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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그의 몸이니"
2018년 02월 07일 (수) 07:55:47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엡1:23)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1.
     결혼 10주년 기념일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그러나 남편은 감도 못 잡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시 말합니다.
 
     “당신, 우리가 이 똑같은 자리에 10년 동안이나 같이 앉아있다는 걸 알아요?” 이렇게 힌트를 주는데도 남편은 아내를 쳐다보며 그랬답니다. “그래서, 이사를 가자는 얘기요, 아니면 자리를 바꿔 앉자는 얘기요?” 이런 남편을 간 큰 남자라고 한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우리 교회 생일! 몇 번째 생일? 113회! 113년 전, 이 왕십리에 구원의 빛을 비추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
     며칠 전에 영국 주재 외교관으로 있다 탈북한 태영호 공사의 간증 내용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그 내용 중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1960년대까지, 남한 보다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차차 남한이 더 잘 살게 되자, 남한의 교회와 목사님들이 앞장서서 통일 운동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김일성은 남한의 교회와 목사들을 이용하려고 하였으나 그 때까지 북한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공산당은 교회를 모조리 파괴하고, 믿는 이들을 다 숙청하였기에 공개적으로 북한에는 교회와 성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고민하다 보여주기 식 가짜 교회를 급조해 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봉수교회였습니다. 봉수교회 교인들은, 평양에서 가장 성분이 좋은 공산주의로 무장한 간부 부인들로 약 200명을 임명했답니다.
 
     그런데 임명 받은 가짜 교인들은 교회 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온갖 핑계를 대며 결석했습니다. 그러자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출석부였습니다. 출석하지 않으면 당과 수령님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자아비판을 시켰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어느 날부터 교회에서 출석부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나오기 싫어하던 성분 좋은 간부 부인들이, 예배 두 시간 전부터 미리 교회에 나와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그들의 얼굴이 행복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걸 보고 태영호 씨는 겁이 났습니다. 저러다가 진짜로 예수 믿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 중 몇 사람을 붙잡아 강도 높은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 예수 믿지? 바른대로 말하라우.” 그러면 모두들 “우리는 예수 믿지 않습니다. 오직 당과 수령님을 위해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뿐 입니다.”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주일날 11시가 되면 교회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봉수교회는 시내에서 떨어진 외진 언덕 위에 있답니다. 처음에는 10여명 정도가 교회 주변을 서성거리며 교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걷고 어떤 사람은 앉아서 멍하니 교회를 바라보고 있고,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주일 11시가 되면 사람들이 100명, 3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12시가 지나면 희한하게도 한 사람도 없이 다 사라졌습니다.
 
     태영호 씨는 그 중에 한 사람을 붙잡아 조사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믿는가?” 그러자 그 여성이 이렇게 자백하더랍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비록 내가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더라도,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설교를 듣지 못하더라도, 나는 교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저는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40년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렇게 울면서 대답한 여인은 성분 좋은 간부 부인이었답니다. 태영호씨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영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잘 섬기고 있답니다.
 
     보여주기 식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그 얼어붙은 땅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는가요?
 
     3.
     교회, 누가 세웠습니까?
 
     성경에 교회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마16장인데, 16:18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은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교회의 창립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터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이 신앙 고백 위에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교회란 말은 무슨 뜻인가요? 히브리어로 “꽈할”이란 단어가 있는데, “시민들의 정기적인 집회”를 말하고,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란 단어를 쓰는데, “불러내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원적으로 교회란 “세상으로 부터 불러낸 하나님 나라 시민들, 그리스도인의 정기적인 모임”이란 뜻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세상의 모임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세상의 관습과 버릇, 습관, 계급이 그대로 들어오는 세상의 서클이 아닙니다. 이곳은 하나님 나라 시민들의 거룩한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에 나와 예배하며 사귐을 갖는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다운 말을 하며, 행동을 하며,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내가 우리 교회 부임하기 직전에 섬기던 교회는 한 가정과 어느 직장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교회였는데, 그 교회에서 목회하며 유난히 어려웠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교회 내에서 서리집사인 이사장을 부를 때 ‘집사님’이라 하지 않고, ‘이사장님’,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또 다른 직장일 뿐입니다. 그 회사 직원이 아닌 이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집에서 조차 차별된 공동체에서는 결코 성령의 하나 되는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순수한 신앙인으로 서로를 만나고, 아무리 역사가 오래 되었어도, 교회의 전통 운운 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주님 나라 세움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지, 교회에다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4.
     조금 더 교회에 대한 생각을 좁혀봅시다. 오늘 본문은 교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에선 만물(萬物), 충만(充滿)이란 단어가 반복되어 무슨 말인지 선뜻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수식어를 빼어 버리고 앞의 단어와 맨 뒤의 단어, 주어와 동사만 보면 “교회는 ..... 충만함이니라”가 되고, 무엇이 충만한가를 알기 위해 바로 앞의 단어, 수식어를 붙여 보면 “교회는 ......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가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 곧 그리스도가 충만한 곳입니다.
 
     교회는 충만한 곳입니다. 말씀, 은혜, 사랑, 능력, 권세, 섬김, 축복, ... 모두 충만한 곳입니다. 온 세상 만민이 다 와서 만족하리만치 얻어도 남음이 있는 충만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충만충만케 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할렐루야!
 
     전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 사람에게서 삶의 의욕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 하나 생명력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눈에도 생기가 없는, 거 뭐라고 합니까, 동태눈이라고 하나요? 그런 눈이고, 얼굴엔 핏기도 없고, 축 처진 어깨, 흐느적거리는 팔과 다리, 목표 없는 걸음걸이, ...
 
     교회도 슬프게도 이런 교회가 있습니다.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고, 예배에 감격도 없고, 새로운 교인이 들어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그런 무의미하고 기계적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만물을 충만케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강한 생명력, 생동력, 창조력을 보여주는 단어인가요? 이렇게 모든 것을 충만케, 생동감 있게 하는 분이 교회에 충만하다고 하는데, 이와 정반대의 굳어버린 모습, 나약한 모습을, 패배주의적 모습을 교회가 하고 있다면 병든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감격, 무언가 넘치는 생동력,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정말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생명력, 삶의 윤기가 흘러야 합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크지 않은 교회이지만 이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뜻과 사랑, 생명, 창조성, 능력, 파워가 충만한 그러한 교회인 줄 믿습니다. 종종 강사로 오시는 목사님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왕십리중앙교회는 뭔가 느껴지는, 충만한 교회 같다고. (결코 내 몸을 쳐다보며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어떠한 이가 찾아와도 원하는 것을 충만히 얻는 충만한 교회인 줄 믿습니다!
 
     5.
     자, 그러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통일성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고전12:27이 증언합니다.
 
     현재 왕십리 중앙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서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입니다. 잘나고 못나고 할 것 없이 주님께서 모두 필요해서 붙여 놓으신 지체입니다.
 
     몸은 지체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강건하려면 그 지체인 우리 각자 각자가 강건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성령 충만, 사랑 충만한 교회, 정의로운 교회가 되려면 지체인 우리 각자가 성령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해야 하며, 정의로와야 합니다. 자신은 충만하지 않고, 자신은 사랑하지 않고, 자신은 희생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고 말만 그렇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남이 수고해서 그런 교회가 되면 자신도 덕 좀 보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먼저 지체가 그렇게 되어야 그 지체들의 집합체, 교회는 그렇게 되는 법입니다.
 
     아울러 지체인 우린 서로 무심할 수 없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우린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바디(one body!)입니다. 그래서 무관심할 수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다른 모든 부분이 건강해도, 그 사소한 발가락이 다치면 온 몸이 아프지 않은가요? 다른 모든 장기(臟器)가 건강하게,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나 같은 것은 쓸모없으니 죽어야 해’ 하며 맹장이 좌절하고 썩어 들어간다면 모든 부위가 위험해 집니다.
 
     우리 교회에 불필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린 모두 필요한 이들입니다. 없어지면 모두가 그리워하는 지체입니다.
 
     혹 어떤 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구요. ‘목사님이 나를 알까?’ 다 압니다! 눈에, 마음에 다 들어옵니다.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얼굴이 밝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나..?’, 고개를 떨구고 있으면 ‘왜 그럴까...’ 가슴이 철렁해 집니다. 나는 여러분을 압니다.
 
     둘째, ‘교회는 그의 몸이니’하는 말씀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해야 함을 말합니다. 엡1:22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몸에는 반드시 머리가 있고, 몸은 머리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 통치자로 모시고 그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외에는 어떤 인간의 권위도, 어떤 형태의 권력도 배격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인간의 잡음이 교회의 회중을 움직이고,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교회에 영향을 미칠 때, 그 교회는 발전하지 못하며 하나님과 세상으로 부터 버림 받는 비극을 면치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인으로, 머리로, 최고의 통치자로 모시지 않은 탓입니다. 모든 교회의 구성원은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 자신을 복종, 예속 시켜야 합니다. 자신의 권위, 욕망이 십자가 앞에 내던져질 때에만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충만한 복이 그 모든 지체에 임합니다. 우리는 더욱 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에 어떤 집사님이 나를 찾아와 누군가를 고발 합니다. 그 집사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께 그 분을 함께 정죄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다 듣고 그랬습니다.
 
     “맞아요, 집사님. 집사님 말씀이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을 미워하고 정죄한다면 예수님의 말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란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생각, 내 고집, 내 견해가 옳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나아간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심장은 어찌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판단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해야 하는 우리들 아닌가요? 자신의 생각에 순종하지 말고 예수님의 생각에 순종하십시오. 자신의 견해에 순종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게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셋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은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주님께서는 교회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시는가 하면,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답니다. 즉 교회를 위해 죽으셨답니다. 그 정도로 사랑하신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시고, 치료하시며, 도와주시고, 격려하시고, 인도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당할 때 가장 괴로움을 당하는 이는 그리스도십니다. 왜? 자신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몸인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며,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이 정말 교회의 지체를 이루고 있다면 마음을 놓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시18:8절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처럼 가장 소중하게 살피십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아픔, 주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 주님께서 모르시는 바가 아닙니다, 아십니다! 교회와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아픔을 다 아십니다. 그리곤 감싸 주십니다. 이 보호하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몸입니다.
 
     6.
     왕십리 중앙 교회는 그의 몸이니 ....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크지 않은 교회이지만 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고, 그 생명으로 우리는 살아가며, 우리가 충실하고 강건함으로 교회는 충실해지고, 강건해 집니다.
 
     그뿐 아니라 왕십리 중앙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고, 행하는 유기체이고, 그리스도께서 보호하시고, 살피시고,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왕십리중앙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이 때마다 일마다 왕중 가족, 여러분에게 더욱 더 충만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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