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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를 가치 있게
2019년 10월 17일 (목) 08:53:04 양의섭 목사 www.cry.or.kr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1.
    고교 시절에 나를 지도하시던 목사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너는 얼마짜리니?”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 인생은 얼마나 가치가 나가는 가 말이다.”
 
    이 말씀에 ‘나는 얼마나 나가는 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별로 값어치가 나가지 않는 싸구려였습니다. 당시 빡빡 깍은 머리 하며, 비썩 마른 몸매, 뛰어나게 공부도 잘 하지 못하는 처지, 별 볼일 없는 집안 배경, 요즘 말로 전형적인 흙수저, ... 남들이 눈여겨보거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기분 나쁜 소리지만 우리는 가치가, 값이 다 매겨져 있습니다. 인격과 인권은 평등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격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만약 사고로 죽으면 보험료나 보상액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오래전에, 지방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뭐 타고 왔느냐 했더니, 비행기 타고 왔답니다. 그래서 ‘목사님 세월 좋네, 비행기 타고 다니고!’ 했더니, 그러십니다. “모르는 소리 말어. 고속버스 타고 오다가 죽으면 기껏해야 몇 천만 원 보상인데, 비행기 타고 오다가 죽으면 최소한 1억 원은 받아.”합니다. 뭘 타고 다니느냐에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답니다.
 
    2.
    여러분의 가치는 얼마나 나가는가요?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요?
 
    반지 하나가 있었습니다. 별로 비싼 반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싸구려 반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남들의 눈에 그렇게 크게 띄지도 않았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가치 없는, 보잘 것 없는 반지일까...”하며 탄식하며 지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자기를 고르더니 반지에다 글씨를 새겨 넣었습니다. 다른 반지들이 그것을 보고는 비웃었습니다. “넌 싸구려니까 사람들이 함부로 그러는 거야.”
 
    그런데 얼마 뒤부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수많은 반지들 가운데, 그 비싸고 화려한 반지들을 다 제쳐두고 이 싸구려 반지에 부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반지에는 조그마한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나폴레옹 황제가 조세핀과 연애할 때 준 평범한 반지였습니다!
 
    반지 자체는 변화가 없는데, 그 반지의 본래의 가치는 변함이 없는 싸구려였는데 거기에 나폴레옹이 글을 새김으로 하루아침에 반지의 가치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기사에서 본 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본래 가치는 볼 품 없고, 별로였습니다. 물론 대단한 집안, 훌륭한 배경, 잘 생기고, 재산 있고, 많이 배운 이들도 있지만, 우리들 중 대다수는 별로였습니다.
 
    왕십리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왕십리는 사대문(四大門) 안에 들어가지 못한, 즉 중앙에 진출하지 못한 주변인들(Marginal People)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사대문 안에 사는 양반들의 채소와 육류를 제공해 주며 사는 주변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십리에는 예로부터 널따란 채소밭이 산재해 있었고 거기에 뿌려지는 분뇨들과 마장동에서 도축되는 육축들로 인해 파리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왕십리 똥파리가 출현한 것입니다. 이 왕십리의 전통적인 거주 주민들은 중앙에 끼이지는 못했으나 기회만 있으면 사대문 안으로 진출하려는 그런 이들이었습니다.
 
    그것도 잘만 하면 조선 초 궁궐터가 될 뻔했는데, 여기에서 10리를 더 가거라, 왕(往) 십리(十里) 하는 바람에 경복궁이 궁터가 되어 손안에 들어왔던 출세 길을 놓친 아쉬운 지역이 이 왕십리의 정서입니다. 결코 중앙인,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우리, 우리의 가치는 얼마인가요?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별 볼일 없는 가치였습니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보잘 것 없는,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3.
    그런데 이런 내 삶 속에, 우리 영혼에 뭔가 새겨지더니 하루아침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의 가치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사랑하신다는 정도로 존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b)
 
    도대체 무슨 글씨가 새겨졌기에 그런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누구든지 그 영혼에, 그 삶에 이 예수 그리스도가 새겨지면 그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됩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 성령님의 인(印)이 쳐지기에 이젠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세상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나’가 아닙니다.
 
    로마서의 증언을 보겠습니까? 로마서 8장을 펼쳐서 29절부터 보면 이렇습니다.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결국엔 어떻게 하셨다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지금은 별 볼일 없어도 마침내 나의 인생은 영화로운 단계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아멘!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렇게까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할 말이 따로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왜? 내가 한 일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역사에 할 말이 없습니다. 기가 막힐 뿐입니다.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비록 싸구려 인생이지만 우리를 향해 의롭다, 괜찮은 인생이다 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막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모든 죄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건지시고, 내 믿음을 보고 의로운 인생이다, 괜찮은 인생이다 라고 인정해 주셨는데, 누가 나의 과거를 들먹이며 비웃을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인정해 주셨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뻔뻔하게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 그에 임한 하나님의 손길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의로운 인생이 되어 살지만 살면서 수도 없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어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에 그 모든 힘든 일들을 넉넉히 감당해 갑니다. 이게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38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이런 엄청난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즉 살고 죽는 것들도,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즉 귀신이든 천사든 그 어떠한 영적 존재들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내가 아는 일이든 모르는 미래든,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리라? 없으리라! 그 어떠한 것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뿐인 줄 아십니까? 시 116: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이 세상에서 살 때에도 큰 은혜, 죽을 때에도 귀중히 보시는 은혜, 죽은 이후에는 영생의 은혜! 이 정도로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4.
    여러분은 얼마짜리 인생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보통 가치로 셈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 인생을 매일 같이 비하(卑下)하고 있지 않습니까? 늘 팔자타령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고귀한 대가를 치르고 나의 인생 가치를 새롭게 해 주셨는데, 나는 매일 같이 그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거꾸러 하여 내 인생 가치를 저주하며 땅 속에 묻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낙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는 경우, 어떤 말씀으로 힘을 얻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신학적이요, 교리적이요, 철학적이요, 논리적이요, 심오한 것들이 아닙니다. 온갖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낙심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던 사람도 은혜를 받고 일어설 때의 그 결정적인 말씀, 진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나를 사랑하신다! 나 같은 인생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여전히 사랑하신다!’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70세 이상의 한나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밤 집회하는데,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에서 배웠네 ...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찬송을 부르는데 얼마나 즐겁게 하시는 지 모릅니다. 마치 유치부 아이들같이 즐겁고 신나게 부르십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어로 찬송을 부르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할머니들인가 싶을 정도로 영어로 ‘예수 사랑하심을’ 찬송을 부릅니다. 알고봤더니 이번 추수감사절에 부를 것이기에 연습했다고 하시더라구요.
  
    맞습니다! 우리가 모든 절망에서, 슬픔과 좌절에서 일어나는 힘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거기에 힘을 얻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비로소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3:1) 아멘!
 
    5.
    이렇게 귀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었음에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인생, 얼마나 바보인가요!
 
    사실 은혜 받기 전까지 ‘나’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떤 인생이든, 잘 낫든 못 낫든, 성인군자이든 세속인이든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아침안개였습니다. 잘났다 못났다 해 봐야 거기서 거기, 오십 보 백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을 하나님께서 붙드심으로 최고 최대의 가치 있는 인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치 없는, 사악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냄으로써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최고의 가치를 부여 하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가치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이제부터는 내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최대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갑니다. 모든 이들이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그러한 가치 있는 자아(自我)를 만들어 갑시다. 여러분의 가치는 이제 여러분의 생의 자세에 있습니다.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그리스도를 닮는 귀한 생을,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위 있는 삶을 만들어 갑시다.
 
    설교를 마치며 귀띔을 하나 해 드릴까요? 히10:10을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거룩함을 얻었노라’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한가지 생긴 게 있는데, 그게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 성도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거룩’이란 뜻을 아는가요? 몸가짐이 바르고, 화려하고, 근엄하고, 착하고, ...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만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거룩함’이란 단어는 성경 사전에 보니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담고 있는 기본적인 개념은 ‘구별’이다. 성경에서 '거룩' 이란 죄와 악으로부터의 구별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방식에 대한 성별이다.” 그러니까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누구 눈에 띈다? 보기에 구별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남편이 보기에 그런 거 아닙니다. 친구가 보기에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 심지어 내가 나를 보기에도 그런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에는 내게서 그 ‘거룩함’이 보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나를 구별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랑하기에!
 
    아무리 많은 아이들이 있어도 내 자식은 눈에 들어오듯이 아무리 많은 인류가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구별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눈에 담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7:19) 비록 고통 속에 허덕이지만, 하나님은 욥을 구분하십니다. 그리고 바라보십니다. 그게 우리가 받은 거룩함이요 그게 우리가 받은 사랑입니다.
 
    6.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 한다고 기죽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분하시고, 나를 향해 ‘너, 괜찮은 인생이다’ 하심에 힘을 얻어 가치 있는 삶,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이겨갑시다. 나는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의 눈동자 한 가운데에 들어있습니다.
 
    감시당하기 위해? 아닙니다. 은혜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흘러넘칩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 받은 은혜를 가치 있게 더욱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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