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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강 습3:1- 7 예루살렘의 죄악
2020년 09월 15일 (화) 10:20:51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어느 꽃을 제일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는 꽃은 백합이어요 저는 안개꽃이어요 저는 이인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거든요 옆에서 일인자를 보았을 때는 안개꽃 같은
 
봄에 피어나는 꽃 가운데 순백의 꽃 있지요 목련 목련 꽃이 봄에 아주 아름답데 피지요 잎조차 나지 않았는 대 목련 꽃이 피어 있으면 예쁘지 않아요 목련이 질 띠는 예쁘지 않아요 바닥에 떨어지면 변색되고 발로 밟히고 그러면 좋지 않아요
 
목련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해요 처음에는 사람이 좋은데 끝이 좋아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타락하면 가장 추해 보여요 이것이 인간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진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를들면 기독교는 얼마나 아름다운 종교여요 종교로 이야기하자면 그런데 이 기독교가 본래 가야할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간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추하게 보이거든요
 
한 나라 한 종교가 타락하고 왜곡된 까닭은 그 나라의 백성들이 나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혹은 그 종교의 신자들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야 하는 지도자들이 그릇된 길로 가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 밖에 없겠지요
 
이것은 성서에서 보는 일관적인 이야기입니다 예언자들이 바로 하는 이야기가 지도자들의 죄 종교 지도자든 정치지도자든 그들의 죄가 백성들의 삶을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보여 주거든요
 
참 가슴 아픈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여기 보면 패역하고 더러운 곳 어디여요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받을 형벌과 보호 소제목이 있으니까 어쩼던 패역하고 더러운 곳 이 말이 참 슬픕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이라고 일컬어 졌지 않아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순례자로 여겼고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곳이어야 합ㄴ미다
 
그곳에 가면 내가 받아 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세상에 받은 상처들이 다 어루만져지고 내 마음에 상처들이 어름 같은 것들이 녹아져서 봄에 사람이 되도록 새로운 생명이 움터나오는 도시이어야 하지요 이게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도 그런 공간이어야만 합니다 교회에 온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현존 앞에 서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하겠지요
 
메네딛토 성인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데 이 베나딛트라는 성인이 로마의 귀족출신인데요 로마의 귀족들인 누리고 있는 향락과 사치스러운 삶이 맑게 순수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하고 로마에서 떨어져 있는 수비아코라는 조그마한 마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문명과 단절하고 하나님앞에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 수비아골 동굴 속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지내요 이 동굴에 얽혀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정신이 온전치 못했어요
 
어느 곳에 가든지 이 여인이 옷도 찢어지고 상처나고 가족들이 참 슬폈겠지지요 고칠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잘 낫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그 여인이 떠 돌다가 베네딕토 기도 동굴에 들어와서 하루를 묶었습니다
 
하루를 묶고 그 다음날부터 정신이 온전해 졌어요 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땅에 교회들이 이러면 참 좋겠다 세상에 사는동안 마음이 찢기고 상처가 많고 마음에 정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 지고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에 통전성이 회복되고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오늘의 교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이것이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데 이것이 교회에 이야기 했지만 예루살렘이라고 도성에 똑같이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도성이 어떻게 패역하고 더러운 곳 이런 말을 들어요 참 슬픈 현실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워야 할 것이 가장 타락했기 때문에 그 성읍에 화가 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곳이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 되었느냐 하면
2절에 4가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2절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의뢰하지 아니하며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하지 않은 것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 네가지가 열거되고 있지요 죄를 이야기할 때 죄는 두 가지가 있어요
 
어떤 것이냐 하면 저지른 죄가 있어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이어요 그렇지요 도둑질 하지 마 도둑질 했어요 행동을 통해 내가 저지른 것이어요
 
그러나 죄라고 하는 것은 여기만 있지 않아요 법률적으로 보면 내가 구체적 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내 마음속에 죄의 욕망이 있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저지른 것만 죄가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가 있는데 그 죄의 이름이 태만 죄여요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이어요 누가 복음에 보면 부자의 문간에 있었던 나사로가 있습니다 나사로도 세상을 떠났고 부자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부자의 죄가 무엇이지요? 부자가 왜 지옥에 가 있을까요 자기 집 문간에 있는 나사로를 돌보지 않는 죄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어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나는 깨긋해 나는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어 말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가인이 아벨을 죽인 다음에
창세기 4장 9절 나는 동생 지키는 자 입니까? 나는 너를 동생 지키는 자로 만들었어요
하는 이야기이지요
 
하나님이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 하니까 나는 동생 지키는 자 입니까 하거든요 하나님은 나는 너를 동생 지키는 자로 만들었어 합니다 태만죄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을 책임지지 않는 것이야 이것이 태만죄입니다 이 태만죄가 나태한 죄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는 데 이 태만죄가 발생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2절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듣는다는 말 속에는 순종하다는 뜻이 담겨 있거든요 명령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은 반역의 충동이 내 속에 있어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생각이 없어요 때때로 보면 사람들은 성장을 해야 하는데 나무로 이야기 하자면 나무를 하나 심었습니다
 
나무는 두가지 운동을 해요 하나는 등치를 키어가야 하고 하나는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나무는 두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요 나무는 자라기만 하면 무너질 수 밖에 껍질이 이것을 형식 형식이 필요해요
 
그런데 형식만 있으면 안 되어요 형식주의가 되면 안 되어요 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이나믹입니다 다이나믹한 것 역동성이어요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해 지는 것이어요
 
역동성만 있고 형식만 있으면 엉망이 되는 것이어요 우리는 아이들을 키울 대도 애들이 신나게 놀게 해야 하지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해요 애들 기 죽이지 마 하지만 때때로 꺽어줄 수 있어야 해요 그 의지라고 하는 것을 이것이 명령이야
 
하나님도 그 백성이 인간이 죄에 끌리는 속성이 있거든요 어떤 분은 원죄를 설명할 때 원죄를 이야기 할 때 우리와 무관하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떠먹어 가지고 우리도 제수 없게 원죄라고 하는 말을 그렇게 보면 안 되고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 속에 있는 죄에 끌리는 속성이 우리 속에 있어요
 
모든 인간속에 죄에 이끌리고 있는 속성 같은 것이 있어요 왜냐 하면 인간이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요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이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으므로 생령이 되게 하였는데 사람이 욕망을 가진 존재여요 욕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끌리고 있어 결핍에 채우려고 하니까 나쁜 것에 이끌리는 속성이 있어요
 
여기에 있는 상훈씨나 여기 나운씨나 참 착한 사람들이지만 이 분들 속에 악의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어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은혜 앞에 우리 자신을 자꾸 세워야 할 까닭이 악에게 이끌리기 보다는 선에게 이끌려 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때때로 명령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냐 명령에 순종해야 사람 골이 돼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라고 말합니다 여기 교훈이라는 게 징계이고 교정이어요
 
내가 잘못된 것을 누군가가 깨우쳐 주어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것을 그러거든요 질자인데 꾸짖어서 바로 잡아 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꾸짖어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러면 안 돼 말한다든지 이게 무엇이냐 하면 교훈을 받는 것이어요 못난 사람의 특징이 남을 꾸짖을 것만 있고 못난 사람의 특색입니다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자기 욕망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니라 가까이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친밀함이어요 그 침밀함의 다른 이름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가까워져요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은 마주 봅니다 젊은이들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 바라보는 것을 보면 참 좋다 그러거든요 진자 정말 사랑해서 눈빛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이상하에 죄라고 하는 게 우리속에 들어오면 마주보지 못해요 등 돌리게 되지요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야기 합니다 사랑은 끌리는 힘이고 죄라고 하는 것은 힘이 밀어내는 힘이어요 밀어내는 힘이 청력인데 잡아당기는 힘이 인력이고 청력을 사회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소외 시키는 힘이어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느냐 하면 하나님이 내 욕망을 이루는 일에 제동을 건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불편해 그러니까 가까이 안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않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태만죄 속에 빠지게 굳건히 되었고 그 결과 패역하고 더러운 것이 되어요 이것이 예루살렘에 내려진 하나의 아주 슬픈 진실입니다
 
3절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 까지 남겨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ㅣ
 
4절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자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한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방백은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치 지도자를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부르짖는 사자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엔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권한 혹은 권력 혹은 권위를 우리에게 위임해 주실 때 세상에 모든 권력 권한이라는 것은 위임된 권력입니다
 
옛날에는 사적으로 어떤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이 보복하는 것이어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어요 이 보복이라는 것은 항상 악순환을 내 부모를 죽인 원수 산에 올라가서 원수를 처단하고 악 순환이 벌어지지 않아요
 
이 순환의 고리를 귾어야 돼 이렇게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방법이 없네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법이어요 사적인 보복을 못하게 하고 법이 이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징계를 하는 것이어요
객관적으로 법은 제대로 되어야 하지요 그러니까 여기 권력이라고 하는게 우리를 대신해서 정의를 세워 주세요 우리를 대신해서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어 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할 권한을 그들에게 위임해 준 것이지요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이 되었던 대통령이 되었던지 간에 우리 선거 때 되면 그분들이 겸손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겸손한 분들이 권력의 자리에 가면 참 달라지지요 참 묘한 이치입니다
 
이것은 위임 받은 권한이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해야 한 일은 위임된 권력을 가지고 공의를 세워야합니다 이 방백들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 권한 권위를 가지고 자기 이속 차리는 일에 다 활용한 것이어요 그것을 부르짖는 사자 이것이 정치의 타락을 보여 주어요
 
그다음에 재판장들 재판장은 저녁이리다 이튿날 까지 남겨 둔 것이 없는 저녁 이리라고 하는 것은 뇌물 받고 재판을 굽게 만들고 그래서 이 재판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정의의 여신 법원 앞에 가면 정의의 여신 동상이 서 있는데 한쪽 눈을 가리고 한 쪽에는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지않아요
 
왜 눈을 가리었을까요? 이 사람이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라고 해 가지고 뭐 그럴 수 있지 넘어가면 안 된다고요 가난하다고 법률 어기면 안 되지 않아요 그것을 지켜야지 가난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 하나님은 정의라는 것을 이야기 했지만 공의로움도 해야지요
 
재판장들은 정의를 세우는 일이어야 하는데 정의를 세우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해 그렇게 되면 세상에 신뢰가 무너져 이렇게 마땅히 세상에 기초를 잡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용하게 될 때 믿을 것 나 밖에 없어
 
세상에 믿을 인간이 없어 이렇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지요 이게 서야 할 사람이 서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어요
 
가슴 아픈 것은 여기 있어요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하다 참 기가 막힙니다 선지자들은 눈이 불꼭 같아야 하지 않아요 세상에 이면을 꽤 뚫어 보고 때때로 잘못된 것에 냉엄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상처 입은 백성들은 따뜻하게 감싸 주는 것이 그래서 떠돌고 있는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경박하고 간사해
 
이런 헛된 종교인들 여러분 종교인들이 바로서야 역사가 바로 가는데 오늘의 종교인으로 부름 받은 사람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내가 바로 섰나 그래서 경박은 면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간사하면 안 되어요 종교인들은 간사하면 안 됩니다 간사하다는 것은 안에 질실과 밖의 진실은 다르다 그러니까 남의 비위 맞추기 위해서 간사한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안 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학자가 있는데요 그 분이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지식인이 자기의 말을 듣는 유력한 청중을 의식하여 말을 왜곡하는 순간 그는 지식인이 아니어요
 
이 지식인의 자리에 목사를 넣어 보자고요 목사가 자기 교회에 유력한 사람들 염두에 두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왜곡한다든지 그러면 목사가 아니어요 지식인 론에 현실을 어떠합니까? 힘 있고 유력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복음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종교조차 이 불의한 세상을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여기 제사장은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거룩을 지켜내는 사람이어요 사람들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 내야 하지요 그러니까 경계라고 하는 것이 있어
 
제사장이 지켜야 하는 것은 경계인데 경계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을 더럽게 만드는 것들로 사람들을 지켜 내는 경계여요 이것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해야 합니다 더럽힘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오염 시킬 수 있는 것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이어요 제사장운 성소를 더럽혔다 그리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심 전력을 기우려야 할 율법을 대수롭지 여기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네 부류의 사람이 등장 했습니다 방백 선지자 제사장 그들이 무엇이냐 하면 최고 지도자들이어요 그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놓은 것은 그들이 그렇게 불의를 연대를 맺었기에 가능한 것이어요
 
어느 한쪽이 노하고 이야기 하면 그렇게 못합니다 그들이 좋은 게 좋은 것이지 뭐 그러고 가는 것이야 여러분 제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제 전임자인 목사님이 우리 교인들에게 수 십년동안 귀가 닿도록 하신 말씀이 좋은 좋은 게 아니고 옳은 게 좋은 것이다 이 말씀을 하셨어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어요 옳은 게 좋은 것이어요 이들은 무엇이냐 하면 불의의 연대를 통해 서로를 이렇게 북돋아 주어요 정치인들은 종교인들에게 잘하십니다 하고 그들은 종교인들에게 서로가 불의의 연대를 형성함으로 나라 전체를 참 슬픈 일입니다
 
가끔은 예언자들이 등장해야 하는데 제가 4세기 위대한 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 분은 황금 입으로 알려져 있어요 설교를 워낙 잘했어요 옛날에는 설교만 잘한 분으로 생각을 했어요
 
이 분의 글을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 졌어요 왜냐하면 예언자이어요 콘스탄니 토풀의 대 주교였는데 콘스탄티 노플의 대 주교였는데 콘스탄티 노플에 황제가 있어요 동 로마시대 거기에 이 크리스토 토무스가 황제의 부인 이름이 에브독시아입니다 교회에 잘 나온 사람입니다 유력자입니다 그런데 사치스럽고 허영과 불의를 일 삼아요
 
그러자 에브독시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싱에게 황후의 권세를 주었다면 그것은 정의를 세우라고 주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흙과 재 풀과 먼지에 불과하고 인생 또한 그림자와 연기 그리고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듯이 황제도 그와 같습니다
 
이 지엄한 꾸중 앞에서 지금 종교 지도자가 하는 말이어요 황제의 지위 영원할 것 같아도 아니야 그것은 티끌과 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더 이상 고통과 불행을 지우지 마십시오 당신은 포도밭과 무화과 밭 기름돠 돈 그리고 권력을 가지 무덤에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미움을 받아요 귀양가서 죽어요 크리스 토무스가 그러니까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은 이렇게 대가를 치룬다 말이어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있기 때문에 해야 할 말 안하고 갈 수 없는 것이어요 이것이 참된 종교인이고 예언자이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교훈을 받지 않을 때 일들이
5절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집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 도다
 
여기 중요한 것이 그렇게 패역하고 더러운 도성인데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처럼 보여요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계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삶의 자리는 하나님이 머무는 곳이다 예언자가 들려주는 것이 그런 것입니됴
 
민수기 35장에도 보면 제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구절인데
민수기 35장 34절 너희는 너희가 거주한 땅 돋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중에 있음이니라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하나님의 거주하는 땅이어요 그 이야기는 나는 지금 하나님의 현존 앞에 있는 것이어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일상의 삶의 자리야 서 있는 사리인 것을 잊지 말고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만 함부로 할 수 없지 않아요
 
이것인데 그 의로우신 하나님이 불의를 행치 않는 하나님이어요
그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 불의를 일 삼는 것이지요
5절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가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마치 해가 떠 오른 것처럼 하나님은 끝없이 그 땅에 공의의 태양이 떠오르기를 바라고 그렇게 역사하고 계신데 그 지도자라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고 있다 이것이 예언자가 보기에 정말 슬픈 일입니다
 
더 더욱이 슬픈 것은 불의한 자들은 수치를 알지 모른다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가 염치를 모르는 데 있다 생각을 해 보는 데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사람인데 염치가 너무 없어요
 
그런데 수치를 모른다는 것도 참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수치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함부로 욕망의 강에 떠밀리지 않도록 하는 닻 구실을 해 주어요 수치심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양심의 법에 따라서 문제는 자기의 더러움을 알지 못한다 불의한 자의 특색입니다 그들은 영혼이 무디어진 사람들이어어요
 
영혼이 무디어 진 것을
디모데 전서 4장 2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뜨거운 그 인두로 지져진 것이야 그 영혼이 무디어졌어요 그래서 수치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야 그래서 공의와 정의를 알지 못한다 이게 이 시대의 슬픔 가운데 하나입니다
 
6절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이 망대가 파괴 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6절은 앞서 보았던 구절들과 관련이 있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등진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을 하나님은 징계하고 심판했어요 그들이 높이 세운 망대가 무너지게 만들었고 그들이 융성하게 사람들이 융성하게 다니던 거리가 빈 곳이 되었고 짐승들의 거처가 되었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도 그 지경이 되고 싶니 그런 이야기여요
 
7절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리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기기로 정하기는 하였으나 너희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마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요 이제는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가 돌이킬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경고를 사람들이 안 받아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앞의 말이 기가 막해 부지런히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고 하는 말 곳에 담겨있는데 의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과 수치를 그치고 약자들의 살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을 있는 그들을 그대로 존중하라는 말이어요
 
양심에 화인 맞은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조차 경청하지 않고 자기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 부지런히 악을 행합니다
 
결국 그들의 마침은 멸망일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의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지라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게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 나라가 방백 재판관 선지자 제사장들 그들이 불의의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나라는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불의의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감시하고 비판하고 요청하고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이 패역하고 하나님이 사시는 땅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몫을 살아내는 땅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져 있는 도전이고 책임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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