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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부모가 복이다."
2018년 05월 07일 (월) 16:24:41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출2:1-10)
 
    1.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열심히 칠판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안 보여요. 대가리 좀 치워 주세요.”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가 막힌 선생님, 도대체 어느 녀석인가 하여 돌아보고는 더욱 놀랐습니다. 그 아이가 너무 천진하게,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에겐 머리란 단어보다 대가리란 단어가 더 자연스러웠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아이는 왜 머리를 대가리로 부르는 걸까요? 그 아이의 집에서 어른들이 모두 그 단어를 썼을 것입니다. “이 녀석 대가리에는 뭐가 들었나?” “그 놈 대가리 한번 잘 생겼다.” ... 그러니 이 아이에게 머리는 ‘대가리’였습니다.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환경, 선생님, 친구들이 중요합니다. 그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그것은 부모입니다, 가족입니다. 가정환경, 부모의 삶의 자세가 자녀에겐 매우 중요합니다.
 
    2.
    오늘 본문의 배경은 주전 1400여 년 전인 애굽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있었는데, 그들은 무섭게 수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할 때만 해도 야곱의 가족 70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정착하며 그야말로 인구 폭발을 일으키어 엄청난 수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늘어나는 속도와 규모가 너무 빠르고 커서 애굽의 통치자들이 극도로 불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을 모두 노예로 전락시켰고,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아이는 살려두었습니다. 어차피 남자 수가 적으면 반란은 생각지도 못할 것이고, 여자 수는 많을수록 노예가 늘기에 일거양득이었습니다.
 
    이런 비극적 상황에서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는 아들을 낳았다는 기쁨보다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자기들이 살려면 아이를 내다 버려야 했고, 그러나 인간으로 할 짓은 아닌 것 같고...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그들은 마침내 아들을 기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왜? 오늘 본문에 보면 아이의 “잘 생긴 것을 보고”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또 히11:23절에 보면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잘 생기고 아름다운 아이는 무조건 키우고, 못 생기고 장애가 있는 아이는 버리라는 건가요? 천만의 말씀,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행7:20절에 보면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란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아이 자체를 뜻합니다. 그 아이가 갖고 태어난 삶의 의미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부모 마음대로 내다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의 부모가 아이를 기르기로 결정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단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시 절대 군주인 바로의 명을 어기면 우리의 옛날식으로 삼족(三族)을 멸하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당대 보잘 것 없는 노예 부부가 서슬이 시퍼런 절대군주 바로의 명령을 어길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믿음입니다! 뭔가 믿는 것이 있으니 이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는 과연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까?
 
    무엇보다, 모세 부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신념이 아닙니다. 창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며 예언하시는데 그 후손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4대 만에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란 말씀에서 그들은 레위 가족이라고 강조합니다. 경건한 집안이란 뜻이겠죠. 그러니 말씀대로 사는 경건한 모세의 부모가 그 약속의 말씀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4대 때가 되어 태어난 그 아들에게 민족 해방의 꿈을 걸고 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정말 이 아이가 그런 일을 해낼지 아닐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말씀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아들임을 믿고 살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아이에게 기대감을 가진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부모님을 두었다는 것은 자녀들에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세속적 가치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하는 부모가 아닌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행복한 자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부모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용기를 가졌습니다.
 
    내게 태어난 아이들, 내 욕망의 열매이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녀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을 대(代)를 이어 이루라고 내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그 아이에게서 인간적인 조건만을 찾지 말고, 원대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일할 수 있도록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가르치십시오.
 
    자기 자녀에게 기대감이 없는 부모는 얼마나 불쌍한가요! 그런데 그 기대감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부모의 기대대로 그 자녀의 앞길엔 형통함이 있을 줄 믿습니다!
 
    둘째로, 모세의 부모는 이 믿음으로 인간적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아이를 숨겨 키우는 동안, 이들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아기의 울음소리만 밖으로 새어나가도 그들의 가족은 몰살당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바로의 권위보다 더 높은 권위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모세의 부모에게 용기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 어떠한가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세상의 풍조를 더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들이 밤늦게까지 학원 보낸다고 자기 아이들도 무작정 그렇게 보내고, 남들이 그런다고 자기 아이들에게도 무작정 그걸 요구하고, ‘너 그렇게 살다가는 바보 소리 듣는다, 너 그렇게 순하게만 살다가는 평생 못산다, ... 적당히 해라’하며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적당히 세상의 풍조에 휩싸여 사는 것을 더 원하지 않습니까?
 
    탈선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그런 자세로 산 사람들이란 사실에 주의하십시오! 신토불이(身土不二)! 그러한 환경,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그런 인격, 열매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혀가 짧은 훈장님이 있었습니다. 이 훈장님이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바람 風’자를 읽어주는데 ‘바담 풍’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모두 ‘바담 풍’하고 따라 합니다. 몇 번이고 그렇게 가르치던 훈장님이 화가 나서 회초리를 바닥에 내리치면서 야단칩니다. “야, 이 녀석들아, 내가 혀가 짧아 아무리 ‘바담 풍’하여도, 너희들은 ‘바담 풍’해야지, 어쩌자고 ‘바담 풍’ 해!”
 
    자식은 부모의 산물 아닌가요? 그 가정의 열매 아닌가요? 가끔 속이 상해서 자식을 바라보며 ‘애구 속상해. 잰 대체 누굴 닮았기에 저러는 거야?’하는 이를 봅니다. 잰 대체 누굴 닮았을까요? 그 부모만 모릅니다.
 
    아들의 성적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학교로 선생님 면담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선생님께 묻습니다. “우리 집 애 역사 성적은 어떻습니까? 전 그 과목에서 신통치 못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러더랍니다.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온전한 신앙을 갖고 사는 믿음의 부모에게서는 경건한 자녀들이 생깁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바로 여러분의 삶의 열매임을 명심하십시오.
 
    세째로, 모세의 부모 믿음은 행동하는 산 믿음이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자신들의 믿음을 모세를 석 달 동안 감추어 기르는 행위로 나타냈습니다. 믿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한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릇된 믿음으로 말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리실 것을 믿고 자기의 안전을 위해 애당초 강에다 던져야했을 것인데 오히려 그 부모는 석 달 동안을 숨겨 키웠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참된 믿음은 무사안일을 낳지 않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3절에 보면 더 숨길 수 없을 때까지 자식을 길렀다고 합니다. 믿음의 부모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께 맡겼어’하면서 아무런 행위도 수고도 없다면 이는 옳은 믿음이 아닙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이런 좋은 부모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무심치 않고 은총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모세 부모의 믿음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를 본문에서 찾아봅시다.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고 나일 강에 띄워 보내며 그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울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도 일을 벌이시고 있었음을 주목하십시오. 그 시간에 애굽 왕 바로의 딸이 강가로 목욕하러 나왔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데, 고대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당시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연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역사 기록에 보면 이미 그 때에 애굽에는 궁 안에 훌륭한 목욕 시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일 강가로 나왔겠습니까?
 
    그것도 하필이면 모세가 흘러가고 있는 그 장소, 그 시간에! 더군다나 이상한 것은 상자를 열어 보고 멸시받는 히브리인의 아들인 것을 보고 재수 없다고 그냥 버릴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 흔한 것이 나일 강에 버려진 히브리인의 아이였는데, 왜 그 순간, 바로의 딸은 그 버려진 히브리인의 아이를 기르기로 결심하였을까요? 물론, 그 순간 아이가 울었다고 성경이 증언하여 본능적으로 공주의 모성애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다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바로의 딸을 움직여, 그 여자를 사용하여 모세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손길, 역사를 끌어가는 손길은 여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그 때에 모세의 누이가 공주에게 나아가 ‘유모가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했을 때, 생각해 보십시오. 한 쪽은 대국(大國)의 공주요, 한 쪽은 그 나라의 노예 계집아이, 꽤재재하고 더러운 아이입니다. 결코 쉽게 앞에 설 수 없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신분입니다.
 
    그런 대 애굽의 공주 앞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노예 계집아이가 나타나 그런 소리를 했다면, 나 같으면 “관둬라, 너나 가서 좀 닦고 와라”했을 것인데, 놀랍게도 이 ‘대 애굽의 공주’가 좋다고 하여 결국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와서 자기 아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양육비를 받아가면서 모세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전날까지, 모세는 부모의 집에서 들키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최선을 다하곤 믿음으로 결단하여 물위에 띄워 보내며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 이제 모세는 그 친어머니에게서 키움을 받되 초라함에서가 아니라 화려함과 부유함 속에, 두려움이 아니라 안전한 바로의 궁에서 그것도 그 부모가 돈을 받아가며 키우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자기 자식 키우면서 돈 받아 가며 키우는 부모는 모세의 부모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큰 은총이요 축복인가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자식을 기른 부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요 보상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르헨티나 전직 대통령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미국, 캐나다가 있는 북아메리카는 번영하는데 우리나라가 있는 남아메리카는 빈곤을 면치 못합니까?” 그러자 그가 답했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황금을 찾아 이 남아메리카로 온 반면, 북아메리카의 조상들은 신앙을 찾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신앙을 따라 사는 부모의 자녀들은 복이 있습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물질의 부모 보다 믿음의 부모가 됩시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최선의 행위를 가지는 부모가 됩시다. 그러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 부모의 믿음의 행위에 은총을 내리실 것입니다. 자녀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부모 자신이 믿음의 부모로서 제대로 본을 보였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변해야 자녀도 변한답니다. 아빠가 1% 변하면 자녀는 10% 변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먼저 온전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는 큰 축복이 되도록 그리 사십시오.
 
    신앙인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길러 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그 복은 그 자녀들에게 돌아옵니다. 그 복이 어떤 복인 줄 아십니까? 애매하지 않습니다. 아주 구체적입니다!
 
    시112편의 증언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여러분의 자녀손이 복을 받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부모로 인해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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