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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누르는 금기, 사람을 살리는 금기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생명을 존중하는 것' 등의 금기는 지켜져야
2008년 10월 05일 (일) 06:40:52 김용민 ad74@cry.or.kr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필자는 중학교 2학년 때 음란물, 속칭 ‘포르노’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난생 처음 나에게 몽정을 체험케 해준 그 작품의 이름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터부’(Taboo)였다. (하지만 이 친구는 이 포르노 테이프 겉에 ‘TV고교가정학습 - 윤리 편’라고 적은 스티커를 부착했다.) 이 영상물을 보며 ‘신천지’(?)를 체험했건만, 마음 한 편에는 ‘기독교인으로 또, 학생 신분으로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짙은 죄의식이 자리 잡았다. 집에 와서 영문 사전을 뒤져 ‘터부’를 살펴봤다. ‘금기’로 해석되는 단어였다.

그 시절, 구체적으로 1980년대에는 금기가 참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 같은 ‘음란물 보기’도 일종(一種)이었고, 학교마다 엄존하던 ‘남학생 스포츠, 여학생 단발’ 규칙도 있었다. 이외에도 음주, 흡연, 유행가 부르기 등 ‘학생답지 않은’ 모든 것이 통제의 대상이었다. 어기면 학생부 행이요, 일단 들어가면 최소한 엉덩이에 ‘불 찜질’을 당한 다음에야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학생들에게만 강요되던 금기가 아니었다. 어른들에게도 엄존했다. 1980년대보다 더 ‘엄숙’했던 1970년대에는, 장발한 채로 싸돌아다니다 경찰에 붙잡혀 그 자리에서 ‘커트’당하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다 경찰에 의해 다리 노출 부위를 자로 측정당하고 범칙금을 무는 시민들의 비참한 일상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말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어니언스’라는 가요 듀오는 ‘양파들’로, ‘바니걸스’가 ‘토끼소녀’로, 축구 중계방송에서 캐스터가 ‘골키퍼’를 ‘문지기’로 고쳐 부르는 해프닝도 연출됐다. 다 국가 권력에 의해 이뤄진 구조적 코미디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소했다.

국가 권력을 비판했다며 있지도 않은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워 사형시키던 때가 있었다. 대통령이 아닌 일개 군 보안사령관이 자신을 반대하며 시위했다고 총을 난사하는 일도 있었다. 비평하는 것이 업(業)인 기자, PD마저 ‘불온 언론인’으로 낙인 박아 옷 벗겨 거리로 내 몰았던 상황도 있었다. 당대에 ‘체제에 대한 비판’은 금기 중의 금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큰 것으로부터 사소한 것에 이르는 것까지 뭔가 상호 배치되지 않은 ‘금기의 흐름’이 있었다. ‘충효’로부터 시작해 ‘삼강오륜’ 그리고 ‘반공사상’을 떠올려보자. 이는 고려시대 절대왕정 때부터 20여 년 전 군사정권 시기에 이르기 까지 국가를 지탱하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이것이 바로 금기의 근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남자지만 남자를 사랑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출현(出現)하고, 대놓고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선거판에 등단한다. 대통령의 장인을 공연히 ‘빨갱이’라며 명예를 짓밟아도 ‘무죄’ 판결이 나는 세상이 됐다. 놀랍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봉건의 잔재를 떨쳐내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금기’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100회 넘게 진행됐던 촛불집회를 보며 필자는 뚜렷하게 돌출한 현상 하나에 주목했다. 이 집회를 바라보는 ‘노장’과 ‘청년’층의 시각차이다. 유사 이래 ‘세대 차이’는 시대를 관통해 상존해왔다지만 이번 것은 좀 새롭다.

노장층 다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로 불거진 ‘촛불’이 친북좌파의 체제전복 논리라며 ‘체제 안정성’의 위태로움을 걱정한다. 반면 청년층 다수는 ‘촛불’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 정부와 보수언론에 대해 신종 파시즘의 망령이라며 ‘표현의 자유’의 훼손 가능성을 염려한다. 총론은 이렇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노장층. 그들은 ‘질서’를 강조한다.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에 대해 그들은 ‘로또 1등 돼 당첨금 받아 돌아오는 길에 벼락 맞아 죽을 확률’이라며 의미를 축소하지만 이런 우려 자체를 ‘헛된 것’이라 쉽게 폄하하지는 못한다. 왜냐. 광우병의 원리가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규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빌미로 한 시위가 확대되자 이들은 무섭게 ‘질서’의 가치를 앞세운다. 더불어 강력한 공권력의 ‘입막음’을 주문한다. 한편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이들 다수는 금기의 시대를 살아왔고, 그 시대의 권위체계, 소통방식에 익숙한 세대이다. 금기의 틀이 사라지는 것이 곧 망국의 전조라고 판단하고 있는 세대인 것이다. 나라와 강토를 빼앗긴 그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체감한 세대들. 그러기에 이들은 ‘질서’의 가치를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젊은 층은 어떤가. 이들은 ‘합리성’을 앞세운다. 그들은 도로가 점거돼 수십일 동안 수도 교통을 마비시키고 더러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현상을 야기했다. ‘무질서’의 확대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또한 ‘정권 퇴진’ 구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들이 못 참아주는 것은 ‘불합리’였다. 쇠고기 협상 엉망, 추가협상 역시 엉망. 그래놓고 ‘재협상에 준하는 결과’라며 국민 앞에 반(半) 협박조로 ‘결과를 수용하라’는 식의 태도로 나오는 정부, 이 정부를 젊은 층은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금기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물론 금기의 시대와, 지금 같이 금기가 소멸돼 가는 시대를 모두 살아 본 세대들도 있다. 이들 모두는 ‘이 정도로 무너질 우리 사회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필자에게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다면 후자에 가깝다고 말하겠다. ‘정권의 안위 보다 사고(思考)와 표현의 자유가 더 중하다. 국민은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주의(主義)라 하겠다. 그러나 모든 금기를 다 털어낼 대상으로 보는 입장은 아니다. 한 두어 가지는 ‘보루(寶樓)’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게 무엇이냐.

우선 종교 간 화합이다. 다종교 구조에서 종교끼리 얼굴 붉히는 일이 거의 없는 나라는 흔치 않다. 그만큼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자기 종교 소중히 여기듯, 남의 종교를 예우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이는 결국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톨레랑스(tolerance)의 전형이라 하겠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노골적으로 벽을 쌓고 적대하는 일, 영원히 금기시됐으면 한다.

다음은 생명존중의 가치이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나라이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하는 이들, 이를테면 사채업자의 가혹한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물질 앞에 인명의 가치가 초라해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바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자살은 안 된다’라는 식의 금기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자살을 막는 사회구조적인 해법, 즉 금융 안전망의 확충 같은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사람의 가치를 판별하는 그런 저급한 의식도 차제에 금기의 금고 속에 가둬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금기가 통제나 구속의 의미가 아닌, 상생과 신뢰의 기반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금기 없는 사회가 아니라 금기가 필요 없는 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람을 누르는 금기는 버리고 사람을 살리는 금기를 지키자는 얘기이다.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소식지 '하이 안산' 2008학년도 2학기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시사평론가, 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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