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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 종말의 징조
2019년 11월 19일 (화) 05:47:41 유경재 목사 www.cry.or.kr

(참조: 평화나무 주관 교회세습 공청회 발제원고, 2019년 11월 18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

   유경재(안동교회 원로목사)

   
 

교회 세습의 역사는 오래다. 5세기 이후 교권 세습 사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11세기에 이르러서는 교권 세습의 폐단이 극심해져 독신 규정을 강제하는 법이 제정됐다. 자신의 교구를, 본당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가톨릭 사제들은 1000년 세월 동안 ‘성행위 금지’라는 고행을 강요받았다. 당시 교회 안에는 크게 세 가지의 악습이 만연해 있었다. 하나는 성직을 사고파는 성직 매매,성직자의 불법 결혼,왕과 귀족들이 교회의 성직자 임명을 좌우하는 평신도 서임권 등이 그것들이었다. 교황 글레고리우스 VII세는 즉위 이듬해인 1074년,로마회의에서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결혼에 대한 금령을 다시 공포하고, 다음해에 이 교령을 재확인하는 한편 평신도의 성직 서임을 금하는 교령을 반포했다.​그러다 마침내 1139년 제2차 라테라노공의회에서 온 교회의 사제들에 게 독신제를 의무로 규정하였다. 보편적 제도로서의 성직자 독신은 4세기 초이래 지속된 교회의 오랜 전통이었지만, 독신제를 의무로까지 규정하게 된 배경에는 교회 세습 문제가 한 몫을 하였다. 역사신학자인 강치원 박사는 최근에 중세 교회세습에 관한 심도있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11세기를 지나 12세기에 이르러 성직자들의 성문제를 제기하는 논조는 달라진다. 거룩 함보다는 교회의 사유화가 전면으로 부각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세습 할 수 있는 근원을 차단하는 방법으로서 사제들에게 성관계를 금지시켜 자녀 출생을 막고 또한 이미 출생한 사제의 아들들에게 서품을 주지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든 것이다.(강치원, 교회타락의 상징으로서의 교회세습과 그 개혁의 흔적들, 유인물 28.)

​1545년에 열린 트리엔트공의회가 사제 독신제도를 재차 규정했고, 오늘날과 같은 사제 독신제가 보편 교회법으로 명시된 것은 1917년이었다. 4세기 이후 교회가 확장되면서 중세에는 교회가 소유한 토지 등이 많아졌고, 죽을 때까지 한 교회의 사제로 있다가 자식에게 세습하였고, 주교 권한 밖에 있는 ‘자기교회’를 세워 재산 불리기로 이용하기도 하였고, 이를 자식에게 세습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자연 성직매매도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런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자 사 제의 독신제가 채택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세습은 중세교회 세습과는 다르지만 결국 소유욕 혹은 탐욕이 그 바탕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동안 교회세습에 관한 여러 논의들이 있어 왔기에 여기서 교회세습의 부당성 등을 새삼 지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교회세습은 어느 특정교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기보다는 자본주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가치를 기준으로 교회를 이루고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느낀다. 영국 성공회 주교 톰 라이트는 그의 책 ‘혁명이 시작된 날’에서 우상숭배를 “창조세계를 다스릴 책임과 권위를 부여받은 인간이 … 창조세계 내에 있는 힘과 권세들을 숭배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창조세계 내의 힘을 숭배하고 예배할 때, 우리는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기뻐할 다른 세력들에 우리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자신의 소명을 파기 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신도 인간도 아닌 세력에 양도해 버렸다. 그러자 그 세력들은 온 세상에 만연하여 인류의 삶을 망치고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지옥으로 바꾸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런 ‘세력’의 일부는 우리에게 매 우 친숙한 돈, 섹스, 권력이다.(톰 라이트, 혁명이 시작된 날, ebook 117/623)

오늘날 “온 세상에 만연하여 인류의 삶을 망치고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지옥으로 바꾸는” 세력은 바로 ‘세계화 자본주의’이다. 오늘날 국제금융자본은 무차별하게 약한 나라들을 합법적으로 공격하여 그 나라의 경제 주권을 빼앗아버리고 그 나라의 국경을 철폐시켜 버렸다. 오늘날 경제세계 화는 우리로 국제금융자본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게 만들고 있는 거대한 우상이다. 무릎 꿇지 않는 나라들에게는 가차 없는 징벌이 가해진다. 지금 경제세계화 의 물결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막강한 세력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다. 모든 나라가 살아남으려고 이 거대 세력 앞에 굴복하고 그 세력을 섬기며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거대한 금신상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막강한 우상의 세력이 되었다. 오늘날 경제 세계화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금신상임을 알고 여기에 머리 숙이지 않고 항거했어야 할 교회들이 항거하기는커녕 거기에 순응하고 신자유주의를 찬양하고 그 가치를 내면화하여 교회성장에 박차를 가해왔다. 연세 대 양혁승 교수는 이런 자본주의 사고를 한국교회가 그대로 베껴왔다고 지적하였다.(초대형교회의 목회세습, 어떻게 볼 것인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최종원, 명성교회 세습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복음과상황 325호.)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우리나라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상적 증상들(예, 독점과 경제력집중의 심화, 편법적 부와 경영권 세습 등)과 너무도 흡사한 증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바로 한국교회 세속화의 단적인 증거라 볼 수 있다. 몇몇 (초)대형교회의 목회자에게서 재벌그룹 총수의 이미지를 느끼는 것이 한국교회의 불편한 현실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번영신학이 되었고, 번영신학은 대형교회 지향을 권장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초대형교회들이 생겨났다. 이런 대형교회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교권을 장악하고 교단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런 대형교회는 모든 목회자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우상이 되었다. 국제금융자본이 무차별적으로 세계시장을 점령해 가듯이 초대형교회 재력이 중소교회와 그 목사들을 휘어잡아 굴종하게 만들었다. 그리 고 기업이 세습하듯 대형교회들은 앞다투어 세습을 하며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 교단은 교단대로 초대형교회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기에 헌법을 잠재해 가면서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최종원 교수는 「복음과상황」 325호에 기고한 글에서 “교회 규모가 어떠하든 오늘날의 교회는 근대 체제의 산물이다. 대형교회는 근대 자본주의의 종교적 결정체이다. 근대의 자본주의 등장과 발달, 한계와 함께 근대 교회도 생성·발전하고 한계를 맞고 있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교회도 자본주의체제 가치를 따르는 집단으로 운명을 같이 한다는 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104회 총회가 헌법을 ‘잠재’하고 명성교회 세습을 몇 가지 조건을 달아 허락한 것은 우리 속에 내면화 되어있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 결정이라고 본다. 총대 1204명 중 920명이 수습안을 받기로 가결한 것은 단순하게 총회와 명성교회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에 간직하였던 자본주의 가치 곧 성공을 향한 욕망을 표출시킨 것에 불과하다.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결정이라고 하겠다. 최종원 교수는 위의 글에서 “근대 교회는 인간의 욕망을 무한대로 긍정하는 효율적인 자본주의체제 위에서 나고 자랐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교회성장주의나 번영신 학은 바로 이런 ‘인간의 욕망을 무한대로 긍정하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출생하였고, 명성교회는 바로 그런 욕망을 이룬 대표적인 교회이며, 모든 교회가 우러러보며 따르는 표상이 되었다. 104회 총회에서는 그나마 세습금지법은 유지 하면서 명성교회 세습만 예외로 하기로 타협하였지만,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총회가 진통을 겪어야 하기에 아예 헌법의 세습금지 조항을 없애려 할 것이 고, 그런 교회의 요구를 따라 헌법은 개정될 것이다. 이미 지난 총회 때도 3개 노회가 이 조항을 삭제하자는 헌의를 하였다. 무한대로 확장하려는 욕망을 이루는 길에 세습금지법은 치워버려야 할 걸림돌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난번 총회 때에 재판국 판결을 받아 헌법대로 시행하기로 하고 명성교회가 그것을 받아드려 세습을 물렸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번영신학을 바탕으로 한 한국교회의 욕망이 잦아들고 다시 겸손한 교회, 낮아지는 교회로 거듭났을까? 설령 명성교회가 헌법대로 따라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했다 하더라도 결코 한국교회 내면의 욕망은 잦아들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분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자본주의체제를 벗어나 그 가치를 버리기 전에는 크고자 하는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거기서 멈추었으면 이 욕망의 함정에서 벗어날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하였고, 종말을 향한 욕망의 행진을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은, 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몰아붙이는 세력의 다수가 한국교회 교인이라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가난한 자들과 가진 것을 나누고 싶지 않고, 이제까지 그들의 삶의 토대를 이룬 자본주의체제를 공고하게 지키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겠다는 욕망이 좌절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광장으로 몰려나가 정권 타도를 외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런 현상은 바로 교회세습과 맞닿아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은 바로 종말의 징조이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을 때 멈추어 야 할 시점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그 풍선이 터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지금 자본주의체제는 멈추어야 할 시점을 지나 기후위기를 불러오면 서 그 한계에 이르렀고, 마찬가지로 그 체제와 함께 성장을 추구하던 교회도 성 장의 한계 즉 종말에 이르렀다. 이런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교회로 하여금 교회 세습에 더욱 강하게 집착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지금 자본주의 체제가 한계에 도달하면서 안정된 삶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하든지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 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종말의 두려움은 현실화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압 박할 뿐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날센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버가모교회에 주신 말씀을 따라 속히 돌이켜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2:16)

대형교회 이야기를 다룬 권무언의 소설 '신의 대리인 메슈바'에 나오는 말로 결론을 대신하려 한다. “풍요는 역설적으로 악마의 작품일 수 있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가난하고 불편했을 때 넘쳤던 영성이, 점차 풍요로워지면서 영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탐욕이 자라나면서 물질이 교회를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간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1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풍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0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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