖던 미갈 ... 끝내 버림 받아
다윗은 왕이 됐습니다. 그런데 찬양하다가 옷이 흘러내리는 일이 있었어요. 세상의 왕의 성기가 만인에게 공개됩니다. 미갈은 다윗에게 “왕이 체통 없이 그게 무슨 꼴이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다윗은 미갈과 죽을 때까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다윗이 밧세바를 성폭행하지요. 그래놓고 본인도 사울처럼 밧세바의 남편을 전쟁터로 내보내 죽게 합니다. 다윗도 인간 쓰레기의 면모가 있었어요.
 
길보아산 블레셋과의 전투
적진에서 날라온 화살에 맞은 사울
자, 다윗의 아내의 아버지인 사울이 오늘 주인공인데 다윗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라고 했는데 다윗의 망신스러운 역사가 사실적으로 기록돼 있단 말이지요. 저는 그래서 성경을 더욱 신뢰합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감추고 우상화한다면 성경은 이스라엘의 국뽕 소설이 될 확률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울에 대해서도 신랄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의 죽음에 관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31장, 마지막 장인데요. 여기는 길보아산. 불레셋과의 전투였습니다. 사울은 적진에서 날라온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게 됐습니다.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호위병에게 적군에게 죽느니 차라리 너에게 죽겠다, 나를 찔러라, 이럽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호위병이 어딨어요? ‘그럴 수 없다’라고 하지요. 그러자 스스로 칼을 몸에 댑니다.
 
사울왕 호위병, 사울 유품 들고 와서
“내가 죽였다” ... 다윗, 그를 죽여
자, 근데 이어지는 사무엘하 1장에는 그 호위병인지 알 수 없으나 사울의 호위병으로 일한 이방인이 다윗에게로 와서 사울의 죽음을 알리고 그 증거로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져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울왕께서 자기를 죽이라고 해서 내가 죽였다, 이렇게 말해요. 이 이방인 병사는 사울과 다윗이 불편한 관계이고 따라서 내가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잘 해줄줄 알았지요.
그러나 다윗은 이 병사를 죽입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자신이 사울과 다투는 중이지만 그래도 사울의 뒤를 잇는 왕이 되려면 사울의 대를 잇는다는 징표가 필요한데 이 친구가 ‘내가 사울 죽였는데 잘했죠?’ 이러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이 친구를 바이든해야지요.
 
사무엘상 자살 VS 사무엘하 타살
사울 죽음 다룬 역대상의 결론은?
자, 그러면 사무엘상은 자살로, 사무엘하는 타살로 했는데 무엇이 사실일까요? 이방인 병사가 사울이 자살했는데 자기가 죽였다고 다윗 앞에 와서 거짓말했을 수도 있겠고요. 아니면 반대로 사무엘상이 거짓말한 것일 수 있겠어요.
자, 이 이야기를 다룬 또다른 역사서가 있어요. 교차 검증이 가능한 역사서가 또 있습니다. 바로 역대상입니다. 역대상은 같은 상이라 그런지 사무엘상의 손을 들어줍니다. 사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했지요. 그래서 다윗은 손에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제2대 왕이 됩니다.
그러나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순종하면 다친다, 이렇게 말하는 게 신명기 역사서이고, 다윗 왕조의 부활을 갈망하는 게 역대기 역사서인데 역대상이 바로 그 역대기서 역사서의 하나지요. 역대상이 기본적으로 다윗에게 우호적인 논조라는 점은 알고 계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사울은 하나님 눈 밖에 났나?
각종 불순종 악행 여기에 더해 ‘신접한 여인’ 만나
자, 사울은 도대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서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은 존재가 됐을까요? 오늘 설교의 질문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그런데 무심할 만치 사울의 악행을 두고만 봤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제사장들도 죽이고, 심지어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신접하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자, 이걸 천심이라 할 수 있는 민심에 불순종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의로운 사람, 하나님이 감싸시는 약자, 소수자를 못살게 굴고, 심지어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주술적 무속인을 곁에 둔 누군가가 생각 납니다. 하나님은 사울이나 그 누군가나 방치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접신한 여인 소환으로 죽은 사무엘 출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분노하게 하느냐”
왜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만나러 갔을까요? 원래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니던 아니 원래 야훼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세요. 반면 다윗에게 수시로 메시지를 주셨던 하나님이지요. 앞뒤로 길이 보이지 않고, 세상에 나만 혼자 떨어져있나, 이런 공포심, 무력감이 사울을 감싸고 돌았어요. 그래서 접신한 여인, 접신을 2000번 했다는 설이 있어요. 믿거나 말거나.
자, 그랬더니 죽은 사무엘 예언자가 나타납니다. 그러더니 엄청난 꾸지람을 들어요.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서 나로 분노하게 하느냐”라고 말해요. 사울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겠지요.
 
무능한 왕 사울,
지속가능한 왕국 만들지 못해
사울은 사실 무능한 왕이었습니다. 지척에 군사적 강대국인 블레셋이 있는데 그리고 자기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정치 군사적으로 방어할 대비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어요. 왕국이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이스라엘은 이때도 청동기 문명이었고, 블레셋은 철기 문명이었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쓰러졌습니까? 날라온 화살에 맞았잖아요. 무기 다운 무기가 없어서 군사들은 적군을 만나는 족족 쓰러졌습니다.
사실 전쟁이 걱정되는 상황이라면, 군사적 요충지에 요새를 짓고, 군사훈련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사울은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미국하고 일본이 지켜준다고 믿었던 것일까요? 아, 제가 잠시 착각했네요. 사울 이야기해야 하는데. 게다가 사울은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도 관심이 없었어요. 국제 교역도 안 하고, 교류도 안 하고, 그냥 왕으로서의 지위만 누렸을 뿐이지요.
사울 이 인간이 계속 지도자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왕의 카리스마, 왕의 지위 이것만이었습니다. 백성이나 군사에게 존경심을 얻은 게 아니었지요.
 
왕으로서의 무능 때문에 자격지심 시달려
그래서 누군가 백성의 신망받으면 질투심 폭발
그러면 사울은 어떻게 해서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암몬과의 해방전쟁에서 그때 잠깐 능력을 보여줬지요. 그러나 사울은 내내 ‘내가 왕을 해도 되나? 나는 모자란 게 많은데. 내가 왕으로서 자격이 없음이 드러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늘 나의 자격없음을 누가 농담이라도 언급하면 폭력적인 태도로 돌변해요. 또 누가 자기 아닌 누군가를 추앙하면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질투심을 드러내죠. 다윗이 그래서 당했던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맛이 간 모습이 계속 드러나니까 마침내 지파들과의 동맹도 흔들립니다.
 
사울 시대 왕권 위에 12지파 지분
그들 무시하고 기혼 남성도 전쟁에 징발
사실 사울의 왕국은 모두가 왕을 추앙하고 그의 손과 발이 되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왕 위에 12지파가 있었을지 몰라요. 아무리 왕이라도 이 나라의 뿌리인 12지파의 지분을 인정해야 했는데 사울이 어느 순간 그걸 무시하고 제 멋대로 국가를 운영하게 된 거예요.
대표적으로 결혼하는 남자는 전쟁 나더라도 징집을 안 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사울은 이걸 깼어요. 사사시대를 끝내고 왕국시대를 여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던 예언자 사무엘, 사무엘과 갈등을 빚었겠지요. 사울의 시대는 밑바닥부터 균열되기 시작했어요.
 
“적이 군사적 강성한다
우리도 왕정으로 가야한다”
오늘 주보에도 나옵니다만, 사울이 지배한 이스라엘은 왕국이었잖아요? 사울에 뒤이어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고요. 그런데 사울보다 앞선 시대에는 사사시대였어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사들 즉 예언자들이 나라의 우두머리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한 사람이 지배하는 게 아니니까 이방 나라의 침략이 거의 일상화됐단 말이에요. 그 지파동맹에서는 그래서 왕정으로 가자, 다른 이방 나라는 다 그렇게 하는데 우리만 누구도 책임 지지도 않는 사사가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가면 후진국이 되고 결국 누군가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왕정 반대한 사무엘 ... 왜?
“왕=신으로 받드는 이웃나라 풍조 때문”
자, 그러나 하나님이 왜 사사가 지배하도록 하셨겠어요? 왕이 신이 되는 상황을 바라지 않으셨기 때문이지요. 사무엘이 그래서 왕국을 바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아, 왕국이 되면 금 많이 걷고, 노역도 시키고 또 권력을 확인시키려고 날마나 전쟁 치르려 할 텐데, 그래도 좋냐’라고 말하면서 뜯어말렸지요. 또 ‘왕국이 되면 하나님을 잊고 왕을 신처럼 떠받드게 될 텐데,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냐?’라고 하는 거예요.
실제로 이미 왕국으로 개편한 이웃 나라의 경우 왕이 죽으면 제사를 받는 신이 됐고, 아예 죽기 전에 신이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신으로 인정하지요. 사무엘은 왕국은 곧 하나님 배반, 이렇게 생각했지요. 우상숭배로 여긴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은 왕국만이 답이라고 합니다.
 
백성 잘 떠받들어야 하는데
사울, 그런 지혜와 선의 없어
사무엘이 하나님께 어떻게 할 것인지 묻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뜻이 그러하니 받아들이라고 해요. 그래서 사울이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지요. 참 헐거운 구조였던 거예요. 모두가 왕이 필요해서 왕으로 세웠지만 왕을 어떻게 떠받들어야 할지 모를 때였지요. 왕 또한 자기가 왕으로서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럴 때 첫 번째 왕은 백성을 잘 섬기고 그래서 머리를 잘 짜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지혜와 선의가 없었어요. 늘 자신의 모자람이 드러나니까 자기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나 전전긍긍했던 겁니다.
 
신하도 딸도 다윗 추앙하자
그에게 위협 느낀 사울 ... 끝내 죽이기로
이런데 다윗이 뜨고 있어요. 어떤 전쟁이든 능하게 이기고 인격도 훌륭하니까 백성의 신망이 커져가고 신하도 그를 이스라엘의 미래로 여기더니 둘째 딸 미갈마저 다윗이 아이돌이 됐던 거죠. 그래서 나온 말이잖아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래서 다윗을 미워했어요. 저 놈이 나중에 선거에서 나하고 붙으면 나를 0.7% 포인트까지 쫓아올 놈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언제든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를 범죄자로 몰아서 하다못해 살해해서라도 제거해야 내가 산다,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장로교단마다 있는 법
‘부목사는 바로 담임목사 못 된다’
장로교단마다 헌법에 이런 게 있어요.
“부목사는 바로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
부목사는 담임목사보다 젊고 똑똑하고 착한 경우가 많거든요. 만약 이 법이 없으면 교인들의 신망을 받는 부목사가 그렇지 못한 담임목사를 몰아낼 수 있으니까요. 또 헌법에 이런 게 있더군요.
“담임목사의 한마디면 부목사는 해고될 수 있다.”
이런 누추하고 낯뜨거운 법이 왜 존재하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런 비슷한 일을 당하면 알겠지요.
 
마침내 광기가 발동한 사울
다윗을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
사울은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 하지요. 다윗은 도피하기로 결심합니다. 사울의 광기는 도를 넘어서 자기 앞에서 다윗을 두둔하는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어요. 이 정도면 병적인 광기지요. 그래서 아예 다윗을 죽이려 드는 겁니다. 다윗은 도망쳤습니다. 사울은 그를 죽이라고 합니다. 어떤 명목으로? 내란 음모죄로 말입니다.
아니 다윗은 사울에게 절대 적대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장인인데 내란 음모라니... 다윗은 블레셋과 경계지점인 아둘람으로 피신했어요. 그런데 ‘국민 장군’을 보러 백성이 모였어요. 대개 사울시대에 그가 어리석은 통치를 하는 바람에 억울한 사람들 400여명이었어요. 사울은 이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합니다.
 
다윗 나타났다 싶으면
무리하게 공권력 동원해 괴롭혀
사울은 다윗이 어디에 있다는 정보를 들을 때마다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쳐들어갔습니다. 국가 공권력을 국민을 위해 써야 하는데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썼단 말이지요. 이런 왕은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빡치신 포인트도 여기였을 거예요.
늘 하나님과 교통했던 다윗은 사울의 군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믿었고 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고난 속에 다윗을 단련시키셨고, 백성의 뜻,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던 사울을 패망시키셨습니다.
 
왕권은 백성 떠받들 때 존중받는 것
그것을 사유화하는 순간, 정당성 상실
사울은 왕이었지만 그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권위는 달성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권위는 어떤 면허처럼 취득하는 게 아니예요. 계속 유지하는 겁니다. 마치 권투선수가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단 말이에요. 그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타이틀 매치를 벌이잖아요. 이겨야 그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거고요.
사울이 왕이 될 때에는 모든 이들이 그를 지지했어요. 다윗이 될 때에도 그러했고요. 그렇게 왕으로 추대할 때 민심은 하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권위는 어디까지 백성 즉 하나님을 잘 받들고 편안하게 할 때 유지되는 것입니다. 왕이 됐다고,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한다면 그것은 이 권력의 정당성을 해체하는 것이지요.
 
하늘 뜻 대변하는 백성에 버림받은
왕은 그 직을 유지할 수 없어
윤석열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선거에서 대패한 다음 날, 국민에게 고무 호스로 쳐맞은 다음 날, 출근 안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이 고민에 퍼 마셨겠지요. 이 자는 하나님과 백성에게 신망을 잃은 폭군이자 혼군 사울에 다름 아닙니다. 끌어내야 합니다.
그것은 제가 누구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래서 누가 대신 집권하면 덕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대변하는 백성에게 버림 받은 자는 그 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의는 자주 실현돼야 좋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임무 받은
문재인 정권, 왜 정권 내줬나?
그래야 이태원 참사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10주기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그때 나라도 대통령도 없었지요. 국민은 기억했다가 한 석 차이이긴 하지만 여당을 소수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신 못차리자 촛불혁명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하는 척 마는 척하며 세월호 진실을 다뤘지요. 세월호 유족 한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문재인 청와대 인사가 했던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당신들 이야기를 들어드리지 않느냐’라고.”
야당일 때 세월호 팔이 열심히 하다가 권력을 얻고는 모른체 하는 자들, 이 자들의 정권은 결국 심판 받았습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세월호 참사를 야기했던 그 세력이지요. 이태원 참사를 야기하기도 했지요. DNA까지 같은 놈들입니다. 진실 규명은 단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세월호 진실 규명에 소홀하는 순간, 또 희생당한 이들, 또한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이후 모든 게 멈춰선 가족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어느 누구든 몰락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민의 목숨과 행복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는 순간 그 어떤 권력이든 하나님의 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 시민도, 그리스도인도 이런 해원, 원한을 푸는 일에 게을리 하고 그저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개념있는 시민이야’라는 세월호 기억을 액세서리로 삼는 인생이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숙제를 하루하루 풀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과 이 세상 일치시키는 것
그리스도인의 책무
오늘 주보 4면에는 전세 사기 피해자인 한 남성의 글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분이라네요. 그 남성이 세월호 희생자의 입장에 빙의해서 세월호 가족에게 쓴 편지입니다. 한 부분만 읽어 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지금 아버지 어머니의 곁에 있었다면 결혼해서 예쁜 손자, 손녀를 보여드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너무 죄송한 마음이에요. 저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고 아무런 고통이나 아픔도 없이 지내고 있어요. 이곳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에요. 제가 떠나기 전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고 더 잘하지 못한 그것에 후회하기도 해요.”
천국에서 평안히 지낼 희생자, 아무 번뇌와 고통이 없는 세상 천국과 이 세상을 일치시키는 것, 우리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현실에 눈을 뜨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깨는 세력과 분연히 맞서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벙커1교회 담임목사, 평화나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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