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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49강 24:19-34 악한 세상에 길들여 지지 말라
2019년 05월 01일 (수) 06:24:41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시인 정현정 선생님이 방문자라는 시 가운데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 어마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온 것은 어마 어마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으로 산다고 하는것은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삶이어야 하는데 마음은 있는데 잘 안 되거든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 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이런 것들을 통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나는 더 많다고 믿어요 착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도드라지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악인이 더 많은 것 처럼 보여요 똑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확신인데
 
19절 너는 행악자들 분을 품지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하지말라
20절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들의 등불은 꺼지리라
 
악인들이 횡행하는 세태를 보면 참 속상하지요 세상에 희망이 있나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에덴동산 이후에 시간적 정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는 불안입니다. 늘 불안해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유한함 존재이기 때문에 유한함 속에 불안함이 있어요 내가 절대자라고 한다면 불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불안함은 우리의 운명이어요 그 불안함을 내 운명으로 받아 드리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이런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존재의 용기입니다.
 
그러니까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져 있는 생의 조건을 내 삶으로 수용하고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발전할지 이런 노력을 할 수 있는 내적 힘 이것이 용기여요
 
우리가 믿음을 갖는다고 하는 저런 용기를 내 속에 모셔 드리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 데 저런 용기를 애써 살기는 하는데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 모습 나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풀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분노의 감정이 생기게 되고 또 그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냉소하는 마음도 우리 속에 생겨요
 
세상은 본래 그래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아 이런 냉소와 절망감이 우리 속에 내면화 되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냉소하고 분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야 저 사람들 정말 능력자야 세상이 정말 악한데 저 사람들 능력자야 나도 저렇게 되어 봤으면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지요 이게 무서운 것이야 이것이 길들여지는 것이야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의 초점을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지요 하늘에 나의 삶을 늘 소급하며 사는 사람들이지요 하늘이라는 기준에 맞추어서 내 삶을 조율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런 삶이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삶의 지향이 분명하면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든지 나는 이렇게 살 것이야 생의 지향이 분명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 없지요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당장은 어두움이 빛을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날 거위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주인이 거위 한 마리를 떼어가지고 별도의 공간에 좋은 조건 속에 놔두고 먹이를 많이 주는 것이야 그러니까 다른 거위들이 아니 저만 왜 특권을 누리는 것이야 우리는 적게 먹는데 저 애는 많이 먹는 것이야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쪽 거위가 살이 통통하게 찌는 것이야 부러웠어요 이 거위들이 그런데 추수 감사절이 다가 왔어요
 
그러자 주인이 어떤 거위를 잡을까요? 살찐 거위를 그러니까 무엇인가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사실은 추수 감사절을 위하여 예비된 제물이었던 것이지요 악인들이 그런 것이어요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호의호식하고 자기 스스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자의 운명이 살진 거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이것을 분명히 알고 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형통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다시 이야기하면 안달하지 말아라 우리는 안달해요 속을 태우며 살아요 다 속 병이거든 그의 행운이 나의 행운이 아닌 것이 속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내 몫의 삶 이 정도면 되었어 하며 누리며 살면 됩니다. 이 이야기가 자칫하면 오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그냥 만족하고 살아 현상 질서에 만족해 이런 이야기 아닙니다. 세상이 힘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힘없는 사람들이 속절없이 착취당하고 억압을 당할 때 세상은 원래 그래 나라도 바로 서야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믿음의 삶이 아니어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고통 받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을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하지요 우리는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서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노하지 않는 믿음 곤란한 믿음이지요 분노한다고 해서 누구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이웃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는 불의한 현실이 있을 때 거기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참다운 믿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그 이야기입니다.
 
시편 37편 1절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라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기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과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다
 
불의한 사람 때문에 시기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요
시편 37절 2절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이라
악인의 형통 부러워 할 것이 없어요 아까 무엇이라고요 추수 감사절을 위하여 예비된 거위야 악은 그렇게 번성하지만 부러워하지 말아라 나는 단단하게 내 길 간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21절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의 사귀지 말라
22절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경외 경외해야할 대상이 여호와 그 다음에 왕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십니다. 대게 여기에서 여호와로 표현되어 있는 하나님은 역사속에서 개입하셔서 고통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뜻해요 여호와와 왕을 나란히 놓은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께서 왕을 통하여 당신의 통치를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경외하라 이야기를 했어요 존경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신앙에서 한국 교회의 신앙에서 가장 사라진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나쁜 짓을 하면서도 경외해야 합니다.
 
이 왕이 여호와와 나란히 이야기되고 있는데 이 왕이라고 하는 존재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통치를 지상에서 대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지요 아까 이야기한대로 이야기 하자면 하나님은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어요 억압 받은 생명들 일으켜 세우고 그들이 살 권리를 회복 시켜주어요
 
그래서 결국은 무엇을 만드느냐 하면 샬롬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요.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요 이것이 여호와가 꿈꾸고 있는 세상의 모습니다. 그러면 왕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그 지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풍부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기 펴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를 좀 북 돋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힘이 좋다고 다른 사람 억압하는 사람들의 억압하는 빼앗기도 해야 합니다. 거꾸로 하면 안 되지요. 왕이 하는 일을 바닥에 있는 사람들 무시하고 이 사람들만 자꾸 키워 주면 왕은 여호와의 통치를 거역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왕은 경외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반역자와 사귀지 말아라 하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반역자는 변절자 혹은 변덕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데 그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정당한 통치를 받아 드릴 수 없는 사람이어요 여기에 이야기 하는 반역자입니다.
 
정당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단 말이지요.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누규(陋規) 청규(淸規) 누(陋)자 뒷골목이어요 누규인데 세상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어 누규(陋規)도 있고 청규(淸規)도 있어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웃 사랑해 보편적인 규칙들 도둑질 하면 안 돼 누군가를 존중하며 살아야 해 이것이 청규에 속해요
 
이 누규는 뒷골목과 관련이 되는 데 어떤 것이냐 하면 도둑질해도 쌀독이 빈 집에서 하면 안 돼 이것이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일을 가르켜 준다면 이것은 인간의 저작거리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그나마도 지켜야 할 것을 이야기 하지요
 
의리도 두 가지 의리가 있어요 정말 의를 위해 연대하는 것 우두머리를 지켜내는 것 그 사람이 불의한대도 불구하고 불의한 이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이 여기에 따라서 이야기 하자만 누의(陋義)라고 할까 그런 것이 있어 우리 기독교인이 지향하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것 청규(淸規)입니다.
 
변절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냐 정당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22절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된답니까? 재앙이 속히 임한다
정당한 규칙을 외면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오도록 되어 있다
 
23절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이것은 새로운 표제로 시작이 되고 있지요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앞에서 우리는 22장 22절 24장 22절까지 30개의 교훈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러니까 30개의 교훈이 끝난 다음에 이제 23절이 시작이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30개의 잠언 말고 또 다른 새로운 잠언이 시작되는 잠언이 시작이 되는 단락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어요
 
어떤 말로 시작이 되는가 하면
23절 재판할 때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절 악인에게 옳다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25절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절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재판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낯을 보아 준다는 말은 얼굴을 보아가면서 그 사람의 얼굴을 봐서 나하고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게 문제이지요 우리가 그리스에서 정의의 여신을 보면 눈을 가린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디케(Dike)를 보면 한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리고 있어요 왜냐 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본다고 하는 것은 나와 친소 관계에 따라서 나의 눈이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를 본다는 것은 친소에 따라 법에 따라서 엄정하게 집행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는 공의입니다. 공의가 홰손되면 안 되어요 무너지면 안 되어요
그런데 우리의 역사속에 보면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법을 제정하기도 하고 또 늘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람들도 늘 똑 같은 규칙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고 법을 정당히 구부려서 자기가 잘 아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적용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한 사회를 불신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요 옛날에 여러분 인질극을 벌이는 이들이 한 말이 있지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그렇게 이야기 했지요 그런데 그들의 범죄를 정당화 할 수는 없지요 그런 말들이 그러나 그 말이 일말에 진실이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어요
 
힘 있는 사람은 죄가 있어도 죄 없는 사람처럼 되고 힘없는 사람은 배가 고파서 빵 하나 훔쳤는데 그것 때문에 감옥 가야 되고 법이 공정하게 재판되지 않을 때 세상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악인을 옳다 하는 것이야 법을 왜곡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운명이 어떻다고 합니까?
 
공의를 왜곡하는 사람의 운명이 마찬가지입니다.
24절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백성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법을 왜곡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왜 왜곡할까요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 출세에 대한 욕망 힘있는 자들과 합일화 하는 것이 출세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또 하나는 뇌물과도 관련이 있지요 재판을 굽게 만들 수 있지요 뇌물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이들은 백성들과 민족들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다
 
25절 악한 것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기쁨과 좋은 복을 받을 것이다
26절 저주와 미움이 대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당한 말로 대답하는 입맞춤과 같으니라
적절한 말은 시의 적절한 말이지요 올바른 법적 판단은 우정의 입맞춤과 같다 하는 그런 말인데 그리스의 철학가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BC 384-BC322) 고대 그리스 철학자
고대에 있어서 최대의 학문적 쳬계를 세웠으며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비롯하려 윤리학 형이상학 시학 정치학등 후에시 여러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분이 쓴 책 가운데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인들의 이상이 있는 데 어떤 이상이냐 하면 탁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어요 어떤 분야에서든지 그들이 생각하는 탁월함이라는 것은 아레테(arete)라고 이야기 하는데 탁월함입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림을 정말 잘 그리면 탁월한 것이지요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하는데 아주 잘하면 탁월한 것이지요. 마치 공부라고 하는 게 중국말로 쿵후라고 읽는데 쿵후는 우리가 늘 떠 오른 것이 무엇이어요 중국 무술이지요 중국 무술하는 것을 보면 물 흐르듯 아름답습니다. 그것을 보면 사람들이 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울 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공부가 됐네 그런 것이어요
 
저 사람 공부가 되었네 이것이 공부입니다. 공부한다는 게 그런 것이어요 탁월한 존재가 되어야 돼 그런데 어떤 탁월한 존재가 되느냐 하면 사람이 절제 용기 온화함 이런 사람이 탁월한 존재야 어땋게 해야 절제를 가지고 있고 용기를 가지고 있고 온화함을 내 세울 수 있는가 그가 내 세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중용(中庸)이라고 해
 
사서삼경에도 중용이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이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고 번역어가 중용인데 그러니까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 그러니까 적당히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예를 들어서 지금 여기에 빵이 두 개 밖에 없는데 네 사람이야 여기에 페널들이 다 배가 고파요 그러면 빵을 반씩 나누어 먹는 데 어중간한 중간이지요
 
그런데 미은씨가 이틀을 굶었어 상훈씨는 오늘 아침에도 삼겹살을 먹고 나왔어 빵을 나눌 때 중용의 길로 간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1/4로 탁 나누어서 먹는 게 중용이 아니라 배고픈 미은씨가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상훈씨가 내 몫은 없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중용이야 어중간한 중간이 아니라 경우에 맞는 균형 이런 것들이지요. 이것이 넘치지도 않는 것이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게 시의 적절한 말이라는 것은 어떤 말은 굉장히 좋은 말이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어 때에 적절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말 사람들에게 굉장히 좋은 말이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지요
 
26절 그것을 입맞춤과 같다 입맞춤 달콤하지요
27절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이 말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새 번역은 이 대목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바깥일을 다 해놓고 네 밭일을 다 살핀 다음에 네 가정을 세우라 그럽니다.
 
우리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에 써있지 않아요 함께 가야 하는 데 작은 일부터 충실하라 이것이 대학에 나오는 팔조목 가운데 일부인데 어쩼던 여기는 정 반대의 이야기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아주 현실적인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어요. 가정을 이루기 전에 네가 생활기반을 닦아 놓아야 그 가정이 온전히 설 것 아니냐 그런 말이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이 시대에 조금 좀 힘들어요 왜 힘드냐 하면 젊은이들이 요즈음 3포 시대니 5포 시대니 엔포 시대니 그런 말 하지 않아요
 
왜냐 하면 어렵게 대학에 들어 갔어요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야 걱정이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학자금 대출받고 아르바이트 하고 근근히 지나가는데 대학의 문을 나오는 순간 빚쟁이입니다. 갚아야 할 빚이 있지요 취직도 잘 안돼 어려움을 겪어요 그래서 연애 결혼 출산 집장만 인간관계 이런 것들을 포기하며 살 수 없는 상황 이런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슬픔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이 우리 때도 그랬어 젊은 놈들이 그래 그러면 젊은 친구들은 재수 없다고 그래요 왜냐하면 각 시대마다 자기 시대의 고통과 아픔이 있어 그것은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들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사는게 훨씬 어려워 졌어요 답답해 지고 물질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인생의 목표 정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내가 제일 안타까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젊은이들 힘든 것은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힘들다고 하는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것이야 단일한 목표가 있는 것이야 내가 이런 목표를 향해 행복이라는 것이 여기에 있는데 행복으로 가는 길이 하나야 왜냐하면 돈 많이 벌고 그리고 출세해야 되는 것이야 출세 돈 이것이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를 제가 분석해 보여 드릴 시간은 없지만 사실은 돈이 있고 출세하면 잘 나갑니다. 행복에 접근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행복에 접근하는 길이 이 길만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무엇이냐 나는 돈이 없어 그런데 나는 행복해 이렇게 말해요
 
가끔 외국에 가난한 나라의 여행지에 찾아가서 그 여행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 자들이 그물을 던졌는데 아무 것도 안 잡힌 것이야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괜찮아요 내일은 또 잡을 수 있겠지요 그냥 이 생활에 만족합니다.
 
행복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것만이 행복의 길이라고 세상은 우리를 속이고 있단 말이어요 그래서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해 다른 삶이 가능해 나는 돈 많이 벌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풀들 꽃들 바라보는 것이 내 인생의 행복이야
 
호텔에 가서 진수성찬 못 먹지만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형님 목사님이 있는데 그 목사님은 사모님과 더불어서 무엇을 잡숩고 사느냐 하면 풀 뜯어 가지고 드시는데 잡초 잡초 레시피라는 책도 썼습니다. 집 옆에 돋아나는 잡초 뜯어다가 그것 맛있게 먹고 인생 사는 것입니다. 돈 많이 없지만 행복합니다.
 
그러니까 삶을 구성하는 행복을 구성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상상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어요 이게 정말 현실적으로 이런 교훈이 맞이요 잘 살 수 있는 준비 다 되어서 직업도 가져야 하고 집도 장만하고 이런 다음에 결혼해 이것이 현실적이지만 이 구절은 이것도 일리는 있으나 우리는 다른 삶을 상상하는 능력이 우리 속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28절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처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절 너는 그가 행함 같이 행하여 그가 행한대로 그 사람에게 갑겠다 말하지 말라
까닭 없이 이웃을 해치는 증인이 되지 말라 왜곡된 재판장 이야기 들었지요. 지금은 거짓된 증인입니다. 성급한 증인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을 갖기 위해서 사적인 복수심 때문에 내가 증인이 되겠습니다해서 거짓 증인함으로 그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일을 경계하는 일입니다. 그가 내가 준만큼 나도 되갚아 주겠다는 그 마음에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세상을 폭력의 악순환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그래서 바울 사도도 악에게 지지말고 악을 이기라 말하지요
30절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게으른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절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32절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나
33절 내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하니
34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2절에서 술군의 참상이야기 보았지요 술 먹으면 어질 어질 하고 배에 누운 것 같고 이런 이야기 나오지요. 포도주의 빛깔이 아름답다고 나오는데 지금은 무엇이냐 하면 게으른 사람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밭 어떨까요 잡풀들이 우거지고 목장 밭처럼 변하고 있고 거친 덤풀이 덮이고 풀이 덮이고 돌담이 무너지고 그런 것이어요
 
손가락 까닥 하나 싫어하는 사람 인생 별것 있어 그런 태도로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지요
재미나는 것은 우리가 쌀 쌀을 뜻하는 한자어는 무엇이지요 미(米) 미는 어떻게 써요 여덟팔 여닯팔 열십자가 있지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쌀 한 톨이 우리에게 들어오기 까지 농부는 88번을 허리를 굽혀서 돌봐 주어야 된다는 것이야 쌀 미자는 그런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쌀 한 톨이 내 입에 들어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가 있었는가 이것이 위대한 일이어요 그래서 쌀 한 톨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야 세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도 그럽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돌까지도 부식돼 사람의 사는 집은 퇴락한 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집에서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집은 금방 폐허로 변합니다 패가가 을씨는 스럽지요 밭만 그런 것이 아닙니 다 무엇도 그러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도 그럽니다. 내 마음을 내가 자꾸 살피고 내 마음에 돋아나는 잡풀들을 돋아 내고 내 마음속에 가시들을 돋아 내지 않으면 내 마음은 금방 을씨년스럽게 변합니다. 을씨년스러운 그곳에 사는 것은 나쁜 것들이 깃들일 수 있지요 악마와 같은 것들이 우리의 마음 지배할 수 있는 것이어요
 
언제나 밭도 잘 살펴야 하지만 우리가 마음 밭도 있지요 그 마음밭을 잘 살펴서 부지런하게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밭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만 근면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내면을 잘 살피라는 교훈으로 받아 드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게으른 사람은 언제나 그럽니다.
33절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누어 있자
34절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이 교훈을 나는 보았다 생각이 깊었다 훈계를 받았다 그렇게 말합니다. 항상 내 존재가 새로워진 것은 무엇인가 유심히 볼 때야 그리고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야 그 속에서 내 인생의 도움을 찾아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게으름이 좋은 때도 있습니다. 게으름이 때때로 창조력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 동화가 있어요 레오니오리라고 하는 사람의 프레드릭이라는 그림 동화입니다. 헛간이 있고 그 돌담이 있는데 돌담 사이에 살고 있는 생쥐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 열심히 낱알들을 모읍니다.
 
그런데 프레드린은 일을 안 해 가만히 있어요 그러니까 이야기 해요 프레드릭 너는 일을 하지 않고 무엇하는 것이야 나는 겨울을 대비해서 햇쌀을 모으는 것이야 쥐들이 열심히 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멍하니 있어 프레드릭 너 무엇하는 것이야 겨울을 대비해서 색깔을 모으는 것이야 겨울이 다가오는 대도 프레드릭이 멍하니 졸고 있는 것 처럼 프레드릭 너 주는 것이지 아니야 겨울을 대비해서 이야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야
 
겨울이 왔어 다 추위에서 떨고 있는 데 프레드릭 이야기 해봐 프레드릭이 이야기 하니까 햇살이 느껴지고 프레드릭이 봄 이야기를 하자 색깔들이 싹 드러나고 프레드릭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세상이 따사롭게 변합니다. 생쥐가 이야기 합니다. 프레드릭 너는 시인이야 프레드릭이 이야기 합니다. 나도 알아 아주 아름다운 동화이지요
 
저는 이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이런 게으름도 있어요 때때로 이런 게으른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은 근사해 집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목장밭으로 변하도록 내 버려두어서는 안 되어요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악에 길들여져서 적당히 악하고 더불어 사는 일은 막아야 하고 악인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이야기한대로 추수 감사절을 위해 살찌어 지는 거위의 운명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단단하게 내게 주어져 있는 인생의 길 빛의 사역자로 뚜벅 뚜벅 나아갑시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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