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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
(남선교회 수련회 설교)
2008년 07월 01일 (화) 14:55:35 김태복 목사 hipc6012@cry.or.kr
(행 4:36-37)

우리 제2남선교회원들은 미래의 홍익교회의 기둥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자리를 바르게 지켜 간다면 지금까지 홍익교회가 큰 시험 없이 부흥 성장해 온 것처럼 흔들림 없이 성장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부임하는 새로운 후임자가 여러분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요, 동시에 교회는 심한 흔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지도자 되시는 여러분들은 말씀에 든든히 기반을 세우고 있을 뿐 아니라, 닥아 오는 미래를 향해 고정관념에 매이지 마시고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 기성세대는 많은 고정관념에 매여 왔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당은 성전이고 강대상은 성소(q�라는 율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주 보수적인 교단에서 본당에서는 기타나 드럼도 못 치게 하고 오락도 못하게 합니다.

아직도 여성들이 강대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헌신예배 때도 아래 강대상에서 사회를 보아야 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교단에서 여성안수를 허락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굳어진 고정관념에 의해 나타내고 있는 관행이 엄청납니다. 지금까지 순종을 미덕으로 알던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는 이러한 관행들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에서는 교회운영에 큰 장애요소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의 20대, 30대의 젊은 계층은 물질문명의 급물살 속에서 성장한 탓인지 기성세대와는 그 감성(感g)이 다릅니다. 주견이 강하고 이기적인 데다가 자기 생각과 다른 이에게 대해서 사정없이 쏘아대는 거친 공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홍익교회의 주역이 되실 여러분들은 그런 세대를 포용할 수 있기 위해 낡은 시대의 고정관념에 벗어나서 큰 눈과 큰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은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세상에서는 일꾼을 선택할 때 학벌, 가문, 생긴 모습 등, 우선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최고의 명문 대학은 하바드 대학인데 그 정문에 들어서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이 눈에 뜨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씌어 지게 된 것은 깊은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캘리포니아에 어느 부자가 일생 동안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죽기 전에 인재 양육을 위해서 기증하려고 하버드대학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정문에 이르러 수위에게 총장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수위가 보니까, 먼 여행길에 간편한 옷을 노인 부부가 늙고 초췌해 보였던지 제대로 대꾸하지도 않고 불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수위 입장에서 보니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여보, 이만한 대학을 세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들은 수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노인들을 경멸하는 눈으로 귀찮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결국, 두 부부는 수위의 불친절 때문에 총장을 만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만 입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서부의 하버드를 세우겠다고 계획하고 세운 것이 그 유명한 스탠포드대학이라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총장이 스탠포드대학의 창립식에 축하하려 왔다가 이러한 사연을 듣고는 무척 아쉬워하면서 돌아와서는 학교 정문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는 글귀를 써 부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위는 자기도 보잘것없는 사람임에도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다가 이런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달리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나바라는 인물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바나바는 철저한 헌신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7절에 보면 “바나바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의 큰 은혜를 받자 한 가지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물질을 가진 자들이 없는 교인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힘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어느 성도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라는 명목으로 자기의 재산을 바치는 일이 여기 저기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자기의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쳤습니다. 자기의 밭을 팔았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구제하면서 자기 이름을 내는 자가 아니라,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회를 통해서 구제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만큼 바나바는 철저한 헌신자였습니다. 그는 재산을 바친 후에는 전도를 위해 자기의 몸까지 바쳤습니다.

그러한 바나바를 하나님은 점점 강하게 쓰시사 행 11장에 보면 11장 24절에 보면 성령 충만한 자로 만들어 주시고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선교사로 임명하여 파송하는 큰 인물로 사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행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겉으로 보면 바나바와 똑같이 재산을 바침으로 철저한 헌신자처럼 보여 모든 교인들에게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속일 수가 있으나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물질 중 일부를 감추어 두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헌신자, 위선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노하사 베드로를 통해서 책망하게 하시므로 부부가 한 날에 비참하게 즉사하는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철저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인물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식구와 재산을 전부 하나님께 바치고 다만 청지기로 사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더 큰 일, 더 큰 은사, 더 큰 능력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리빙스톤은 아주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했습니다. 영국의 한 시골 교회에서 아프리카의 의료 사업을 위하여 헌금을 거둘 때, 헌금 쟁반에 바닥에 놓아 달라고 한 후 자기가 성큼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러자 모든 교인들이 이런 무례한 소년을 보고 격분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톤이라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기를 ‘저는 바칠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아프리카를 위하여 몽땅 바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약속대로 의사로써 아프라카의 처음 선교사가 되어 일생을 그 검은 대륙을 위해서 헌신했던 것입니다. 그는 얼마나 헌신했는지, 한 번은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들어간 리빙스톤으로부터 소식이 완전히 두절되었습니다.

그래서 H. 스탠리 씨가 이끄는 탐험대로 수색한 결과 1873년 중앙아프리카 오지 어느 마을에서 리빙스톤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 리빙스톤은 60세의 나이로 쇠약한 상태에 있음을 알고 영국으로 귀국할 것을 설득하였으나 거절하고 끝까지 아프리카에 남아서 선교하다가 기도하는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일기로 1873년 3월 19일 기록하기를 다음과 했습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의 예수여, 나의 왕이여, 나의 생명이여, 나의 모든 것이시여. 오늘을 기하여 다시 나를 바치나이다. 자비하신 아버지. 나를 받아 주소서.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는데 이 못난 것,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몽땅 바치오니 받아 사용해 주소서. 아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리빙스톤을 강하게 쓰시사 역사상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로 위대하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이 되기를 원하시는 회원 여러분이여,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바치어 헌신하도록 결단하심으로 하나님이 강하게 쓰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행 11:24절에서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착한 성품을 가졌다는 의미요, 더 나가서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바나바는 성령 충만함으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착한 마음을 가진 자라도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일꾼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나바는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배우기도 많이 배우고 인품도 좋은 것 같은데 항상 보는 시각이 비판적입니다. 가령, 어느 사람이 교회 안에서 자기의 돈을 내서 좋은 일을 했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지만, 이 사람은 그 의도를 의심하고 그 약점을 찾아내는 데 빠릅니다. 또 어느 사람은 착한 사람이지만 믿음이 전혀 없어서 하나님의 사업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광야를 지난 후에 마침내 그렇게 사모하던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모세는 뛰어난 인물 중 12 명을 선별하여 정탐꾼으로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와서 보고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선한보고, 믿음의 보고를 했으나 10 정탐꾼은 불신의 보고, 불만의 보고를 함으로 다수결에 현혹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그 죄를 인하여 40년 광야 생활을 하는 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두 사람은 선한 시각과 믿음의 시각을 가졌으나 10명은 그렇지 못한 것이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모든 일을 선하게 보는 시각을 가졌습니다. 사도행전은 9장까지는 유대인 중심으로 선교가 이루어졌으나 10장부터는 고넬료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이방인의 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추세가 11장에 와서는 크고 아름다운 도성인 안디옥 지방으로 번지어서 그 지역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있던 교인들이 이방인들이 교회를 나오고 구원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대부분 머리를 흔들면서 “그것은 안 될 말이지, 복음은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이방인을 위한 것이 아니야.”라고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여론이 점점 강하게 나타나자, 예루살렘 총회는 바나바를 파견하여 안디옥 교회의 형편을 살펴 본 후에 보고하라고 위임했습니다.

아마, 이때가 기독교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큰 위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 세계의 복음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므로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하기 시작할 때였던 것입니다. 그 때에 맹목적인 완고한 교인들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의 발전을 부인하고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더라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실로 아슬아슬한 위기였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만약에 바나바가 선한 시각이나 믿음의 시각을 가지지 못하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안디옥교회에 가 보았더니 잘못된 신앙들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너나없이 은혜 받았다고 야단이지만 말씀의 기반에 서지 못하고 위험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면 이방 선교의 문은 상당히 닫힐 뻔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착한 시각, 믿음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안디옥에 가보고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행 11:23절에 보면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은혜가 충만한 보고를 한 줄 압니다.

바나바의 선한 눈, 선한 말들이 이러한 반대의 기운을 이기고 이방인에 대한 선교의 문을 열므로 복음의 물결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서서 땅 끝까지의 세계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착한 시각과 믿음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은 강하게 쓰는 것입니다.

아동문학가로 유명하며 어린이날을 창시한 방정환 선생님 댁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칼을 들고 있는 돈을 내라고 위협하자, 방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당시의 돈 390환을 꺼내 주었습니다. 390환을 받은 강도는 ‘돈이 이것밖에 없느냐?’라고 묻자, ‘예,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져가시오.’ ‘정말인가?’ ‘정말이요.’라고 했습니다. 강도는 그 돈을 가지고 막 나가려고 합니다.

그 때, 방 선생님은 말하기를 ‘여보시오. 돈을 가져가면 고맙다고 해야지. 그냥 가는 법이 어디 있소?’라고 하자, 강도는 돌아보면서 ‘그래, 이 자식아. 고맙다.’라고 말한 후, 나가 버렸습니다. 그 날, 새벽 4시가 되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순경이 아까 그 강도를 수갑에 채우고 끌고 와서 “방 선생님, 이놈이 선생님 댁에서 강도짓을 했는데 390환밖에 가져가지 않았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방 선생님은 정중히 말하기를 “이 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강탈해 간 적도 없소. 아까, 이 손님이 왔기에 내가 돈 390환을 드리니까, 받아 가면서 고맙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강도가 되겠습니까?”라고 하니, 강도가 땅 바닥에 꿇어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순경은 난처하여 “이 자를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방 선생님은 “내가 책임질 터이니 어서 수갑이나 풀어 주고 돌아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순경이 가자마자 강도는 울면서 “선생님, 선생님이 승낙하시면 제가 평생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라고 했고, 방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회원여러분이여. 우리는 선한 마음, 믿음의 마음으로 품으므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하시는 일꾼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무엇보다도 바나바는 권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6절에 보면 바나바의 이름의 뜻은 ‘권위자’였습니다. 권위(ꠑ
�라는 말은 잘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슬픔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찾아가서 잘 위로해 주는 자, 때로 주님의 일을 하다가 어떤 난관에 봉착하거나 실수를 범했을 때에 찾아가서 잘 격려함으로 용기를 주는 자를 말합니다. 롬 12:8절에 보면 권위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남을 잘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도 은사 중의 하나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이름의 뜻 그대로 권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물 포섭에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인물을 키우기 위해 힘썼던 인물이었습니다. 바나바가 키운 인물 중의 대표적인 사람은 바울 사도와 마가였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고꾸라져 회개한 다음에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만나서 간신히 난을 피해서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많은 성도들이 회개한 바울을 크게 환영할 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도들은 바울을 푸대접하고 오히려 두려워하면 경계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교회를 핍박하고 훼방하던 자가 아니냐? 그런 사나운 이리 같은 자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온순한 양으로 바꿀 수 있는가? 믿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슬슬 피하기만 할 뿐, 누구 하나, 곁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 같은 지도자들도 바울을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바울에게는 큰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준 이가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바울을 거부하거나 피했으나 오직 바나바는 그를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와 같은 사도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난 후에 어떠한 일을 당했으며, 어떻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그리고 바울이 다메섹에서 생명을 내걸고 얼마나 지성스럽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사도님들, 바울에게 기회를 줍시다. 저는 바울이 어떻게 회개하였는가를 아나니아를 통해서 자세히 들었습니다.”

“바울은 아주 신실하고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에도 아주 뛰어난 분입니다. 그에게 기회를 준다면 예루살렘 뿐 아니라, 이방 지역의 복음의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나바가 얼마나 열렬하게, 또한 웅변적으로 바울을 소개했던지 사도들은 그의 말을 신임하게 되었고, 바울은 많은 사도나 성도들에게서 조금은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예루살렘 교인들이 억지로 받기는 받았으나 아무 일도 맡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직도 많은 비기독교 유대인들의 무서운 반대 때문에 다소에 가서 피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다시금 용기를 잃고 낙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법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하는 일도 없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복음 전파를 하고 있었는데 힘에 겨움을 느끼며 누구인가 동역자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동역자로 누가 좋은가를 기도 중에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등등 생각했으나 합당하게 느끼어지지 않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떠오른 인물이 바울이었습니다.

“옳지, 다소의 바울. 그 사람이 적격자이지. 헬라어에 능통하고 로마 시민권도 있고 큰 체험이 있지 않는가?” 바나바는 즉시 그 먼 거리를 무릅쓰고 친히 다소로 가서 바울을 만났고 열심히 설득시키었습니다. 일을 기다리고 있던 바울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동역자가 되었고, 교회 사상 위대한 선교 사업이 시작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바나바가 주도하고 바울은 보조자의 역할을 했으나 나중에는 바울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바나바가 나중에 나오는 것을 보면 바울이 주도자가 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바나바는 결코 불만을 품었다는 기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아시아와 유럽을 오르내리며 열심히 전도여행과 신약성경 중에 반이나 되는 서신을 쓰는 등 엄청난 일을 하는 동안 바나바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격려하며 보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 외에 그가 키워 낸 위대한 분은 마가였습니다. 마가는 처음에는 인물됨이 약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따라 1차 전도여행을 떠났으나 중도에 기권할 정도로 의지가 박약한 인물이므로 바울도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울과 싸워 가면서도 끝까지 마가의 실수를 용납하고 그를 포섭하고 격려하므로 나중에는 훌륭한 제자가 됨으로 말년에는 바울을 돕는 제자가 될 정도였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실로 남의 좋은 점과 유망한 점을 통찰할 줄 아는 자요, 낙심한 자, 실수한 자, 남에게 버림받은 자라도 다시 권면하고 위로하여 다시 크게 쓰는 인물이 되도록 만드는 사랑의 용광로요, 인물을 만드는 조련사였던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은 일찍이 신학교를 가려다가 여의치 못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하나님, 제가 비록 목회자가 되지 못했을지라도 많은 주의 종을 후원하겠사오니 큰 물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수십 명의 도와서 목회자로 만들었는데 그들이 연말에 카드를 보내거나 찾아올 때는 그 기쁨이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느 목회자는 어느 권사님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신학생 때 대단히 어려워서 등록금을 내지 못할 때, 몰래 등록금을 내주고, 때로는 책값을 하라고 돈 봉투를 집어 주는가 하면 나중에 개척교회 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므로 이렇게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를 위해 전력으로 기도해 주었다고 하면서 그 권사님은 자기의 신앙의 어머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교회는 반드시 이러한 인물이 필요합니다. 누구의 잘못이나 실수를 따지고 비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 때로 실수한 사람을 용납하고 격려하며 위로하여서 큰 인물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회원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다 이러한 바나바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부교역자들이나 교육 전도사님들, 그리고 청년들을 위해 전력으로 기도하며 때로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며 물질로도 적극 돕는 자가 되어 보십시오. 때로 그들이 실수할 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용납의 가슴으로 그들을 포용함으로 거기에서 우리 교회에서 또 하나의 바울이나 마가 같은 인물, 리빙스톤 같은 인물이 배출되도록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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