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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읍시다, 세상 끝날 까지!”
2020년 11월 26일 (목) 09:58:2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태 28:18-20) 
 
1.
오늘 설교는 며칠 전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로 시작하렵니다.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헨리 셰클턴’(Ernest Henry Shackleton)의 이야기입니다.
 
1907년에 남극의 정상을 코앞에 두고 실패했던 그는 다시 7년 뒤, 1914년에 남극 정상 탐험에 나섭니다. 이 탐험을 위해 신문에 탐험가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탐험가 구함. 아주 위험한 여행, 보수도 적고, 혹한의 추위, 몇 달간 지속되는 어둔 밤, 계속되는 위험, 안전한 귀환을 보장 할 수 없음. 성공할 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음.”
 
아주 이색적인 광고문을 내었는데, 뜻밖에 5천 명 넘는 사람들이 지원하여 무려 197:1이란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하였고,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27명을 뽑아 탐험대를 이루게 됩니다.
 
이들은 1915년 1월 남극을 향해 떠납니다. 남극이 여름에 접어들었기에 기후상 괜찮을 것을 예상하고 떠났습니다. 배의 이름도 ‘Endurance’, 즉 ‘인내호’입니다. 인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임을 암시한 겁니다. 이 일행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남극 정상을 정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웨델 바다 앞에서 빙하에 갇혀 조난을 당합니다.
 
계절이 바뀌어 추운 날씨에 ‘Endurance’ 호는 점점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10월 27일 남극의 차디찬 바다로 가라앉게 됩니다. 셰클턴과 28명의 선원들은 배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얼음 빙하위에 천막을 치고 빙하 조각을 보트 삼아 표류하던 중 가까스로 엘레판트 섬(Elephant Island, 코끼리 섬)에 이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497일 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보는 육지인 그 섬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습니다.
 
고민하던 지도자 세클턴은 결단을 합니다. 사람이 있는, 즉 노르웨이 포경 선단이 있는 사우스 조지아섬(South Gergia)으로 가기로. 그러나 그게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그 거리가 서울서 오끼나와까지의 거리인 1300km의 해로이고, 통과해야 하는 드레이크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파도로 시속 100km의 바람과 20m의 거대한 파도가 밤낮으로 몰아치는 곳인데, 그들이 타고 갈 배는 동력선도 아닌 4m 길이의 작은 나룻배입니다.
 
그러나 동료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셰클턴은 결단합니다. 5명의 선원만 데리고 그 험한 여정을 떠납니다. 나머지 선원들에겐 그곳에서 자신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한 달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각자 살 길을 찾아 탈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15일간의 사투를 벌인 셰클턴 일행이 탄 거룻배는 마침내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선단이 있는 섬의 반대편 이었습니다. 그 고생을 하여 왔는데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낙심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기다리는 동료들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중요했기에 셰클턴은 용기를 내어 5명 중에서 다시 3명을 선발합니다. 자신과 산행에 능한 톰 크린, 플랭크 워슬리를 데리고 산 너머 선단을 향해 다시 떠납니다.
 
그 산의 높이는 약 914미터나 되는 산으로 고산준봉, 5~6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직선거리만 해도 33km가량인데, 높은 산을 여러 개 오르내리면 실제 거리는 더 늘어납니다. 그 때까지 사우스조지아 섬을 횡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에 시간은 곧 생명을 의미하기에 셰클턴은 36시간을 쉬지 않고 산을 넘고 넘어 마침내 선단에 도착하였고 그들의 도움으로 섬 건너편의 선원 2명, 그리고 코끼리 섬에 남아서 기다리던 모든 선원들을 구조합니다.
 
남아 있던 선원들은 어떻게 한 명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을까요? 양식은 떨어져가고, 추위는 더욱 더 심해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았을까요? 엘리펀트 섬에 남게 된 대원들을 통솔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부대장 프랭크 와일드인데 그는 선장 셰클턴이 반드시 자기들을 구출하러 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질 때마다 "오늘 대장님이 오실지 모르니 짐을 싸놔라"라는 명령을 내리곤 했답니다. 함께 여행하면서 선원들은 선장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 선장님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을 사람’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그들의 기대와 믿음대로 셰클턴은 돌아왔고, 모두를 살려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라는 책으로 나와 있더라구요.

2.
인생의 파도를 헤치며 사는 우리들, 어떨 때는 격랑 속에 곧 침몰할 것 같은 위기와 두려움 속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우리들, 경제적인 위기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염려 속에 쩔쩔 매는 우리들, 우리 성도들이 버틸 수 있는 길은 뭔가요?
 
예수를 믿으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고아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나를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돌아오시어, 나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주님은 풍랑이 거칠게 이는 가운데서도 제자들이 다 쩔쩔매는 데도 잠을 편안히 주무십니다. 그리곤 마침내 깨어나셔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위해 풍랑을 꾸짖으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여기서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아하... 신앙이란, 믿음이란 잔잔한 바다, 고요한 바다와 같은 것이구나! 정말 그럴까요? 잔잔한 바다는 믿음의 결과일 뿐입니다. 믿음의 현장은 폭풍 속입니다!
 
참된 믿음은 무엇인가요? 풍랑 이는 바람 속에서 예수님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인생의 바람과 풍랑은 절대 나를 삼키지 못함을 확신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모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랍니다. 이 말씀은 근심할 일이 실제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를 믿으랍니다. 풍랑이 일어도 끝까지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근심의 바다에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면, 그 믿는 예수님께서 하나 두울 해결해 주십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우리에게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이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돈이 아닙니다, 사장님이 아닙니다, 대통령도 아닙니다. 예수 밖에 없습니다! 궁극적인 내 영혼의 구원 문제도 그러하지만, 다양한 내 삶의 어려움과 곤경 속에서도 나를 건져주시고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내게 찾아온 불행 화를 복으로 바꿔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미국의 어느 교사가 학교에서 한 아이가 과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몸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여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이게 뭔가... 매일 매일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병실에 매일같이 청소하러 오는 한 흑인 여인이 있는데, 그녀는 늘 콧노래를 부르며 일을 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여인은 뭐가 즐거워서 매일 콧노래를 부를까요? 저런 삶의 환경에서 무슨 행복할 일이 있을까요? 그래서 그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뭐가 그리 행복하냐고요?
 
그랬더니 그럽니다. 자기 삶은 늘 우울했고, 슬펐다고.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더니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고, 뭔가 마음이 든든해지더랍니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콧노래를 부른다고. 그러면 불안과 불평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평안해진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교사에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감동을 즉시 시로 썼는데, 이러합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 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 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찬송가, 370장을 작사한 E,E. Hewitt(휴이트)의 간증입니다.
 
믿음은 만사형통이 아니라, 격랑과 폭풍우 속에서도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십니다. 풍랑이 일 때나 고요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상관없이 주님 붙잡고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3.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상황을 믿지 말고, 흘러가는 것들을 믿지 말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믿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구원을 받습니다. 건짐을 받습니다. 도움을 받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모자라고 볼 품 없고 한 없이 흠투성이인 오합지졸같은 제자들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게 뭔가요?
 
끝까지 믿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어주기 힘든 이들인데, 자꾸만 자꾸만 실망만 주는 이들인데, 좀 될 만하면 넘어지고 될 만하면 쓰러져서 한숨만 푹푹 나오는 영적 약골들인데,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들을 믿어주십니다. 한숨 대신에 넘어지는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믿어주십니다.
 
교회, 그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는 그 공동체 교회, 교회가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잘난 사람들만 세상에서 눈에 띄고 대접받고 하던 이 세상에서 부족한 이들의 모임인 교회가 여태까지 세상에서 우뚝 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
 
예수님이 우리를 믿어주셨습니다. 늘 부족함 투성이, 종알거리기 잘하고, 공동체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자존심과 자기 감정을 내세우는, 정말이지 어떨 때는 어린애들 같은 싸움과 다툼을 벌이는 그 한심한 교회를, 예수님께서는 믿어주셨습니다.
 
그리곤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 왕중교회는 누가 잘나서 여기까지 버티고 있는 거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받아주셨고, 믿어 주셨고, 사랑해 주셨기에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예수님은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굳게 붙잡으십시오!
 
4.
오늘 본문 말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자기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준 모든 것들을 지키게 하라.’ 그래서 교회는 늘 선교에 힘을 씁니다. 교인을 늘리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 예수의 제자들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럽니다.
 
이 일들이 만만하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날 까지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답니다. 이건 약속입니다. 예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이들은 그 절망 속에서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홀로 버려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 외롭고 외롭다는 그 순간, 이 약속을 기억하고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잘 나갈 때, 정상에 섰을 때 예수님을 만나기 보다 세상 끝날에, 절망의 심연에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셰클턴 선장의 보고서에 보면, 셰클턴 일행 3사람이 마지막으로 악천후 속에 사우스조지아 섬의 그 험산 준령을 생사를 넘나들며 고생고생 넘어갈 때, 그들 전원은 이상하게도 자신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누굴까요...?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 사람들에게 선포,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날, 종말적인 때입니다. 끝장났다고 여길 때입니다. 모든 상황과 여건이 막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이건 죽느니만 못하다고 여길 때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분이 계십니다. 누구? 예수님! 모두 떠나도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5.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끝까지 믿어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시험과 환란, 폭풍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도 풍랑을 뚫고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나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고 지키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으니 믿자, 세상 끝날 까지! 그 약속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이 찬송 아는 분들은 1절만 같이 불러볼까요...
 
“하나님 한 번도 나를 / 실망 시킨 적 없으시고 /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 나를 지키셨네 / 오 신실 하신 주 / 오 신실 하신 주 /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 약속 하셨던 주님 / 그 약속을 지키사 / 이 후로도 영원토록 /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이런 예수, 세상 끝날 까지 믿으세요!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신실하신 예수님, 이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이들에게,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십자가 밑에서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될 것입니다. 꼭 그리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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