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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강 아모스 4: 1-13 하나님 만날 준비
2019년 11월 12일 (화) 17:21:37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착한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 아 저 착한 사람들이 살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이상한 이야기인가요? 착하면 살기 쉬어야 하는데 착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요 왜냐하면 악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자기의 먹이감으로 여기고
 
좋은 사회라고 하는게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버러스 데이라고 하는 미국의 사상가 이야기인데 좋은 사회는 착한 사람들이 살기 쉬운 사회인데 착한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사회가 안정되고 공의가 제대로 지켜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옳게 시행되는 사회라고 한다면 나쁜을 하는 게 힘겨운 사회가 되어야 해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세상이어야 좋은 사회입니다 우리 정의와 선의에 의하여 지배된 사회이기도 하지만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하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유럽에서 운전하는 사람들 미국이나 질서를 잘 지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대도 골목 지나갈 때는 차가 섰다가 간다든지 이 사람들이 유난히 준법 의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안 그러면 벌금을 꽤 물어야 하기 때문에 바로 경찰이 와서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도심을 달려가는데 사람들이 자동차가 아파트 지역을 지나가는데 시속 30키로로 달리지요
 
왜냐 하면 사람들이 쉬어야 하니까 다 지켜 저 사람들 배려해서가 아니라 무엇이어요 벌금이 센 것이야 주차 아무대나 못해 특히 소화전이 있고 그런데 절대로 못 세워요 왜 벌금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러니까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 마음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있을 때 그 제도안에 살아가면서 조금은 편안한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렇게 해도 괜찮은 사회 이것은 악으로의 경향성을 막아내기 어렵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낙관적으로 개인의 선의에 의해 좋은 사회가 온다 어려워요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힘 있는 사람들은 약간 눌려 주어야 하고 힘을 잃은 사람들은 약간 올려 주어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데 성서의 정신은 바로 그런 정신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모스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런 내용을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장 뒷부분에서 사마리아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오늘은 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특별히 누구를 야단을 치고 있느냐 하면 사마리아에 사는 바산의 암소들아 합니다
암소라고할 때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산이라고 하는 곳은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부르는 갈릴리 호수의 동쪽 지역 그 곳을 바산 지역이라고 하는데 오늘로 이야기 하면 골란 고원이 있는 곳입니다
 
골란 고원이라고 여러분 들어 보셨을 것인데요 옛날에 화산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지역이 현무암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농사짓기에 적절치 않아요 현무암 지역이니까 마치 제주도처럼 농사 짓기에는 적절치 않지만 그래도 풀들은 잘 자라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농사를 짓는 것 보다는 목축업이 발전했고 바산 지역에 목축업이 유명합니다 바산의 소들은 굉장히 살찌고 그리고 육질도 좋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산지역에 암소는 굉장히 유명하고 또 그 지역에서 나오는 사과도 대단히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있는 부목사님을 성지 순례를 보내 드렸더니 갔다 와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그랬더니 골란 고원에서 먹은 사과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산 지역이라고 하는 곳은 그렇게 목축업이 유명하고 지금도 소들이 굉장히 살찌고 우리처럼 가두어서 사육하지 않고 또 놓아먹이니까 아주 좋은 소들이 자란다고 하는데 바산의 소 그러면 유명한 것이어요
 
여기 사마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라고 이야기할 때 움매하는 소를 이야기 하지 않고 암소로 유비되고 있는 여성들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약간 기분 나쁠 수 있어요 여성들이 그런데 그 여성들이 바산의 암소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날씬한 사람은 아니어요
 
귀부인 좀 이렇게 살집도 있고 후덕해 보이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살찌는 것을 몹시 싫어하나 옛날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살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정통적인 미인을 이야기 할 때 양귀비 이야기 하고 그러는데 양귀비 같은 경우도 살집이 제법 있는 여성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날씬한 이런 사람이 각광 받는 시대는 얼마 안 되었어요 그러니까 날씬한 것만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중동 지역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바산의 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암소들이 저절로 살을 찌고 그랬다면 참 좋기는 한데 그들이 살찌개 된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남의 것을 빼앗아 먹어서 그런 것이어요
 
다른 이들이 누려야 할 몫들을 빼았아서 혼자 누렸기 때문에 살이 찐 것이야 평화라고 하는게 평화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의 어느 동화 작가가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이렇게 쉽게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나 그 분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평화란 내가 있다는 것이 참 좋은 것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네가 있어 참 좋은 것 이게 진자 평화이지 네가 있다는 사실도 좋고 네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좋은 것 이것이 평화라고 하는데 이 평화가 이루어지기 어떠해야 하면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남겨 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평화의 반대말이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평화의 반대말이 오피피 욕심일 수 있지요 그것을 욕심이라는 말을 조금 더 구체화해서 이렇게 이야기할게요
 
독점 독점하려는 것 내가 다 독점해야 돼 저는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홀로 獨(독)자이지요 독점하는 것이어요 나 홀로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毒(독) 독자여요 홀로 먹는 그것이 독이 되는 것이어요 \
 
언어적인 소리의 유사성 때문에 이런 사고를 해 보지만 나 혼자 먹는 것은 언제나 독입니다 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하면 자기도 나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다치게 만들지요
 
그래서 정말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남의 것을 남겨 둘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늘 이야기 하지만 레위기 19장에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가리켜서 성서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추수할 때 너는 밭의 한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밭모퉁이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것 다 내 것이야 할 때 남에게 줄 것이 없지요
바산의 암소라고 은유적 이 여성들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어요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1절 이 말을 들으라 하면서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학대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겠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강재하는 것이야 내가 입은 옷이라고 벗어내야 하고 이것이 아모스가 보기에는 가장 타락한 시대의 모습입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해 낼려고 하는 그 마음 스스로를 살찌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악한 삶이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술에 취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향락을 즐기며 살고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남의 고통스러운 처지야 어떻게 되었던지 인생은 나만 즐기면 돼 이것이 하나님이 모시기에 가장 악한 것이다고 합니다
 
이것이 4장 1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예고됩니다
4장 2절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여기에 거룩함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거룩함 이것은 구별되었음을 뜻하기도 하시만 인간이 탐욕을 부르고 그것과는 하나님의 꾸짖으심
 
여러분 악한 영을 꾸짖을 수 있는 영은 어떤 영일까요 힘이 센 영이 악영을 꾸짖을 수 있을까요 악하고 더러운 영을 꾸짖을 수 있는 것은 깨끗한 영 만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은 악하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맑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직 맑음만이 꾸짖을 수 있지요
 
거룩하다고 이야기 한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이야기 하는 가닭은 무엇이냐 하면 그들은 맑지 않은 것이야 그렇게 살지 않은 그 자체가 흐려진 삶이야 가 하면 더럽혀진 삶이어요
 
그 하나님이 맹세하심이라 하나님이 맹세하신다고 하는 것은 뜻을 돌이킬 생각이 없어 먼저 미리 하나님이 뜻을 돌이킬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맹세하셨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2절 그래서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낙시로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합니다고 말합니다
 
보면 끔직한 이야기이징 사람을 갈고리에 끼어간다 낚시를 남은자들도 끌어간다 실지로 역사속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책에 보면 앗시리아의 부조물들 돌로 세겨놓은 구조물들을 보면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끌어가기 위해서 코나 입술에 갈고리 같은 것을 걸어서 끌고가고 있는 장면이 형상화 되어 있어요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렇게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제 배만 불렸던 사람들에게 닥쳐올 운명은 무엇이냐 하면 결국 이렇게 파산하는 것 비인간으로 취급받는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고
 
3절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나아가서 하르몬에 던져 지리라
사실 하르몬이라는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언어의 유사성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헤르몬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대게 사람들은 앗시리아로 끌려가는 어떤 루트를 이야기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동번역 성경은 그 하르몬을 무엇이라고 번역했느냐 하면 거름더미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거름더미에 던져지리라
 
그러니까 갈고리에 꾀어 가지고 전락입니다 가장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이 거름더미로 내려가는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가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4절 결국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살거야 하고 말한다면 문제가 덜 될 수도 있습니다
 
나쁜 사람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요 문제는 무엇이냐하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어요 때가 되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고 수만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고 돌아서서는 용기를 내는 것이지요 죄의 용서를 그런데 이게 과거의 일 만이라고 우리가 할 수 없어요
 
제가 그 영화를 얼핏 본 것 같은데 박중훈이라는 배우가 형사로 나와 가지고 투캅스 온갖 나쁜 짓들을 하고 예배당에 가 가지고 주여 하고 기도하지요 나의 용서해 달라고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그래서 마음이 시원해 져서 돌아서서 또 죄를 지어
 
최승호라는 시인은 교회를 약간 비꼬듯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자동세탁기 일주일 동안 밖에 나가서 온갖 죄를 짓고 더러워진 몸과 마음을 거기에 집어 넣으면 말끔해 지고 또 죄를 짓는 그러니꺼 여러분 종교적인 행위라고 하는게 나의 윤리적 삶 일상의 삶 속에서 거룩함과 결합지 않을 때 하나님을 늘 가증한 것으로 여거
 
4절 너희는 벧엘에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여
벧엘은 여로보암이 성소를 만들었대이지요 예루살렘 성전 대신 만든 곳이지요 길갈은 전통적인 거룩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곳에 가서 죄를 덜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데
아모스가 하는 이야기는
4절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라고 이야기 합니다 종교행위가 오히려 범죄가 되고 있어요
길갈에 가서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여기서 재미난 너희의 십일조를 드리라 너희의 희생을 드려라 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말 놀이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를 위해 바치는 행위임을 보여 주어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게 정말로 그 그릇된 종교행위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소에 가 가지고 죄를 더한다 종교행위가 오늘 이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일상의 자리에서는 사람들 함부로 대가고 자기 잇속 있으면 다 챙기고 사람들을 모독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위를 이용해서 어떤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빼앗아 내고 특히 남성 권력자들이 여성들에게 성적인 희롱을 하고 심지어는 성 폭력까지 하고 그리고는 교회에 가 가지고 간증하고 여러분 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죄를 더하고 그 이야기여요 이런 일들이 비일 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행위를 가증하게 여기신다 죄를 더한다 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일상생활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십일조가 하나님께 정말로 봉헌한 게 아니라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하는 행위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5절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이게 수은제라고 하는게 어려운 단어이지요 수은이 화학 수은이 아니야 이 酬(수)자인데 여기보면 닭 酉(유)자거든요 그런데 닭유이기도 하지만 술을 담는 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술 洲(주)자는 그래서 이 酬(수)자는 보답하다 보수하다 그 이야기여요
 
수은제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물이 수은제 (酬恩齊)야 그러니까 하나님앞에 보답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그러니까 누룩 넣은 빵을 불 살라사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다음에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樂獻祭(낙헌제) 하고 말하고 있는데 낙은 즐거운 낙자여요
 
그러니까 자원 예물이야 내가 기뻐서 드리는 제물 이게 낙헌제이거든요 그것이 낙헌 예물이거든요
 
5절 그것을 너희가 선포하려므나 그런 데 평가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나는 좋은 신자야 나는 이렇게 낙헌제를 바쳤어 수은제의 제물을 바쳤어 오아 나는 대단해 십일조도 해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나님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는 예배가 자기 위안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북 왕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경고를 듣고도 사람들은 돌이킬 줄 모릅니다
6절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데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하고 말합니다
 
이가 깨끗하다 이 사람들이 치약이 없어도 되겠구나 양치 안해도 이가 깨끗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먹은 게 없어서 이가 깨끗한 것이야 너희에게 끼닛거리가 없게 하겠다 그 이야기야
 
결국은 이러한 삶 그 전도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는 보응입니다
6절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어 하나님이 왜 그러느냐하면 내게로 돌아오라 하는 하나님의 부름이어요
 
우리에 삶 속에 고통이 다가 왔을 때 왜 그럴까하고 하나님께 힘써 돌아가야 하는데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감각함이 그들을 사로 작고 있는 것이어요
 
어떤 의미에서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회심으로의 부르심인데 그것도 영혼이 예민한 사람만 알아 차릴 수 있는 것이지요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7절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비름 멈추게 하셨어요 어떤 성읍에는 어디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그래서 땅이 말라가기도 하고 수확철에 내리는 비는 안 좋은 것이어요 수확하기 몇 달 전에 비가 내려야 여물어요 비가 안 내리게 했어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하고 자기의 마음이 그릇 되었을까 반성해야 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해 그런 것이지요
 
8절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못한다
 
물이 부족해 가지고 물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정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그러면 아프리카 사람들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 가야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죄를 지어서일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는 부유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들이 가난하게 된 것은 그들의 게으름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이 그런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고 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독점해 가져갔고 그들이 잘 살 수 있는 삶의 기회를 박탕했고 교육 받을 기회도 주지 않고 그래서 점점 어려워진 것이어요
 
죄가 만들어진 현실인데 이런 성경을 읽다고 오늘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 보고 너희의 죄 때문이야 이렇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어요 그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 것이어요
 
결국 이제 재앙이 이렇게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이 그들에게 닥쳐 온 것은 내게로 돌아오라는 부름이었다는 것입니다
 
9절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 깜북이 재앙으로 너희를 쳤고 팥종이 메뚜기이지요 판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 나무와 감나무를 다 먹게 하였지만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계속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들 기억을 하실 터인데요 어떤 말이냐 하면 회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슈브라고 하는 단어는 또 헬라어 메타노이야 이런 단어는 무엇이냐 하면 돌이킴을 의미해요
 
돌이킴은 무엇이냐 하면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방향성 내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어요
 
전형적인 이야기가 에덴동산에서
창세기 3장 8절 아담과 아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과 마주보기를 거절한 것이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주 바라보아야요 사랑하면 보지 않아요 꼭 이성간의 사랑만이 아니고 내가 자신이나 손자 손녀를 사랑하면 자꾸 보고 싶어요
 
옛날 노래 있잖아요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그러니까 사랑의 관계는 마주 봄의 관계여요 그리고 사랑의 관계는 서로를 잡아당겨요 어트렉션이라고 하지요 그 사랑의 관계가 무너졌을 때 제일 먼저 행위가 등 돌려요 등 돌림의 관계가 시작이 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자석에 같은 극이 흐르듯이 밀어내 밀어내 그러니까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얼마나 멀리 떨어졌느냐 그것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방향성이 제일 중요해요 중요한 것 회개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욕망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향해 돌아서는 것
 
끊임없이 하나님이 경고를 하면서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 여러분 요즈음 많이 불리운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돌아와 돌아와 집을 나간이여 그 찬송가 있지요
 
우리 엄청 불렀어요 70년대에 한번은 여주에 살고 있는 친구 교회에 교회 학교 여름 성경학교를 돕기위해 가서 친구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 식구들 모이기만 하면 마루에 있는 풍금을 치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주로 부르는 곳이 무엇이냐 하면 돌아와 우리가 친구를 끌고 가서 너 이놈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온 가족이 돌아와 돌아와 그런 재미있는 에피쇼드도 했습니다마는 정말 돌아오라고 하는 하나님의 간곡한 부름이 있는데 다 무시하고 돌아오지 않은 것이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안타까워하면서 전염병을 보내기도 하고 청년들이 죽게도 하고 이렇게 온갖 시련이 그들에게 다가올 때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어요 무감각한 것이어요 이것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11절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이 내가 소돔과 고모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 빼낸 나무 조각 같인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끝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이어요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 같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무엇이지요? 소돔이라는 그 땅에 가보면 소돔성이 있던 곳에 가보면 척박하기 이를 대 없습니다
 
다른 곳은 풀도 돋아나고 힜는데 거기 풀조차 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런 지역이거든요 소돔의 죄라고 하는 것은 남색의 죄 만이 아니라 소돔의 실패는 무엇이냐 환대의 실패 낯선 사람들을 자기들의 삶 속에 받아 드리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이 환대이지요
 
소돔은 그것 안 합니다 사람들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대상으로 수단으로만 삼는 것이어요 낯선 사람들을 환대할 줄 모르는 문명 그 문명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문명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몰라요 옛날에 우리는 한국인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정 이 정이라는 게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그놈의 정 때문에 합리성이 작동 안하고 이런 부분도 있어요 그러나 사실은 이웃과 정겹게 살던 그 시절이 우리에게는 영원히 지나가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환대해야 하는 그 의무를 개인의 윤리로 받아 드리지 못하고 제도와 시스템에 밀어부치고 나 몰라하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쩼던 고통 받고 있는 그 문명은 외면하고 있는 그 문명을 소돔과 고모라는 말 속에 여기에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반가워요 악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각오해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아 차려야 해 그런 이야기여요 심판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엄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13절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시며 아침을 어둡게 하면 땅의 높은 대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라
 
하나님을 표현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우선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영속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은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이게 놀라운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발 하늘에 별을 봅니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 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 느껴집니까? 나의 작음 이 우주의 광활함 저 무한한 공간에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파스칼
 
무한 앞에 섰을 때 그 무한이 침묵하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서 존재의 경이를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 무한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셔요 그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 건네고 나는 네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시는 분이셔요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렇게 크신 하나님이 이렇게 작은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말을 건내오신단 말이어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아침을 어둡게 하며 상황을 반전 시키는 분이셔요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 제의의 공간 밟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번성한 행위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종교적인 행위를 넘어서는 하나님 마음과의 접속을 더 소중히 여기신다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행위를 하나님은 가증히 여기신다 이것이 지금 아모스가 들려주고 있는 말인데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를 한 후에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그의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렇게 작은 우리가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고 있는데 좁은 자기의 견해에 갇혀가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자기의 판단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돌아오라고 하는 수 없는 메시지를 듣고도 돌이킬 줄 모르는 그들 앞에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어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지금 이렇게 명할 것이야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라는 것이지요 저 사람의 아픈 사정을 헤아리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거룩한 삶이다 는 것이지요
 
종교 행위 그 자체 무시할 수 없지만 이것은 그 행위 자체가 아름다워 지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네가 사람들을 아낄 줄 알아야 진자 예배드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못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거듭 거듭 경고하시고 말 건네 오셨지요 돌아오아 돌아와 이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영혼의 예민함이 필요할 때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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