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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소중한 몸짓”
2024년 04월 17일 (수) 10:25:57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창세기 4:1-15)

1.
몽골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베르흐 지역의 한 예배처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벌러르’라는 한 자매가 예배시간에 땀으로 범벅이 돼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찾아다니던 소를 버려두고 예배를 드리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땀범벅이 된 자매를 보며 선교사님은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이 자매의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가 보았더니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찾아온 것입니다.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이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습니다. 한 때 한국 교회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몽골 선교사의 “내려놓음”이란 책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우선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키십니다.
 
2.
오늘 읽은 본문은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장남은 가인으로 농사짓는 이였고, 아벨은 둘째로 양을 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장남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셨고, 차남 아벨의 제물만 받으셔서, 결국 시기심으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고, 그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봅시다. 가인과 아벨은 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가요? 그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갑자기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나옵니다. 가만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흔적도 없습니다. 이건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물론 제물의 의미가 화목제의 성격으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하나님과 불화를 빚게 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드린 것이겠지만, 그러나 여전히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는 표현은 없는데,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더군다나 3절을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합니다. 즉 이 말을 달리 보면 세월이 지나기 전에는 그들이 제물을 드리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 신앙생활에 제물, 헌금이 우선하지 않습니다! 물질이 우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우선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헌금을 드린다? 복채인지는 몰라도 진정한 헌금은 아닙니다. 제 신앙과 신학으론 의미 없습니다. 초신자는, 아직도 하나님이 생소한 분들은 헌금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부터 하십시오.
 
‘하나님께 드림’에는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억지로 드리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선 하나님과 교제함이 필요합니다. 간혹 교우들이 내게 ‘목사님, 헌금 설교도 좀 해주세요.’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론 그건 설교로 이행되기보다도 자연스레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마음, 사랑이 성숙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큰 사랑이 생기는데 왜 드리고픈 마음이 안 생기겠는가요?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림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많은 교제의 시간, 진한 교제 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처음부터 제물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교제하는 가운데 스스로 뭔가 2%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온전히 드러내고파서, 표현하고파서 나타난 것이 제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다보니, 그 하나님을 향해 뭔가 감사의 몸짓,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뭔가 특별한, 아니 하나님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분임을 표현하는, 뭔가 드러내는 몸짓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게 필요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 그것을 받는 그 분이 자신에게 가장 귀한 분임을 드러냈습니다.
 
3.
예배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가장 소중한 몸짓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니,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류를 하다 보니,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 그것을 받는 분, 하나님이 내게 가장 소중한 분임을 표현해드리는 것, 그게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영어 단어로 예배를 worship 이라고 합니다. 그 뜻이 가치 있는 행위란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예배는 내게 가장 가치 있는 시간입니다.
 
내 삶 속에, 내 시간 속에, 내가 무릎을 꿇고, 그 귀한 시간 바치고, 그 소중한 재물을 드릴만한 그런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남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내가 일주일에 하루를 철저히 빼놓는 이유, 그토록 바쁜 내가, 주일이면 어김없이 이 성전에 찾아와 예배하는 이유,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내가 교회에 와선 무릎을 꿇는 이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지식인이요 엘리트요 지성인이라고 하는 내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게 ‘할렐루야, 아멘’하는 이유. 남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내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기에! 아, 그 분의 손길이 언제나 나에게 머물러 있기에! 그분이 그만큼 내게 소중한 분이기에! 나를 인생의 수렁에서 건져주신 분이기에! 나를 사랑하다 못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죽으신 분이기에!
 
그래서 나는 예배를 드립니다. 이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친구들이 이해 못 해도, 집안 식구들이 얼떨떨해해도, 예배, 이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그런 귀한 시간입니다.
 
때로는 인색하고, 때로는 쌀쌀맞은 내가, 앞뒤 생각 없이 풍성한 감사를 드리고 어울리지 않는 가장 순진한 웃음을 띠는, 그래서 나를 아는 이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내게서 높아지고,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실 분, 그 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드러내는 가장 소중한 시간, 그 시간이 예배의 시간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 누구인지를 만 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4.
본문을 계속해서 살펴보십시오. 이렇게 소중한 예배에 실패한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인도 아벨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감사, 진심을 표현하는 가치 있는 제물 드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변한 듯합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아벨은 하나님께 드릴 때 가장 좋은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고 했는데, 가인의 제물엔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그냥 대충했다는 뜻입니다. 가인의 맘이, 정성이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미 없는, 진심이 없는 가인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너는 오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말1:10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아예 그런 이들은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거절당하자, 가인의 삶은 폭풍 속으로, 어둠 속으로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 가치에 혼란이 왔고, 동생이 라이벌로 여겨졌고 마침내 ‘저 놈만 없어지면...’ 하더니 급기야 살인을 하고, 양심의 가책마저 눌러버립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자, 그 예배가 열납 되지 못하자, 그 인생은 곤두박질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가 흔들리면, 가인처럼 우리네 삶은 평강을 잃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괜히 모든 게 불만스러워집니다. 그냥 기분 나쁩니다.
 
내 확실히 말씀드리는데, 예배가 흔들리면 이렇게 모든 게 불만스러워집니다. 삐딱해집니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앉는 것도 삐딱하게 앉습니다. 가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 됩니다.
 
그리곤 그 삐딱해진 마음에 시기심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탄이 기회를 놓칠 리 있는가요? 그러다가 기회가 주어질 때 살인까지 합니다. 물론 실제적인 살인보다 마음의 살인, 미움이 가득해집니다.
 
그리곤 이것을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해, 말씀을 통해 지적하시면, 괜한 항변과 신경질을 쏟아놓습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하며 되레 큰소리치고 신경질 부립니다.
 
그러면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쌓여지는 게 없습니다. 얻어지는 것도 별로입니다. 그리곤 막연한 불안함이 그의 인생에 찾아듭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를 두고 쑤군거리는 것 같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다 자기를 해하려고 한다는 피해망상증에 시달립니다. 그리곤 떠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거절당했을 때, 온전한 예배가 사라졌을 때 우리들 안에 생기는 증상들입니다. 가인이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욥기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하나님과 갈등을 빚으면서 행복하겠다고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늘 하나님과 다투면서 축복받겠다고 꿈도 꾸지 마십시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때 우리 영혼이 잘 되고, 생활이 풀려나가고, 강건해집니다. 하나님과 갈등이 없을 때 모든 것, 수많은 나의 삶의 관계성들이 제 자리를 잡아가고 평강을 찾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평안이 임하고, 그리해야 복이 내게 임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는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우리의 모든 생활이 제 자리 잡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을 향한 우리네 삶의 표현의 최고봉, 예배, 이 예배가 온전해야 그 뒤의 우리네 모든 삶이 안정이 됩니다.
 
그러면 이 예배,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요? 예수님께서 예배에 관련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십니다. 그러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전에 쓰던 개역 성경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했는데, 대체 영과 진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요?
 
나는 그 답이 오늘 본문 3절, 앞에서 말씀드린 바로 그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세월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를 하다 보니 하나님이 내게 너무너무 소중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몸짓으로 드러내고 싶습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종종 물어보지 않는가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다음 질문이 뭔가? ‘얼마만큼 좋아?’ 그러면 아이는 얼마만큼 좋다고 하는가요? 두 팔을 활짝 펼쳐듭니다.
 
아이의 두 팔로 활짝 펼친 공간, 그게 뭐 대단한가요? 그만큼 좋아한다면, 그거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분량이 뭐라구요? 바로 그것입니다.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이만큼~~~!’합니다. 그리고 그 어린 것도 그것으론 부족한 것을 아는지 이 말을 덧붙입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6.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그 예배 자세는 내가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예배는 그러기에 내 삶의 모습에서 가장 진지하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집중하는 나의 몸짓입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몸짓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 곧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어떠하다해도, 시간을 내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두 팔을 들고 목소리 높여 찬송을 부르며 자신의 생에 가장 소중한 분이 누구이신지를 확실히 드러내십시오.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실 분이 누구신지 확실히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을 최고봉에 올려놓으시고,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예배 때마다 영과 진리, 가장 소중한 몸짓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여 복에 복이 넘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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