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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찌된 일이냐?”
2019년 06월 11일 (화) 15:49:4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생명의 말씀 : 사도행전 2:1-13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행]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2: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행]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행]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2: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행]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
    살다보면 말은 하는데 뜻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경상도 출신의 초등학교 교사가 서울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첫 수업이 시작되어 “연못 속의 작은 생물들”이란 단원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생물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연못 속에 작은 생물들이 억수로 많제, 그제?” 아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억수로’가 무슨 말입니까?” “그것도 모르나? ‘쌔뱃다’는 뜻 아이가?” “선생님, ‘쌔뱃다’는 말은 무슨 뜻인데요?” 선생님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것은 ‘수두룩 빽빽~하다’는 뜻 아이가? 다시 말해서 항~거석 있다는 말이제.”
 
    아이들은 무슨 소린지 더욱 몰라 선생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선생님, ‘수두룩 빽빽’과 ‘항거석’은 무슨 뜻입니까?”
 
    그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는데도 아이들이 이해를 못하자 열이 뻗힌 선생님이 소리쳤답니다. “이 바보들아, 연못 속에 작은 생물들이 천지 빼가리 있다 이 말 아이가! 쪼맨한 못에 생물들이 쌔비릿다카이!”
 
    말은 하는데 알아듣지는 못합니다. 비극이죠. 요즘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지도자는 말하는데 백성은 이해를 못하겠고, 백성은 아우성인데 지도자는 괜찮답니다. 이상하게도 말은 하는 데 서로의 오해만 쌓여갑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 성령 받아야겠더라구요.
 
    2.
    오늘 말씀을 봅시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 날이 이르렀답니다. 뭔가 때가 이르렀다는 의미 아닌가요? 무슨 때일까요?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그 때가 이르렀답니다. 그냥 그렇게 살 수도 있는데, 특별히 성령 받아야 할 때가 있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이르렀답니다.
 
    그 현장을 봅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2가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람과 불!
 
    왜 성령을 바람으로 표현하였을까요? 바람은 형체가 보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역사를 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바람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은 모든 것을 뒤흔들며, 날려 버리며,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람으로 상징되는 이유는 ‘자유함’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무엇에 매여 할 수 없이 찾아오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은 인격체로서, 스스로 당신이 판단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어떤 것에 의해 존재하거나, 어떤 것에 의해 움직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가 40일 금식 기도를 했다고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내 기도에 응답하여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가 전 재산을 헌금했다고 하나님께서 코가 꿰어 나를 찾아와 축복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당신께서 판단하시고 움직이시고, 역사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도 아주 큰 오산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 땅에 임하신 성령님, 그 첫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강한 바람’, 당신께서 불고 싶으신 대로 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했기에 할 수 없이 임하시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이런 자유로움의 대명사인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역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억지로 그 분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면 말입니다.
 
    감동시켜 드리는 길 밖에 없습니다! 믿음생활하며, 하나님의 은총, 복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마음이 움직여 스스로 역사하시도록 그리하십시오.
 
    둘째로,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 하나님은 또한 불로 묘사됩니다. 신4:24의 증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립니다. 소멸시켜 버립니다. 우리의 죄를 태워 버리고, 추악한 과거를 태워 버리고, 더러운 생활을 태워 버립니다.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리고 우리들을 정금같이 만듭니다. 불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온전치 못한 것들, 은밀한 어두운 것들을 태워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세상의 우상들을 태워버리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불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있었다’고 합니다. 이건 뭔가 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뭘까요?
 
    불은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성령의 불은 성도들에게 ‘에너지’입니다. 각 사람에게 하나씩 임하여 있다는 것은 각 사람의 처지에 맞게 하늘의 에너지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왜 이리 신앙생활에 힘이 안 생기는가요? 왜 이리 의욕이 안 생기는가요? 왜 이리 답답하고 무기력해지는가요? ‘영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습니다.
 
    오래 전 그랜져가 우리나라 최고의 승용차로 대접받을 때, 한 세련된 옷차림의 여인이 우이동의 음식점 많은 길에서 멋진 그랜져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멀쩡하던 차가 갑자기 서버렸다며 당황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니 정비사가 달려왔는데, 여기저기 살펴보던 정비사가 그럽내다. “아줌마, 기름이 다 떨어졌어요. 기름 좀 넣고 다니세요.”
 
    아무리 멋진 차요, 성능이 기막힌 차라도 꼼짝도 않는 이유는? 기름이 동이 났습니다. 잘 달리던 차가 길에서 서버렸습니다. 왜?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애들 말로 ‘앵꼬’났습니다.
 
    전에는 그토록 열심이던 이가 주저앉았습니다. 왜? 성령의 기름이 말라버렸습니다. 자꾸 원인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물고 늘어지지만 사실은 그에게 있던 성령의 에너지가 다 된 것입니다. 앵꼬난 것입니다.
 
    집에 가면 짜증이 나고,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게 느껴지고, 때로는 세상이 두려워지고, 몸도 찌푸둥한 게 걱정스럽고, 하는 일들마다 시원찮고, 괜히 사람들이 미워지는 이유는 영의 에너지원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이 골골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듯, ‘네 영이 잘됨 같이 그 후 모든 것이 잘 되는 법’인데 영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도 알지 못하고 자꾸 다른데 시비를 걸고,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모든 삶의 힘, 에너지를 성령 충만함에서 얻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에서, 권력에서 힘을 얻지만, 성도는 아닙니다. 성도에게도 돈이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힘은 우린 거기서 얻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 이른바 은혜 받을 때 힘이 생깁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며 은혜를 받고 힘을 얻어 한 주간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영이 힘들어지는 것, 영이 병드는 것, 영이 시험받는 것, 모두 성령 충만하지 않기에 그런 것입니다. 불과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힘을 얻어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권세를 얻어 이 세상이 만만할 것이며, 담대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이렇게 성령 충만한 성도들, 어떤 역사가 나타나는가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방언이 터졌습니다. 자기들이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 방언은 오늘날의 방언과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날의 방언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못 알아듣는데,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한 방언은 누구나 다 알아듣는, 이해하는 방언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상대방들이 다 알아들었습니다. 이른바 마음이 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 그 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란 무엇인가요? 마음을, 뜻을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정말로 자신의 마음이, 진실이 전해지는가요? 어떨 때는 말을 할수록 오해만 더 쌓여갑니다.
 
    어느 교실에서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 너 왜 필기 안 하고 가만히 있니?” 그러자 아이가 말합니다. “안 보여서요.” 선생님은 안쓰러워서 친절히 물었습니다. “그래? 눈이 몇인데?” 아이가 답합니다. “제 눈은 둘인데요?”
 
    선생님은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네 눈이 얼마냐고?” 이에 이 맹랑한 녀석의 대답, “제 눈은 안 파는데요?” 선생님이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이 녀석아! 니 눈이 얼마나 나쁘냐고?” 이에 아이도 힘주어 말했습니다. “제 눈은 나쁘고 착하고 그런 거 없는데요?”
 
    인간의 마음이 언어보다 복잡해 졌습니다. 예전엔 마음이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그대로 다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마음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언어가 다 표현 못합니다. 그래서 이모티콘이 유행하지 않습니까? 언어가 마음의 그 복잡 미묘한 것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빈다. 상황이 언어보다 더 혼잡해졌습니다. 좀처럼 진실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령 충만할 때, 진심이 전달됩니다. 중요한 대화를 해야 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만나십시오. 그래야 내 진심이 전달됩니다.
 
    말은 그동안 내 의지, 내 생각, 내 뜻대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이 임하고는 그 성령께서 말하게 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증거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의지가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성령의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러자 어떤 역사가 뒤 따르는가요? 방언, 그것도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방언이 터져 나옵니다. 자기 자랑을 쏟아내는 달변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증언의 역사, 방언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된 일이냐?”(2:7-8)
 
    말하는 이들은 갈릴리 사람들이란 사실을 순례자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갈릴리는 사투리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촌놈이라고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동네였습니다. 이들이 비록 성령 받아 방언을 하였지만, 그 방언 자체에도 그 촌스러운 갈릴리 억양이 그대로 드러났고, 이들이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금방 눈치 챘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자들은 그들의 말을 자기들이 다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 무식한 이들이, 외국어를 배운 적도 없는 이들이 어떻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고 있는 건가요? 그래서 모두들 “이 어찌된 일이냐?”하고 놀랍니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갈릴리 촌놈들이 수도 예루살렘에 와서 새 술에 취하여 이상한 소리나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 밑바닥에는 “이 어찌된 일이냐?”하는 놀람이 깔려있습니다.
 
    이 어찌된 일인가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자기 지식, 자기 상식, 자기 재능으로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한정된 자기 세계만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역사를 펼치시도록 한다면, 그 성령 하나님께서 내 예상을 뛰어넘어 멋지게, 권세있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어찌된 일이냐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셨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령 충만한 성도의 삶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4.
    성령강림절,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물론 태초부터 성령님은 성부, 성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성령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여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곤 할 일을 다 하시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또는 성령 받은 이가 범죄하면 실망하시면 그 성령님은 그를 떠나시곤 했습니다. 대표적인가 사울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약속해주셨던 그 보혜사 성령님은 이 땅의 성도들에게 임하시고는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그 보혜사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영원토록 지키시고 붙드시고 강하게 하시는 그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보혜사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시는 첫 장면, 그 현장이 이렇게 묘사된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불의 혀같이! 왜 이렇게 했다고? 설명이 있었지만, 여러분, 오순절 성령 강림의 특징, 독특성은 하나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불의 혀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하시고,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급하고 강하게! 불의 혀같이 넘실대듯이!
 
    어떠한 모습으로 임하셨던지 힘을 느끼게 합니다! 성령이 어찌 바람이겠습니까, 성령님이 어찌 불이겠습니까? 바람 같이, 불같이, 그것도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넘실대는 불의 혀같이, 모두 힘을 느끼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감각으로 힘을 느낄 수 있게!
 
    이 어찌된 일이냐 하는 그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는 한 마디로 힘이 있었습니다. 뭔가 강렬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권세가 있었습니다. 삶이 지치고 현실이 두려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힘이, 파워(power)가 주어지는 현장이었습니다. 이 어찌된 일이냐고 놀랄 정도의 새로운 권세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힘을 받은 이들이 마침내 교회를 세우고, 세계 선교를 이루었습니다!
 
    어릴 적에 부흥회를 가면 가끔 열정적인 부흥사들이 설교하며 또는 통성기도를 시키며 이런 말을 외치곤 했습니다. “성도들이여, 불 받으라! 불로, 불로, 불로!”
 
    나도 그런 심정입니다. 왕중 성도들이여, 불 받으십시오! ‘이 어찌된 일이냐, 내 지성으론 이해 못할 일이다, 내 머리론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내 체질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더라도 성도들이여, 불 받으십시오! 성령의 불 받으십시오!
 
    그래서 그 연약함, 그 체질화된 왜곡됨,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교만함에서 벗어나,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적 강골로 거듭나기를!
 
 
/성령강림주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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