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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주박 |
| 오물로 가득한 인간의 마음도 주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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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때문인지 하교 시간이 빨라져 12시 전에 통학버스 두 대가 용산 기숙사로 가 버리고 가까운 인근에 사는 학생들 몇몇과 학부모 한 분을 만났다.
G 전도사님 내외분께는 친숙하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고 3여학생들, 대학 진학을 준비한다는데 약시인 듯해 보이나 꿈 많은 소녀로 건강하고 예쁜 학생들이다. 타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했지만 대화가 필요하면 은혜교회에 들려 달라고 했다.
필주와 은혜는 이미 교회에 와 본 학생들, 그리고 황영광(중1), 그리고 영광이 아버지 7명이 가까운 분식센터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교회당으로 올라갔다. 필주와 이미 외워버린 두곡의 영어 복음 송(In the name of Jesus, I've got peace Like a river)을 책상을 두드리며 불러 제켰다. 참으로 한번 가르친 노래를 어떻게 이리도 잘 외운단 말인가!
점심식사가 시원찮았는지 G 전도사님아이들을 데리고 또 무얼 사 먹이러 나가셨다. 난 그때부터 영광이 아버지 HDS씨(46세)의 살아오신 그간의 내력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대략은 이렇다. 일찍이 법대를 나오시고 불교인 간호사와 결혼, 큰애가 딸이고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았건만 시각장애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쫒아 다니고 심지어 안과에 정통하다는 독일까지 가 보았지만 시신경의 장애기 때문에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포기한 상태였는데 그때부터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신의 탓이라며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출석하며 철야에 전도에 1년에 120명 어느 해는 160명까지 전도를 하는 열성을 보이고 성령체험도 받았고( 지금 영광이는 4살 때 방언을 받았다고 했다.)
차려놓은 다과를 놓고 영광이 기도하라고 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 기도의 내용은 부흥강사인지 담임 목사인지 분간키 어려운 수준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말도 어찌나 잘 하는지, 범상치 않은 아이였다. HSD 씨, 사법고시 1차 합격했으니 외가 쪽의 연좌제로 2차 면접에 낙방하고 학원 강사에 임시직 노동자에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보았으나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고 “당신이 신학을 해야 한다는 주위의 기도하시는 분들의 예언과 아내의 권유로 한세대 신대원까지 졸업했다고 했다. 지금은 친구가 하는 개척교회에 협력 사역으로 돕고 있다는데 그간 사업의 어려움이 겹치고 겹쳐 현재 500만원 보증금에 30만원 월세에 들어 산다고 했다.
마더 테레사는 ‘한 번에 한가지 씩’이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사역에 임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인간은 마음 문을 아무에게나 쉽게 열지 않는다. 눈물을 글썽이지는 않았지만 몇 번인가 격해 지려는 한 인간의 내면의 슬픔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지금 나가는 교회 예배 시간이 12시이므로 영광이를 은혜교회(9시 반)에 올 수 있도록 의논해 보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절대 빈곤으로 상실감에 빠져 있는 한 영혼이 내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나는 어디서부터 이 분을 알아가야 하는지……. 마음의 벽이 콘크리트처럼 굳은 감옥과 같고, 인간을 한 번도 받아드려 본 적이 없는 박쥐동굴처럼 오물로 가득한 이런 인간의 마음도 주께서 당신의 도구로 쓰실 수 있다는 건지…….
양평에 사시는 K 권사님이 자주 전화를 주신다. 텃밭에 농사지은 것이라며 동부니 팥이니 콩이니 한 움큼씩 싸들고 박도 심으셨는지 톱으로 켜서 바가지도 반쪽을 가져오셨다.
옛날엔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 박으로 거름(소위 똥바가지)을 퍼서 밭에 인분을 날랐다. 난 오는 길에 내가 거름을 푸는 똥바가지인가 아니면 길손의 마른 목을 축여 주는 샘가의 표주박인가 자문을 해 보았다. 오물이 잔뜩 묻은 똥바가지여서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어쩌겠나. 농부에게 거름 바가지는 필요악이다.
그러나 오늘 그 중년 성도의 속울음을 끝까지 경청해 드린 2시간은(나도 의사 앞에서 실컷 울고 나니 병의 절반은 나은 것 같던 경험으로 봐서) 옹달샘가의 단물을 담아드린 나그네의 표주박 같았으리라…….
오늘 맛있는 저녁밥을 지어서 어머님, 서방님과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겠다. 가득한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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