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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53강 26:13-28 게으름과 악한 말
2019년 05월 29일 (수) 12:07:43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부지런한 사람들이 좋지요 게으른 사람은 나빠요? 게으른 사람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럴만한 상황이 있을테니까 하고 말하고 싶어요 그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바쁘다가 아무것도 안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본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게으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게으름이 때때로 덕스럽지 못하므로 나쁜 때도 있는 것이지요 혹시 거미 개미 꿀벌 그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어요?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인이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의 말 가운데 유명한 말이 있어요 아는 것이 힘이다 그랜시스 베이컨이 하는 말이 인간이 어떤 개몽상태에 있게 되면 맹목적 운명에서 벗어나서 자기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 내가 자연이나 잘 알지 못하는 비합리적 힘 이런 것들이 내 삶을 지배할 때가 많은데 그런데 과학적인 정확한 인식을 갖게되면 그것들이 내게 영향을 발휘할 수가 없지요.
 
개몽주의가 말하는 중요한 것이 아는 것이 힘이다입니다. 그랜시스 배아컨이 인간 유형을 세가지 곤충들로 이야기 했지요 거미 개미 꿀벌 거미는 줄 쳐 놓고 누가 와서 걸리기를 기다리고 그러니까 해를 끼치는 존재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항상 남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
 
또 개미는 열심히 일해서 부지런 함의 대명사이지요 그렇게 해서 자기가 행복한 자기 집단이 행복한
꿀벌은 꿀을 열심히 모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실 좀 억울한 감이 있지요 꿀벌이 꿀 모으는 게 사람 좋으라고 모으는 것이 사람 좋으라고 모으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인데 거미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그렇게 지음 받았는데 뭐 그렇게 살도록 오늘의 인식으로 보자면 그렇게 이야기 하기 어렵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런 유형으로 이야기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지요.
 
이어령 선생님은 어떤 말을 했느냐 하면 개미 유형의 인간이 산업 사회의 인간이라고 거미 유형의 인간은 탈산업 사회의 인간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인터넷 네트 그물망에서 연결 될 수 없는 것들이 연결 되면서 부가가치가 창조되지 않아요
 
거미형 인간 그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 가지고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번쩍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천편일률적으로 어떤 사람은 게을러 어떤 사람은 부지런해 이것이 그들의 성패를 가름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심스러워야해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언은 게으름을 악덕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탈산업 사회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노동 집약적인 그런데 열심히 일하는 데 일 안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곤란해지지요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잠언에 등장하고 있는 게으른 자에 대한 교훈은 다양하지요
잠언 6장 6절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 게으른 자들아
어떤 분은 개미라고 하는 사회 조직이 가장 발전된 사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미는 개별적인 개미 하나는 약하지만 개미들이 이룬 집단으로서의 사회는 조직되어 있다 그래서 개미 조직으로부터 배우라고 이야기 하는데 개미에게 배우라 그 이야기는 현대적이기도 합니다.
 
게으른 자들의 밭과 포도원의 이야기가 24장에 등장 했습니다
게으른 자들의 밭은 밭을 메주지 않으니까 잡초가 나고 곡식이 자라나기 어렵다
24장 31절 이야기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26장에 게으른 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게으른 자들이 빗어내는 삶의 이야기 게으른 자가 어떻게 사는지 그의 사회적 행태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13 길에 사자가 있어 나는 그래서 무서워서 못 나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길에 사자가 있어 그 이야기는 자기의 외부 세계를 적대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야 그렇지요
 
자기의 외부 세계를 자기가 머물러 있는 밖의 공간을 적대적 공간으로 그러니까 그것이 근거가 있던 없던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에게 있어서 타자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문제는 무엇이지요 타자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이제 길에 사자가 있어서 못 나간다는 말 속에 담겨진 의미이지요
이 게으른 사람은 어쩌느냐 하면
14절 문짝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돈다
돌쩌기를 돈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역시 어떤 문제이냐 하면 타자와의 관계 맺음에서 물러나고 있어요 항상 자기 주위를 맴돌고 있어요 이런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몽상가입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몽상에 빠져서 지내는 것이지요 자기 침상에서 딩굴 딩굴하면서 게으름 몽상에서 빠져 나오지 않는 것이야 몽상이라는 것은 자기 속에 포부만 키우고 그런 것이야 새로운 세계를 열 능력이 없는 것이 몽상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렇게 지낸다 하고 말합니다.
 
15절 게으른 자는 그의 손을 그릇에 넣거도 입으로 올리기를 싫어하느니라
밥먹기를 싫어한데 먹자고 사는 것인가 사실은 먹는 일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 사람은 밥 먹기도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상태일까요? 생의 의욕이 다 사라진 상태 생의 의욕이 사라졌어 살려고 하는 생의 의욕 상실 이것처럼 비극적인 것이 없지요. 여러분 생의 의욕을 상실했다고 하는 것은 의욕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 하면 어떨 때 우리가 생의 의욕을 잃어 버리느냐 하면 내가 왜 사는지 몰라 이게 사는 것이야 나 같은게 왜 이 세상에 있는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면 생의 의미
 
사람은 의미가 있으면 살 수 있어 그렇지요 프레드린 리체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지 살 수 있다 그러니까 삶의 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 곤고하고 힘겨울 때는 넘어지는 것이야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에 여기에 이야기 하고 손에 그릇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그는 의미가 망가진 것이야 내가 왜 사는 지 그래서 인생이 건강해 지는 것이 언제이냐 하면 제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내가 왜 사는지를 알기 시작할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첫 손에 꼽힌 사람이 아베 피에르라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엠마우스 운동이라는 운동을 했는데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운동을 했어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막 달려오더니 신부님 빨리 좀 와보세요 왜 아무게가 지금 자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 달려갑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자살하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그러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어려웁게 자랐고 고아원에서 자랐고 가정을 이루었는데 자식 놔 놓고 아내는 도망가고 애 키우다가 보니까 범죄를 저질렀고 감옥에 갔다 왔더니 자식들이 흩어지고 나는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 때 우리가 통상적으로 하는 말은 그래도 살아야지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지 않아요 이 분이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죽을 수밖에 없네요 그런데 기왕 죽기로 했으니까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 달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냐 하면 내가 집 없는 사람들 집을 지어주는 데 일손이 필요한데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 사람이 자살을 포기하고 이 아베 피에르를 도와서 엠마우스 운동의 초창기 멤버가 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중에 만약에 신부님이 내게 설교조의 이야기를 했거나 돈 몇 푼을 쥐어 줬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래 그런데 그분이 내게 했던 이야기 나 좀 도와줘 그것이 자기를 살게 했데 내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야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우리가 삶이 망가진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저 사람은 원래 나빠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야 그것을 도와주어야 지혜로와야 돼 나 좀 도와 줘 이것이 다 통하는 것은 아니지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이렇게 중요해요 게으른 자에 대한 4번째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16절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이 사람의 제일 큰 문제는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긴다는 것이어요
 
게으른 사람들 이 사람은 정말로 게으른 사람들은 집중력을 잃어버린 사람인데 스스로 지혜롭게 여긴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큰 영적인 게으름이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늘 이야기 하지만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가르칠 것만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의 특색은 정말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책을 잃다가 게으른 사람의 특색이어요 책을 읽다가도 쭉 읽지 않고 내가 얼마나 읽었나 하고 그러다가 보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꾸벅 꾸벅 졸고 그러다가 어떻게 합니까? 출출하네 먹을 것 찾아가고 먹고 배부르면 책이 안 읽히니까 두리벙 두리벙하고 이게 게으른 사람들의 전형적 증상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을 보면서도 자기가 그 보다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항상 남과 자기를 비교하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에 주위 집중이 흐트려 있는 사람입니다. 이게 게으른 사람입니다.
 
17절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그냥 개도 집에서 길들여진 개 잡는 것은 괜찮은 대 이 때 개는 야생 개입니다. 야생개의 귀를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리지요 당연히 물리지요
 
여기서 간섭한다는 말은 끼어든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분노하다 흥분하다 불타다 그런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을 보면서 괜히 부르르 해 가지고 끼어들고 불붙고 혼자 흥분하고 이런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그 사람이 무엇과 같으냐 하면 야생 개에 귀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말을 자칫 잘못 오해하면 어떤 길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다툼을 보고 모른 척 지나가라고 하는 말로 오인 되어서는 안돼 그렇게 되기 쉽지 않아요 사회적 무관심을 장려하는 말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굉장히 큰 사회적 문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이어요 이것은 이유가 있다고 하데요 2006년인가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것을 보고 한 사람이 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회복이 되었어 그런데 정신이 잃었던 사람이 깨어 보니까 자기를 도와준 사람이 보여 그 사람이 자기 헨드백이나 숨긴줄 알고 고발해 가지고 이 사람이 곤경에 처합니다.
 
이것이 보도가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괜히 누구 도왔다가 내가 어려움을 겪을라 이것이 사회화된 것이야 우리 속담에도 있지 않아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 이것이 사회적 무관심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실지로 중국에서도 벌어진 일이지만 미국에서도 벌어진 일이지요 강도 만난 사람이 사람 살라하고 외치자 주변에 있던 아파트의 불빛이 꺼졌다 모른 척 하는 것 이것은 점점 이런 세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지요 사회적 연대가 느슨해지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홀로 그 어려움을 맞설 수밖에 없는 외톨이가 되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는 나 홀로 두렵다고 한다면 함께 해서 잘 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여기에서는 그런 사회적 실천을 그만 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쓸 대 없이 남들이 잘 할 수 있는대도 끼어 들어가지고 싸우고 싸움을 증폭 시키고 부르르 해서 불끈하고 이런 짓 하지 마라
 
18절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느니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죽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미친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과 동격인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이웃을 속이고 내가 장난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 장난이야 이런 사람이 횃불을 던지고 화살 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 묻지마 범죄가 있지 않아요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누구에게 해소하느냐 하면 자기보다 악한 사람에게 해소하는 것이 묻지마 범죄를 합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배제의 기억 나는 너 같은 녀석 본 적이 없어 왕따 시킨다든지 이런 것 무엇인가 증도되었다든지 또것 마음속에 증오감을 풀수 없다든지 그런 것들이 묻지마 범죄에 매몰리기도 하는데
 
2011년 7월에 여러분 아시다 싶이 노르웨이에서 아주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지요
반 이스람 극우자인 브레딕이라는 사람이 수련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청소년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지요 그래서 77명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폭탄을 던진 것이 아니고 총으로 다 쏘아서 죽였지요
정말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는 북유럽에서 벌어진 사건이 전 세계에 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주기 추도식에서 당시에 렌스 총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에입니다. 단순한 대응은 절대 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증오를 증오로 되갚아 주는 일을 통해서는 이런 증오가 사라질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많은 민주주의 사람을 포용하려고 하는 개방성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 이런 것들이 자라날 때만 사회는 건강해진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남에게 해고지를 하고 남을 고통스럽게 만든 다음에 장난이야 이렇게 말하는 이런 짓들 하면 안 돼
20절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절 숯불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이 이야기는 근거 없이 남을 모략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쟁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중상 모략하는 자입니다. 하여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여러분 막스 피카트라는 사람이 침묵의 소리라는 책에서 이야기 하지요 침묵에 푹 담구었다 꺼낸 말이 아니면 소음이 되기 시작한데 우리의 말이 그래야 되는 데 우리 사회는 말이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표현들이 있어요
 
에스엔 에스 상에서도 너무나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같으면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굉장히 공격적인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점점 위태로와 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니까 남을 중상 모략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이냐 결국 이웃들이 존엄한 인격을 누리며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많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불에 나무를 더하는 사람이요 숯불을 더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쩼던 여기에 보니까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들 그러니까 다툼을 좋아하는 자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자기 속에 화가 많은 사람들이 시비를 일으킵니다.
 
시비를 잘 일으키는 사람이 대게 옳은 사람이 아니라 옳은 사람이 시비를 잘 일으킵니다. 자기 속에 화가 많은 사람인데 이 화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 내면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 그렇게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속에 상처 입은 아이가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화로 표현이 되고 있지요. 화 잘 내는 사람은 언제나 옳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속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고 그 상처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그의 내면속에 겹겹이 쌓여 왔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화 잘 내는 사람이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하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해야 돼 문제라고 생각하고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네 왜 내가 화를 내고 있지 자기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화의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열립니다.
 
마치 너무 번잡스럽고 말 안 듣는 아이들은 카메라로 찍는데요 자기의 모습을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여 주는 것이어요 자기의 모습을 보는 것이야 그러면 애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해 그렇게 하는 것이어요 교육학적으로 실지로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그것을 보면 자기가 객관해 보이기 시작해요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 것이어요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내 내면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를 숨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자기 속에 있는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 붙지 않도록 주의하기 시작할 때 나는 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요 이것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화 잘 내는 사람은 자기 절대 안 봅니다. 항상 남만 보지요.
 
그래서 연습을 해야 돼 내가 화를 내고 있네 내가 화를 낼 일인가 그러면서 자기를 응시할 때 내면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회복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필요해요. 어쩼던 말을 많이 하면 죄 짓게 되어 있어요 화 잘 내는 사람들이 말다툼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성급한 말싸움이 불길을 일으키고 조급한 말다툼이 피를 흘리게 한다 집회서가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인데 말 많은 것이 좋지 않아요
 
집회서 28장 11절 성급한 말 싸움이 불길을 일으키고 조급한 말다눔이 피를 흘리게 한다
그런데 말의 맛이 있어요
22절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별식과 같아서 배속 깊은대로 내려가느니라
왜냐하면 너만 알아 아무게 있잖아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면 안 돼 정말 큰일 나 너에게만 하는 이야기야 아 그 이야기는 머리가 나빠도 기억이 잘 돼 이것이 기억의 신비입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별식과 같아 깊은 대로 들어간데 정말 심리학적으로도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남에 대하여 하는 말이 우리 속에 타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기 쉽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교회에 제 전임자인 담임 목사님이 계신대요 그 목사님이 제게 교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처음 갔을 때 아무 이야기를 안하셨어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고 조심해 이런 이야기 할 법도 한데 일체 안 하셨어요
 
오랜 시간이 흘러서 내가 목사님께 여쭈어 봤습니다. 목사님 그 때 왜 귀띰 안 하셨어요. 목사님이 어떤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자네의 관점이 고정될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의 다른 모습도 있을 수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편견이 그대로 넘겨지면 아름다운 관계 맺을 수 없으니 내가 이야기하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해요. 이것이 훌륭한 분 아닙니까? 저는 마음속으로 정말 존경해요 그런 태도를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23절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이어요 말은 온유한척한데 비수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토기인데 거기에다가 은을 살짝 바른 것이지요 그러니까 메끄러운듯하나 그러나 야비함이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청문회나 국정 조사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저렇지 않은데 어눌하고 바보스럽고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듬거리고 어리숙한체 하고 겸손한 체하고 그러나 자기와 관견된 것은 다 부정합니다. 이게 정확하게 금방 이야기한대로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24절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4절의 원수는 남을 미워하는 자들인데 그들은 거짓으로 남을 꾀는 사람들인데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들을 사람들을 꽤는 것이지요 감은 달다 이설은 무엇인가 이롭다할 때 이자이니까 그러니까 내게 듣기 좋고 담콤하고 내게 이익을 될 것 같은 말이 감언이설이지요
 
감언이설은 언제나 우리를 해쳐요 그런 말들 아첨하는 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유리한 말 내게 이익이 되는 말을 할 때는 늘 생각해야 하는게 저 말이 나를 채치는 비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러분 남산에 올라가 보면 남산 입구에 남산 타워 밑에 보면 안중근 의사의 상이 서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말이 써있느냐9 하면 견이사의(見利思義) 견 본견(見)자 이익을 보거든 사의(思義) 의를 생각하여라 견위수명(見危授命) 위태로운 지경을 만나거든 목숨을 바쳐라 그렇게 써 있습니다. 이게 안중근 의사가 자기의 좌우명으로 삼은 말입니다.
 
항상 사람들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 때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 생각을 해요
감언이설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아라 그 마음에 7가지 가증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가 마음에 품고있는 미움은 회중 앞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이 말쟁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레미야 9장 5절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거짓말 하는 데 길 드려지는 혀 서로 속고 속인 가운데 기만 가운데 사는 사람들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6절 네가 사는 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속이는 말하는 사람들의 특색은 여호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급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어요 예레미야 9장 5절과 6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27절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8절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한 자의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하신 운명입니다. 악인은 스스로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적을 죽이기 위해 돌을 굴리다가 스스로 치어 죽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지요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 돌을 굴렸는데 그 돌에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그 돌이 자기에게 굴러옵니다. 이런 바보짓들이 있는 것이지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하는 그 일은 사실은 자기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를 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자기 발도 적실 수밖에 없어 그렇지요. 누군가에게 오물을 뒤집어 쓰기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오물이 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게 인생의 비밀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거짓말 하는 자는 그냥 거짓말만 하는 대 그치지 않아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한다 하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그것은 이유가 분명합니다. 죄가 확대되고 있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데 피해자의 존재 자체가 내게 언제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내가 거짓말을 함으로 상훈씨에게 상훈씨가 피해를 입었는데 나는 알고 있어요 내 마음속에 그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때문에 어쩌고 싶느냐 하면 그의 존재를 말살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 이것이 죄의 확대 과정이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요 이것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니라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첨하는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될 것은 아첨을 왜 할까요? 나에게 무엇인가 저 사람이 보상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아첨을 하는 것이지요
 
경제적 이익을 준다든지 어떤 지위를 보장해 준다든지 그럴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아첨을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아첨하는 사람들의 특색은 무엇이냐 하면 그 이해관계가 해소되면 더 이상 그 관계에 충실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이익이 주어진 방법으로 틀 수 있다 그 이야기이지요.
 
정말로 믿음직 한 사람은 이익을 주던지 주지 않던지 손바닥 뒤집듯이 관계를 청산하지 않은 사람 그러나 어쩼던 거짓말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아첨함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파탄을 시키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살맛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에 대한 교훈이 거듭 거듭 나오고 있는데 아까 마스트 가르트 이야기 기억이 나지요. 침목을 거치지 않은 말은 소음에 불과하다 이야기 했는데 저는 그것은 침묵속에 푹 담구었다가 꺼내지 않은 말은 누군가를 해치는 말이 되기 쉽다 이것을 생각하고 항상 우리가 게으른 사람들의 특색 항상 나의 외부세계는 나의 적대적이야 생각한다든지 내가 몽상에 빠졌다든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 내가 누군가를 스스로를 선물로 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이 사람다운 때는 언제인가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응답할 줄 알 때 사람다운 것이야 이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야 나는 누군가에게 응답하고 나를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선물이 되어서 살면 좋겠어요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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