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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강 습3:14-20 시온에서 울려 나오는 찬양
2021년 01월 14일 (목) 09:46:06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여러분 기쁠 때 무엇을 하십니까? 저는 사람들 만나요 저는 가족들하고 지냅니다 거꾸로 슬플 때 무엇을 해요? 저는 혼자 있는 편이어요 사람은 슬플 때도 노래하고 기쁠 때도 노래하고 그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띠어 주는 것만이 음악의 역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역할 이런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돌아가셨지만 가야금을 타신 황병기 선생님이 계신데요 그 선생님은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의 고양시키는 음악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 안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고양 시킨 음악을 하는 사람은 그런 음악을 하는 것이고 어떤 상태에든지 노래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정서를 드러내고 사람의 정서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시편이라는 책도 시편에는 두 가지 소리가 들려오지요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 바치는 기쁨의 노래가 있는가 하면 살다 보면 안 계신 것처럼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하고 내 속에서 탄식이 터져 나올 때 하나님 어디 계셔요 탄식의 노래도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노래 가운데 초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어요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어요 나는 노래 잘 못하지만 합창단에 끼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어디 일것 같아요 요한 계시록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분이 계시고 네 생물이 있고 이십사 장로가 있고 네 생물이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면 이십사 장로가 따라 부르고 천군 천사가 따라 부르고 온 우주가 참여하거든요 나는 그 노래에 동참하고 싶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죽어서만 하는 노래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그 분에 대한 찬미일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볼려고 하는 본문이 우리를 노래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14절 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지라
 
노래의 초대 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이 명령이 참 좋으네요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노래할 지니라 전심으로 노래한다는 것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는데요
 
우리 신학교 다닐 때 신학교에서 퇴수회라는 것을 간 적이 있어요 요즈음으로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엠티같은 것이라고 할까 퇴수회라는 것을 갔는데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통나무 집 같은데 학년 별로 들어가서 자기들끼리 이야기 나누고 그러는데 누가 한 사람이 키타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따라서 노래를 부르지요
 
신학생들이 노래 잘 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열등감을 느낀게 노래를 너무 잘해 누가 한 사람이 켐퍼스 잔디밭에 앉아 가지고 키타치면서 노래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이 앉아 네 사람이 앉으면 사부 중창이 되는 것이어요 노래들 정말 잘해요
 
그 날은 퇴수회의 기분이니니까 찬양을 안 하고 누구 하나가 무엇을 불렀느냐 하면
양희은씨가 불렀나
한 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먼 훗날 위해 내미는 손 둘이 서로 마주 잡고 웃네
 
그 다음에 한 사람 곁에 또 그 곁에 둘이 좋아해 이런 곳이어요
후렴 부분을 반복하는데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야
그 무한 반복이야 한 사람 곁에 또 한 사람이 그냥 종교 체험이야 찬양이 아닌데 정말 그 때 느꼈던 하나됨의 기쁨 우리가 한 길을 가는 동료들이구나 이것을 가슴 절절하게 느꼈는데 노래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묶어 주는 게 있는데
 
노래하라고 하나님이 불러요 슬픔 속에 있는 사람이건 기쁨 속에 있는 사람이건 노래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그냥 노래해 이런 명령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노래 부를 마음이 있어서 부르지 않아요 슬픔을 그러나 스바냐서에서 오늘 노래하라고 하는 것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라
 
어떤 기쁨일까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 힘 있는 나라가 통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 확신 이것이 내 속에 있을 때 여기서 울려 나오는 기쁨 시온의 하나님의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할 때 노래하자는 기쁨을 노래하자 이것을 기쁨을 함께 노래하자
 
지금은 고통 가운데 있을지 모르지만 미구에 전개될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연한 반응은 기뻐하는 것이어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다른 게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하는 것 미리 취하는 것 하나님이 약속하는 바를 내 삶 속으로 끌어 당겨요 이것이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전히 현실은 어려워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로 초대하셨느냐 하면 노래로 초대하셔요 함께 노래해 그 때 노래할 때 함께 솔로도 좋지만 부르는 노래들이 갖는 힘들이 있는데요 미구에 전개될 반응으로 노래를 부름으로 약속을 미리 앞당겨서 경험하자는 것이어요
 
여러분 타고르라는 인도의 시성 그분이 키단자리라고 하는 시를 섰는데 그 가운데 한 대목이 이렇습니다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세우셨습니다
 
나를 비우고 또 비워내고 그리고 그 속에 싱싱한 생명으로 세우셨어 그리고 노래합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 기탄질리(니빈드리 타고르의 시)
 
갈대 피리 같아 나라고 하는 존재가 그런데 그 님으로 표상되고 있는 하나님이 나를 데리고 다니셨고 그리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신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피리야 나라고 하는 존재는 하나님의 순결을 불어 넣으셔서 부르시는 피리이다 놀라운 표현이지요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 손길의 끊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없는 즐거움에 젖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발합니다 때때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당신의 손길이 나를 토닥거려 주기에 무궁한 소리가 납니다
 
무궁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있습니다 내 삶 속에 지속될 때때로 하나님은 은총을 내다보는 노래이지요
 
여러분 잊지 마세요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비우고 또 비워내 왜 비우시느냐 하면 더 새로운 생명을 채우기 위해서 비우신다 이것이 타고르라는 시인이 들려주는 노래야요 그것을 생각하면 내 삶에 근심 걱정이 가득차 있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있어요
 
하나님은 싱싱하게 채워 주실 것이야 하나님은 내 속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 넣으셔서 하나님의 선율을 노래할 것이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해야 되어요 노래엔 동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15절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니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기뻐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스라엘이 받아야 될 심판에 따른 형벌을 이미 제거하셨 그 다음에 원수를 쫓아 내셨어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포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 살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두려움이 없는 삶을 약속하셨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의 내용은 불안이어요 유한한 인간은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이 불 확실해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러니까 불안해요 모호해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런지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불확실하고 모호하다고 해도 우리는 나부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내 삶을 위탁하고 산다고 하면 자유가 내 속에 찾아와요 내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결실을 얻어야 해 하면 부자유가 나를 지배해
 
최선을 다해 살지만 결과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겪어낸 삶이라고 보면 모호한 삶도 복이 될 수 있다 불확실한 삶도 복이 될 수 있어요 정답이 없는 삶 모호한 삶을 살아갈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강해요 그 삶이
 
고정희라는 시인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학을 공부하신 분이신데 아주 훌륭한 시인이었습니다 시인답게 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지리산 뱀사골에서 급류에 휩쓸려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분의 시 가운데 제가 사랑하는 시가 있는데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시입니다 상한 갈대를 위하여라는 시인데 이렇게 노래합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에서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게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들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해가 문제fi
고통과 서름에 날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혼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거 있거니
 
우리의 삶이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처럼 때대로 밑둥이 잘린 것 처럼 내 삶이 외로울 대도 있어요 그리고 부평초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물 고이면 곷을 피어내는 저 식물들 처럼 외롭리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말하고 있는 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라 열정 이런 것들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오늘 우리의 삶이 고통과 설음의 땅이라고 해도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고 그리고 희망이 있는 데 영원한 눈물 영원한 비탄은 없어 왜 캄캄한 밤하늘에 내가 서 있다고 하더라도 저편에서 마주 잡을 손 하나가 오고 있어
 
그게 어떤 사람일 수 있지만 영원한 마주 잡을 손은 주님이셔요 역사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그 분이 서러움의 땅 외로움의 땅이라도 거기에 지지 않고 간다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든든함이어요 돈 많아야 든든하고 든든하지 않는 것이야
 
믿음의 사람들은 그런 든든함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서 마주 잡을 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분 그 분은 때때로 나를 통해 상훈씨의 손을 잡아 주시를 원할 때가 있어요 이것이 삶의 보람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더불어 구원을 베풀고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어요
이런 기쁜의 순간들이 그들에게 올 것이다 두려움이 없이 살자는 이야기여요
16절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손을 늘어 뜨린다는 것은 기력이 완전히 빠져 늘어진 상태 파 김치처럼 다가오는 압도적인 재앙으로 말미암이 맥이 빠진 상태가 손을 늘어뜨리다 라고 하는 말이지요
 
우리도 살다보면 문제의 크기에 압도 되어서 자기의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보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렇지요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어요 정말 잊지 말아야 될 것 세상에서 내게 직면하는 문제보다 나의 존재가 더 크고 귀해 때때로 치욕적인 일이 내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이 나를 찾아 오기도 합니다
 
그 어려운 일이 살아갈 용기를 빼앗아 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받은 존재이다 나의 문제보다 문제가 나보다 큰 것으로 생각하여 문제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달아나지 말고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야 하나님이 그런 능력을 내게 주셨어요 내 속에 가능성에 눈 뜰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진자 믿음의 사람이어요
 
두려워 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 뜨리지 말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낙심 될 때가 많아요 세상에 악이 너무 성행한 것처럼 보여요 선하게 사라려는 사람이 언제나 이용당하는 것 처럼 보여요 그리고 우리가 그러면 안 되지 않아요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 다고 너 그래 가지고 사회생활 할 수 있겠어 좋은게 좋은 것이지 이렇게 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듣는 소리가 무엇이냐 하면 가만히 있으라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안 달라져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어차피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야 우리속에 비관적 전망을 심어 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손을 늘어E 우리 속에 힘을 우리에게 존재의 용기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어요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잊지 맙시다 우리 가운데 계셔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은 일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계셔요 그 분은 어떤 분이셔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어요 전능자라는 말은 용사라는 것이어요 하나님은 용사여요 세상의 어두움과 패배하는 분이 아니어요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시는 분이시어요
 
시편 3편 7절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라고 노래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정말 감격적인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게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것이다 어마 어마한 이야기여요 시련을 통과하면서 세상에 헛된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긍정이 이러한 언어로 등장하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떳떳한 존재이겠습니까마는 하나님만 의지하여 살 수 없는 나의 곤고함을 주님의 은총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주님 앞에 우리가 두손들고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뻐하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이 대목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너를 구원해 내신 용사 네 하느님 야훼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바라보면서 더덩실 춤을 추시는 이 상상력 시적 상상력 대단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심판이 지나갔어요 정화되고 연단이 되었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새로운 삶이 시작이 됩니다
 
18절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내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이 말은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의 절기를 지킬 수 없는 형편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 않아요 가난하든지 누군가에 눌려 있던지 먼곳에 흩어 있던지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며 정말 축제의 함성을 지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모으신다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주어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지난 날 치욕스러운 일이 그들을 사로 잡고 있었으나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19절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다즐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역사의 역전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저는 자를 다 멸하실 것이다고 말합니다 저는 자를 구원한다 저는 자는 다리가 저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주어진다 남들하고 언제나 뒤 쳐지고 못나 보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이 함께 한다
 
그리고 쫓겨난 자를 모으고 주변화 된 사람들을 마지널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마지너리티 주변성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저는 자 그 다음에 이런 주변화 된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 중심에 설 가능성을 박탈을 당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각별하게 관심을 가지신다 하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은 주변화 된 사람들 마지날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하세요 함석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데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면 원하는 대학 들어가고 취직도 잘하고 원급 많이 받고 그렇게 살아요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좋은 대학도 못가 취직도 잘 안 되어서 어려워 그래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 세상이 이러면 안 되지 않아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게 잘 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안 그런 사람들이어요
 
이것이 놀라운 점이어요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데 있어요 이 방송을 통해 공부 못한 다고 탄식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함께 일하기 원하세요 그렇다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고 가면 되니까 세상에서 수모를 당하는 사람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한다고 말하는 데 바울 사도가 십자가 본질을 경험하고 나니까 이 세계여요
 
고전 1장 2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28절 하나님께서 세상에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하시나니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말 놀라와요 여기에 바울 사도가 이야기 했던 미련한 것 또 약한 것 천한 것 멸시 받는 것 없는 것 이게 스바냐서의 언어로 이야기 하면 저는 자 쫓겨난 자 수욕 받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이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만드시려고 한다 이게 스바냐서라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입니다
 
20절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19절에 거의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 구절과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는 시편이 있지요 시편 126편인데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 꾸는 것 같았도다
 
2절 그 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찿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시는 분 이것이 소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스바냐서의 시작은 참 암담했습니다 스바냐를 소개하는 말이 끝난 다음에 시작하는 2절을 어떤 말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라는 말로 시작이 되어요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렇게 화가 난 까닭은 하나님이 세우신 세상의 기초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정의와 공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세상 그 세상에 하나님은 화가 나셨어요 그래서 그 세상을 진멸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도 정의와 공의를 저 버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 그 나라들도 다 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을 언급했어요 이 나라들이 망하게 될 것이야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뿐만 아니라 가장 거룩해야 될 예수살렘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저주 받을 공간처럼 바뀌었어요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다 이제 쳐서 멸할 것이다 이야기 했어요
 
그 다음에 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무엇과 이어져 있다고요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에게 베풀려는 더 큰 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심판을 통과한 백성들에게 정화의 복이 다가 왔고 단련의 복이 다가왔고 더 이상 오만하지 않게 되고 정의와 공의를 구부러지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들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 없이 우리가 살 수 없어요 하고 진실되게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를 어디로 초대했느냐 하면 노래할 지어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하나님에 대하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찬미로 우리를 불러 주셨고 지난날에는 화를 당하기는 내가 너희 가운데 함께 있어 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심으로 그 노래사 근거 없는 희망의 노래가 아니라 근거 있는 노래가 되었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신다
 
공동 번역으로 이야기 하면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하나님의 모습을 성경에 이런 이미지가 있을까 싶지요 하나님의 기쁨 그 타락한 백성들이 회복되었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이것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목자가 목에 메고 돌아와서 너무 기쁜 나머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를 보여 주고 있지요
 
오늘 우리 스바냐서의 결론은 이 이야기입니다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새로운 시작이란 언제나 가능하다 우리의 죄가 주홍빛 보다 붉을 지라도 지난 날 우리들이 저질렀던 혹히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있언 상처가 어떠하든지 정말 그것을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삶을 우리가 꿈꾼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시작을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우리와 더불어 이루어갈 새로운 미래를 예비해 주신다 그런 존재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스바냐서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어요 우리의 삶이 제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 고통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약속하신 세계를 우리의 삶으로 선취하는 복된 삶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삶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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