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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임마누엘"
2017년 12월 26일 (화) 16:48:52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마1:18-25)
 
1.
    Merry Christmas!
 
    몇 해 전 성탄 전날 , 어떤 사람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에서 기다리는데 , 한 술 취한 사람이 술병을 들고 걸어왔습니다 . 가까이 오더니 다짜고짜로 술병을 눈앞에 들이밀면서 물었습니다 . “당신은 ,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소 ?”
 
    순간 이 사람은 어떻게 대답해야 이 난처한 장면을 피할 수 있을까 하다가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 “그렇습니다 !” 그러자 그 술 취한 사람은 가만히 이 사람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고는 그냥 가 버렸습니다 . “인간아 ! 네가 복되도다 !”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을 믿어 이곳에 모여 예배하는 여러분 , 여러분에게 복이 있습니다 . 할렐루야 !
 
    2.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을 하였습니다 . 그런데 가만 보니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 애들 말로 요셉은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 이에 요셉은 동네방네 떠든 것이 아니라 , 조용히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 그만큼 요셉의 인품이 훌륭하였습니다 . 그런 어느 날 천사가 요셉을 찾아왔습니다 . 그리곤 마리아가 임신을 한 연유 (緣由 )를 알려주는데 , 그 말 중에 두 명칭이 나옵니다 . 그것이 바로 오늘 제목 , ‘예수 ’ 그리고 ‘임마누엘 .’ 자 , 지금 마리아의 몸에 있는 아기는 누군가요 ? 예수요 임마누엘 !
 
    그 뜻이 뭘까요 ? “예수 ”는 구약 성경에서 “호세아 ”, “여호수아 ”, “예수아 ”라 불렸고 , 신약성경에서는 “야손 ”이란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 어떤 의미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
 
    그러면 어디서 구원하신다는 뜻인가요 ? 구약 (舊約 )에서는 병이나 사고 , 두려움 , 원수로부터의 구출 등 현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 신약 (新約 )에서는 보다 신령화하여 죄에서 구원을 받는 영생을 의미하였습니다 . 그러니까 “구원 ”이란 뜻은 구약적으로만 , 또는 신약적으로만 해석해서 어느 하나만을 주장해선 불완전한 해석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의미는 죄에서의 구원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당하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 , 환난과 절망에서의 구원을 뜻합니다 .
 
    그러니까 내 삶의 고달픔 , 내 삶의 고통 , 오늘의 이 어려움 , 이 부대낌 , 여기서 나를 구원해 줄 이가 누군가요 ? 예수 ! 나는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난 죽어도 진작에 죽었습니다 .” 얼마나 삶이 힘들고 고달팠는지 , 예수 믿지 않았다면 그 고달픔 속에서 일찍 절망했을 것이란 뜻입니다 .
 
    몇 해 전 , 서울 노회 성서신학원에서 2 학기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 한 집사님이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 그 추위 속에 날 기다리고 서 있다가 날 보고는 대뜸 안수를 해 달랍니다 . 순간 무슨 뜻인가 싶어하는 나에게 , 잠깐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 금새 눈물범벅입니다 .
 
   불신 가정에서 자랐고 , 결혼을 했고 , 예수를 믿게 되었고 , 아이 둘을 낳았는데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혼을 당하였답니다 . 먹고 살기 위해 위탁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사는데 ,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증이 찾아들며 , 몸이 엄청 아프답니다 . 어린 아이 둘이 있는데 , 자기가 일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답니다 .
 
    그러면서 자신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라며 , 한 학기 강의 내내 ‘저 목사님께 안수 받으면 살겠다 ’ 싶은 감동이 찾아들었으나 , 용기가 없어서 말도 못 꺼내다가 마지막 강의가 끝났기에 용기를 냈답니다 .
 
    그 추운 날씨에 , 길에서 기도 해주었습니다 .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해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느냐고 ,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해 예수님은 그 좋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곳까지 찾아오시지 않았느냐고 , 바로 이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 이름으로 오시지 않았느냐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 다른 것을 몰라도 이거 하나 만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 이럴 때 나를 불쌍히 여겨 도와줄 이가 누군가요 ? 이럴 때 나를 긍휼히 여겨 구원해 줄 이가 누군가요 ? 예수님 ! 이 예수님이 바로 이런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
 
    나는 성탄절만 되면 묘한 느낌이 드는 이가 있습니다 .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군가요 ? 예수님 ! 그런데 세상에선 누가 주인공인가요 ? 산타입니다 . 그래서 산타가 성탄절엔 판을 칩니다 .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가 아니더라구요 . 며칠 전 신문 보니 ‘기쁘다 산타 오셨네 !’라고 하더라구요 . 세계 도처에서 아무런 저항감 없이 산타가 구세주처럼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닙니다 . 이 산타는 술집에도 , 놀이터에도 , 심지어 교회에도 , 그야말로 무소부재 , 없는 곳 없이 온 세상 어디에나 성탄절에 등장하여 돌아다닙니다 . 뭐 , 괜찮습니다 . 세상에서야 없는 거 보다 낫습니다 .
 
    그런데 산타는 누구에게 선물을 주는가요 ? 착한 아이 , 말 잘 들은 아이 , 웃는 아이 , 좋은 아이 ! 우는 아이에겐 ? 싸움 하는 아이에겐 ? 못난 아이에겐 ? 안 줍니다 ! 산타는 잘난 이에게만 가까이 갑니다 .
 
    사실 비교의 대상도 못 되지만 , 의미론적으로 볼 때 , 예수님은 못난이에게 가까이 가는데 , 산타는 잘난 이에게만 찾아갑니다 . 예수님은 삶이 버거운 이들에게 먼저 달려갑니다 . 혼자 살기 힘들어하는 이를 찾아가십니다 . 혼자 고통당하는 이 , 혼자 아파하는 이 ,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이에게 예수님은 찾아가십니다 . 그리고 그들을 그 아픔 ,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 그러기에 그 분의 이름이 ‘예수 !’, 구원자입니다 .
 
    3.
    그러면 ‘임마누엘 ’은 뭔가요 ? ‘임 ’은 ‘함께 ’, ‘마누 ’는 ‘마누라 ’가 아니라 ‘우리와 ’, 그리고 ‘엘 ’은 ‘하나님 ’이란 뜻으로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 이사야 7 장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 단어가 왜 여기에 나올까요 ? 임마누엘이 왜 ‘예수 ’란 이름이 주어지는 자리에 등장하는가 말입니다 . 많은 경우 , 오늘 본문으로 설교를 할 때도 , “예수 ”면 예수지 “임마누엘 ”까지 함께 동시에 설교되어지지 않습니다 . 아니면 “임마누엘 ”이면 임마누엘이지 , 같이 “예수 ”가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 언제나 이 두 단어는 따로 따로 설교되어지고 이해되어지곤 했습니다 .
 
    그런데 왜 같은 장소에 , 같은 장에 나오는 걸까요 ? 예수와 임마누엘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요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 그게 예수입니다 . 그런데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요 ? 그게 임마누엘입니다 .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구원하십니다 .
 
    이것이 구약 성경에는 매우 자주 , 뚜렷이 나옵니다 . 모세의 후계자 , 여호수아 , 큰 불안에 빠졌습니다 . 지도자가 되긴 했지만 , 이 큰 민족을 , 이 투덜대기 잘 하는 민족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요 ? 자기가 과연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요 ? 염려와 불안 ,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 그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 그 불안함에서 구원하여 주시는데 ,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수 1:5)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수 1:9) 무엇으로 구원하시겠다 ?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던 그의 선배 , 모세는 출 33 장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삐치신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들과 같이 가지 않겠다 . 가다가 너희가 또 범죄하면 내가 참지 못하고 다 죽일까 겁난다 ’하시며 다른 천사들을 붙여 줄 테니 너희들끼리 가라고 하시자 ,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 33:15)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가나안 보다 더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
 
    모세보다 한참 선배 , 요셉 ,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 칠 때마다 등장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 “여호와가 그와 함께 하매 !” 어려움에 빠져들 때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 무슨 뜻인가요 ?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구덩이에 빠지셨고 , 요셉과 함께 애굽으로 끌려가셨고 , 요셉과 함께 보디발의 집에 계셨고 , 심지어 감옥에도 있으셨습니다 . 왜 ? 그렇게 곤두박질하는 요셉을 붙들어주고 , 마침내 구원하기 위해서 !
 
    분함과 실망스러움 , 절망감에 격동하는 순간에 ,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붙드셨고 구원하셨습니다 . 그 심란한 마음에 평안을 주셨고 , 그 복잡한 마음에 찬송을 주셨고 , 그 욱하는 마음에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주셨습니다 . 그래서 마침내 요셉은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
 
    구약 성경에는 수도 없이 그들의 곤경함에서 건져주심을 표현할 때마다 ‘임마누엘 , 함께 하신다 ’고 증언합니다 .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 그러면서 나를 구원하십니다 . 아무리 저 높은 데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 하여도 친히 이곳에 내려와 내 곁에 서시고 , 함께 하시는 사랑이 참 사랑이요 ,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
 
    잘 아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 어느 청년이 한 여인에게 연애편지를 2 만 통이나 보냈습니다 . 얼마나 뜨거운 열정인가요 ! 그런데 이 여인이 정작 결혼한 이는 누구 ? 그 2 만 통을 배달해 준 우편 배달부였습니다 . 함께 하는 사람이 나를 구원해 줍니다 . 함께 하는 이가 정말 날 사랑하는 이입니다 . 저 멀리서 별 소리 다해도 소용없습니다 .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십니다 . 나를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 불안함에서 건져주시고 , 두려움에서 건져주십니다 . 그런데 어떻게 건져주시는가요 ? 저 높고 높은 하늘에서 말로 건져주시는 게 아닙니다 . 친히 이 추한 내 삶의 현장에 내려오셔서 , 함께 하시며 나로 하여금 견딜 것은 견디게 하시고 , 참을 것은 참게 하시며 , 구원하여 주십니다 . 내가 먹는 것을 먹고 , 내가 입는 것을 입고 , 내가 당하는 것을 함께 당하며 ,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 내가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 나의 어려운 처지와 형편에서 나를 붙드십니다 . 그리곤 마침내 구원해 주십니다 .
 
    4.
    예수 , 이 이름에 하나님의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 자기 백성을 다 구원하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 임마누엘 ! 함께 해 주심으로 그걸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는 이는 구원받지 못한 이입니다 .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조차 함께 하셨습니다 . 구경만 하신 게 아닙니다 . 고통 속에 함께 하십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의 삶에 전율이 일어납니다 .
 
    언제나 혼자요 , 이 어려움과 고통도 혼자 당하고 있다고 ,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 그래서 그 사실이 더 서글프고 화난다는 이가 있었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말씀 묵상 중에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 자기가 고통 속에 몸부림칠 때 함께 몸부림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 삶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내가 못할 일이 뭔가요 ? 거룩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 내가 내 멋대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 내가 가는 곳이 하나님이 가시는 곳인데 , 내가 추한 곳에 가 있을 수야 있습니까 ? 자신의 삶에 큰 깨달음과 변화의 힘이 찾아들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 성탄의 축복 ,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아기를 선물로 주셨는데 , 왜 주셨는가 하면 , 그 이름에 그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 예수 ! “구원하심 !” 뭐에서 구원하신다구요 ? 우리들의 삶의 모든 고통과 두려움 , 아픔과 고달픔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 죄책감과 죄의식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 더 이상 거기에 사로잡혀 불안하게 살지 말기를 원하십니다 . 예수님이 구원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 그 믿음에 구원 받음의 희열 , 기쁨이 찾아듭니다 .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구원하신다구요 ? 임마누엘 ! “함께하심 !”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나와 함께 하십니다 . 나에게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 내 곁에서 힘을 내라고 붙들어 주십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
 
    어느 교회에 청년 둘이 결혼을 하였습니다 .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목사님은 밤마다 전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 자매가 얼마나 겁이 많은 지 밤이 되면 혼자 집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래서 무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목사님께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
 
    그렇게 한 밤중의 전화벨 소리에 목사님은 1 년 가까이 시달리셨는데 , 곤욕이었습니다 . 목사님 눈이 퀭하였습니다 . 주례 서 준 죄 (罪 )로 그 시달림을 1 년 내내 당하셨습니다 .
 
     그러다가 이 신혼집에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는데 , 신기한 것은 그 뒤로 목사님 댁에 전화가 오지 않습니다 .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이면 오던 전화가 안 울리니 이젠 도리어 목사님이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이번에는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
 
    그랬더니 그 신부 왈 , 아이가 태어난 후론 아이와 함께 있어서 무섭지 않답니다 .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 생각해 보십시오 . 만약 무슨 일이 있어서 강도가 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 그 갓난아이가 무슨 도움이 되는가요 ? 강도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는가요 ? 엄마를 보호할 수 있는가요 ? 오히려 혼자 있는 것보다 아이가 있으면 몸을 피하기도 더 어려울 것입니다 . 객관적으로 보면 불리한 상황인데도 오히려 든든해합니다 .
 
    이것이 함께 하는 힘입니다 . 온 세상을 다 얻어야 든든한 거 아닙니다 . 사랑하는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든든합니다 . 온 세상을 다 얻어야 행복한 거 아닙니다 . 나를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만 가까이 있어도 행복합니다 . 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니 ? 이 사실만 제대로 깨닫는다면 , 제대로 느낀다면 그에게 두려운 일이 뭐가 있을까요 ?
 
    이 함께 하는 하나님을 얼마나 느끼고 믿느냐가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이요 , 축복의 분량입니다 . 너희를 구원하고 ,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리라는 말씀에 대한 신뢰 정도가 여러분이 축복 받을 분량입니다 .
 
    5.
    예수와 임마누엘 !
 
    따로 따로 별개의 명칭들이 아닙니다 . 이 명칭은 하나입니다 .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되 함께 하심으로 구원하십니다 . ‘예수와 임마누엘 ’, 결코 ‘산타와 메리 (merry)’가 아닙니다 . “예수와 임마누엘 !”입니다 .
 
    구원해 주심 , 나와 함께 하심으로 ! 그 분은 내가 부족하다고 , 내가 추하다고 , 내가 함량 미달이라고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 내 안에서 , 그 더럽고 추한 내 안에서 , 비록 그 추함에 고통스러우시겠지만 , 그래도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 나를 붙드십니다 .
 
    그분이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 그 분께 경배하러 갑시다 .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분 , 이 부족하고 부족한 이를 위해 태어나신 분 ! 나를 구원하기 위해 , 그것도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붙드시기 위해 오신 분 ! 그 아기 하나님 ,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찾아가 뵙시다 . 예수와 임마누엘에 담긴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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