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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9강 14:19-35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2018년 12월 04일 (화) 15:24:56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잠언 14장 19절부터 마지막절까지 공부하겠습니다.
19절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니라 하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사실 이 19절은 18절하고 서로 상관되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8절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는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 19절은 이것을 변주하고 있어요 조금 바꾼 내용입니다.
 
선인과 의인의 문에 엎드리는 악인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엎드린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경우이지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1) 하나는 누군가에 경외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엎드림이 있다
엎드릴 줄 모르면 참 사람이 되기가 어려워요 고개가 뻣뻣해서 엎드릴 줄 모른 사람들은 가련한 사람들이지요
 
우리가 불의한 부당한 권력 앞에서는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그러나 나보다 큰 권위앞에서는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릴 수 있을 때 나의 존재는 커지지요 엎드림은 인간적 자세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엎드림이 굴욕이기도 하지요 내가 힘이 없어가지고 전쟁에 패해서 승리한 장군에게 엎드린다든지 이런 것들은 비참한 일이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악인이 선인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엎드리는 것이 인간적 자세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큰 권위앞에 엎드려야 하지만 직립하여 서 있을 때입니다. 누군가의 헛된 권위에 그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하지요
 
프랑스의 조각가 자코메티는 직립한 인간이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언제나 곳곳하게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 하거든요 그러니까 직립하여 있다고 하는 것은 어떤 권위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립적인 인간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이야기 하면 독립적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큰 권위 앞에 엎드릴 수 있을 때 만이 독립적이 될 수 있어요 신앙적으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야 부당한 세상에서 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할수 있어요
 
어떻던 악인들의 운명은 선인 앞에 엎드려 진다 이것이 19절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지요 특별히 여기에서 의인의 문이라고 하는 것은 불의한 자가 의인의 문 앞에 엎드린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고대 세계에서 재판제도가 그렇게 확립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재판을 송사의 문제가 있을 때 어디에 가느냐 하면 성문 앞에 가거든요
 
성문앞에 가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들 모아요 그래서 이 사람과 나 사이에 이런 갈등이 있습니다. 해결해 주세요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듣고 판정을 받는 것이어요 성문이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이 소통하는 통로이지요
 
그러니까 그것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의인의 문이라고 하는 것은 재판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악인들은 언제나 의인들의 문앞에서 엎드려 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운명을 이야기 해 주고 있지요.
 
20절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하고 말합니다. 슬픈 일이지요. 가난한 자가 이웃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이것은 그 시대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 권고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지요 그 당시에 세태가 이러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왜 부담스러울까요? 내가 저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있지요 그러니까 인간속에는 그러한 양심 같은 것들이 있어요
 
양심을 독일말로 게비센 Gewissen 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함께 게Ge + 알다 비센wissen 게비센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 내 양심 따로 있지 않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어요
 
동양에서는 그런 마음을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때 그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 그렇게 말합니다. 불쌍히 여겨 돕고 싶은 마음 물가에 가고 있는 아이를 보면 사람들이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없이 달려가지요 이런 것들을 측은지심이라고 하지요. 사람들 속에 보편적으로 아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어려운 사람을 보면 사람의 양심은 내가 도와야지 도덕적 채무의식을 우리 속에 불러일으킵니다. 현실은 어떻느냐 하면 그 도덕적 의식을 애써 누르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갈등을 피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외면하는 것이어요 그냥 외면하는 순간 등을 돌리는 순간 그는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투명인간 취급합니다. 마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대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세태여요 가난한 사람이 미움을 받게 된다 가난이 죄가 아닌 대도 그런 것이어요.
그런데 거꾸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합니까?
20절 부유한 자 곁에는 늘 친구가 많다 합니다. 이것도 세태입니다. 부유한 사람 곁에는 친구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세태가 제대로 된 세태는 아니지요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자기의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적선을 하고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 했어 내가 봐도 착해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떤 구걸하는 사람이라든지 이런 분들에게 무엇을 주고 나서 양심의 자유함을 누려요 나는 그래도 꽤 좋은 일을 했어 그렇게 말한단 말이어요 그것은 여러분 우리가 할 도리를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잘 했어요 그렇게 안 하는 것 보다 하는 게 좋아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내가 자그마한 적선을 하고 내 할 도리를 다 했다고하는 순간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의 문제는 영속한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지금 가난한 사람을 보고 너 게을러서 그래 너 노력 안해서 그렇지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지요
 
어떤 사람들은 노력 안 하는 대도 부모 잘 만났어 부모 잘 만난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뗐던 일 안해도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오죽하면 누구는 흙 수저를 물고 나오고 누구는 금 수저를 물고 나오고 이렇게 말하는데 더 참혹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흙수저조차 없는 사람조차 많다 손으로 음식 먹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요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고 게을러서 그렇다는 등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는 등 이렇게 이야기 하면 현실을 오도하는 것이야 물론 능력이 있는대도 안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들은 꾸짖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싸잡아 가지고 그들의 문제로 환원 시켜버리는 것은 폭력이어요
그래서 우리가 봐야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꾸만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저 사람들을 가난으로 내 몬다고 한다면 내가 그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돈 한푼 쥐어주고 할 일 다했다가 아니라 그들이 노력하며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기에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보는 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책임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1절에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우리의 신앙의 진실함을 입증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어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입성이 허름하다든지 얼굴빛이 노동으로 이렇게 검게 그을러 있다든지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무시해도 될 것처럼 여긴다면 그 사람들은 자기가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해도 내가 진리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어요
 
그런데 내가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하지는 않았다 해도 갑자기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가엽이 여기는 마음도 들고 무조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그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아껴준 마음이 내 속에서 생겨났다면 내가 성경을 열 번을 읽지 못하였다 해도 그는 기독교와 이야기 하고 있는 영성의 본질에 가까이 갔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헌금 생활을 얼마나 잘 하느냐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 이것도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그의 믿음이 진실한지 여부를 가리는 판단의 기준은 내가 사람들을 대한 방식이어요
 
그래서 낯모르는 사람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아내고 내가 그 사람 속에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면 어떻게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겠어요 무시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요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경이 하는 이야기가 그러니까 이웃 없이 여기는 것은 곧 죄야 없이 여김 그 자체가 그런데 반대로 빈곤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복이 있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아 참 안 되었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픔을 깊은 공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어요 그렇지요. 깊은 공감으로 바라보는 순간 공감이 일어나는 순간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그런 척도로 한번 제어 보세요 어떤 분은 성경 박사야 성경을 모르는 것이 없어요 신학책도 많이 읽어 가지고 신학 지식이 풍부해요 늘 그렇지 못한 사람을 무시해요 그러면 그 믿음은 잘 못된 믿음입니다.
 
그런데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그리고 신학에 대한 지식도 없는데 왠지 사람들을 아끼기 시작하고 그러면 바른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어요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척도가 되어야 해요
 
22절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22절에 반복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지요 도모하다 그런 단어가 있지요. 도모하는 것은 어떤 것을 시도하는 것이지만 원래 원문속에서는 농사에서 나온 은유입니다. 밭을 갈다는 뜻과 관련이 되어요 이것은 밭을 가는 까닭은 무엇이어요 씨 뿌리기 위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악을 도모한다는 것은 밭을 갈고 악을 뿌리는 것이어요
 
그런 사람은 잘못 사는 것이지요 똑 같은 노동을 하고 있는데 악을 밭갈고 악을 씨 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밭을 갈고 선을 씨앗으로 뿌리는 사람도 있지요 선을 씨앗으로 뿌리는 사람이 거두게 될 열매는 인자와 진리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을 뿌리고 산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을 대할 때 인자함으로 대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 진리를 거두게 된다고 이야기 했는데 진리(眞理)는 상당히 이치라는 뜻이 들어 있기에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진리하고 말할 때 이 이치가 참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지는 그냥 놔두고 리 대신에 이것은 전부 어떤 열매이냐 하면 진실(眞實) 열매 실자 그 다음에 진정(眞情)
 
그러니까 여러분 선을 뿌리는 사람 선을 도모하는 사람이 거두는 인생의 열매는 무엇이냐 하면 아까 이야기한대로 인자함이라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진리인데 진리라는 것은 그 에메트라고 하는 것이지요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그 단어에서 아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데 그런데 결국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진정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진정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말이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진정성을 느껴져야 해요 선을 도모하는 사람만이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느끼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은 정말 진실한 사람이야 그 말을 듣는 것이야
 
요 8장 32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말이 나옵니다.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자유 진리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데 그런데 진리라는 말이 조금 어려워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느냐 하면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타자를 진정성 있게 대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된다 그렇게 바꾸어서 설명을 해 보는 것도 우리가 해 봄직도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설득의 세 요소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누군가를 설들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요소가 필요해요
 
(1)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로고스 logos라고 말하는데
내 말을 합리적으로 누구엔가 전달할 수 잇는 내용이다고 보면 되어요
내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되지요
 
(2) 이 로고스(logos)도 평이하게 전달하면 사람들에게 잘 안 가요
나의 말이 정규씨의 가슴에 탁 쳐서 정규씨가 무엇을 하도록 하는 그 능력을 파토스 (pathos)라고 한단 말이어요 파토스(pathos) 그래서 우리 속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이지요 이게 설득에 중요하지요
(3)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에토스(Ethos)라고 이야기 하는 데 여기에서 에틱스 윤리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데 에토스(Ethos)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신뢰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야 오늘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어야 그 말이 신빙성이 있게 들리는 것이지요 이게 에토스여요
 
합리적 내용 (logos) 청중을 감동 시키는 힘 (pathos) 화자의 신뢰성 (Ethos)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설득의 3요소라는 것이어요 여러분도 말할 때 이 세가지가 함께 있어야 돼 제일 중요한 것이 어떤 사람이 진정성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에토스(Ethos)가 있다고 느껴져요
23절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리라
모든 수고는 수고라는 것이 무엇이지요 고통을 받아 드리는 것이 수고인데 우리 말 인사 가운데 우리가 수고하세요 그 말이 적절한 말이 아니어요 남에게 고통스러워 하라고 저 먼저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런다든지 인사말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우리는 서로 배려한다고 수고하세요 하는데 가만히 보면 페인이야 고통 좀 받아 여하튼 수고라고 하는 것이 육체적 노욕이 들어가는 것이어요
 
육체적으로 노욕을 하는 사람들은 이익이 있어 무엇인가 얻게 됩니다. 거기에 대조되는 것은 입술을 놀리는 것도 수고롭기도 하나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헛된 말을 지어내는 것 땀 흘리는 것은 싫고 헛된 말 자꾸 지어내는 사람들은 결국 궁핍할 수밖에 없다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근거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창 1장 28절 이 동산에 있는 모든 것들 을 잘 다스리라 그랬거든요.
 
일하는 말이지요 하나니이 동산에 있는 모든 것과 말해라 안 했어요 말보다 우선인 게 일이어요 책임 그 이야기같아요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다 그러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다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남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좀 어려운 일을 골라서 자기가 해 내는 사람이 있어요 언제나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일을 돈 들여 가지고 사람 사서 하지 하지 우리 고생해서 되느냐 말을 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할까 각자 판단 답은 우리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쩼던 그래요.
 
24절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미련한 것이니라하고 말하는데
 
지혜롭기도 하고 재물이 있으면 그 사람은 명예스럽게 사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 가운데 하나가 재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재물을 가지고 있는데 지혜롭기도 하다 이것은 금상첨화이지요.
 
미련한 사람에게 소유가 많은 것은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해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재물이 많기 때문에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요.
 
25절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법정 상황이지요
 
2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하고 말합니다.
견고한 의뢰가 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그를 지켜 내는 방패 같은 것이 든든하게 있다 그런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방패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찬송가 585장 마틴 루터 작사 작곡한 곡이 있지요 종교 개혁 기념주일 때 마다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몇 년인지 기억하세요 1517년 10월 31일 내년이 500주년이어요
 
종교 개혁자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어려움이 많지요 유혹도 많고 그 때 두렵고 떨림 속에 루터가 있었는데 그러다가 마침네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는 마음에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만든 곡이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그 곡입니다. 어떻게 되지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3절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나를 대신하여 싸우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하나님이 친히 방패가 되어 주신다 이것을 그 찬송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지요
 
2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생명의 샘이라고 하는 것은 물이 솟아나는 샘입니다.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여러분 우리가 물웅덩이를 파 놓으면 거기에 비가 내려서 고일 수 있어요 퍼쓰고 나면 바짝 마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샘이어요 샘은 샘 솟듯한다고 하는 말에서 보듯이 땅에서부터 솟구쳐 나오는 물이 있는 것이 샘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다시 이야기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하나님답게 믿고 살 때 우리 속에 샘 하나가 마련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이것을 신약 성서 언어로 이야기 하면 요 7장 38절 너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 그 이야기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속에서 마르지 않은 샘 하나가 마련되어요
그러니까 외부의 조건이 나를 뒤 흔들어 놓을 수가 없어 인생의 가뭄이 찾아와도 생명의 샘이 자기속에 있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그 샘물로 인하여 가뭄을 이겨 낼 수 있어요 그 샘 파는 방법 여호와 경외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 때 그런 샘 하나가 마련됩니다. 여러분 그 샘 하나씩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샘 어떻게 판다고요 여호와 경외하는 것 경외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자꾸 조율하는 과정이어요 음악하는 사람들 음악할 때 튜잉하지 않아요 소리를 맞추지 않아요
 
그런데 상훈씨가 선배라고 해서 정규씨에게 정규씨가 피아노를 치는데 내 키타에 피아노를 맞추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언제난 하나님의 마음이 기준음이고 거기에 따라서 내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지요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여쭈어 가면서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 속에 샘을 파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네요. 그 사람들은 치명적인 잘못에서 벗어난다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은 여러분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왜 자유롭느냐 하면 내가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살다가 패배해도 괜찮아 왜 내 패배가 아니야
 
이것은 제가 아주 오래전에 어떤 잡지가 창간된지 얼마 안 되어 가지고 그 책에 글을 연재하는 데 잡지가 와 가지고 제 글을 이렇게 보다가 뒤에 있는 글을 보니까 어떤 분 인터뷰한 것이 나왔어요
 
유기농으로 농사를 시작하시는 분 이야기였습니다. 기자가 가서 물었어요 농사가 어뗐습니까? 첫해 농사 망 했지요 잘 안 되었어요. 화학 비료에 익숙한 땅이 산물을 잘 안내는 것이야 두 번째 해에도 수확이 시원치 않아요 그러나 그 분은 지심을 돋구어지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세 번째 해여요 그 때가 올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하실 것이어요?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망하면 하나님 망신이지 내 망신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사는 데 생명의 먹을 거리를 창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나 망하면 하나님 망신이지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이 든든함이어요 나는 패배해도 괜찮아 그러나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셔 이러면 자유로와지지 않아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28절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여러분 옛날에는 사람이 많아야 일도 할 수 있고 군사력도 튼튼해지고 그런 배경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특별히 여기에서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밝혀 주고 있어요 군사력이나 재산이 아니다는 것이어요 누구입니까? 백성이 중요하지요 그러니까 백성의 마음과 지지가 왕을 떠나면 나라는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백성이 많은 것이 왕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왕이 대변해야 되는 것은 누구이냐 하면 소수의 특권만을 대변할 때 왕은 백성을 잃어버리기 쉽지요 그러니까 소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마음 쓰게 될 때 왕은 백성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지요.
 
나라가 든든히 서가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소수의 특권적인 사람들을 위해서 정책을 만드는 순간 나라의 부는 커지는 지 몰라도 나라의 토대는 흔들리고 있다 이것을 우리들이 봐야 하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29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질문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한다고 하는 말이 주로 누구에게 적용이 되었지요 누구의 적용이 되었지요 누구의 덕목이어요 하나님의 덕목이지요
 
인자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그렇게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그 마음이 누구에게 지금 적용되고 있습니까?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하고 이야기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한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이야
 
그러니까 노하기를 더디한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어떤 충동적인 감정에 격동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야 그것은 무엇이냐 우리 내면 속에 무엇이 있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단어 하나 있지요 바닥짐 기억나세요 배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바닥짐이 있어서 추선이 밑으로 내려가도록 해야 돼 그래야 안정감이 있지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감정적으로 요동을 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속에 든든함이 없기 때문이어요.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노하는 까닭이 외부에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속에 화가 많아서 그래요 언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것은 하나님 성품 닮아간다고 하는 것이고 요즈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화를 잘 냅니다. 벌컥 멀컥 화난 사람들처럼 보여요
 
길에서도 노려보고 쩨려보고 그런 눈빛 만나고 나면 좀 무섭지요 세상이 여러분 성공회 대학교에 교수님이신 김찬호 교수님이 지금 한국 사회에 한국인들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를 모멸감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모멸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때 모멸감을 느낍니까? 내가 무시당하고 내가 치가 함부로 격하당하고 이런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내가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속상하지요
 
모욕감을 느끼면 사람들은 마음이 심약한 사람들은 자기 부정에 이릅니다. 내가 형편없는 사람인가봐 자기 수치심에 빠지게 됩니다. 공격적인 사람들은 나를 되갚아 주려고 하지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안겨준다고 하는 것은 이중의 손실입니다.
 
(1) 하나는 심약한 사람들을 생명을 억압하는 일이고
(2) 또 하나는 누구가 속에 있는 격동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여러분 어떤 대상도 모멸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어요 이제 이게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쩼던 29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이 명철해요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0절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평온한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어요 바닥짐이 있는 마음 그 마음은 깨지지 누군가의 깨지지 않을 때 내 마음이 평온하지요 그래서 온전성이 유지된 마음이 평온한 마음입니다. 평온한 마음은 고요합니다. 함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다 그 마음이 평안해지면 육신조차도 생명력이 넘치지요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한 시기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내 뼈조차 뼈는 내 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인데 그것조차 썩게 된다고 말을 하네요
 
우리는 마음속에 쌓아 둔 것이 무엇인 가에 따라 생명은 풍요롭게 되기도 하고 빈곤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핵심이 나오지요
31절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이것 우리가 명심 명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정말 어떤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 그것은 창조주를 멸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 저지르기도 하지요 저 사람은 어떼 저 사람은 어떼 이렇게 함부로 평가하는 순간 하나님이 모욕당하신다 그 이야기여요 이것이 우리들이 알아야 한 것입니다. 거꾸로 이야기 하면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주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게 여러분 한국 교회 신자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그의 경건생활의 참됨은 타자를 대하는 특별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나타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을 공경한다 하면서도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 그들은 믿는 사람 아닙니다 그들은 불신자들입니다.
 
33절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절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절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의인화된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저절로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기대하는 나라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그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공의가 살아 있는 나라입니까? 아니면 죄가 지배하는 나라입니까?
 
당연히 공의가 지배하는 나라일 것입니다. 정말 공의가 지배하는 나라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겨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저 사람의 아픔을 내가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도소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나를 찾아 왔어요 그래서 교도소에서 지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가지고 어떤 목사님이 예배 인도를 하러 오셨데요
 
가서 앉아 있는데 그 목사님이 30초 정도를 이렇게 바라보더래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시선에 당황한 것이어요 그래서 눈도 피하고 있는데 그 목사님의 첫 마디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억울하시지요 그러더래요
 
너 진자 억울한 것이 아니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마음은 다 억울하거든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어요 가슴에 울컥 하드레요 그 날 제일 은혜를 받았데 죄수들이 마음을 알아 드리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이 정말 소중한 마음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공의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대서부터 타자를 소중히 여기고 그의 마음에 자리에 까지 다가가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임을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진실성은 타자들을 대하는 특별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하여 입증된다 하는 이야기를 오늘의 결론으로 삼고 싶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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