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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 신앙
2020년 10월 30일 (금) 09:23:32 류철배 목사 www.cry.or.kr

몽골에 가면 드넓은 초원에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양과 염소가 뒤섞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양과 염소는 얼굴이 똑같이 생겼습니다. 몸집도 비슷합니다. 얼른 보기에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꼬리’에 있답니다. 양의 꼬리는 내려가 있고, 염소의 꼬리는 올라가 있답니다. 두 마리를 볼 기회가 있다면 ‘꼬리’를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양과 염소>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 때 양은 오른편에 두고, 염소는 왼편에 두고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신앙의 양태가 많이 변하였습니다.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 / 현장 예배와 실시간 예배 / 현금으로는 드리는 헌금과 온라인 헌금 / 그룹 성경공부와 화상 성경공부 / 현장 심방과 전화 심방 등. 중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입니다. 환경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변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마음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 구원받을 수 있는 ‘양’과 같은 신앙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 25:35-36에 보면 여섯 가지의 행동이 나옵니다.

1)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2)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4)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5)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6)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찾는 사람은 행동하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염소 같은 신앙인은 핑계를 댑니다. 

 ‘언제 주님이 주리시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시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히셨습니까?’

 주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것이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바로 지극히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구두장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꿈속에서라도 뵙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정말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내일 내가 너의 집을 방문하겠다.” 할아버지는 꿈이었지만 너무나 기뻐서 온갖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님은 오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세 번 왔다 갔습니다. 한 사람은 거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청소부 할아버지였고,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은 사과장사 아주머니였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자신이 주님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 주님께서 꿈속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오시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갔었다. 거지로, 청소부로, 아주머니로 그때마다 너는 나를 잘 대접해 주었지. 보잘 것 없는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 곧 나를 대접한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보배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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