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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62강 31: 1- 9 르무엘 왕을 훈계한 잠언
2019년 08월 14일 (수) 09:39:01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우리가 달려오다 보니까 잠언의 마지막 장에 왔네요 처음 시작할 때는 이것 언제 끝나 하지요 거대한 광산을 뚫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인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반복된 것이 나오고 그래도 하나 하나 곰씹어 왔지요.
 
대게 잠언에 등장하고 있는 가르침의 스승은 누구였습니까? 솔로몬 그 다음에 우리가 마지막 지점에서 보았던 것이 아굴의 잠언이었지요 솔로몬이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솔로몬이 남자여요 아굴 아굴은 남자이지요 이게 사실은 지혜자로 등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남자라는 게 좀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요 지혜는 여인이지요 왜 지혜하면 여인이지요 어머니가 된다는 게 굉장한 지혜를 갖게 되는게 아닐까요?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요? 생명을 보살피고 두 분이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어요 사실 대만의 신학자인 송찬성 씨에스 송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 분이 어머니를 가리켜서 영어로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Co - creater of God 그렇게 말했어요.
 
Co - creater of God 이렇게 이야기 하면 공동창조자야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 생명을 출산할 때 어머니는 공동창조자인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알다싶이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이와 탯줄로 이어져 있지요 탯줄을 끊지만 아이와 깊이 연대되어 있고 어머니의 깊은 자식에 대한 사랑 태중에 잉태했던 그 아이 출산에 산고를 통해서 낳았던 그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과는 깊이가 다르지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이야기 할 때 그 사랑을 긍휼하심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긍휼하심이라고 하는 그 단어는 여성의 모태를 뜻하는 단어와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여성의 모태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적적한 용어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식에 대한 깊은 연민의 마음 그런 것 아니어요 아들아 혹은 딸아 차라리 너 대신 내가 아팟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렇지요 그리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아들 야곱에게 복을 네가 받아야 된다고 말하면서 야곱이 두려워 떨자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창세기 27장 13절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지요
세상에 그런 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화 할 수 없지만 그냥 살다가 지쳤을 때 어머니 소리 한 마디만 들어도 무엇과 같으냐 하면 하얀 앙금이 앉아 있는 병속에서 어머니라고 부르는 순간 상짝 흔들리면서 앙금이 피어오르듯이 어머니는 그런 정서를 우리에게 자아 내지요
 
가장 고통 스러울 때 어머니를 떠오르면 다시 힘을 내게 되지요 이런 경우는 문학속에서 굉장히 많이 등장 합니다. 요즈음은 그 여성들은 요즈음은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지만 과거 전통속에는 살림을 했는데 우리 말 가운데 재미있는 것이 살림살이라고 하는 말도 보면 살리고 살리고야 이것이 겹쳐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무엇이냐 하면 여성들이 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이 생명을 유지해 가는 그 일에 가장 소중한 일이지요 이 일들이 살림살이들이 소홀히 볼일이 아니지요 그러기 때문 살림에 선수들인 그 분들은 어떻게 보면 이념이나 이런 것 보다 훨씬 생활에 밀착된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지요.
 
여성들이 살림의 지혜 생명의 지혜는 본능적으로 남성보다 나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솔로몬과 아굴의 잠언을 보면서 좀 아쉬운 것이 왜 남성들만 등장해 오늘 드디어 여성이 등장합니다.
 
1절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라고 말하지만
르무엘이 왕이 말하지만 그 말은 누구의 말입니까?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을 전달해 준 것을 말합니다. 르무엘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유지를 잘 받들어라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르무엘이라는 왕이 이스라엘이나 유대 왕 가운데 있었나요? 없어요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에 엘자가 들어가지요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그런 뜻이어요 하나님께 헌신된 그러니까 이 사람이 유대나 이스라엘의 임금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겠다 생각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어요
 
금방 우리가 이야기 했듯이 르무엘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해준 교훈의 말씀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지 않아요 이것은 10절부터 나오는 이야기 현숙한 여인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 현숙한 여인의 이야기와 대조되기 위해서 어머니가 여기 등장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게 됩니다.
 
그 어머니가 무엇이라고 했는가 보아요
2절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여기 반복이 있지요 어떤 말이 반복이 됩니까? 무엇을 말하랴 내 아들아 이 말이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복하는 것은 왜 반복을 할까요? 강조의 의미이지요 특별히 히브리어에서는 반복하는 것이 강조입니다.
 
헬라어도 역시 마찬가지다고 볼 수 있겠는데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눅 22장 31절 시몬아 시몬아 그렇게 겹쳐서
요 1장 51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겹쳐서 이야기 해요 이것이 강조하는 것이지요.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각각 세 번씩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아들을 향한 어머니가 마치 유언처럼 곡진하게 들려주고 싶은 말 자기의 삶의 어떤 핵심을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간곡하게 들려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출세해 가지고 나에게 좋은 것 사주고 그런 것이 아니지요 대게 부모님의 꿈이라는 게 자식이 어긋난 길로 가지 않는게 부모님들의 가장 큰 꿈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않기 위해서 어머니가 신신 당부하고 있는 말이지요 세 번씩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나는 게 내 아들아 그 다음에 내 태에서 난 아들아 그 다음에 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이야기 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조금씩 변주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냥 아들 이것은 평상적 관계입니다. 그런데 태에서 얻은 아들 당연한 이야기이지 태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태라고 하는 게 태 줄로 연결되어 있었겠지요 너와 나는 둘이 아니야 정서적인 깊은 연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그 다음에 서원대로 얻은 아들이라는 것을 볼 때 어머니가 기도해서 나았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부탁드리고 그래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태에서 난 아들 서원을 통하여 얻은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서원을 그 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머니의 곡진한 마음이 이 표현 속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시 127편 3절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낳은 아들은 그래요. 그 어머니의 첫 번째 교훈 3절이지요
3절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어머니가 신신 당부하는데 여자들에게 힘을 쓰지 마라 왕이라고 하는 존재는 특히 요즈음 같은 어떤 공화주의 세상 말고 옛날에 전제 군주들은 많은 아내를 두지 않아요 첩들을 두고 그러니까 그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그런 힘이 있어요. 그러니까 네 힘을 그런 여자들에게 쓰지 말아라 굉장히 통속적 교훈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러나 중요한 교훈이겠지요 우리가 알다싶이 신명기에 보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 담겨 있는데
 
신 17장 15절 왕을 두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왕을 두지 말라고 하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모노 야위즘이라고 하는 데 오직 야훼 한 분만이 왕이지요
 
그들이 경험했던 것은 애굽이라고 하는 사회속에서 전제주의 국가속에서 그들은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살아왔지요 피 지배자와 피지배가 갈린 세상에서 피지배자로 살아 왔던 쓰라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해방되어 나온 자의 삶이 지배와 피 지배의 구조를 만들지 말라
 
그렇기 위해서는 왕을 세워서는 안 되고 그리고 무질서해서는 안 되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원리는 무엇을 통해 주어집니까? 토라에 의해서 주어지지요 율법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 가르침의 원리를 따라야지 인간이 지배하는 구조속에 들어가면 안 돼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부득히 주변에 있는 중앙 집권화 된 다른 나라들이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지요 국가라고 하는 것은 군대를 보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뜻하는 국(國)자를 보면 밖에 성벽이야 안에 안에 창과(戈)자가 있어 나라는 무엇이 있어냐 하면 그 다음에 입구(口)자가 있지요 성벽이 있고 군사력이 있고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라고 합니다.
 
왕이 있다고 하면 왕을 돕는 관료집단이 집단이 생겨나고 군대가 만들어 져야 하지요 그런데 그 군대가 너무 강력해 지면 자기 힘에 대한 과신이 생기게 되고 자기 힘을 과신하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등 돌림을 이어질 수 밖에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된 사람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말도 사 드려야 되고 이러지요
 
신명기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들이 중앙 집권적인 국가를 만들지 않은 것이 좋아 그런데 어쩔 수 없어서 왕을 두어야 한다면 왕들은 이것을 명심해야돼
 
신 17장 16절 그는 병마을 많이 두지 말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병마을 얻기 위해서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돼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다시는 돌아가지 말 것이며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17절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것이며
병마를 많이 두어서는 안 돼 왕들은 애굽으로 그 백성을 되돌려서는 안 돼 애굽으로 되돌린다는 말은 그들이 돌아가도록 하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떤 뜻입니까? 애굽에서와 같은 정치 질서와 돌아가면 안 돼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거기에 돌아가서는 안돼 그 이야기 그 다음에 아내를 많이 두지 말아라 왜 그 마음이 미혹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지니라 이야기 합니다. 왜 은금을 많이 갖게 되면 자기가 전능한 것처럼 느껴져요 은금은 유사 전능성을 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의지하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부득히 왕을 둔다고 하면 이러 이러한 것들은 두지 말아야 돼 여기에서도 아내를 많이 두지 말아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 르무엘 왕의 어머니 사실은 그 어머니의 이름이 안 나옵니다. 무명입니다. 그 르무엘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한 이야기 네가 가지고 있는 힘 주어진 그 힘을 여자를 위해 쓰지 말아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런 말 들어 보셨나요 경국지색(傾國知色)이라는 말 경국(傾國) 기울 경(傾)자니까 나라가 기우릴 정도의 아름다움이어요 여러분 양귀도 아름다웠다고 하고 양귀비의 모습은 당 나라의 현종을 유혹했던 사람인데 양귀비의 모습은 뺏뺏 마른 사람이 아니거든요 퉁퉁하고 그러니까 미인의 기준들이 달랐지요
 
여러분 포사라고 하는 사람 들어 보셨어요 이 포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나라의 유왕이 있는데 유왕의 애첩이야 정말 아름다웠데 어떻게 아름다웠는지 잘 모르겠어 정말 아름다웠데 누구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유왕에게는 첩들이 많았는데 유난히 예쁜 포사가 왕의 마음을 애달프게 만드는 것이 있어요
 
왜냐하면 웃지를 않아 정말 예쁜데 왕을 보면 다른 애첩들은 아양 떨고 그러는데 웃지를 않는 것이야 그러니까 왕이 어떻게 하든지 꿈이 무엇이냐 하면 저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무리해도 안 돼 어느 날 어떤 시녀가 비단을 옷을 만들려고 비단을 짝 찢는데 그 소리 비단 찢는 소리 짝 하는 소리를 듣더니 칼칼 거리고 웃는 것이야 그러니까 왕이 그것을 보니까 포사가 웃었어 행복 했지요
 
날마다 수 없이 많은 비단을 찢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효용 법칙이 있지 않아 날마다 그것만으로 웃을 수 없지 않아 안 웃어 어떻게 해야 또 포사를 웃게 만들지 고민을 하는데 어느 날 전쟁이 난 것처럼 해 가지고 산 위에서 봉화불이 올라가고 그러니까 그 나라를 돕는 제후 국가들이 군대를 보냅니다.
 
외적의 침입을 받았구나 하고 우리가 도와야지 군대가 몰려오는 모습을 보더니 포사가 또 웃는 것이야 왕이 포사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자주 봉화를 올리게 하고 제후국들이 군대를 몰아가지고 오는 것이야 그런데 올 때마다 어떻습니까? 황당하지요
 
어느 날 진자 전쟁이 난 것이야 봉화를 올렸는데 제후국들이 또 장난이지 하고 아무도 안 왔어 그래서 망했다는 것이야 그것이 경국지색이야 이것이 극단적인 이야기는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거기에 빼앗기게 되면 왕이 해야될 마땅할 직무를 못하게 된다 어머니가 왕에게 하고 있어요.
 
힘이라고 하는 것이 네게 주어졌을 때 그 힘은 너의 사사로운 만족을 위해 동원되면 안 돼 그런 말을 어머니가 하는 것이지요 고마운 말이지요 왕을 무너뜨리는 것은 공의와 정의를 거스린 것이 왕위를 무너뜨린 것임을 어머니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4절 루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여기에도 마땅하지 않도다라고 하는 말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술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은 결국 마시지 말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왕의 직무를 잊어 버릴까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운 까닭은 무엇이지요? 하나님의 그 통치를 그에게 위임해 준 것이지요
 
무엇하라는 것입니까? 공의와 정의가 있는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탐익하거나 그 속에 빠지게 되면 취함의 상태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직무를 잃어버리게 되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신신당부 세 번씩이나 마땅하지 않다 마땅하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술 취함이라고 하는 것은 헛된 자만심을 그 속에 키워줍니다 그래서 여러분 술 먹어서 어려움을 겪은 왕들을 우리는 압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 왕 기억나세요 그러니까 이 벨사살 왕이 자기가 지배하고 있던 경내에 수많은 신하들을 불러저 천명이 넘는 귀인들을 불러서 잔치를 거나하게 벌립니다.
 
다니엘 5장 1절 왕이 얼마나 부요한지 왕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넉넉한지 보여주기 위해서 잔치를 벌립니다. 취기가 도니까 어떤 생각이 들어요 내가 호탕한 사람인지 보여 줄까
 
다니엘 5장 2절 예루살렘에서 가지고 온 기명들 가지고 오라고 거기에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이야
5장 5절 그 때 갑자기 어떤 사태가 벌어집니까? 하얀 손이 나타나서 벽에다가 글씨를 쓰는 것이어요
혼비백산했지요 소람들이 그 글씨를 읽은 사람이 없는 것이어요
 
5장 8절 다니엘이 불러와서 읽지요 메네 메네 데게 우바르신
5장 25절 왕이 저울에 달아 부족함이 되었어 왕의 나라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
5장 28절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왕이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기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애 그렇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이지요. 다니엘서 5장에 나온 이야기였어요
 
전에 우리가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독주에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처럼 사람들이 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특권층이어요 옛날에는 그래서 술에 취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특권에 그 사람이 깊이 빠져든 상태입니다. 백성들의 고통 같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이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신신 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지혜롭게 이야기 합니다.
5절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할까 두려우니라.
아 어머니가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을 아주 살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술에 탐익하면 벌어지게 되는 일들을 이야기 하는데
 
(1) 첫째는 법을 잊어버린다 하고 말합니다.
여기 재미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다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여기에 잊어버리다라고 하는 단어가 발음이 유사합니다.
 
재미있는 것이야 마시는 것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잊어버려 마시면 잊어버려 말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절묘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어요 이런 말놀이를 통해서 결국 포도주와 독주를 먹다 보면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게 되어 있어 정말 그렇지 않아요.
 
결국 잊어버리고 싶어서 그러는데 사실은 무엇이냐 하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기억을 해야 하지요 정말 기억을 해야 되는 데 정말 기억해야 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이 자리에 세움을 입은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망각하면 안 되지 않아요. 특별히 왕으로 부른 받은 사람들은 여기에 법을 잊어 버린다 어머니가 정말 지혜로운 분입니다.
 
(2) 그리고 가난한 사람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움이라 하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왕에게 주어진 힘은 무엇하기 위해서 주어진 힘이라고 생각합니까? 곤고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왕에게 권한이 주어 졌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약자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는 것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10장 16절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전도서 10장 17절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아주 적절한 교훈을 그에게 주고 있습니다.
6절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7절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왕은 이렇게 탐익하고 너무 술취하면 안 돼 너무 고통한 사람들은 술로 마음을 달렐 수 있겠지 어머니는 그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것은 다른 의미도 가질 수 있는데 때때로 기억의 고통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무엇인가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옛날 소설 가운데 현진건 선생님이 쓰신 운수 좋은날이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첨지는 인력거 군이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인력거를 끌고 나가려고 하는데 병들어 있는 아내가 여보 오늘은 나가지 말지 그래요
 
그런데 퉁명스럽게 아내를 뿌리치고 나갑니다. 그 날은 운수가 좋았어요. 아침부터 댓 바람부터 두 사람이나 태워가지고 80전을 벌었어요 오아 이 돈을 가지고 아내가 좋아하는 설렁탕 국물이나 사 가지고 들어가야지 그런데 학생 하나가 불러 가지고 어디까지 가는데 태워주세요 망설이는데 1원 50전 드릴께요 아 큰 돈이야 오케이 태웁니다.
 
그리고 막 인력거를 끌고 달려가는 데 빗속을 달리고 있는데 자꾸 자꾸 집 옆을 달려가면서 생각이 나는 것이어요 여보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그 아내의 모습이 생각이 나요 마음이 불길해요 그래서 학생을 내려 주고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선술집에 들어가지고 술 몇 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건주정도 하고 주정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호기롭게 설렁탕 사들고 집에 들어오자 아내는 이미 죽었고 아들은 아내의 빈 젖꼭지를 문채 울고 있고 그래서 비통한 울음을 터트리는 이야기이지요 이것이 운수 좋은 날 그러니까 일제 식민지를 살고 있던 시절에 1924년에 개벽이라는 잡지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그 식민지 시절에 살던 곤고한 빈민들의 고통을 그렇게 이야기 하지요 운수가 좋은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쓸쓸한 세상이지요.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네가 술 마시고 탐닉하고 취하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잊어 버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술이라는 것이 고통 받은 그 사람들이 먹고 해야지 술 먹으라는 권장은 아닙니다. 네가 먹지 말라고 하라는 이야기이지 사람들에게 술을 다 먹게 해 가지고 다 잊어버리게 만들고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8절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9절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 지니라.
자 왕의 존재 이유를 강동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어라 여러분 말 못하는 자의 입이 되는 게 힘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힘 있는 사람만 돌 봐 주는 게 권력 가진 사람의 일이 아니다고요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도 야훼의 하나님이 출애굽기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 어떤 모습으로 드러내십니까?
 
출 2장 23절그 백성들이 신음하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역사속에 개입하시지 않아요 이것이 왕 다운 것이어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잘 나가도록 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억울한 일 때문에 원망하는 자가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지요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해 입을 열지니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저마다 삶의 몫을 생명의 몫을 온전히 누리면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 아니면 권력을 가진 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그것이 모든 것 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정치 행위는 물론 나라가 발전해 가야 하지만 그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버리고 가는 발전이어서는 안돼 억울한 사람이 없고 정말 생존에 경계선에서 몰려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의 세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저는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마는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 다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땅 끝은 전 먼데 땅이 아니고 지금 벼랑 끝에 내 몰린 사람이 땅 끝이 아닙니까? 교회가 설 자리는 어디이냐 땅 끝에 선 사람의 보듬아 안는 것 그것이 존재 이유이지요 그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지요 예수 믿으세요 이것만이 복음 전파가 아니라 그들의 설 땅이 되어준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의 설 땅이 되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보아야 하지요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정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는 말이지요
 
시편 72편은 왕이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말합니다.
2절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3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러하리로다.
여기에서 산들이라고 하는 것은 저 높은 도봉산 북한산을 이런 것 이야기하기보다도 큰 산은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 작은 산은 하급 관리들 그런 사람들이어요
 
왕이 공의로 재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정말로 정의로 재판하게 될 때 의가 이루어져서 관리들도 사람들을 존중한다 이야기 하고 있어요
 
4절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시편 72편 13절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시편 72편 14절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의 피가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왕이 해야 되는 일이 이것입니다.
 
한 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있음을 환기 시키는 것 어떤 분은 그들을 불 투명하게 만드는 것 그들의 있음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 그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권리를 위임 받은 사람들의 마땅한 의무다 이것이 르무엘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에게 신신 당부하는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이야기이지요 그런 지혜로운 어머니들이 많아 져야 합니다.
 
내 자식이 남들에게 이기기만 바라고 내 자식이 남들보다 귀한 존재로 크는 것을 바라는 것이 귀한 어머니가 아니라 그 아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줄 아는 그런 세상 만들기에 기도하고 그렇게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지혜로운 어머니이겠지요 이런 어머니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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