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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의 부활절"
2018년 04월 11일 (수) 15:06:24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요20:19-29)
 
     1.
    오래 전 뉴욕신학대학 박사원에서 공부할 때 인도를 열흘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인도는 힌두교 국가라 교회 십자가는 별로 못 볼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남 인도 지역에서 많은 교회를 보았습니다. 특히 방갈로(Bangalore) 도시에는 곳곳에 십자가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갈로 보다 더 서남쪽 해안 방향으로 가면 ‘케랄라’라는 주(州)가 있는데,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은 지역으로, 이 지역에는 교회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힌두교 국가에서 웬 교회들인가 했더니, 성 도마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라고 합니다.
 
    인도에 웬 도마교회일까요? 전설에 의하면 도마가 이곳 인도에 와서 순교했고, 그 위에 도마 교회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확실한 사료(史料)적 근거는 없으나, 남 인도 교회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도마가 그곳에 와서 순교했다고 믿고 있었고, 그들의 교단 이름이 성 도마 교단이었습니다.
 
    역사에 기록도 없이,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해서 인도까지 와서 외롭게 선교하다가 순교했는지 모를 도마! 그런 위대한 선교사 도마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요? 복음서에 나타나는 도마는 회의론자(懷疑論者)로 나타나는데, 어떻게 그런 자가 순교자 도마로 인도 교회를 세웠을까요? 오늘 성경이 그 변하는 도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날’은 안식 후 첫날,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모인 모습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 날 제자들은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곤 저녁에 모였는데, 문들을 닫았다고 합니다. ‘문들’이라고 복수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문과 창문, 그 집안에 있는 문이란 문은 다 걸어 잠갔던 모양입니다. 그러고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몇 여인들은 하루 종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 여인들에게도 예수님의 빈 무덤 충격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곧 여기저기에서 자기들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여인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행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 숨어 지냈고, 밤에 모일 때도 두려워서 문들을 모조리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만나면, 제자 아니라 사도라도 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그에겐 기쁨과 능력, 제대로 된 신앙의 힘이 있지, 그렇지 않을 때에는 세상이 무서워 언제나 문을 걸어 잠그고 삽니다.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따진다면 야 제자들만큼 받은 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안다고 한다면 그들 보다 더 많이 알 성도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두려웠고, 무식하다던 여인들은 세상이 만만하였습니다. 왜? 부활하신, 살아 계신 예수님을 여인들은 만났고, 제자들은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설교를 들어 왔음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두려워집니다. 그러나 말씀 속에서, 실생활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세상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곤 첫 마디, 뭐라고 하시는가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이들에겐 이 평강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3.
    이렇게 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축복으로 두려움 속의 제자들은 비로소 평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이가 없었습니다. 도마! 도마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정황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위험한 예루살렘을 향해 가자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도마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요11:16) 예수님과 함께 죽자고 했던 도마가 예수님이 체포당할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쳤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그는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렇게 당당하게 말했던 자신을 지켜본 동료들을 만나는 게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와 상황이 어떠했든지 간에, 도마는 주일날 믿음 공동체에 있어야 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주일 성수는 해야만 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무너집니니다. 도마보다 더 머쓱했을 제자가 베드로입니다. 바로 3일 전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으니 얼마나 동료들을 볼 면목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회복이 됩니다.
 
    주일 예배에 충실 하십시오. 주일 예배 빼먹기 시작하면, 자신의 신앙을 지탱해 주던 심지가 부실해 지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으로는 다 이해하고, 안다 해도, 마침내 그 심지가 부실해지면 쉽게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일 예배, 주일 성수에서 참 신앙이 시작되고 지탱됩니다.
 
    이렇게 주일 예배 공동체 모임에 빠지니까 도마는 부끄러운 소리도 태연히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나흘 뒤부터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들은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어떻더라, 저떻더라 하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부활의 기쁨이 충만한 곳에서 아이들 말로 초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들 ‘할렐루야!’하는 그 자리에 찬 물을 쫘악 끼얹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지 않고는, 자기가 만져보지 않고는,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세상 만물이 다 자기가 중심이고, 자기가 직접 확인한 것만을 믿겠다는 자세입니다.
 
    4.
    그런데 1주일 후, 다시 제자들의 공동체, 그 모임에 찾아오신 예수님, 다짜고짜로 도마를 찾으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러자 도마가 얼마나 놀랬는지 곧바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 예수님의 태도가 얼마나 진지했던지 만져보지도 못했습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고, 다급했던지 그냥 그대로 예수님을 향해 고백한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믿음 공동체, 제자들의 모임에 찾아오셔서는 다짜고짜로 도마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도마의 투덜댐을 들으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교회 내에서 하는 말들, 무심코 내뱉는 말들을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무심코 한 마디 툭 던지는 것이지만, 주님은 반드시 그것을 기억하십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말3:16) 피차에, 서로 한 말들을 주님께서 들으신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말2:17)
 
    말로 하나님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답니다. 세속적인 말로, 비신앙적인 말로, 은혜 없는 말들로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케 하고, 괴롭게 하는 이들이 있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 우리가 그랬습니까하고 딴전을 피운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주님이 들으신답니다!
 
    도마가 그랬었습니다. 모두들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기뻐하고 감사하는데 혼자 ‘말도 안 돼!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나? 무식하기는...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결코 믿을 수 없어!’했습니다. 이에 일주일 만에 찾아오신 예수님, 다짜고짜로 도마를 찾습니다. 그리곤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말씀에 도마는 당황 하였습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이렇게 고백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정도의 신앙고백이면 예수님의 평상시 성품으로 볼 때 칭찬 또는 격려해 주실 만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요? 2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칭찬이 아닙니다. 뭔가 아쉬움을 표하고 계시는 겁니다. 부활의 주님, 우리 예수님을 아쉽게 한 그게 뭔가요?
 
    5.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며 제일 중요한 것은 뭔가요? 아니, 내가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중시하시는 것, 주님께서 내게 반드시 있기를 원하시는 것, 그게 뭔가요?
 
    믿음입니다!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b)고 까지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도 증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성도는 믿음을 키우는 일에 더 힘을 쓰십시오. 믿음을 키우는 역사에 더욱 참여하십시오. 똑똑해지는 모임에 힘쓰지 말고, 믿음을 키우는 모임에 적극 참여하십시오. 믿음을 키워주는 친구들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믿음 공동체에서는 똑똑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생활, 이렇게 시작했든 저렇게 시작했든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키, 열쇠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것도 믿음입니다. 내 믿음의 분량만큼 나는 하나님을 알고, 내 믿음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 이상은 알려줘도 모르고, 쏟아부어줘도 못 받습니다. 부디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 아십니까?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입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보고 믿는 것, 체험하고, 만져보고 믿는 것 보다 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저 성경을 통하여, 주의 종들이 전해주는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갖는 것, 그 믿음을 주님은 아주 귀히 보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우리 중에 예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습니다. 어떻게? 사도들이 전해준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고 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해 주는 것들을 우리는 모두 사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그대로 믿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보지도 않았고, 만져보지도 않았고, 체험해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사도들은 말이죠 이렇게 자신들의 체험을 말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그러나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직접 본 적도 없습니다. 만진 적도 없습니다. 다만 전해오는 증언, 말씀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믿음은 성령의 직관, 감동의 순간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들은 설교, 읽은 말씀, 간증들을 통하여 믿음의 자료들을 쌓아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 성령의 감동 속에 ‘아!’하는 때가 옵니다. 그동안 믿어지지 않던 것들이 전부 순식간에 믿어지는 그 때, 그 순간이 옵니다.
 
    아이들에게 왜 교회 가라고 그러는가요?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철부지들에게 왜 자꾸 교회가라 하는가요? 교회 가봐야 설교도 못 알아듣고, 제대로 이해도 못할 것은 뻔한데 왜 그리 교회 가라 교회 가라 하는가요?
 
    어릴 때부터 교회에 출입하며 익숙해져 갑니다. 알게 모르게 배워갑니다. 말씀에 접해 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성령의 역사로 ‘아!’하는 순간이 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심이 느껴집니다. 지금 자기 옆에 계심이 느껴집니다. 뒤에서 자신을 껴안고 계심이 느껴집니다!
 
    신앙을, 믿음을 논리적으로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론 신앙은 직관의 세계입니다. 어느 순간에 ‘아!’하고 깨닫고 통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준비하는 것입니다. 관심을 갖고 성경을 읽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신령과 진실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 설교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뭘 말씀하시려는가 하는 기대감, 하나님의 영, 성령의 운행과 역사를 신뢰하는 자세, 등등의 준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전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많이 가르치셨다는 뜻입니다. 생전에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역사가 일어났는데도, 부활이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긴가 민가 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중심이 정말 하나님께로 향한다면, 믿음을 갖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 생활, 예배 생활을 제대로 한다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보지 못하고도, 만져보지 못하고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도 믿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한 사도들보다 더 훌륭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이 중요한 것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믿음을 중시하십니다.
 
    6.
    오늘은 도마의 부활절, 남들보다 한 주간 늦은 부활절입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이러저러한 논리를 대며 믿을 수 없다던 도마가 드디어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순교자 도마로 거듭난 부활절입니다.
 
    그러니까 도마의 부활절은 고민하는 제자를 못 본체 하지 않으시고, 못난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찾아와 주신 극진한 사랑의 부활절입니다. 한 마리 양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 믿음을 주시는 지극한 주님의 사랑이 담긴 부활절입니다. 늘 의심하던 회의주의자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도리어 순교자로 만들어 주신 능력의 부활절입니다.
 
    도마의 부활절, 비록 한 주일 늦었지만,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보지 못하고도 성경의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예수님을 확신하는 그 믿음, 그 믿음에 생명의 권세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이 믿음의 권세가 더욱 충만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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