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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하박국 1: 1-11 율법이 해이해진 세상
2020년 07월 01일 (수) 09:11:47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성경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성경이 무엇이어요 하박국입니다 왜요 하박국이 안아주다라는 표현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박국에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 좋습니다
 
우리가 추수 감사 주일에 본문으로 많이 택해지는 구절이지요
하박국 3장 17-18절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포옹하다 안아주다 꺼안는 자 그런 뜻도 있지만 시름하다 그런 뜻도 있지요
하박국 선지자가 대게 살았던 것은 지난주까지 공부했던 나훔서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앗시리아라는 나라인데 앗시리아라가 비시 612년에 멸망당하거든요
 
그리고 등장한 새로운 제국이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인데 그 무력에 활동한 선지자로 보여져요 어떻던 제국의 틈 바구니에 있었던 사람들 힘 겨운 상황에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보면 위대한 문화적 유산이라는 게 아주 평안한 시절에 만들어 지지 않아요
 
그리스에도 그리스하면 떠 오르는 유적들이 어떤 것들이 있지요 파르테논 신전이든지 유명하지요 비시 479년 그것이 만들어진 때가 아주 평화로운 시기가 아닙니다 도시 국가들의 전쟁이 심할 띠이고 또 레르시아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그 때 아름다운 유산들이 만들어 지는데 그러니까 유형적인 유산도 만들어 지지만 그리스에서는 무형 유산들이 만들어 지거든요
 
그리스의 비극 작가들이 그 때 다 등장해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이런 위대핝 비극 작가들이 등장하는 데 그게 다 어려운 시절입니다 곤고한 시절입니다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가장 난감할 때 가장 위대한 문화를 꽃 피어낸다는 대 있습니다 인간성의 위대라고 볼 수 있어요
 
앗시리아 나라에 괴롭힘을 당하던 나라들이 앗시리아가 망하니까 평안해지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해 가지고 괴롭히는 것이어요 계속 그런 일들이 그러면 약소 민족들은 다 사그라져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국들은 사라졌지만 약소민족들은 살아 남은 민족들이 있어요 특히 어떤 나라들이냐하면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그래서 함석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고난 받는 종의 노래가 있지요
 
이사야 52:13-53:12 고난 받는 종의 노래가 있는데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민족 가장 위대한 정신의 높이를 보여 주는 것 성경은 그런 위대함을 보여 주어요 예언서가 그렇거든요 우리가 예언서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점점 그것을 배워가면 좋겠어요
 
하박국 1장 1절부터 11절까지 공부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가 없지요 언제나 갈등이 있는 세상입니다
중국의 작가인 라오서라고 하는 분이 로토시앙스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하나의 에피쇼드가 등장합니다 어떤 에피쇼드냐 이런 것이지요 하늘은 선인과 악인을 가르지 않고 해와 비를 골고루 내려 주지요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작가적 상상력을 가지고 작가가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공정치 않기 때문에 해와 비는 사람들의 삶을 굴곡지게 만든다는 것이어요
 
어떤 이야기냐 하면 똑 같은 조건이라도 시인 묵객들은 이슬 빛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만 하루 벌어 먹는 사람은 하루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 주지요 특별히 예언자라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52 : 13-53: 11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우울해지요
특별히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보느냐 하면 현실을 꽤 뚫어 보는 사람들이지요 현실을 쾌 뚫어 보면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백산 그림이었어요
 
오랫동안 다니면서 산을 그려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무엇을 발견했느냐 초기에 산에 갔을 때 이 분은 춘하추동에 산 빛을 그려 냅니다 봄에는 연두입들이 솟아나오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가을이 되면 물들고 겨울이 되면 쓸쓸하게 되는 춘하추동을 그려요
 
어떤 때 올라갔느냐에 따라 다르게 그려요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후기로 갈수록 춘하추동을 안 그려요 그리고 산들에서 나무도 다 제거하고 산 속에 바위에 굴국 같은 것들을 들어내요
 
이전에도 무엇을 보았느냐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이후로 가면서 자꾸 산을 보다 보니까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느냐 하면 산을 이루고 있는 골격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어요 이것이 발전이다고 볼 수 있겠지요 사람은 보는게 달라지는 것이지요
 
마그로스코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마그로스코라는 그림을 보면 까만 판넬이어요 이게 무슨 그림이야 생각이 드는 것이어요 그런데 그 판넬 앞에 사람들이 앉아서 명상을 해요 왜 그럴까요 눈앞에 아름다운 형태가 있으면 우리가 형태에 집중을 해요
 
아무런 형태가 없으면 무엇을 보는 것이지 유심히 보고 있다 보면 내가 보여요 내 마음이 보여요 마크로스의 그림은 바로 그런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요 그렇게 유심히 보다 보면 검은 색으로만 칠해 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요 붉은 색도 있고 푸른 색도 나타나고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밝음이 어떻게 베어나온지를 보여 주어요
 
이 그림이 위대한 작품이 되는데 예언자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옳다 그르다 보기 보다는 그들을 그런 상황 속에 몰아간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보는 자여요 예언자는 어떤 자라고 하나님의 분노를 느끼는 자이어요
 
불의한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불의한 분노를 느끼는 자들이어요 하박국은 분노가 많아요 이 세상이 왜 이 지경인 것이야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 그런 질문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에게 막 질문을 해요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되지 않아요 세상이 왜 이래요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하나님에 대한 하박국의 질문과 하박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재미 있는 구성인데요 그 응답은 이 불의한 현실을 하나님은 지속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불의는 끝장이 나기 마련이고 하나님이 그런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나니까 하박국이 하나님 안에서 자기 마음속에 질서가 생겨나게 되자 하박국은 기도를 하게 되지요 하나님 이런 세상을 이루어 주세요 하박국의 구성은 하나님을 향한 질문 질문에 대한 응답 하박국의 구원에 대한 간구와 기도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게 하박국의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하고 말합니다
이 경고라는 것은 대게 이방 나라에 대한 경고에 사용되는 단어이요 앗사라고 하는 단어가 떼때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을 향한 메시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때는 내부적 문제로 본 것인데요
 
묵시로 받은 경고라 묵시라는 것은 무엇이어요 모든 사람에게 공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 보여 주실 사람에게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렇게 경고를 들었다
 
어떤 경고인가
2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이니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사뭇 시비조입니다 하나님 무엇하시는 것이어요 이런 내가 부르짖어도 주님께서 듣지 아니하십니다
 
사실 성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시거든요 히브리 사람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려서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들으셨거든요 또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나서 광야에서 울고 있을 때 하갈을 찾아 오시거든요
 
그 눈물 울음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주특기는 듣는 것이어요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게 들음이 하나님의 특기인데 하박국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너무 답답한데 하나님이 안 들은 것 처럼 보여요 부르짖어도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 하시니이가 고통과 재앙의 상황속에서 지금 외치는 것이어요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듣지 아니하시니이다 강포라고 번역된 단어 하마스는 이웃에게 행하는 이웃에게 폭력을 행하는 일이 일상이 괴고 있는 세상이지요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처럼 아합과 이세벨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처럼 또 다윗도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 모든 이 모든 것들이 하마스 강포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당에서 자행되고 있는 하마스들이 제법 많이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말 가운데 외국에서 우리 말 발음으로 쓰는 단어들이 몇 개 있거든요 영어 단어 통성기도 이런 것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인들이 영향을 미쳐서 미국에 있는 기독교인들도 어떤 모임에서는 통성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소리내서 통성기도 통성 프레야 그 다음에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그 다음에 부끄러운 단어들인데 재벌 그 다음에 갑질 그러니까 다른 나라 말로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 한국적 현상이어요 이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유난히 우리에게 심한 것 왜냐하면 우리가 약자들에 대한 존중이 너무 없어졌어 경제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기에 인간성이 낮아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존중하는 법들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힘이 있고 돈이 있으면 함부로 대하는 일상이 된 백화점에서 누구 무픞을 꿇는다는둥 이런 소리 듣지 않아요 화가 나지 않아요 왜 거절하지 못하나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게 생존이 걸려 있기에 저항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어떤 경우 보면 교장 선생님이 교사에세 손바닥 내 놓으라고 하고 때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학생들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제일 중요한 게 존엄이지 않아요 손 될 때 떨치고 나서 이것이 아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 한 없이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 고통 스러운데 하마스가 너무 많은데 이런 강포함이 우리가 이웃에게 강포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폭력이지만 어떤 폭력이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노골적인 반역입니디
 
왜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을 지으셨느냐 하면 어떻게 하와를 만들었는가 하면 아담 잠들게 하고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어요
 
창세기 2장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인간론의 핵심이라는 것은 갈비뼈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는 서로에게 속한 존재라는 것이어요 너 없이는 내가 없다 이게 성서가 우리에게 보여준 인간론의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너도 행복해 져야돼 이것이 창조 질서여요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질서를 위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강포가 넘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부르짖고 있는데 여기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투덜거림이 계속됩니다
3절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죄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반역행위입니다 패역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짓는 죄와 우리 이웃들에게 짓는 죄가 넘쳐요 이게 하박국의 눈에 보여요
 
예언자이기 때문에 이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 것 처럼 보여요 현실이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이것을 보지 않았다고 하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을 보지 예언자는 구조적인 문제를 본자의 고독함이 있어요
 
겁탈과 강포가 넘친다고 이야기 하는데 겁탈이라는 것이 성적인 문제만 아이고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누군가를 무력화 시키는 것들이 겁탈이어요 강포라고 하는 것이 폭력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힘이 정의로 여겨지고 있는 세상이다는 말이지요
 
프라톤의 국가 정체라는 책에서 소크라 테스하고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정의란 강자의 편익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게 외곡된 세상의 모습이지요 그러니까 강자가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게 정의처럼 인식되는 것이어요 그것은 하나민의 정의가 아니거든요
 
우리의 현실은 강자들이 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오히려 구조화 되어 있단 말이지요 이런 정의와 공의는 이것이 세상이다고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두가지의 질서 위에 세우셨는데 타원형에는 초점이 두 개가 있지요
 
원은 하나이지만 중심을 두 개인데 하나는 정의이고 하나는 공의인데 겁탈과 강포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역상이어요 이것을 뒤집은 것이어요 정의와 공의를 뒤집은 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래 세운 일들이 이렇게 벌어지고 있어요
 
하박국이 보기에는 지금 하나님이 그런 세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회 분위가 변론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론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게 일상에서 이런 다툼들이 벌어지는데 법이라고 하는 게 법이라고 하는 게 이런 세상 속에서는 법이라고 하는 게 올바로 집행이 되어야 하지요
 
이 법이라는 글자를 어떤 짐승이 있었다는 데 그 짐승이 죄 지은 사람을 물로 몰아 넣을 때 뿔로 박아 가지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물이 흐르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법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데 어떻게 보면 그 짐승이 죄 지은 사람을 뿔로 받아서 물로 보낸것이 맞은 것 같은데 법이라고 하는 게 옳게 집행이 되어야 하는데 법도 늘 강자들이 법을 독점을 하고 이렇게 되었을 때 겁탈과 강포가 넘치는 세상에서 사회적인 약자들이 속절 없이 유린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다고요
 
그것이 4절이 요약을 했어요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외워 앃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짐이니이다
 
율법이 해이해 졌다는 이야기는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원리로 주셨던 그 하나님의 법이 이제 작동되지 않게 된다 힘이 없어졌어 율법이 율법이라고 하는 게 율법의 핵심을 출애굽기에 등장하고 있는 율법의 핵심을 어떤 분이 한 마디로 요약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관심 여기에서 가난하다는 말은 물질적인 가난함만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 또 이 때에 가난함이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자든지 나그네가 되었기에 소외 계층을 이야기 하는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이어요
 
그래서 성경은 율법이라고 하는게 항상 힘 있는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들을 배려해 주고 어떻게 가야하는 지를 일깨워 주고 있어요 이것을 지킬 때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겁탈과 강포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율법이 해이해 졌다 더 작동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는 악인이 의인을 외워싸고 있고 의인들이 그래서 기를 펴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이 위헌 심사를 받았나 그렇게 알고 있는데 장발장 법이라는 것 들어보셨나요 장발장 법 장발장이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빵을 훔쳤다가 감옥 갔다 나온 사람이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 죄인데 내가 무엇인가 누군가의 것을 훔치었어 먹든지 그랬어요 동일한 범죄를 또 저질렀을 때는 가중처벌하는 것이 장발장 법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중 처벌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늘 옳은 지는 의문의 소지가 있습니다
 
사실 2011년에 이탈리아에서 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로만 오스트리아 호프라는 사람이 슈퍼 마켓에서 치즈하고 쇼세지를 훔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훔친 치즈와 소시지는 4.07 유로 정도 요즈음 돈으로 하면 7천원 정도 이 정도를 훔쳤어요
 
그래서 체포당해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이 무려 5년 동안이나 갔어요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 선고를 합니다 이 사람은 훔친 것은 분명한데 왜냐 하면 그의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가 그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던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서 판결을 했어요
 
대법원이 한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 입니다 노숙자가 영양 섭취라는 필수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소량의 음식을 품친 것은 범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데 먹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있었기에 피고의 행위에는 불가피성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정신이 부합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하박국의 시대는 이런 정신이 전혀 시행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악인이 의인을 외워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로 인해 하박국은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세상이 살만한 것은 무엇이냐 이렇게 분노한 사람들이 있을 때입니다 이런 분노 세상이 이렇게 가면 안 되지 않아 대 부분의 우리는 어떻게 하고 살지요 세상이 뭐 그러러니 하고 그것을 제일 좋아하는 것이 누구일까요? 사탄이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중요한 게 불의한 현실에 눈을 감으면 안 돼 불의에 대해서 종교적 아르바이를 제공해서도 안 되어요 우리가 교회에서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이냐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것을 잃어 버렸다 우리끼리 이렇게 예수 잘 믿고 복 받고 이렇게 사는 데 성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지어준 이웃들이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든지 불의의 희생자가 되고 있을 때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노하는 데 있어요
 
이헣게 하면 안 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오늘의 교회가 잃어 버린 것이 있다면 그런 분노 그 분노에는 한 마디를 덧 붙일 수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 그러니까 누구를 미워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신이 왜곡되고 있는 세상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 거룩한 분노인데 이것을 잃어 버렸기에 개신교는 힘을 잃어 버리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정화하지 못하는 집단 처럼 보이고 있다는 말이어요 이게 속상한 것이지요
 
5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박국이 이렇게 질문을 했지 않아요 하나님은 언제까지 참으시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너희 생각에 내가 행할 것인데 너희가 믿을 수 없는 일일 것이야 6절부터 이야기 합니다
6절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한 백성을 일으켜 세울 것이어요 성경에서 보라라고 하는 단어는 잘 보세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어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반드시 일어날 일을 이야기 할 때 그 급박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쓰는 단어이어요
 
보라 이 일이 급박하게 일어날 것이어요 그래서 결국 한 백성이 일어날 터인데 그들은 사납고 성급해 어떤 일입니까? 지체하지 않고 성급해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갈대아 사람들 넓은 곳으로 다녀 무엇 정말 주저하지 않고 마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처럼 그들의 기세가 그렇게 무섭게 나타날 것이어요
 
7절 그들은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에게서 나오며
어떤 이야기입니까? 남의 눈치를 보거나 조언을 듣거나 그것이 아니어요 스스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야 그런데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일으킨다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불의한 세상을 징계하기 위해서 그런 이를 일으키신다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다 파괴할 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질서 아래 있는 것이어요
 
9절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 데 앞으로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 잡으러 나아오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요
 
강포를 행하러 온다는 말은 강포한 세상을 징취하기 위해서 온다 말할 수 있어요 하박국이 보고 있는 그 사회는 겁탈과 강포가 넘치고 있는 세상이어요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민족을 일으켜 세웠고 그들이 와서 강포를 징취하기 위해 강포를 들고 온 것이야
 
무서운 현실이지요 그 기세가 당당합니다 그래서 왕들을 멸시합니다 방백을 조소합니다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샇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성도 무너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벨론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달라요 원하지 않았는데 바벨론이 와서 우리 당하게 되었어 이것과 우리가 자체내에 가지고 있는 불의함 이것을 해결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보고 있기 때문에
 
11절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이것은 애매한 구절이기는 합니다 두 가지의 번역이 있는데요
먼저 가돌릭 성경은 그러나 제 힘을 하나님처럼 여겨 죄를 지은 자들 그들은 바람처럼 지나가 사라지리라 라고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선택박은 바벨로니아가 결국은 지나치게 자기를 믿었기 때문에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새번역은 그러나 제 힘이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이 죄인들도 마침네 바람처럼 사라져서 없어질 것이다
 
여기 불의가 있어 불의한 세상이야 이것을 징계하기 위해서 바벨론을 세우셨어요 여기를 쳐 이제 심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바벨론은 자기들의 한계가 무엇인지 몰랐어 스스로를 신으로 여겨요 힘을 신으로 숭상하는 자들이어요
 
그들의 결국이 어떻게 된다고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들이 가장 강력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게 예언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현실이 있고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때가 되면 스러질 수 밖에 없어요 해가 떠오르면 스러지는 이슬처럼 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하박국서가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떤 경우이든 힘을 정의로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선택 받은 자들이 지나치게 자고할 경우에 그들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하는 비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꽤 뚫어 보는 사람인데 하박국은 그렇게 깨 둟어 보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정 반대로 역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겠지요 우리가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의를 이것을 추구하지 않는 신앙 생활이라는 게 공허한 생활이어요 나의 욕망 여러분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욕망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인간 속에는 결핍이 있기에 욕망이 있는 것이어요 무엇인가 결핍이라고 하는 것은 채워 지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욕망의 특생이라는 게 만족이 없어요 이 결핍 때문에 욕망이 발생하는 데 여기에는 만족이 없어요 찰 만자가 없어요
 
차지를 않아 그러니까 영원한 결핍 속에 살게 되는 것이어요 인간이 결핍 되어 있기 때문 채워야 하니까 욕망은 늘 배타적이야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눌 수 없어요 욕망은 배타적이라는 이야기는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저 사람이 없어져야 돼 그래서 폭력적이 되어요 갈등이 생겨나고 정의와 공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나의 채워 지지 않은 결핍이 있으냐 이 결핍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결핍이 더 큰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나는 그만 해도 되어요 저 사람에게 주세요 정의와 공의여요
 
이 땅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욕망을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욕망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섬기고 나누는 삶이 언제나 유쾌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신앙의 보람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데 있다 새로운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 교회가 새로워 져야 되는 것이 그 지점을 향해 나갈 때 새로워 질것이다 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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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
가볍지만 무시하지 말아야 할 코로나
제3강 하박국 2:4-8 악은 장구하
백합화를 보라
세상이 왜 이럴까?
최근 올라온 기사
창조의 신비(2)
제5강 합3:1-7 광채속에 감추어진...
이러다 신앙 잃어버릴라~~
그래서 회개합니다.
걷고 싶은 거리
가장 강력한 리더쉽
“감동시키시매”
기독교대학과 신학교
신천지 이만희 1일 새벽 전격 구속
제 4강 하박국 2: 9-20 온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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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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