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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북한선교 (북한선교주일)
2017년 05월 27일 (토) 19:42:32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신8:10-20)
 
오늘은 6․25사변 67주년이고 총회가 정한 북한선교주일입니다. 6.25 상기예배는 아직도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조국이 반만 해방된 채, 분단되어 있고, 북한의 동포와 지하교인들이 저토록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요, 우리나라의 가장 급선무가 통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25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전쟁 이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북한 인명피해는 인민군이 52만, 중공군 90만, 한국군이 28만, 부상 70만, 유엔군이 4만, 부상 11만, 민간인 학살이 11만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문 타살이 24만, 납치북송이 8만, 행방불명이 30만, 강제 의용군이 40만 명 등이었고, 이에 따라 고아와 전쟁미망인이 수십만에 헤아리는 참극이었습니다. 어느 잡지에서 6․25의 비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한 내용을 소개했는데 1950년 7월 25일 서울이 수복되던 밤에 퇴각하던 인민군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6,831명의 수감자들을 총 한방 쏘지 않은 채 다섯 개의 우물에 강제로 처넣어 순장을 시키고 나머지는 쇠파이프로 때려 죽였던 것을 기적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이갑산이란 사람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마들이나 할 짓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남긴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고향과 식구를 잃은 채 통일의 날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천만이나 되는 것을 볼 때 이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나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을 즈음해서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지만 세 가지로 깨어 있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1. 우리 성도들은 감사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뜻 있는 분들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한 것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잔인한 압제 밑에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고, 모세의 10가지 기적 중에서 마지막 기적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집들은 사람이나 짐승의 첫째 것들은 죽임을 당하므로 완악한 바로가 마침내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준 것처럼 원자탄의 투하를 받고 일본 천황이 눈물을 흘리며 항복을 하고 한국을 해방시킨 것과 비교하여 해방을 유월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6. 25사변은 홍해 바다의 기적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실, 6․25 사변에는 큰 기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치다가 홍해바다에 가로막혔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최고의 막강한 정예부대가 뒤에서 살기등등하게 쫓아오지요, 앞에는 거대한 바다가 막혔지요, 이제는 몰살당하는 줄 알고 백성들은 울고불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들자, 동풍이 강하게 불면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6․25사변 당시도 순식간에 밀려서 며칠만 있으면 부산까지 빼앗길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제 돈 있는 사람들은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망칠 궁리를 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멸망직전에 있었습니다. 그 때, 기적이 나타났는데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치어 인민군의 허리를 잘라 버림으로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맥아더는 한국판 모세였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을 통해서 북한에 있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월남할 수가 있었던 것도 큰 뜻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갇혀서 북한에서 모두 순교 당하는 큰 비극이 일어날 번했습니다. 또한 월남한 교인들을 통해서 남한복음화의 큰 역사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변 이후 67년은 광야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 하시면 머지않은 날, 통일의 나라, 가나안복지에 이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로, 오늘 본문 앞부분인 7절부터 9절까지는 모세가 가나안복지의 풍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복지는 여호와의 동산 같이 물이 풍성한 곳이요, 곡물이 많은 땅으로 밀과 보리의 산지요, 온갖 과일이 풍부하며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철과 동이 풍부한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남북만 통일되면 얼마나 살기가 좋은 곳이 되겠습니까? 북한은 지하자원도 풍부할 뿐 아니라,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전혀 오염이 안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서구나 지중해 연안에 유명한 관광지를 가보면 거의 인공으로 꾸민 것입니다. 그런데 비해서 우리나라 자연미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러므로 남한은 산업의 중심지로 세계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북한은 인공적으로 잘 꾸며 놓으면 세계 유명한 관광지로 됨으로 그것만 갖고도 먹고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복지의 풍요한 살을 설명한 후에 오늘 본문에서 그 풍요할 때에 주의할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아직도 광야 길을 가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오히려 12절에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라 하노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질이 풍부하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을 때에는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감사합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뙤약볕과 사막과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광야에서 낯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시고 목마를 때에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시고 4절 말씀대로 40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는 등, 기적의 인도를 베풀어주신 것도 감사한 데 풍부한 의식주까지 주시니 너무 감사 감격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간사합니다. 잠깐은 대단히 감사하더니 어느 날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먹고 17절에 말씀대로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매물을 얻었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 교만한 말을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교만한 자세입니다. 더욱이나 지금의 잘사는 것이 자기 능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 그런 민족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시겠다고 18-20절까지 경고하십니다.
 
6․25전쟁 67주년을 맞으면서 바로 우리 모습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사변 후에 우리는 얼마나 헐벗고 배고프게 살았습니까? 지금 60대 중반 이상 되신 분들은 사변 때나 사변 이후의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50대 이상 되신 분들도 저 배고픈 시절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옷은 얼마나 꿰매 입었는지 엉덩이가 덕지덕지 하기 일 수 입니다. 그래서 여학생 앞에 지나갈 때는 가방으로 뒤를 가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양말은 얼마나 꿰매 신었는지 위만 있고 아래는 거의 없습니다. 신발도 검정 고무신이 대부분인데 한번 떨어지면 여러 번 꿰매 신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무슨 추석이나 설날, 검정 운동화라도 사주면 얼마나 좋은지 밤에 머리맡에 놓고 자는데 잠이 안 옵니다. 대부분 집에는 이불이 한 두 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렇게 토끼 새끼처럼 많이 낳았는지 보통 6-7명입니다. 단칸방에서 자는 데 큰 이불에 모두 들어가 잡니다. 요가 어디 있습니까? 맨 바닥에서 잡니다. 자다 보면 욕심 많은 녀석은 이불을 뚤뚤 말아서 혼자 차지합니다.
 
그러나 옷 못 입는 것은 참을 수가 있는데 배고픈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꽁보리밥을 먹습니다. 보리쌀 9정도에다가 쌀 1정도를 넣고 밥을 합니다. 그러다가 손님이라도 오면 쌀밥은 손님에게 가고 꽁보리밥만 먹어야 합니다. 고기는 일 년에 명절 때나 돼지고기 한두 번 먹는 것이 전부요, 소고기는 서민은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대부분 가정은 보리 고개가 되는 봄이 오면 죽을 먹습니다. 죽 종류는 왜 그리 많은지, 아욱 죽, 배추 죽, 김치 죽, 호박 죽, 시래기 죽, 콩나물 죽, 그것도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점심시간만 되면 슬그머니 나가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우물이나 펌프에 가서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여자들의 화장품이란 고작 일본말로 구리무가 전부였습니다. 변소를 갈 때도 종이가 없어서 호박잎이나 지푸라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조금 잘 사는 집이라야 신문지를 여러 번 오려서 사용했습니다. 버스나 기차가 마땅치 않아서 3-4시간 기다려야 했고 차비가 없어서 보통 20-30리 보통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자, 이러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왜 이 귀한 시간에 이런 구차했던 이야기를 합니까? 그러한 헐벗은 시절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천국 같은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난방시설, 전자제품, 시간이 나면 식구와 함께 얼마든지 나들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가정이 자가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풍요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어떻게 된 노릇이 감사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점점 불만들만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여인들의 옷도 광목 적삼이나 구제품을 입었습니다. 속내의는 거의 단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옷들을 잘 입습니까? 거리에 나가면 너무나 화려한 옷들을 입고 답니다. 모두가 일류 멋쟁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얼굴들은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과연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람들의 얼굴들은 기쁨이 하나도 없고 어둡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GNP가 1위인 스위스, 3위인 일본에 정신병자나 자살자가 제일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셋방살이하면서 땀 흘려 먹고 살 때 더 얼굴이 환하고 더 인정이 넘치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도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눈이 밝아지면 온통 감사할 것투성인 것을 발견합니다. 반대로 불만의 눈이 밝아지면 온통 불만할 것투성인 것을 발견합니다. 아니 됩니다. 이 사변의 날을 만나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 시절을 기억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그 감사를 빼앗기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하나님이 해방을 주었지만 감사하지 못하고 서로 정죄하기 바쁘고 옳고 그르니 파당 짓고 교단 갈라 먹기에 열을 올린 결과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땅을 공산당에게 뺏기는 날이 오지 않았습니까? 67년 전에 비하면 온통 감사할 것뿐인데 우리는 감사보다도 욕심 때문에 점점 불만으로 깨어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성도들은 불평의 마음은 점점 무디어 가고 감사의 마음이 점점 강해가야 하는 줄 믿고 범사에 감사로 깨어 있는 자가 되기로 다시금 새 결단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우리 성도들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도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충성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도와 충성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충성을 다해 전투에 임합니다. 거기에서 승리를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을 내리면 여호수아의 충성도 무력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면서 우리의 충성의 자리를 지키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빛과 소금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 가정, 그 교회, 그 사회 위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에 이제 낙동강 이남만 남는 입장에서 낙동강 전선도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2-3일이면 적화되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재빠른 사람들은 일본으로 밀항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이북에서 월남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부산 앞 바다 모래 벌에서나 교회에서나 수많은 성도들이 철야하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생명을 내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기적이 나타나 유엔에서 16개국이 참전하는 결의를 하게 되었고 일본에 있던 맥아더 장군이 본국의 훈령을 어기면서도 과감하게 한국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는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인천상륙작전이 구상되므로 인민군의 허리를 두 동강내어서 승기(勝機)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의 자리, 충성의 자리를 지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충성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어둠의 세력이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직장, 우리의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6․25 날에 소위 기독교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나 한심했습니다. 그는 정동감리교회의 교인이었음에도 주일날 교회는 나가지 않고 비원 연못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가 전쟁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의 비보를 듣고 나서 그 때라도 교회에 달려가 히스기야 왕처럼 눈물로 기도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목숨이 아까운지 150만 서울 시민을 남겨 놓고 27일 새벽에 대전으로 도망치듯 피난 갔습니다.
 
그러면서 한강 다리를 폭파함으로 백성들이 피난길을 막아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 하나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할 때에 큰 패망이 온 것처럼 되고만 것입니다. 오히려 이승만은 기독교인이면서 그 자리를 악용해서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을 6․25 사변이 나기 전 꼭 일 년 전인 1949년 6월 24일 바로 주일날 안두희를 시키어 암살했으니 6․25 사변의 큰 책임이 바로 그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깨달아서 깨어서 우리의 기도 자리를 지키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들은 북한 회복과 북한 선교가 열리기를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 민족을 생각하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의지할 곳은 정치가들도 아니고 미국도 아닙니다. 오직 의지한 분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오, 그 분이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이 만큼 지켜 주시면서 잘 사는 나라로 만드신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시면서 집중적으로 나라와 민족, 특히 주안에서 남북이 통일이 되기를 위해서 깨어 기도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우리 성도들은 선교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해외선교는 물론이고 이제는 구체적으로 북한 선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온 세계의 공산주의는 다 무너졌고 모든 분단국도 사라졌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나 중국에 가보아도 공산주의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유독 북한만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음으로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니 이처럼 한심한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하나님이 북한 독재자를 아직도 살려두는 이유는 한국을 마지막 때 크게 쓰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머지않은 곳에 지독한 공산주의자들이 있고 미사일과 핵을 가지고 위협하는 안하무인격인 자가 있기에 한국교회는 늘 깨어서 기도하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대단히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침략성이 강한 러시아와 중국, 일본 틈에 낀 상태에서 남북인 분단된 채 67년이 흘러감에도 세계 13위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은 나라요, 한국교회이지만, 하나님이 아직도 어여삐 보시는 것은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나라요, 세계 선교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 탓이라는 저는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교회는 1970년대 중반부터 해외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선교역사는 겨우 30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1974년도 24명의 선교사를 10개국에 파송했는데, 2014년 말 통계에 의하면 170개국에 26,677명의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세계 2위의 선교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세계 선교사상 이처럼 놀라운 성장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나라가 부족한 것 투성일지라도 이렇게 세계 앞에 우뚝 서게 하신 것은 그래도 열심히 선교하는 일에 힘쓰는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일본여행에 7분의 목사님과 8분의 장로님들이 오사카와 교토를 다녀오면서 너나없이 느끼는 것은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말하기를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했습니다. 물가가 너무나 비싸서 숨이 막힌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교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오사카와 교토의 절간뿐이요, 교회당을 본 곳은 한 군데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정말 복 받은 나라입니다. 지금 세계 가장 시급한 선교대상국들은 아시아에 있습니다. 아시아의 인구 31억 7100만으로 세계인구 52억 9200만의 60%나 됩니다.
 
그 중에 중국 14억, 인도 12억,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1억 4천, 인도네시아 2억, 일본 1억 3천인데 이 나라들에 기독교인은 전체의 1%에 불과합니다. 이 나라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또한 거기 사는 분들도 자기들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되면 집안과 그 사회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일 년 내내 열심히 선교해야 한 명 믿을까 말까 할 정도로 선교의 벽이 높은 지역입니다. 특히 회교권 선교는 거의 막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목숨을 걸어야 선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이 너무나 급하신 지 하나님이 아시아 지역에 있는 분들을 한국으로 몰아다 주십니다. 그 분들이 바로 외국인 근로자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네팔 분들과 인도네시아 분들이 열 명 이상 출석하십니다. 이 분들은 한국에 와서 나쁜 대접을 많이 받지만, 그래도 저들의 편에 서는 분들이 바로 교회요, 기독교인들이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들에게 많은 사랑과 아울러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전해도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 저들도 아무 위험도 따르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저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다 상위권에 있는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저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우리 선교사 몇 명을 보내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 형제들을 맡기신 것은 우리에게 큰 사명을 주신 것인 줄 알고 저들을 깊이 사랑하고 열심히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교인들 중에 사업하는 분들이나 식당을 하는 분들이나 가정부를 쓰시는 분들은 선교하는 마음으로 저들을 일꾼으로 사용하시면서 특별대우를 해보십시오. 마음의 문을 곧 열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원하시는 것은 아시아 선교인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 선교에 열심을 나타내는 한까지 하나님의 특별 보호와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이 너무 시급하시기에 한국교회의 영적 긴장이 풀어지지 않기 위해 북한이라는 비상수단을 쓰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막강하고 견고한 성 여리고성이 기적가운데 무너진 것처럼, 남북의 통일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루어주시는 날이 반드시 멀지 않다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할 일은 열심히 기도하는 것과 세계 선교와 북한 선교를 위해서 진력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가 바로 우리 민족의 사는 열쇠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6․25 67주년을 맞으면서 감사로 깨어 있는 삶, 기도로 깨어 있는 삶, 선교로 깨어 있는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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