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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지 않은 전병”
2021년 08월 25일 (수) 10:54:51 양의섭 목사 www.cry.or.kr

(호세아 7:8-16) 
 
1.
지난 주중엔 전 세계인들이 아프가니스탄 뉴스를 접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국력이 약하고, 자유와 생명, 민주와 인권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저렇게 쉽게 무너져내리고 자식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구요. 자기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의사가 없는 나라에서 자기들이 목숨 걸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일리있는 말이긴 하죠. 그러나 생명, 자유, 신앙, 인권, 이런 것들이 어디 그런 셈에 의해 좌우되는 일인가요? 지킬 수 있으면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대통령이 되고 정권을 잡아도 국방의 힘은 키워야 합니다. 북한 눈치를 보고 중국 눈치를 보다간 우리 자식들에게 불행한 역사를 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끼리 니편 내편 하고 서로 싸우더라도, 나라가 있어야 하고,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유와 생명, 평화와 인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어떠한 정치 논리보다 더 우선하고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와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이번 주간은 기도합시다.
 
2.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나라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북쪽으로는 10지파가 갈라나갔고, 남쪽으로는 2지파가 남았습니다. 위의 10지파는 ‘이스라엘’이라고 나라 이름을 정했고, 남쪽의 2지파는 다윗, 솔로몬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유대’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람은 선지자 호세아인데, 그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북 왕국 이스라엘을 두고 한 말씀인데, 이들을 칭할 때 ‘에브라임’이라고 한 것은 그 10지파의 주도권을 에브라임 지파가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에브라임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여러 민족에게 혼합되었답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나라 저 나라가 건드린다는 뜻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이 나라 따라가고 저 나라 따라간다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혼합되었다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영적으로 해석하여 세속에 혼합되어 세상에 파묻혀 사는 성도의 이야기 아닐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섞이지 않고 독불장군 식으로 홀로 살기를 원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는 담쌓고 홀로 살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모두 세속을 떠난 깊은 산중에 불교처럼 산사(山寺)를 짓고 수도원적인 생활을 하기 원하시는 건가요?
 
세상에 섞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으로 택함을 받아 이 세상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할 이스라엘이 도리어 세상 안에 섞이어 그 본분, 복의 근원으로서의 거룩한 백성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모습만을 갖게 됨을 말합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보냄을 받고는 세상이 너무 즐거워 그만 짠맛을 잃어버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나가서는 도리어 세상의 물이 들어 성도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택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곤 우리끼리만 모여서 수도원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선 철저하게 ‘너희는 세상으로 나아가라, 불신자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라’하셨습니다. 이는 그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누룩이 되라고, 이 불신과 불의의 세상에서 사랑과 정의, 신뢰의 사회를 이루어가라고, 복의 근원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교회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나 신자들이 모두 세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로서의 독특한 정의감, 헌신, 봉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회를 개선하는 선한 영향력은 보이지도 않고, 그저 손가락질당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 정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이제 세상에 묻혀버려 구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3.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이스라엘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뒤집지 않은 전병!
 
유대인은 돌을 달구어 그 위에 전병(煎餠), 곧 빵을 구웠습니다. 빵은 반죽도 잘 돼야 하지만 잘 구워져야 하는데, 잘 굽기 위해선 적절하게 잘 뒤집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호떡 같은 빵을 잘 해 주시곤 하였는데, 가만 보니 별로 어려워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밀가루 반죽을 한 움큼 떼어 안에다 흑설탕을 넣고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심심하면 한 번씩 뒤집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나도 하겠다 싶어 해 보았는데, 제대로 익은 것을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한쪽이 새까맣게 탄 것이나 설익은, 밀가루 반죽이 이빨에 찐득찐득 붙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배운 것, 모든 것은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어쩌면 그렇게 뒤집기를 잘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재고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휙 뒤집을 때는 적절하게 익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었습니다. 뒤집혀야 하는데, 뒤집히지 않아 한쪽이 새까맣게 타버린 못 먹을 전병이었습니다.
 
부침개가 판 위에서 잘 익고 있습니다. 아기 부침개가 엄마 부침개에게 울며 보챕니다. “엄마, 자꾸 밑이 뜨거워.” 그러자 엄마 부침개가 그럽니다. “뜨거우면 뒤집어”
 
맞습니다. 뜨거우면 뒤집어야 하는데, 익숙해져서 마냥 좋아합니다. 그러니 그 밑이 타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그 좋은 재질 다 검게 태워 먹고 버림을 받습니다.
 
여러분, 뒤집혀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쪽으로 너무 오랫동안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삶의 자세가 너무 익숙해지고 편해져서 신앙적 결단을 미루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젠 뒤집힐 때가 되지 않았는가요?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에 혼합되어 너무 세상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세속적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기들의 삶의 바닥이 타기 시작했음에도 알지 못하고 제 고집만 부리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힘을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큰소리만 칩니다. 마치 삼손이 불순종하고 성결함을 잃고 머리카락이 다 잘린 지도 모르고 예전처럼 원수들 앞에서 힘을 써보겠다고 큰 소리로 일어서려다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은, 아직은 하면서 자기에게 예전의 그 아름다움, 거룩함, 신령함, 권세와 힘이 남아 있는 줄 알고 큰소리치다 결국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원수에게 붙들려 처량하게 두 눈알을 뽑히는 수모를 당하는 삼손과 같은 모습이 에브라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환경에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될 정도로 근심에 근심을 하면서도 ‘설마하니 정말 그렇게 되겠어?’ 하며 막연한 헛된 희망을 갖습니다. 그렇게 맘고생 하면서도 하나님은 찾지도 않고 끊임없이, 부지런히 강대국들만 찾아다닙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세상적인 해결책만 찾아 헤맵니다.
 
밑바닥이 타들어오기에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데, 하나님께로 뒤집혀야 하는데 생고집을 부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이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책망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무릎 꿇을 생각은 하지 않고, 냅다 애굽으로, 앗수르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12절,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전에 하던 버릇 그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세상을 의지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징계하신답니다. 왜? 그땐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그런 위기감이 들면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 거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데, 뒤집혀야 하는데 끝까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제멋대로, 제 고집대로, 제 스타일대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7)
 
그 때는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누워야 합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다 어찌 될까요? 완전 패망하고 맙니다. 애굽의 바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알면서도, 하나님의 의지를 알면서도 마음이 강퍅해져서 자기 자존심 때문에, 체면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께 대항하다가 그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지 마십시오. 아니,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적으로 삼는 인생이 과연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5.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다가 하나님의 공의를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시시오. 심판의 불판에서 끝까지 고집부리지 말고, 너무 뜨거우면, 너무 힘들면, 너무 두려우면 돌아누우십시오. 뒤집히십시오. 그건 자존심 상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지혜로운 것입니다. 두 손 들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십시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어제 설교 준비 중에 이 찬송이 생각나서 이렇게 원고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성령의 감동이 내게 찾아듭니다. ‘너, 이 찬송 마지막으로 부른 게 언제냐?’ 가만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부른 게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한때는 이 찬송을 밤새 두 손을 들고 울며 찬양을 하곤 했는데, ‘주여, 주여’하면서 눈물로 찬양하며 뒤집어지곤 했는데, 그런 찬송을 이젠 더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이대로가 좋사오니,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자세로 그냥 지내온 것 같습니다.
 
이 찬송을 자주 부르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니, 눈물 많이 흘리고, 잠 못자고 기도 많이 하던 고달픈 때였지만, 그때가, 그 시절이 내 영혼이 행복한 때였습니다. 지금은? 고집만 세어졌습니다. 도무지 뒤집어질 줄 모릅니다. 두 손 들고 주님께 돌아가야 하는데 ...
 
두 손 들고 돌아오는 이들을 우리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돌아가되 진실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건져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못 살겠다고, 돌아가겠다고 주여 주여 하기에 건져주려 했더니 이게 순 거짓말입니다. 그냥 하는 소리였습니다. 거짓된 돌아섬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건성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침상에선 슬피 부르짖습니다.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 세상 근심으로 침상에서 여전히 신세 한탄을 하며 염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그나마 하나님을 찾는 것은 ‘곡식과 새 포도주’ 때문에, 즉 물질 축복을 받고파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선 늘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러기에 급기야 그들을 뭐라 표현하셨는가 하면,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속이는 활과 같답니다. 그나마 돌아오는 것 같아 믿고 목표를 향해 시위를 힘껏 당겨 날려 보냈더니 이놈의 화살이 엉뚱한 데로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한 곳이 아닌 제멋대로, 제 가고 싶은 데로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은혜를 받으면 될 성싶어서 흠뻑 은혜 위에 은혜를 부어 주었는데, 속이는 활이었습니다. 돌아서는 폼이 정말 회개하고 돌아서고 결단하고 돌아오는 것 같았는데, 결정적일 때 삼천포로 빠지는 거였습니다.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고 땅의 풍성한 복을 주었더니 다 자기 것이라고 움켜쥐고 나눌 줄 모릅니다. 직분을 주고 사명을 주었더니 교만해지더니 제멋대로, 자기 하고픈 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속이는 활입니다.
 
정말 진실되게 두 손 들고, 결단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성심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고 진실함으로 돌아갑시다.
 
6.
요즘 우리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뒤집지 않은 전병은 아닌가요? 우리의 삶이 뒤집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뒤집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입만, 겉모습만 성령에 익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가치관, 생활, 모든 것이 뒤집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불에 의해 온전히 익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뒤집어 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처구니없게도 이것만은 놔두세요 하며 뒤집히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입만 열면 성령 충만을 운운하면서도 성령에 의해 뒤집히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부딪히면서도 이것만은 자기 스타일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랑, 해야지요, 그러나 이 사람만큼은 사랑하고 싶지 않으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용서, 해야지요, 그러나 이 사람만큼은 용서하고 픈 마음이 없으니 내 뜻대로 놔두세요. 정직, 해야지요, 그러나 장사만큼은 그렇게 했다가는 망하고 마니까 이것만은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헌신, 물론 해야지요, 그러나 요즘은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지금은 놔두세요. 때가 되면 할게요.’
 
결국 우리의 모습은 어찌 될까요? 아래는 타고, 위는 설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군불을 자꾸 때시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머뭇거리며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래는 굳어져 쓸모없는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로 뒤집히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를 놓고 주의 뜻대로 하라고 속삭이는 성령과 늘 갈등을 빚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이 보아도 이중적인 모순적 생활로 괴로울 때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주님께로 돌아서십시오.
 
끝없는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삶을 성령의 불 가운데로 뒤집으려고 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시시오. 주님께서 뭔가를 원하신다면 그리로 뒤집히십시오!
 
7.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뒤집어지지 않은 전병들이 많습니다. 때가 되었음에도 뒤집어지지 않아 여기저기 설익고, 여기저기 새까맣게 타버린 얼룩덜룩한 영성으로 헷갈리는 신앙 생활하는, 헷갈리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코로나가 때맞춰 찾아준 게 차라리 고맙다는 듯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신앙적 결단을, 거룩한 결단을 계속 미루며 밑이 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세속에, 세상에 완전히 혼합되어버린 정체불명의 신자들이 많습니다.
 
더는 고집부리지 말고 하나님께로 뒤집어 지십시오. 그나마 말씀과 찬송과 기도 중에 얼굴이 뜨뜻해지면, 마음이 울컥해지면 성령께서 불을 때시는 줄 알고 하나님께로 뒤집어 지십시오. 이젠 주의 뜻대로 살겠다고 뒤집어 지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용기있게 뒤집어지는 결단과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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