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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보다 강하나이다
2018년 02월 13일 (화) 16:32:28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시142 : 1~7)
 
내 영혼이 연약할 때에 주님은 내 갈 길을 아십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짖으니, 내게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시편‬ ‭142: 3, 6‬ ‭RNKSV‬‬
 
1. 1~ 4 다윗이 하나님께서 애소함
2. 5~ 7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
 
  이렇게 인생이 아름다운 일도 있는데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일도 있지요 때때로 나의 존재와 본질과 관계없이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고 나를 비난하고 그래서 어려움을 겪는 때도 있지요.
 
  없다고하면 좋지만 그런 것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조차도 내 삶으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세상이지요 이런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존재의 용기라고 합니다
 
  폴 텔리하 신앙이라는 것이 용기이거든요. 내가 부정하는 것도 내 삶으로 끌어안은 것이지요.  이것도 내 삶의 일부이지요. 남들은 저런데 비애감만 쌓여 가지 내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지 않아요. 덥썩 내 삶으로 품어 안는 것이지요.
 
  받아드리고  그 속에서 종종 이야기하지 않아요. 신앙은 연금술이다 보잘 것 없는 가지고 귀한 것을 만들어 내지요. 믿음의 사람은 그런 귀한 것이 있어야 해요. 내게 다가오는 악조건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선한 조건으로 바꾸어 능력이 있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주 원통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모처럼 이 시의 물론 이제 제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142편 옆에 다윗이 굴에 있을때에 지은 마스길 그렇게 되어 있지요.
 
  다윗이 굴에 있을 때 상황이었다
  마스길 밑에 주를 보면 교훈 마스길 곧 기도이기도 하고 교훈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스길의 뜻이 정확하게 다만 교훈 그렇게 세기는 것이지요.
 
  옛말이기 때문에 그 어원을 찾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이 시의 저자가 제사에 의하면 다윗이지요. 우리는 시를 공부하면서 보았습니다. 꼭 그 사람이 저자가 아니더라도 이 시가 어떤 상황 속에서 만들어 질까 그것을 성서 이야기와 관련 시켜 보다가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겠다 그래서 서기관들이 제목으로 다윗이 굴에 있을 때 시의 맥락과 맞겠다 이렇게 보았다는 말이지요.
 
  다윗이 굴에 있었을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지요.
  사울에 쫓길 때 한 몇 차레 있었거든요. 압살롬에 도망 갔을 때
 
  우선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거인 장수인 골리앗을 죽이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래를 지어서 다윗을 찬미합니다.
 
  다윗이 영웅이지요. 삼상 18장 1절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 사울은 불편한 것입니다.
 
  이제 막 등장하고 있는 젊은 장수 에게로 국민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고 내가 뒷전으로 밀려 난 것 같고 굉장히 드러내 놓고 그러나 애를 그만 두면 안 되겠고 이런 상황이지요.
 
  그러니까 인간 관계가 틀어지면 맨 먼저 무엇이 틀어진지 아시지요. 눈빛이 살짝 틀리다.
  내가 그의 존재를 마음속에 받아 드릴 수 없을 때 눈을 마주 바라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은 예민해 다윗도 알아차리지요.
 
  아 이제 도망가야 되겠구나 도망 가는데 블렛 7족속 가운데 하나인 가드로 피신을 갑니다. 가드의 아기스 라는 사람들인데 아기스는 젊은 용장으로 받아 드리고 싶어해요. 신하들이 이렇게 빼어난 장수 내부적 반란을 저 다윗이 없에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거기에서 위험을 감지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삼상 21: 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미친척 합니다. 수염에 춤도 묻히고 미친 척 합니다. 비극적이지요.
 
  그리고 다윗이 도망을 갑니다. 그러니까 아기의 의구심을 물리치고  빨리 피신을 해요. 그래서 찾아 간 곳이 아둠람이라는 굴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통 스러운 시기이지요. 자기도 원하지 않았는데 역사의 전면에 끌려 나왔고 골리앗과 싸우리라고 예측을 안 했지요.
 
  그 결과는 달아나는 것이고 미친척 해야 되고 굴속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굴에 다윗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삼상 22: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 이었더라.
 
  그들을 성경은 환난 당한 모든자 원통한자 다윗의 상황하고 맞지요. 그러니까 한 체제 속에서 내몰린 사람들 그래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살 수 없고 내 몰린 자리가 아둠람이라는 굴이지요.
 
  그런 자리에 사람들이 찾아와요. 고통 스러운 시기이지요.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훗날 다윗왕의 측근들이 됩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됩니다. 여기 원통한자 빚진 자 환난당한 삼상 22: 2  사백명 가량이 모입니다. 그렇지요. 다윗의 세력이 됩니다. 그래서  외부 침입한 것 막아주고 지주들 보호해 주기도 하고 대가 받기도 하고 그래서 공동체를 꾸려 가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또 다시 피신을 합니다. 엔게디 광야에 있는 엔게디의 굴 속에 들어가요. 군대를 이끌고 찾아 옵니다.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깊은 곳에 있었거든요. 사울이 용변을 보고 싶어 가지고 굴 속에 들어와요. 다윗이 삼상 24: 4 그 옷자락을 차마 기름 부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나중에 그 옷자락을 보이는 것이지요.
  삼상 24: 11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이것이 이 시를 기록했던 편집했던 서기관이 다윗의 어떤 시절을 염두에 두고 다윗이 굴에 있을 때라고 이야기 한지 모르나 다윗의 어두움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시가 우리에게 가장 힘겨운 처지 인간의 땅에서 쫓겨나서 굴속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그런 고통 스러운 상황속에 바라볼 수 있는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 이 시의 내용을 이룰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1~ 4 다윗이 하나님께서 애소함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며 소리를 탁 내는 것이어요.
 
  2절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 도다.
  여기 내가 내가 이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문장을 쓰는 사람들은 한 문장안에 주어를 몇 번씩 사용 안 합니다.
 
  우리 말은 주어를 생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말은 주어를 생략해야 우리 말 다워 집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 러브 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합니까? 사랑해 주어가 생략되지 않아요.
 
  그래야 사랑 고백 답지 않아요. 우리 말은 주어를 생략해야 우리 말 되어 질 때가 많아요. 내가 내 영혼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알아 달라고 하는 것 보다도 너무 고통스러워 내 고통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스스로 겪고 있는 의지가 될 수 없는 사람을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반복되는
 
  2절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원통함이라는 게 나는 억울해요.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내 진심을 곡해해 가지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한다고요 토로하며 그의 앞에 토로하는 것이지요.
 
  겉으로 드러나게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우는 근심 우자 환도 근심환자입니다.
  환이라는 글자가 가운데 가운데 중자 두 개가 겹쳐진 것 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마음 심자가 있어요. 마음의 중심이 탁 갖추어 져 있으면 충인데 마음의 중심이 하나가 아니고 나누어 져 있으면 병이 되는 것이지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그러니까 귀신들림을 이야기 할 때 귀신이 들렸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 마음속에도 귀신이 들어오면 주체가 둘인 것이지요. 찢겨 있는 상태 갈라진 상태 이것이 병이지요.
 
  병으로부터 갈라졌던 마음의 중심이
  우환이 내게 있다고 말하는 데 근심이 있고 근심 병이 될 정도가 우환이지요. 이것은 괴로움이어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병이 들 지경이 되었습니다고 말합니다.
 
  원통함과 억울함 우환이 커지면 마음에 원한 감정이 생깁니다. 내가 받을만큼 되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데  그것도 원한 감정이지만 리체라는 사상가가 도덕의 계보라는 책에서 그 원한 감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르상 티망이라는 말을 쓰는 대 누군가에 대한 분노 쌓이고 르상 티망이라고 하는 대요.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원한 감정 그러는데 우리는 원한 그러면 누구를 없에고 싶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
 
  리체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르상티망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의 특생은 그는 솔직하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고 그의 영혼은 곁눈질을 한다 눈치 보는 것이야 내 속에 원한 분노 이런 것이 쌓이면 사람들은 누구를 직시하지 못해요.
 
  그리고 그의 정신은 은닉처와 뒷문을 좋아한다. 이것이 르상 티망에 사로 잡힌 자의 특징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의 상황은 르상티망의 직전의 상황이어요. 샇이고 쌓였어요.
 
  다윗의 상황도 그리 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런 고통이어요. 그가 르상티망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부르짖음에 대상이 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주는 분이 있는 것이지요.
 
  1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어
  여호라고 하는 부르짖은 대상이 있습니다. 부르짖음의 대상이 있었기에 르상 티망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어 그래서 곁눈질 하고 눈빛이 흔들린 사람들의 특생이 곁눈질이지요. 남의 눈치 보고 뒷문 좋아하고 은닉쳐 좋아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그런데 부르짖는 것이야
 
  그래서 자기의 우환과 자기의 원통함을 토로하고 그의 앞에 이야기 하고
  3절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했다고 하는 이 말은 영어로는 오버 램 압도 되다 내 영혼이 무엇인가에 짓눌려서 압도 된 상태 내 영이 꼼작 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내 몰렸어요. 내 영이내 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빠진 무력한 상태 그런 상황 속에 있었는데 시인이
 
  3절에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버림 받는 것 처럼 느껴졌어요. 세상 천지에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다 사라져서 진액이 쏙 빠져 나간 것 같은 상태야
 
  그런데 주께서 나의 길을 아신다. 참 빛나는 전환이지요.   그 속에서 주님을 떠 오릅니다. 갑자기 그래서 창세기 이야기 보면 1장 2절 혼돈과 어두움이 깊이 잠겨 있는데 빛이 있으라 빛이 나오지 않아 그 이야기입니다.
 
  내 영혼이 꼼짝 달싹 주님이라는 빛이  비추었던 것이지요.  잠언에 핵심 구절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그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지나놓고 내 인생이 길이 없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정말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어두움을  마틴 루터도 믿음이라는 것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걸음도 내 딛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이게 믿음이어요. 내 갈길이 어떻게 될 지 몰라 한 걸음 내 딛어
 
  70년대입니다. 그 때에 시대의 문제 때문에 괴로움이 많았어요  내 영혼에 어두움이 찾아 왔는데 꿈 속에 찾아 와서 미스타 김이 앞이 안 보일 때는 먼 앞을 보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바로 한 걸음 앞을 보고 진행해 이랬어요.
 
  즉시 일어났어요. 따지고 보니까 인생의 어두움을 만났을 때 앞이 안 보이지요. 우리가 하던 일 내 앞에 한 걸음을 충실히 내 딛기 시작해 그러면 길이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어것
 
  3절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믿음은 그래서 늘 말하지만 신뢰입니다. 찬송가 493장인데에 내가 염려하는 일이 세상에 속에 근심 밖에 예수 보배로운 피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나는 이 길인지 몰라 한 걸음을 내 걷다 보면 그것이 내 길이 되고 그것이 실존의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여기 3절 하반절에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는 걸림돌을 놓은 사람 하나는 걸림돌이 될만한 것을 치워 주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걸림돌을 치워 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적대 했던 사람들은
  저는 우리 교회에  파송사를 할 때 사람들 앞에 걸림돌을 치워 주면서 살아라 네가 걸림돌을 놓는 사람이 되지 말고 치워 주면서 살아라
 
  내가 걸림돌을 치워 주는 것을 그가 모를 수도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3절 그들은 올무를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음이라
  4절 나의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철저한 외로움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홀로됨이라는 게 이게 외로움이지요. 외로움이어요. 우리는 외롭지 않기를 원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면 캄캄한 집에 들어가면 쓸쓸하지요.
 
  맨먼저 하는 것 습관적으로 하는 게 텔레비전 켜고 누군가가 있어야 해요. 정말 절망에 빠진 사람은 홀로됨의 시간 외로움의 시간이라는 것은 오히려 어떤 길로 우리를 인도하느냐 하면 내 인생이 무엇이지 나는 왜 사는 것이지 그런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이것을 여러분 인생의 의미 물음  나는 무엇이지 내 존재는 무엇이야 내가 왜 사는 것이야 나는 누구인가
 
  그런데 그 질문이 내 삶을 본질적인 것 앞으로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그 질문 앞에서는 빛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된다는 것은 외롭지만 우리의 삶속에서 불 필요한 것들을 떨쳐 내는 역할들을 하게 되지요.
 
  판화가 가운데  이철수 선생님이 계셔요. 가을이 되어서 땅콩 수확을 한 것입니다. 줄기를 이렇게 들었는데 잘 여문 것이 줄기에서 떨어져요. 그 선생님이 거기에 무엇이라고 썼느냐 하면 땅콩을 거두어 드렸다 덜 여문 놈일 수록 붙어 있는 것이지 그래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덜 떨어진 놈
 
  약간 덜 된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는데 놓아야 될 때 놓지 못하는 것 그런데 재미있지요. 가을이 되어 가지고 나무 잎이 떨어지지 않아요. 이렇게 그래서 물관부에서 잎으로 가는 수분 같은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혀가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거든
 
  나무의 겨울나기여요. 이 잎으로 수액이 다 올라가면 죽어요. 얼어 죽을 수 밖에 없어요. 떨어져야 되어요.  떨어질 때 안 떨어지는 놈을 보면 덜 떨어지는 놈들이 있지요.
 
  세상에 그러니까 우리 덜 떨어지지 맙시다. 알밤도 때까 되면 떨어지지 않아요. 불교에서는 낙엽이 떨어져서 방하착 붙잡았던 것 놓은 것이야 놓을 방 놓는 것이어요. 아래로 떨어지는 것 그것을 잘해야 되어요
 
  여러분 홀로됨의 체험이라고 하는 것t은 내 존재에 물음으로 이끕니다. 중요하게 중요한 것임을 알게되고 그렇지요.
 
  비근한 예로 갑자기  내가 병들었어 시한부 인생이 되는 것이야 그러면 이전에 내가 애착하고 있던 것들 별 볼일이 없어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그가 더 소중한 것이야 인생이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알게 되지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4 내 우편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내  영혼을 돌보는 이 그 없음으로 인해 그 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하셔요.
 
2. 5~ 7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니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나를 든든하게 세워주지 못하지만 주님앞에 아까 이야기 한 대로 존재의 용기가 내 속에 내가 상실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큰 상실이 아니어요 내가 근본적으로 이것이 피난 처지요.
 
  그것만이 그분의 마음속에 접속하고 나니까 내 생이 괜찮은 것이야 내가 악인들에 속하지 않은 그것 만으로도 든든한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5절 주님은 나의 분깃이라고 레위 지파 사람들은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했지요 하나님이 레위 지파 사람들의 분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내게 할당된 소중한 몫입니다.
 
  이 시인은 고통 속에서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 여호와은 나의 분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7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1절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지요. 나는 비천합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살만해졌어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적대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합니다.
 
  6절 그들은 나보다 강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불의와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입니다.  이게 내 경험이기도 합니다. 선을 행하려는 사람들 보다 악을 행하려는 사람이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 공부 시간을 통해서  착하게 사는 것이 더 쉬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착하게 사는게 참 어려워 쉽지 않아요.
 
  반편 취급하고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이런 세상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어요.
 
  종교개혁 기념 주일이 지나갔습니다 마는 루터의 찬양 내 힘만 의지하며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내 힘을 의지하면 패할 수 밖에 없어요.
 
  이 시인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저들은 우리보다 강하지만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린도 후서 4: 8~ 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어요. 우겨쌈을 당합니다. 답답함을 당합니다. 거꾸려 트림을 당합니다. 나는 안 넘어져 믿음은 무엇이어요. 자기 속에 기둥을 하나 세운 것이다. 안 넘어져요. 이런 일이 있지만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인의 소망은 7절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이 옥이라는 것은 물리적 감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로 잡고 있는 두려움  그들을 과대 평가하려는 내 마음 옛말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먼저 맞는 매가 낫다고 무엇이냐 하면 누가 맞는 것 보면 더 공포 스럽고  그러니까  학교에서 군대에서 폭력이 없어야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마는 그런데 먼저 맞으면 마음이 참 편해 나는 지나갔지 않아요.
 
  왜 매 맞는 이야기를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소서 여기에서부터 내가 해방되기를 소망한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오면 나를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풀려납니다.
 
  내게로 오면 당신의 종교적 사명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눌린자에게 자유함을  주는 것이어요.
 
  그렇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무엇이냐 하면 상황이 변화가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하더라고 속박으로부터 주께서 그렇게 하실 이 시인이 하고 싶은 것은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탄식으로 시작해서 감사로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살게 될 때 7절 의인들이 나를 감싸 줄 것입니다. 시인의 상황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상황을 떠 올리게 되었고 하나님이 피난처이고 나의 분깃이다고 고백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들이 나보다 강한 것은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서 결국은 이 모든 상황이 지나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의인들이 나를 불러주는 새로운 소망이 오게 됩니다.
 
  내 속에 캄캄한 어둠속에 우리 속에 다가오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길 수 있지요. 그 능력으로 든든히 설수 있으면 좋겠네요.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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