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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응답을 받으려면 (성령강림주일)
2017년 05월 27일 (토) 12:23:14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눅18:35-43)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부활절 후 50일째 되는 주일에 지킵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생활하면서 그의 인도와 보호하심과 가르치심을 배웠습니다. 즉, 그 당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보혜사(保惠師)이셨습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로 그 뜻은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한문으로 말하면 우리를 보호하시며 은혜를 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이시오, 영어에서는 ‘헬퍼(helper)'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있으면 떠나야 할 것을 말씀하자 대단히 불안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요14:18에서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내 대신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의 역할을 하실 분이 성령님이신데 그 분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며 가르치시는 것이니 우리 성도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우리가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데 돕는 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 일입니까? 한번은 우리 부부가 어느 모임에 갔다가 자동차 키를 차안에 둔 채 문을 걸었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열려고 해도 안 됩니다. 얼마나 진땀이 나는지요? 그러니까, 주차장 직원이 차 보험을 든 회사에게 전화해 줍니다. 과연, 얼마 후에 그 회사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줍니다. 우리가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면 얼마나 난처합니까? 아무리 길에서 신호를 해도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험을 든 회사에 전화만 하면 즉시 와서 고쳐줍니다. 심지어 기름이 떨어져도 와서 도와준다고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인생 전반 생활을 돕기 위해 우리 옆에 언제나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슨 어려움을 만나든지 그 분에게 요청하십시오. 심지어 우리 마음이 울적하고 고독할 때도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달라고 구하시면 응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 대신 다른 보혜사로 보내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근심하고 염려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만 하소연한다면 성령님은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무슨 문제, 무슨 어려움을 만나든지 우리 가까이 계시는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요청하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요청하십시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기쁨으로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약속하신 대로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어느 분은 “나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혹은 밤 9시에도 기도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기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거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을 받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바디메오라는 장님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예수님을 통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바디메오는 어떻게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았습니까?
1. 바디메오는 믿음으로 바라보는 기도를 했습니다.
바디메오는 장님의 처지에 거지였습니다. 날마다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신세였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절망적인 삶만이 그 앞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문에 들으니 예수란 분이 나타나서 온갖 병을 고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앉은뱅이, 38년 묵은 중풍병자, 심지어 문둥병까지 고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디메오의 마음에 희망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예수란 분만 만나면 눈이 뜰지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을수록 점점 믿음이 생깁니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어제까지는 절망을 바라보던 눈이 변하여 희망을 바랍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자나 깨나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길가에 앉아서 일생 그랬던 것처럼 구걸은 하고 있으나 그의 마음은 이제 돈 몇 푼에 가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이 여리고 길을 지나가시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사람들이 조금 웅성거리기만 해도 지나가던 사람을 붙들고 예수님이 지나가시느냐고 묻기도 하고 예수님이 언제 여리고에 오시느냐고 묻습니다. 사람들이 짜증을 내도 그는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목마르게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고 마침내 눈이 뜨는 기적을 만났던 것입니다.
 
기도는 약속을 믿음으로 응답된 사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꿈을 바라보면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기도하면서 낙심만 바라봅니다. 병원에 갔더니 나쁜 진단이 나왔습니다. 기도하면서도 병만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나오느니 원망의 기도뿐입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성수주일 생활, 십일조 생활, 충성생활 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내게 이런 벌을 주십니까?”라고 합니다.
 
어느 노인 교우는 ‘병을 앓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늘 근심합니다. 어느 분은 ‘이러다가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공연한 생각으로 근심과 두려움에 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조차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고 낙심과 원망에 매이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100날을 기도해 보십시오. 응답이 안 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약속대로 이루어 주실 줄 믿으십시오, 응답이 되어 진 모습을 바라보면 기도하십시오, 병든 사람은 건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창하는 모습을, 자녀가 훌륭하게 되어 있는 모습을, 교회가 부흥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십시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는 책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젊은 의사가 병원을 처음 개업했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성공했습니다. 어느 분이 그 비결을 물어보았더니 대답하기를 “개업 첫날에 저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상상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안겨준다. 하나님은 위대한 의사시며 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다하는 수단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병을 고치신다. 내가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기적처럼 회복이 된다. 나의 성공과 달성과 생명의 풍부함에 대하서 하나님께 깊이 감사한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엄청난 환자들이 몰려와서 고침을 받습니다. 나중에 너무 환자가 많아 다른 병원에 소개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면서 기도하심으로 성령님의 강하신 도우심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바디메오는 불타는 간구를 했습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어느 사람에게 돈을 주면서 예수님이 오면 알려달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파가 밀리면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무슨 일이냐?”라고 묻자, 그 사람은 “예수님이 지나가고 계신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습니까?
 
그 순간부터 바디메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면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간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도는 간구하는 것입니다. ‘구한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두 개인데, 하나는 ‘에페로타오’인데 ‘문의한다. 조사한다’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에이테오’인데 그 뜻은 ‘갈망한다. 욕망한다.’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기도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는 ‘에이테오’로 약 30번이나 나옵니다.
 
기도에는 찬양도 있고, 묵상도 있고, 자백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구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전부 간구로 되어 있습니다. 간구가 없는 기도는 어느 의미에서 생명이 없는 기도와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거의 전부가 간구의 기도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많은 사람이 기도했으나 응답 받은 기도는 간구의 기도였습니다. 억울함을 당한 과부의 기도나 세리의 기도, 수로보니게의 기도나 혈루증 않던 여인의 기도도 그렇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디메오의 기도로 간구의 기도였습니다.
 
그렇다고 간구한다는 것은 고함을 지르는 기도 만인가? 어느 분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 같으나 속에는 불타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기도는 간구가 빠졌기에 응답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큰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도 마음이 너무나 사모함이 가득 차서 불타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한나의 기도가 그런 기도입니다. 주님은 중심의 간절함을 보십니다.
 
수많은 인파 중에서도 중심에 불타는 심령을 잘 찾아내십니다. 여리고 수많은 인파 중에서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의 불타는 마음을 찾아내시고 그에게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바디메오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고 꾸중하며 간구를 막았습니다. 그 때 바디메오는 찔끔하면서 조용히 했습니까? 아닙니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데 이때를 놓칩니까?
 
목을 쥐고 비틀어도 소리를 칠판인데 그 깐 조그마한 반대에 물러섭니까? 그는 더욱 심하게 소리 지르기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 걸어가시면서 열심히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은 멈추시고 바디메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바디메오가 뿜어내는 간구의 전파가 얼마나 강한지요?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데려오라”고 말씀하신 후에 응답을 주셨던 것입니다.
 
만약 바디메오가 반대가 있다고 해서 간구하는 것을 포기했다면 일생동안 장님으로 지냈을 것이요, 구원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도에는 즉시 응답되는 것도 있지만, 어느 때는 많은 장애를 만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이 우리가 얼마나 불타는 마음인가, 아닌가를 여러 가지 장애를 주시면서 시험하실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어느 때는 사탄이 우리의 간구를 막기 위해서 많은 방해를 할 때도 있는 것같습니다.
 
「천로역정」을 지은 죤 번연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비로 들어가는 좁은 문 옆에 거대한 성곽을 세워 놓고 그 위에서 자비의 문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에게 죽음의 화살을 쏘고 있으며, 또한 사탄은 자비의 문 옆에 큰 개 두 마리를 둠으로 자비의 문을 두드리는 자들을 물으려고 덤비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와 권세를 가지고 가면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사나운 맹견도 죽음의 화살도 감히 덤비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만 어느 때는 많은 장애물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 받지 못하게 합니다. 어느 때는 너무 오랫동안 응답이 안 됩니다. 어느 때는 응답은커녕 기도할수록 점점 문제만 더 엉키어 갑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 기도했더니 더 반대를 하는 것 같고, 사업을 위해 기도했더니 더 부진해지기만 하는 것 같고, 병 낫기를 위해 기도했더니 더 악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면서 간구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응답 받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받은 약속을 붙잡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5년, 10년, 20년, 그러다가 25년째 응답을 받았습니다. 탕자 아들 어거스틴을 위해 어머니 모니카가 간구 한지 13년 만에야 응답을 받았고 그 결과 늦게 응답 받은 만큼 그 아들은 유명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고 어떠한 장애가 오더라도 이루어질 때까지 불타는 간구의 기도를 쉬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바디메오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바디메오가 하도 고함을 지르면서 부르짖으니까, 예수님은 서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바디메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거지에게는 겉옷이라는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길바닥에 가만 앉아 있으면 추울 때도 많습니다. 혹은 남의 처마 밑에서 잘 때도 있습니다. 겉옷은 이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겉옷을 절대로 놓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버리고 갔다는 것을 보면 그 간절함이 얼마나 강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바디메오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내가 눈을 뜨기를 원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꿈에 주님이 오셔서 물으신다고 하시더라도 ‘내 소원은 이것입니다.’라고 대답해야 응답이 됩니다. 성경은 기도를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오늘날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시면서 그 날 꼭 필요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막11:2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을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가 구체적이고 확실한 소원을 그의 마음속에 갖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막연히 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이지 못한 기도는 어느 의미에서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사실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믿음의 많은 상처를 입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삿6장에 보면 하나님은 어느 날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때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내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원하시거든 기도응답을 구체적으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고 아침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마당은 젖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보니 그렇게 구체적으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다시 기도하기를 이번에만 마당만 젖고 양털 뭉치는 마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가 기도한 대로 구체적으로 응답이 된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 때부터 하나님의 명령대로 무조건 순종하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할 때마다 막연하고 모호한 기도를 하지 마시고 구체적인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강하게 도움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 김세지라는 여신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남편은 밤낮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내는 탕자였습니다. 어느 분이 전도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남편의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제 집안이 망해간다”고 하면서 부인에게 심한 매질을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 나가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럴수록 남편의 반대와 핍박은 점점 그 도를 더해 갔습니다. 그럴수록 부인도 더 열심히 기도합니다. 기도 제목은 오직 하나 남편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에 김 부인은 남편 모르게 교회를 갈 궁리를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사촌 시아우인 오석형이 보낸 학생이 예배당 가지고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까? 부인은 남편이 들을까봐 얼른 밖으로 나갔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깜짝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침밥상을 대하던 남편이 “아, 오늘 아침에 이상한 일을 보았소. 내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예배당에서 학생이 와서 나를 부른다 하기에 내다보니 아무도 없더이다. 아마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일께요.” “그 동안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소. 나를 용서하오. 나도 예수 믿는 것이 옳을 것 같으니 오늘은 나도 교회를 가볼까 하오”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그 때 이번에는 정말로 오석형이 보낸 학생이 와서 두 내외를 예배당에서 청한다고 기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남편은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 부인은 나중에 감리교회 전도인이 되었으며 그 자녀 중에 광성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김득수 장로님과 김매륜 여사가 있는데 그 여사의 아들 중의 한 분이 감리교회 초대 감독이셨던 양주삼 목사님이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오늘도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움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시는 줄 믿으시고 무슨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근심이나 낙심하지 마시고 응답을 바라보는 기도, 간구 하는 기도, 구체적인 기도를 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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