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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2강 11:1-15 속이는 저울 공평한 추
2018년 10월 09일 (화) 16:14:23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기억나세요 잠언이 어떤 말이어요 프로 버브 찌르는 말이지요 찌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어떤 것이어요 무감각해 지기 쉬울 대 살다 보면 둔감해지고 무감각해 질 때 어떤 말이 우리에게 확찔러서 그 말이 우리로 하여금 깨어나서 정신 차리게 만들지요
 
  오늘 잠언가운데 11장 1절부터 15절까지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잠언 간추리기 쉽지 않지요. 어떤 소설을 보더라도 그 소설 읽기의 기본은 내용을 간추릴 수 있는 능력압나더, 그러니까 내용을  간추릴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어요
 
  그래서 옛말에도 옛 어른들이 博而約之(박이약지) 하고 말하는 데 두터울 박자여요 두텁게 알 때 많이 알대 그것을 요약할 줄 알아야 해 그렇지요 이게 참된 지혜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500페이지 되는 소설을 한권 읽었다 그런데 5줄로 요약을 해보세요 이것 어렵지요 글 쓰기 훈련을 그런 것을 통해서 하는 것이지요 에이 4 한 장으로 요약하면 더 집어넣어야 하겠지요. 넣어야 할 것과 빼야할 것 찾는 것이 지략이지요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할 때 책을 한 권 다 읽은 다음에 책을 덮고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교육학적으로 중요한 이야기여요  어쩼던 잠언은 간추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요. 왜냐하면 떨어져 있는 지혜들을 묶어 놓은 것이어요
 
  일정한 서사구조에 의해서 묶어 놓은 것이 아니라 말에 대한 교훈 상 행위에 대한 교훈을 묶어 놓으면 좋을 터인데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묶어 놓은 것이어요 이것이 잠언의 특색입니다.
 
  1절 속이는 저울을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이 말이 상정하고 있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 사이에 무엇인가 교환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고 팔고 하는 상행위가 있지요
 
  그러다 보니까 정당하게 살고 파면 좋겠는데 어떻게 한다는 것이어요 내가 이익을 조금 더 보기 위해서 저울도 속이고 저울의 수도 속이고 예를 들면 양을 제야 하는 경우에는 댓박의 크기를 달리한다든지 이런 경우가 있겠지요.
 
  이게 요즈음만 그런 줄 알았더니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오지요. 이런 교훈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그런 현실이 있음을 이미 전제해요. 있어도 심각하게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런 교훈이 나오는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 지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요 원시사회에서는 자급자족하지요 자급자족합니다. 그리고 씨족 내에서 어떤 일이 해결이 됩니다. 여기서는 재산이 공유되고 그러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어요
 
 
  사회 구조가 조금 더 커지면 부족간에 거래가 이루어진다든지 이익을 보기 위해서 이런 일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은 이익 보기 위해서 누구를 속여 먹으려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진리의 가장 큰 적은 상인 근성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상업 활동하는 분들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상인 근성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진리와 상인 근성은 좀 상극입니다. 이 말에 오해가 없어야 해요 장사하는 분들 지칭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상인 근성을 지금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상인 근성이라고 하는 것은 상인은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상인 근성이란 무엇이든지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해타산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어요  이게 상인 근성입니다. 진리는 이해타산의 관점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진리라고 이야기 하는데 십자가는 이해 타산으로 따지면 세상의 미련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어요 자기희생이지요 이게 십자가의 본질이어요
 
  그런데 이해타산에만 밝은 사람이 볼 때 십자가를 절대로 받아 드릴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진리와 상인 근성은 병립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어떤 일에서도 나는 손해 볼 수 없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평화를 만든가요 불화를 만든가요 그래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잘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가 험악해서 자기 이익을 아주 발 빠르게 이렇게 취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낯 설어하고 그리고 그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 때문에 자기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사람을 배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사람은 이렇게 마치 여러분 어머니는 맨날 생선 먹어도 그저 생선 대가리나 배 부분만 잡수는 것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지 아는 것 이런 태도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이해 타산을 맞추어서 보기 때문에 이문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저울눈도 속이고 또 도량형을 바꾸는 것이지요 추도 다른 것을 사용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그것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하고 말합니다.
 
 
  레위기 19장을 보면 너희는 거룩하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삶이어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거룩함의 내용이 무엇일까?
  3절 부모님 경외하라
  4절 안식일을 준수해야 된다
  5절 우상 숭배하지 말아라 제물을 올 바른 것을 봉헌해야 한다.
  하나님 예배와 관련되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9절 추수할 때 밭의 한 가운데 남겨 두라 너희 가운데 살고 있는 고아 과부 나그네의 몫이다 그게 거룩한 삶이어요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종교적인 예배 행위에 관계된 것이라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그 어려움과 마음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 그들을 배려해 줄줄 아는 삶이  거룩한 것이어요
 
  11절 도둑질 하지 말아라
  12절 거짓말 하지 말아라
  13절 일군들을 억압하지 말아라
  너희 밭에 와 가지고 일한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우리로 말하면 이주 노동자들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마는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라요
 
  그들이 한국말을 배우는 데 적응해야 되니까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들이 무엇인지 아세요?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 그 이야기는 그 말은 그만큼 그런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여요
 
  우리가 사회적 약자 어떻게 보면 중심부 있지 않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로 선진국 될 수가 없어요. 선진국은 물질적으로 사람이 존중 받는 국가이다
 
  이것은 정말 주변화된 사람들을 억압하는 일은 어디에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군 억압하지 말아라 성경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요 임금  착취하지 말아라
 
  14절 장애인이라고 그들을 저주하거나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15절 재판할 때  힘 있는 사람이라고 편들어 주고 힘 없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이것이  다 거룩함과 관련이 됩니다.  
 
  16절 이웃의 피를 흘려서 이익을 도모하지 말아라
 
  누구를 해침으로 거룩함과 관계가 있다
  레위기 19장 36장 공평한 저울과 추를 사용하라 공평한 에바와 힌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거룩한 것이어요 거룩함이라는 것이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이 예배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어요 우리의 삶이 따라가지 않으면 거룩함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위선이어요
 
  오늘 날 한국의 크리스챤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 까닭은 그들의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공의와 정의를 말하나 그들의 삶을 그렇지 않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그렇게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의 스승일 수 있는 것이지요  나로 하여금 돌아보도록 만들어 주니까 그렇지요
 
  신명기에도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신명기 25장 13절 서로 다른 두 저울추를 집에 있게 하지 말아라
  나 잘 아는 사람은 제대로 된 저울추를 쓰고 딴 사람이 오면 다른 저울 추 쓰는 것 하지마라
 
  14 다른 대를 집에 두면 안 된다
  호세야 12장 7절 거짓 저울을 손에 들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가서 6장 11절 엉터리 추를 주머니 넣고 다니는 사람을 꾸짖는 이야기가 나와요
 
  성경 도처에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은 그런 일이 비일 비재했다 그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상행위를 할 때도 그렇지만 나는 안 그래 말할런지 몰라도 우리도 이중 잣대를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이중 잣대 그래서 여러분 자기에게는 너그럽고 타자에게는 상당히 아주 냉철하게 바라보는 냉철하게 바라보는 정도만도 괜찮은 데 거기에다가 보태는 것이지요 그의 나쁜 점을 오히려 더 보태 가지고 나쁘게 말하는 이중 잣대도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성경이 지금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1절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2절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하고 말합니다.
  교만은 언제나 욕을 동반합니다. 수치를 동반합니다.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자기의 한도를 지키지 않는 말 자기의 한계를 지키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를 이야기 할 때 어느 신학자는 이야기 해요 인간의 기본적인 죄를 교회 전통은 7가지의 대 죄가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어떤 분은 3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하나는  교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신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끝없는 욕망입니다. 엔드리스 디자이어 욕망이라는 것이 끝이 없어요
 
  자 불신앙은 무엇인지 우리가 알겠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어요  교만함이라는 것은 한계를 지키지 않는 마음이어요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창 3장 5점 네가 신처럼 될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선악과를 보았더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해요
 
  3장 6절 따 먹지 않아요 이게 교만함입니다. 자기 한계를 지키지 않는 것이어요
  자기 한계를 지키지 않는 것이 부풀리고 하고 싶은 욕망이어요 끝 없는 욕망이 왜 죄라고 하느냐 하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지요 자기중심적이라고 하는 것은 타자 배제적인 것이지요 이 욕망이 적당하면 괜찮아요 생의 활력이어요.
 
  그것이 끝없는 욕망이 될 때는 타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그것이 폭력적 삶의 태도를 나타낸 것이지요  연결이 되지요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죄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무엇인가를 갖고 또 갖고 싶어 하는 것이 과도한 욕망은 언제나 타자 배제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제한다고 하는 것은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것을 내가 갈취해 감으로서 그가 빈곤해 지고 삶이 나빠진다 그것은 이미 폭력이 아니어요
 
  이것이 중요한 대목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만은 자기의 한계를 지키지 않는 그 마음이지요 그런데 한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수치를 당하도록 되어 있어요  이것이 우리의 삶의 경험과도 연결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교만한 자에게는 욕도 따라오기 마련이고요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말하는 데 겸손하다는 것은 겸손은 말 그대로 몸을 낮추는 것 공손한 것이고 그런 것이지요 삼갈 줄 아는 것이고 겸손은 항상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와 관련됩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겸손해 그 사람은 남을 공경할 줄 알아 남을 존중할 줄 알아 이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 겸손은 무엇이어요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바라 보는 자이어요.
 
  겸손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하면 경외심에서 비롯이 되어요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부터 겸손이 오는 것이어요 하나님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가 이것을 깨닫게 될 때 나는 스스로를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겸손이어요  자기의 한계를 넘치 않는 그 태도인데 그 겸손한 자에게 지혜가 있다 하고 말합니다.
 
  잠 1장 7절 겸손 그 자체가 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 혹은 지혜의 근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아요 겸손한 것은 여호와를 경외 그것은 곳 지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교만한 사람은 뻐깁니다.  자기 벼슬을 자랑하기도 하고 그러나 사람들은 좀 알지요 그 뒤가 얼마나 허한지 허장성세를 부리는 사람들의 허약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겸손하지만 잔치 자리에 가면 늘 끝자리에 앉고 그런 사람들 예수님의 비유에도 나옵니다마는 그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와 가지고 거기 앉아 계시오 이리 오시오 합니다.
  3절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여러분 정직한 자의 특색은 성실함입니다.
 
  성실함이란 무엇이어요 온전한 것이지요 성실이라는 말이 재미있어요 誠實(성실) 말씀언言 변에 이룰 成자가 있지요 그 다음에 열매 실자여요 이것은 열매여요 나의 말이 나의 삶 속에서 열매처럼 이루어지는 것이어요 이것이 성실한 삶이어요 자기의 말과 자기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성실한 삶이어요
 
  그러니까 정직한 사람은 성실한 것이야 그 사람은 말이 이루어지는 삶으로 나가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말씀을 살아 내신 것이지요 예수의 삶은 성의 삶이어요 말과 존재에 분리가 없는 삶이지요
 
  그런 삶은 정직한 사람은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서 거짓이 없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게 되고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한다 사악한 사람은 무엇하느냐 하면  속임수를 쓰는 사람 구불 구불한 길을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망하게 한다 자기 분열과 몰락으로 귀착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잠언의 가르침입니다.
 
  4절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심판하시는 날에 재물 가지고 하나님 드릴테니까 봐 주세요 이것 안 되어요 재물은 무익해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너 세상에서 무엇하다 왔나 물으실 때에 예를 들어서 저는 책도 몇 권 썼고요 저는 어떠 어떠한 일도 했고요 종업원 500명인 기업을 운영했고요. 그러면 아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럴 이가 없어요
 
  주님이 묻는 것은  너는 어떠한 존재였느냐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고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이었느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그 사람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정말로 아끼고 존중하는 태도로 살았다면 하나님은 그를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취한 성취의 분량이 아닙니다. 질이지요 내가 어떠한 존재인가
  4절  불의한 재물 가지고는 나를 건질 수가 없어 하지만 공의는 죽음에서 건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하고 말합니다.
 
  길을 곧게 하는 것이어요 이게 공의로운 사람의 삶을 태도이지요 여러분 악을 행하는 사람은 그 악 때문에 또 걸려 넘어집니다.
 
  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 때 놀게 별로 없지 않아요 장난감도 없고 그 때는 장난감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종이 배 적어 가지고서는 띄우거나 신고 다니던 검정 고무신 띄우고 송살이 하나 잡으면 좋고 어떤 때는 심술 궂게 허방다리를 만들기도 해요 항정 빠지라고 또 어떤 때는 풀을 이렇게 묶어 친구들이 막 뛰어가다가 풀어 걸려가지고 넘어지게 만들어요  
 
 
  그런데 재미난 게 무엇이냐 하면 남이 빠지지 않으면 자기가 뻐져 자기 묶어 놓은 것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이런 경우가 많지요
 
  옛날 고사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요 結草報恩(결초보은} 풀을 묶어 가지고 은혜에 보답했다 하는 이야기여요 옛날 중국에 진나라에 의무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군인데 부하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내가 나가서 전쟁터에서 사망하거든 내가 아주 아끼는 첩이 있는데 그 애척인 조희가 불쌍하니 다른데 좋은데 시집보내라 내가 전쟁에 돌아와 병들어 죽거든 내가 죽는데 조희를 같이 순장해 줘 산체로 사람을 묻는 것 이게 순장이어요.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안타깝게도 살아서 돌아왔어요 그리고 병들어서 세상을 떠난 것이어요 의무자가  두 아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 유언대로 조희를 순장해야 된다 하니까 둘째 아들이 그런 것이어요 아버지의 뜻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너무 아깝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아버지의 원 뜻을 살려서 조희가 행복하게 사는 게 아버지 뜻을 받드는 것일 것이다 생각해요 그래서 조희를 다른 데 시집을 보냅니다. 아들인 위화가 전쟁에 나간 것이어요 전쟁에 자꾸 져요 적에게  어느 날 소리가 들려와요 싸움터를 옮겨 그래서 싸움터를 그 쪽으로 옮겼어요
 
  그런데 적국의 장수인 두회라고 하는 장수가 있는데 두회가 말들이 자꾸만 넘어지는 것이야 나중에 보니까 애첩이었던 조희의 아버지가 너무 고마워서 풀을 묶어서 보답을 한 것이야 그게 결초보은이어요 풀을 묶어서 보답을 한 것이지요
 
  이것 잠언 이야기 하다가 재미는 있는 어쩼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6절 정직한 자의 길은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사로잡힌다
 
  7절부터 9절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에 소망이 없어지느니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여기에서는 악인의 죽음과 소망이 끊어짐 이것이 대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인은 그가 기획하고 추진했던 것들이 죽음과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아침 햇살에 쓰러지는 이슬처럼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하고 말합니다.
 
  잠언에 나오는 이 구절을 유대인들은 늘 마음에 명심하고 있었어요 어떤 이야기와 연결 시켜서 명심을 하고 있었어요. 그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에스더서알지요 거기에 보면 아하스에로 왕 때 있었던 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되었지 않아요 그런데 모르드게라고 하는 인물이 있지요 아주 양 아버지이고 삼촌이기도 모르드게가 있습니다. 이 모르드게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 가운데 하만이라는 신하가 있는데 이 신하는 교만할 대 이룰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하만에게 가면 사람들이 다 절하는 것이어요. 이 모르드게는 교만하 하만 앞에 절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하만이 화가 났어요 그래서 모르드게 이 녀석을 없에야지 생각해요 자기 힘으로 죽일 수 없으니까 왕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섞이기를 거절하고 있는 민족이 있는데 우리 문화 속에 동화되어 살아야 하는 데 유독히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문화에 거절하고 사회 불안의 요인은 이 자들을 죽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6절 하만이  모르드게만 죽이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 전체를 죽이는 것이어요
  에스더 3장 6절  이 모르드게게 에스더를 찾아가지요 에스더가 왕도 초대하고 하만도 초래하고 하만은 기뻤어요 왕후가 자기를 초대해 주니까 너무나 행복한 초대를 끝내고 또 두 번째 초대를 받았을 대 하만은 이제 죽음에 처하게 됩니다.
 
  에스더가 이야기 하지요
  에스도 7장 4절 여차 여차 해서 우리가 죽게 생겼습니다.
  나도 죽게 되었습니다. 왕후를 사랑했던 왕이 들으니까 이것 안되지
  에스도 7장 5절 왕이 이야기해요 도대체 어떤 녀석이 하만은 자기의 살길이 호의를 입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에스더가 앉은  의자에 앉아서 애걸 복걸해요
 
  왕이 밖에 나갔다 들어와 보니까 하만이라는 녀석이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를 겁탈하려는 것이어요
 
  7장 7절 결국 하만을 죽게 만드는 것이지요
  8절 모르드게가 메달리려는 장대에 하만이 메달리게 되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살아나요
  10절 이 날을 절기로 이야기 하면 부림적이라고 해요 부림 재미를 뽑아서 날을 정하는 것인데 이것이 부림절 바고 이 대목이지요
 
  7절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다
  8절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지만 악인은 그의 길로 간다
  9절 악인은 그의 입으로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 구원을 얻으니라
 
  이 구절은 유대인들과 특별한 구절이어요  에스더서에 나오는 부림절과 관련이 되어서 이해를 사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부림절이 되면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어요 그 때 축제를 벌리는 데 회당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해요 부림절이 되면 읽다 보면 하만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요
 
 
  하만의 이름이 언급 될 때마다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나쁜 사람 나쁜 사람 그렇게 함으로 무엇이냐 하면 하만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야 나쁜 사람 나쁜 사람 해 가지고 그리고 그 때  아달월 14일날 부림절 축제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사람들은 양귀비 씨앗이나 서양 잼이 들어 있는 맛있는 케익을 만들어 먹어요 그 케익이 하만 케익이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에게 기억장치인 것이지요 그렇지요  이것이 하만 케익이야 케익을 먹으면서 그 날의 케익을 먹어 이것이 하만 케익이야 이러면 케익을 먹으면서 그날의 광경을 떠 올라요 재미있지요 이런 것들이
 
  그 다음 9절 악인은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10절 의인이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하느니라
  11절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의인이 형통한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명예를 얻고 그가 합당한 지혜를 얻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 이 모든 것을 형통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잘 되면 그 성읍이 기뻐한데 기뻐하는 까닭은 그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그가 의로운 사람인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잘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야기 했듯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은 사이 간자가 들어가 있지 않아요 인간을 영어로 이야기 하자면 비투인 멘 엔드 멘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이것이 사람이어요 사람인이라는 글자도 서로 기대고 있지 않아요
 
  의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관계를 잘 하는 사람 이 사람은 혼자 복을 누리지 않는 사람이 의인이어요 그래서 그가 잘 되면 주위의 사람이 복을 받아요 악한자 자기만 아는 사람 끝없는 욕망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이 잘 되면 그것은  자기가 독점적으로 누리게 되어요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지 간에 밉지요. 그래서 이 사람이 망하면 성읍이 기뻐한다
 
  어쩼던 여러분 의인이 형통한 세상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로 작은 규모의 마을이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작은 마을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마을 일 함께 상의하고 함께 잔치를 준비하고 늘 주도하고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도울려고 하는 사람이 의인이다면 그러기 때문에 성읍은 복받은 것이어요 자기만 아는 사람 때문에 성읍은 나빠지는 것이지요
 
  12절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13절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긴다.
 
 
  한담하고 그런 사람들 우정을 배신하고 약속을 파괴하고 그런 것이지요 그러나 마음이 신실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줄 줄 아는 사람인 것이지요
 
  14절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15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느니라
 
  지락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느니라 지략은 공적인 일을 다루는 어떤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략 략이라는 글자 때문에 그것이 아니고 공적인 일을 다루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얻어진 그런 지혜가 지략이어요
 
  그러니까 책을 읽어 가지고 얻는 지식 이게 아니고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내 속에 축적된 내면화된 지혜 이런 것들이 지략이라고 우리들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 자 특별히 다스리는 사람들이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여러분 우리나라에 지방자치단체가 실시된 게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자체의 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지역 사회에 변모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토목 공사만 하는 분들도 있어요 큰 건물을 짓고 그런 사람들
 
  그런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세심한 일이 마음을 쓰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세심한 일에 신경을 쓰는 그 마을이 살기 좋은 마을인 것을 알 수 있어요 사람이 다니지 않는데 산을 깎어가지고 큰 길 내고 그것을 자기 치적으로 생각하고  이것은 지방 재정을 파탄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조차 황패하게 만들지요 지략이 없는 것이어요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 하고 말하는데 이 때 지략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아까 다 관계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지략이 있는 사람은 공공성을 이것을 중시하는 것이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제일 슬픈 게 공공성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제일 슬픈 것이어요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그 공간을 어떤 사람들이 사유화 하는 것처럼 느껴진 때가 있어요 전철을 탔는데 공공의 장소에서 애정 행각을 벌리는 사람이 있고 전철 안에서 자기가 통화하는 내용 온 사람 알게 하고 이게 무엇이냐 하면 예의가 없는 것이지요 공공의 예의가 없지요  
 
  좋은 사회는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살 때 공공성을 지켜 갈 줄 아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어요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지요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을 공의 사유화 모두에게 속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어요
 
  이게 여러분 사(私)라고 하는 글자가 벼화(禾)자여요 벼화자하고 마를 모인데 움겨잡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벼를 내 것이야 하고 움켜잡는 것이야 공의라고 하는 것은 공공하고 이야기  할 때 공(公)은 여덟팔자인데 나누는 것이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돼 나누지 않고 내것이야 이것을 죄라고 한다는 것이어요
 
 
  선악과라고 하는 것이 공공의 것이야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 먹어서 내 것으로 만들었어요 하늘을 나눌 수 없지요 내가 사유화 할 수 없지요  땅도 마찬 가지입니다. 물도 그렇고 공공의 것이어요
 
  모든 사람들이 누리고 사는 것을 자기의 것인 양 사유화 하는 것이지요 지략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입니다.
 
  우리 1절부터 공부를 해 왔는데 속이는 저울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여러분 삶의 자리에서 진정함 거룩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거룩함은 교회안에서만 실현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사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공공성을 지켜가는 삶을 실현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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