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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아닌 리더가 올바른 지도자상
[중직수련회 설교] 모든 아집과 탐심을 배설물처럼 여겨야
2008년 06월 24일 (화) 08:40:24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 베드로전서 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리더형이고 하나는 보스형입니다. 이 두 가지 유형을 비교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급에 있는 여러분은 리더형과 보스형 중 어떤 형에 가까운가를 스스로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리더형은 눈에 보이는 데서 일하나, 보스형은 눈에 안 보이는 데서 일합니다.
(2) 리더형은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지만, 보스형은 뒤에서 사람들을 몰고 갑니다.
(3) 리더형은 부하들을 치켜세우나, 보스형은 부하들을 누릅니다.
(4) 리더형은 사람들과 함께 가지만, 보스형은 자기 뒤만 따르라고 명합니다.
(5) 리더형은 아는 길도 물어서 가지만, 보스형은 모르는 길도 묻지 않습니다.
(6) 리더형은 늘 ‘우리’라고 말하지만, 보스형은 늘 ‘나’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7) 리더형은 밑의 사람들을 지도하지만, 보스형은 부하들에게 명령만 내립니다.
(8) 리더형은 등뒤에 권위를 감추고 다니지만, 보스형은 권위를 앞세워 가며 다닙니다.
(9) 리더형은 권위를 아끼지만, 보스형은 권위를 즐깁니다.
(10) 리더형은 ‘가자’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보스형은 ‘가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독재에 이어 장군 출신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30년 군사정권을 하는 동안 보스형의 지도자들이 주도해 왔습니다. 이어서 민간 출신인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분들도 야당 지도자들로 오랫동안 독재정권과 대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스형의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영향 탓인지 한국교회도 지금까지 카리스마적인 보스형의 지도자들이 주도하여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리더십에 대해서 너나없이 식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 어느 곳이든지 보스형의 지도자는 밀려나고 리더형의 지도자들이 우대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급에 계신 여러분들은 리더형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우리가 사역하는 곳은 일반 사회가 아니라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만이 올바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상은 그리스도와 생동적인 관계가 있는 자입니다.

1절에서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천국열쇠를 부여받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인, 나 베드로’라고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장로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3년 동안 그리스도와 고난의 사역을 했으며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놀라운 체험을 한 증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영적 권위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 지도자로서 일할 때 그 권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높은 학벌입니까? 뛰어난 설교능력이나 행정능력입니까? 아닙니다. 그러한 것으로 는 지도자의 권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체험적인 삶,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강한 능력을 소유하는 삶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영적 권위만이 강한 지도력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만이 하나님이 맡기시는 양떼를 다스릴 수 있는 자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상은 양 무리를 자원함으로 치는 자입니다.

2절에 보면 성도들을 ‘하나님의 양 무리’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양은 가장 어리석은 짐승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뿔이나 사나운 이빨, 뒷발이나 발톱, 독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토끼나 사슴처럼 잘 달아나는 기술이라도 있지만, 양은 아무 무기도, 잘 달리지도 못합니다. 하필이면, 그러한 양들을 왜 성도들로 비유했습니까? 양은 깨끗한 동물이요, 무리를 짓는 습관이 있고 오직 자기 목자만 따른다는 점에서 성도들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양처럼 세상에서는 아무 무기가 없습니다. 거짓 행위나 싸움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야하고 오른 뺨을 때리면 왼편 뺨도 대야하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원수까지 위해서 축복하라고 하는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입장에서 세상에서 실패자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큰 무기가 있습니다. 모든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우리 목자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도들과 함께 그 분의 인도를 따라 살기만 하면 때를 따라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함으로 받으며,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지나갈 때도 친히 안위하심으로 인도를 받으며, 원수 앞에서 서는 날에도 상을 받도록 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는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인 것입니다. 그 양 무리를 우리 지도자들에게 맡겼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인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스리는 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떼인 것입니다. 그 양 무리를 잘 다스릴 때는 우리가 상급을 받지만 양 무리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잃어버리거나 실족시킨다면 그에 대한 책벌을 대단히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의 성도들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정성껏 다스려야 합니다. 지도자끼리 물고 찢고 다툼으로 양떼가 상처를 입고 떠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회자로서 중직으로서 어느 때는 마지못해서, 혹은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자세로 교인들을 돌볼 때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그런 자세를 회개합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양 무리를 돌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상은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자입니다.

3절에 보면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초반에서 말씀드린 대로 보스형의 지도자는 뒤에서 사람들을 몰고 가며 부하들에게 명령만 내립니다. 또한 부하들을 누르며 ‘가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리더형의 지도자는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며 ‘함께 가자’는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더 나가서는 기독교 지도자는 모든 자를 섬기며 희생함으로 다스립니다.

특별히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양은 어리석어서 뒤에서 몰수가 없습니다. 앞서서 인도하여야 따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주장하는 자세로 버리고 섬기는 자세로 교인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양들 앞서 가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이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목회자나 장로 분들은 교인들을 진리를 가르치고 신령상 관계를 살피는 직무가 있는데 우리의 양떼들보다 성경 읽는 생활이나 기도생활을 못합니다. 더 나가서는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이지 못하면 누가 그런 지도를 따르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들에게 독초를 먹이거나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꼴이 되므로 실족시키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맡긴 양 무리들을 오직 섬기는 자세로 다스리고 앞서서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 일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주 앞에 설 때는 4절 말씀대로 반드시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한경직 목사님만 생각하면 가슴에 훈훈한 감동을 받습니까? 그 분의 설교 때문입니까? 아니면 큰 교회로 성장시킨 능력 탓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아집과 탐심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그만 닮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본 탓입니다. 그에 비해 지금 큰 교회 목회했던 분들이 비웃음을 받고 있습니까? 자기가 이룩한 교회라고 해서 아들에게까지 대를 물려주려는 자기 아집과 탐심 때문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랑하시는 지도자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보스형 지도자가 아니라 리더형 지도자가 됩시다. 더 나가서는 그리스도와 늘 동행하는 삶, 하나님의 양 무리를 자원함과 섬김으로 돌보는 삶, 주장질하는 자세가 아니고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삶을 사시므로 여러분이 섬기시는 교회가 성장발전하며 더 나가서는 우리 노회와 교단이 새로워지는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본보 발행인, 홍익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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