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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57강 28:12-28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복
2019년 07월 02일 (화) 09:33:01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행복한가요? 행복이라고 하는 게 보통은 사람들이 물질적 조건과 관련을 시켜서 생각을 하지요 일상적으로 그런데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 졌다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의 태도인데 누가 행복한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이야기인지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 규율을 따라 사는 사람같어요 누군가가 강제하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냐거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요 내일이라고 하는 것이 내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면 그는 행복한 것이지요
 
그에게 맡겨진 일이 크든지 적든지 간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지요
선배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는 네가 부럽다 왜 그러세요 너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부럽다 그 선배도 좋은 분이네요 후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는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부럽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어요
 
우리 모두 주어져 있는 인생을 알차게 살아내야 할 터인데 알차게 살아낸 내용이 행복이면 좋지요 그런데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되어요 그 길을 한번 배우도록 할게요
 
인간이라고 하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지요 나라고 하는 한 존재가 서있는 삶의 자리가 참 중요하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21세기 초반 살고 있고 또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이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삽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조상으로 물려받은 유전인자 이런 것들이 나의 모습과 성격의 일부를 구성하지만 그러나 많은 부분들은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나를 만드는 방법 내가 살고 있었던 공간이 나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나의 나됨의 비밀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잘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행복해야 하고 또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나와 만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름다워야 하지요 그러나 늘 세상은 그렇지 못하지요 관계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상처받고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 입힌 경우도 있고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느닷 없이 나를 외면하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이어요
 
그러다가 아주 후에 듣게 되어요 누군가를 통해서 그 분이 많이 마음이 아프데요 그런데 그 분이 마음 아픈 까닭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는데 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렇게 받아 드릴 때가 있지요 정말 인간 살다보면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삐지지 말고 잘 살자 이런 것이 중요해요
 
그런 때는 그오해를 풀어주어야 되는가요? 아니면 잠잠히 기다릴 때가 필요한 가요? 그것은 지혜롭게 해결해야 하는 데 그 때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할 때도 있고 잠잠히 기다릴 때도 있어요 그가 마음을 삭이고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고 한다면 개입할 때도 있지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12절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으니라
의인과 악인의 대조는 우리가 시편과 잠언을 통해서 충분히 보아 온 것이니까 여기에 대한 득의한다하는 이 단어는 의인이 기뻐하다 그 뜻입니다. 또 환호하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는 사람 바르게 사는 사람 이웃과 관계를 바로하고 사는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은 모두가 다 행복한 세상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 하나님도 무시하고 또 이웃들과의 관계도 소중히 여기지 하는 사람이 세력을 얻으면 어떨까요 악인이 사람들이 숨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여기에서 숨는다는 말은 짓 밟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악인들이 세력을 얻게 되면 사람들이 그 밑에서 짓밟히게 되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항상 피해를 보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삶의 속도대로 뚜벅 뚜벅 살려는 사람들이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어려움을 겪지요.
 
이러한 세상은 한 사회에 대한 현상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이 말로 규정되었을 때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어 질문입니다.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이야 의인이 득세하는 세상이야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악인과 의인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악인들은 늘 자기가 자리를 얻기 전까지는 항상 의인의 얼굴을 하도 등장할 때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별력입니다. 그 사람의 깊은 속을 깨뚫어 보는 이런 것들
13절 14절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요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잠언에서 죄를 공개적으로 자복해야 한다는 유일한 대목입니다. 사실은 이렇게 죄를 자복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대단히 신앙적으로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잠언에서는 이런 말이 거의 안 나와요.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복한다는 말은 자복하는 게 토설해 내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내 놓은 것이지요 내 속에 있는 것들 이게 호모 로비아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단어가 그것은 어떤 뜻이냐 하면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내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어요
 
자복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이러 이러한 일을 저질렀어요 내가 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말로 자복할 수 있는 마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거든요 성령께서 나의 마음속에 건드려 주시지요 나의 죄를 나의 잘못을 보게 해 주세요 그것은 내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자복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이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늘 가슴 속에 담아두고 숨기려고 하는 자는 형통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내 안에 칼을 품고 있으면 어떨까요? 날이 시퍼런 칼을 품고 있으면 남도 찌르지만 자기도 찌르지요 죄라고 하는 일이 꼭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숨겼으면 하는 죄가 내 속에 있을 때 그 죄는 나도 망가트리고 타자도 망가뜨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밖으로 나와야 죄가 해결이 되거든요 그것이 바로 죄를 자복한다고 하는 말인 것이지요
 
시편 32편에 보면 1-3절 허물에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왜 내 뼈가 쇠하였느냐 하면 내가 저지른 죄가 있었어 알아요 그것을 죄인줄을 그런데 부끄러워서 남들에게 드러날까봐 숨기고 있었어요 그러자 내 뼈가 쇠하였다 뼈가 마르는 것이야 척수가 그런데 그 다음 대목이 기가 막힙니다.
 
4절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같이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누르시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결국 내 속에 죄를 토설해 내야만 내가 건강하게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심의 가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죄를 자복하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복이 있어요
 
14절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하고 말합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죄악에 빠지리라하고 말하는대요. 여러분 경외하는 자는 어떤 사람이 경외하는 자이지요 자기의 인생을 두렵고 떨림으로 대하는 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함부로 허비해 버린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야
 
그러면 예컨대 굉장히 존경 받는 분으로부터 선물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그것이 사소한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귀한분 이 선물은 액면가로 따지면 별 것이 아니지만 그 선물을 주신 분이 누구여요 귀한 분이지요 그러면 그 선물을 어떻게 합니까 이까짓것 하고 그 선물을 버려요 그럴 수 없지요.
 
돌아가셨습니다 마는 목사님 가운데 한분이 돌아가신 목사님인데 후배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세배를 하러오면 설날 세배를 올리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주셔요 세베돈을 주시지 않아요 그런데 얼마씩이냐 하면 천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여러분 천원이라면서 받으면서 이까짓 것 그래요 아니요 그 천원 속에 담겨 있는 의미 그것 따져 보면 그것 액면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지 않아요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 인생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을 수도 있어 못 낫고 공부도 못하고 아름답게 생기지도 못했고 막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이 하나님께 받은 생이라고 생각하면 나를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두렵고 떨림으로 사는 것이야 경외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제가 당신을 경외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생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 하나님을 선물로 여기고 사는 것이지요.
 
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바로 그 사람이 복되다 진자 복은 그런 것이어요.
그러나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지요.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서 자기를 세상에 중심에 놓고 사는 사람이 마음이 완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재앙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오래된 히브리의 지혜입니다.
 
당장 우리 현실에서 보면 경외하는 사람은 하찮아 보이고 그리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 늘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바라보면 언제나 그 반대로 역전이 일어나더라 이것이 지혜가 되어서 여기에 언어화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15절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절 무지한 치리자는 포악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불의한 통치자들을 아주 사나운 육식 동물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지한 치리자 그들은 항상 무지함이 문제 같은데 무식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무지하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자기에게 위임되어 있는 권한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박사 학위를 다섯 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합니다.
 
자기에게 위임되어 있는 권한의 한계가 무엇인지 무엇하라고 하는지 모를 때 무지한 것이지요 이런 무지한 치리자 그러니까 자기에 위임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사려 깊지 못한 것이지요 항상 자기의 권한을 자기의 이익을 확보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존재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은 항상 약자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삶은 당장은 자기 이익을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포악을 행하지만 포악을 행하는 사람은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잠언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옛날 춘추전국 시대의 현인이 맹자라고 하는 그 분이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왕도정치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들이 왕도 정치이지요. 그러니까 맹자는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인간의 내면적 가치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늘 마음 쓰는 사람은 대인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마음 쓰지 않고 늘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소인 거기에 한 글자를 덧붙이면 소인배
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체격이 큰 사람이 아니라 늘 자기의 마음속에 내면적 가치질서를 바로잡고 하늘이 나에게 준 뜻이 무엇일까 이것을 늘 생각하며 거기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대인이고 그런 사람이 다스릴 때를 왕도정치(王道政治)라고 이야기해요
 
그 왕도 정치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냐 하면 인과 의로 다스린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인의의 정치입니다. 어질인 (仁)자 그렇게 쓴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그는 왕도정치 (王道政治)를 하는 사람은 원리가 무엇이냐 인과 의라고 했지요 인의(仁義)의 정치를 한다 그러니까 폭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폭력 가혹한 처벌 이런 것들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맹자는 인의가 아니라 폭력을 가지고 다스리려는 그 정치를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패도정치라(覇道政治)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힘을 숭상하는 것이야
 
그러니까 법치를 한다고 햐면서 법으로 지배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든지 그 법을 통해서 사정을 두지 않고 치리하는 것 이런 것들이 패도 정치입니다. 패도 정치의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공포이지요 공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렇게 무지하게 치리하는 사람들 패도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반면 16절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내면에 있는 질병입니다. 탐욕은 왜냐하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늘 결핍과 관련이 되지요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어 그런데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결핍이 내면화 되어있는 상태여요 언제든지 무엇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병이지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지요 인간의 욕심이 있어요 욕심이 채워지면 행복해야 하는데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질병인데 영혼의 질병인데 자기의 내면속에 있는 허물음이야 무엇을 갖다 집어넣어도 채워지지 않아 깨진 독에 물 붓기야
 
그래서 결국은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속에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야 하니까 그렇게 채워져요 안 채워져요 안 채워져요 그래서 그는 부패할 수 밖에 없어 항상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남의 것을 남은 언제나 적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어 그렇기 때문에 탐욕을 행하는 자는 장구할 수 없는 것이야 이것이 논리적으로 여기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17절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여러분 사람의 피를 흘린 자 살인자입니다. 그는 무덤으로 달려간답니다. 사실 남을 해칠 생각을 품는 것 그 자체가 자신의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왜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이라고고 하는 것은 제가 가끔 이야기 했어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 때 아담의 갈비뼈를 빼어서 만들었지 않아요. 아니 흙으로 빚어 만들 수 있는데 하나님이 구지 갈비뼈를 뽑은 외과 수술을 한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모든 인간 존재가 서로에게 속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상호공속된 존재 그래서 연속극 이야기 했지 않아요 내 안에 너 있다 그 이야기여요
 
그러니까 성서의 인간학이야 그것이 그러니까 미란씨와 나와는 무관한 관계가 아니야 그러니까 미란씨와 남편하고만 무관한 관계가 아닌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속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너 없이는 나 없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이야 그런데 너를 부정한다고 하는 것 너의 피를 흘린다고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이지요. 자기를 해하는 것이야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무덤을 달려가는 길이어요. 이것이 잠언이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막지 말아라 막아지지도 않요.
 
18절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19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을 것이나 방탕하게 행하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니라.
 
성실하게 행하는 사람은 악인에게 행할 것으로부터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성실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 내면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아갈 때 이것이 성실함이야
 
우리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일본식 교육을 선생님들이 했습니다. 교복 입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마 입수 보행하지 마 이런 것이 있지 않아요 우리 때는 점퍼 같은 것도 못 입었어요 교복 위에 오로지 교복하나로 겨울 추위를 견디며 가는 것이야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차를 두 번 갈아타야 되는데 차비가 없으니까 한번 갈아 타기 위해서 걷고 또 걷고 그렇게 해서 한 35분 정도를 걸었어 그리고 버스 잠간 타고 내가 한강가에 살았습니다.
 
겨울에 가방을 들고 교복만 입고 한강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 것이야 입수 보행 금지 주머니에 손을 안 넣어 아무도 안 보는데 이런 미련을 떨었는데 원칙주의자 내가 생각해도 답답해 그런데 그렇게 지켜냈던 그것이 어려움이 와도 나를 지켜 주었던 것이어요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살다보니까 남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 나 스스로 내 내면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어요 외부의 어떤 강제에 내 삶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조금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내면에 흔들림이 있는 사람을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을 보고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항상 자기의 삶의 가치를 보편적 가치에 잇대면서 다른 사람이 내게 강제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논리에 따라 살게 될 때 사람은 조금 당당해 지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비굴해 지지 않고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
 
18절 그렇게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질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굽은 길이라고 하는 것은 제 멋대로 기준을 바꾸면서 사는 것이지요 외부에 있는 어떤 가치들이 내 삶을 마음대로 휘 저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삶 이런 것은 결국은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삶이다
 
성실하게 주어져 있는 삶의 자리에서 마치 토지를 겅작하는 사람은 먹을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궁핍함이 많으리라 말하고 있어요
20절 충성된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충성된 사람은 복이 많다 그 충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내면에 질서에 대한 성실함이 충성입니다. 여러분이라는 충(忠)이라고는 글자를 늘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마는 가운데 중(中)자와 마음(心)자가 있지 않아요 마음이 있단 말이어요 내 마음에 중심이 잡혀 있는 상태가 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질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도전 그것은 마음에 내 삶은 충성스러운 삶이 되어요
이것이 어원이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것과 비슷한 글자가 하나 있어요 이렇게 가운데 중자가 두 개 마음 심자가 밑에 있으면 병환(患)이야 환자 마음이 나뉘인 상태이지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가 아니라 마음이 나뉘어 진 상태가 환이야 우리의 삶이 환으로부터 충으로 바뀌어 가야해
 
바울 사도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나는 이전에 좋아하는 것 버렸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를 붙잡고 다른 것은 버렸다
 
빌 3장 7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다 해로 여겼을 뿐이라
 
20절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마음은 부정 부패의 유혹 앞에 취약할 수 밖에 없어 늘 세상과 타협하고 그릇된 일을 행할 수 밖에 없어 그 사람은 수단과 목적을 뒤 바꾸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만큼 살기 어려우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적인 사회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야 일확천금을 해 봤으면 좋겠어 인생에 대박이 나면 좋겠어 인생의 대박은 화가 될 때가 더 많아요 욕망과 충족 사이에 짧을 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경험해 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을 때 행복이 없어요
 
그것이 내가 욕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정말 노력하고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얻어 졌을 때 행복한 것이지 그러니까 욕망과 충족 사이에 거리를 좁히라고 하는 것이 소비사회의 욕구입니다. 진자 행복은 욕망과 충족 사이에 길기만 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지만 예측 가능한 우리 사회는 예측이 없어졌어 내가 이만큼 노력하면 이렇게 될수있어 생각할 때 그 생 자체가 행복한 것이지요
 
옛날에 월세 살던 사람이 전세 옮기고 행복하고 그런 과정이 있지 않아요 부유한 집안의 아이는 부모는 집 하나 사 주고 이런 경우
 
21절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디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2절 악한 눈이 있는 자는 빈궁이 자기에게 임할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낯을 보아준 것이 어떤 것이지요 연줄 사회입니다. 이익의 분배가 패거리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그렇지요 패거리 지키기 문화여요 그러니까 그 패거리 안에서 충성을 다해야 이익이 나지요. 거기에는 라인 만들기 보편적 규범이라는 것이 없어요 이런 사회일수록 후진사회야
 
그래서 우리가 낯을 보아 준다는 것 아 그래도 우리 편이니 우리 동향 사람이니 우리와 같은 동문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성경은 그 이야기를 해 줍니다.
 
한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범법하는 사람도 그렇고 악한 눈이 있는 사람은 재물 얻기만 급하고 사실은 그런 급한 마음속에 빈궁이 사실은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악한 눈이란 보지 못한 눈이어요 자기가 어떤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재앙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못 본단 말이어요
 
부하고자 하는 하나의 마음 그 눈만 가지고 있을 때 다른 것을 보지 못해 그는 패망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해요
 
23절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를 아첨하는 자 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말이어요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퇴임하기 바로 직전에 죠 바이든이라는 부통령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죠 바이든 부통령은 자기와 의견이 다를 때 분명하게 자기의 견해를 밝혀 주었기에 그는 더 나를 더 나은 대통령이 되게 해 주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브라더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형이지요 형 감동이지요 이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사람을 경책하는 것 중요한 것은 경책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야단을 맞을 줄 아는 사람 나는 생각이 달라요 그렇게 하면 안 되어요 하고 말하는 사람을 오바마는 받아드렸어 더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대통령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아요.
 
24절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 하고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25절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26절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옥망이라고 하는 것은 늘 배타적이지요 자기 중심적이지요 그래서 욕망이 승한 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분쟁과 갈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여호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어요 긍휼히 여기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지요 거기에는 화해와 용납과 사랑과 인정이 있지요.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의 삶은 그런 것이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자는 미련한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27절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28절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일어나면 의인이 많아지니라.
 
구제하는 자 그는 눈이 선한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눈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아까 악한 눈은 무엇이지요. 자기 욕망에 치우쳐서 다른 것 보지 못한 것이어요 눈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몰두하였던 그 마음에서 벗어나서 타자들을 볼 수 있게 되어요 선한 눈은 그래서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하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나도록 되어 있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어떻다고요? 여호와께 꾸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잠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지요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못 본체 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저주가 클 것이다 하고 말하는 데 그 저주는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이웃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자기의 내면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저주의 방향성은 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시작과 끝이 반대가 되고 있는데요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진다 그런 것이지요 세상이
 
김수영이라고는 시인 그 시인의 마지막 시가 풀 풀이라는 시여요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서 울다가 울었다 풀이 눕는다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는다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
 
바람이 붑니다 풀이 눕습니다. 그러나 바람 지나고 나면 일어섭니다. 악인들이 세상에서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요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풀처럼 연약한 사람들은 넘어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바람 가는 기미를 알고 몸을 일으키는 것은 풀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풀과 같은 존재들을 사랑하셔요 악인이 득세사는 세상 슬픈 세상입니다. 의인이 득세하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전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출발 고맙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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