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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07월 08일 (수) 09:21:19 최영걸 목사 www.cry.or.kr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서 열림 버튼을 눌렀습니다. 뛰어들다시피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누군가를 배려해주어 기분이 좋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게 되어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왜 저 분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지 않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감사합니다”입니다. 그런데 왜 외국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고마움을 표현할 때 ‘고맙습니다’가 아닌 ‘감사합니다’를 쓸까요?” 그들이 ‘고맙습니다’ 대신 ‘감사합니다’를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들이 ‘감사합니다’만을 가르쳐줬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고마움을 전하는 우리나라 대표적 인사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외국인에게 ‘감사합니다’만을 가르쳐줄까요? 그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감사합니다’가 ‘고맙습니다’보다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는 ‘고맙습니다’의 공손한 표현이 결코 아닙니다. 이 둘은 같은 중량감을 가진, 같은 뜻의 말입니다. 둘의 유일한 차이는 ‘감사합니다’는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사용하는 한자말이며, ‘고맙습니다’는 토박이말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감사합니다’가 ‘고맙습니다’보다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할까요? 이는 바로 한자를 더 우월한 것이라고 가르쳤던 과거 교육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토박이말인 ‘손님보다는 한자말인 ’고객님‘을 더 공손한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이러한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윗사람에게는 ‘감사하다’를 써야 하고 친구나 아랫사람에게는 ‘고맙다’를 써도 된다는 생각 또한 한자어를 높게 치던 과거의 잘못된 인식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맙다’는 ‘남이 베풀어 준 은혜나 신세에 대해 즐겁고 흐뭇하다’는 뜻입니다. ‘고맙습니다’든 ‘감사합니다’든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 서로를 배려하며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난 6개월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을 적극 표현해야 합니다. 오며가며 만나는 서로를 향해 ‘고맙습니다’ 혹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듯이, 하나님을 향한 고마움의 표현, 감사의 고백은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사랑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큰 감동이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23)
 
/홍익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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