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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여행이나 산행이나 바람같은 것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사]문경 주흘산
2010년 12월 20일 (월) 18:49:33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문경 주흘산 가는 길의 하늘 풍경
ⓒ 이승철
 


“오늘은 산보다 하늘이 더 고운 날이구먼.”
“하늘이 맑고 고우면 산도 더 아름다운 법 아닌가?”


문경으로 달리는 길,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하늘이 참 고왔었는데 산골짜기에 들어서서 바라보는 하늘도 정말 맑고 고왔다. 짙푸른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구름조각들까지.

 

전날까지 잔뜩 찌푸린 날씨에 희부연 안개에 뒤덮였던 하늘을 생각하니 오늘 바라보는 하늘이 더욱 곱게 느껴졌을 것이다. 경북 문경의 주흘산을 찾은 날은 청명한 하늘까지 우리들의 산행을 축복해주는 느낌이었다.

 

충주에서 길을 잘못 찾아들어 굽이굽이 옛길을 돌고 돌아 찾아든 문경세재 제1관문 주흘관은 여전히 예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문 앞 광장의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겨울을 맞은 새빨간 감들은 성벽과 하늘을 배경으로 추위 속에 시린 모습이었다.

 

“까치밥 치곤 너무 많은 것 같군.”


많은 종류의 과일 중에서도 유난히 감을 좋아하는 일행 한 사람은 얼어터진 채 땅에 떨어진 감들이 조금은 아깝다는 표정이다.

 

“모든 것을 사람들이 다 차지해 버렸는데 모처럼 새들에게도 넉넉하게 남겨진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야 어디 남아 있는 감들이 새들만을 위해서 남겨지기야 했겠는가. 꿈보다 해몽이 좋은 셈이었다. 일행들 모두가 그동안의 계속된 산행으로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럴 것이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여행과 산행을 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고 서로에 대한 배려뿐만 아니라 타인들과 자연을 대하는 마음도 처음 시작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넉넉하게 달라진 것이다.
 

   
문경새재 입구의 산과 하늘풍경
ⓒ 이승철
 

 

   
제1관문인 주흘관과 감나무
ⓒ 이승철
 


성문 안으로 들어서서 바로 오른편 길을 따라 골짜기 쪽으로 향했다. 이 길이 바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여궁폭포를 거쳐 혜국사와 대궐터를 지나 주흘산으로 오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초겨울의 깊은 산골짜기는 싸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옷깃을 여미고 걷노라니 앞서가고 있던 등산객들 중에서 여성 한 명이 어디까지 올라갈 거냐고 묻는다. 우리가 주흘산을 올라 영봉을 거쳐 제2관문으로 내려올 예정이라고 하자 그 코스가 만만치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우리 일행들이 조금은 염려스러운 모양이었다.

 

“이 친구야 염색 좀 해라, 너무 늙어 보이니까 그런 얘기를 듣는 거야.”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등산객에게서 염려스럽다는 말을 들은 것이 아쉬운 듯 공연스레 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인 친구에게 지청구가 돌아간다.

 

“어! 무슨 소리. 난 머리만 하얗지 아직 동안인데 설마 날보고 그랬겠어?”

 

이 친구는 정말 머리카락만 하얄 뿐이지 얼굴은 동안(童顔)이다. 그래서 염색을 하면 목욕탕에서 만난 중학생이 형이라고 부를까봐 염색을 하지 않노라고 변명하는 친구다.

 

“다 좋은 마음에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쓸 것 없어, 춥고 얼어붙은 산에서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옳은 말이다. 겨울산은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험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며칠 전에 내린 눈이라도 응달길에 얼어붙어 있다면 더욱 위험할 것이다.

 

“맞아! 맞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첫 만남이라도 모두가 가까운 동지들 아닌가?”


어쩌면 나이 들어감이 아쉬운 초로의 사람들이라 지나가는 말에 공연스레 민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그런 마음을 떨쳐 내버리고 평상심과 넉넉함을 되찾는 일행들이 다정함과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옛 대궐터의 대궐샘
ⓒ 이승철
 

 

   
깎아지른 바위협곡
ⓒ 이승철
 


“아니 이건 폭포가 아니라 내 오줌줄기보다도 약하잖아?”


항상 실없는 농담으로 일행들의 분위기 메이커를 자임하는 친구가 폭포를 바라보며 예의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여성의 성기 모양을 닮았대서 여궁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폭포는 겨울철이라 수량이 적어 아주 가는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뒤를 따라 올라온 여성등산객 몇 명도 폭포가 실망스러운지 보는 듯 마는 듯 스쳐지나 곧장 위로 올라간다. 혜국사가 멀지 않음을 느꼈는지 불교신자인 일행 한 사람이 앞장서서 부지런히 올라간다. 일행들보다 앞서 올라가 참배를 하기 위해서였다.

 

천천히 뒤를 따른 일행들은 혜국사 바로 아래 골짜기에서 절에 올라간 일행을 기다리며 간식을 들었다. 첫 번째 간식은 항상 내가 준비해간 호박군고구마다. 아직 따뜻하고 물렁물렁한 호박군고구마는 산에 오르는 동안 위장을 든든하고 포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한 개씩 먹고 있을 때 법당에 들어갔던 일행이 내려왔다. 그도 군고구마로 간식을 들고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험하지 않고 평탄한 편이었다. 오히려 혜국사까지의 골짜기 길이 더 거칠었던 것이다. 골짜기를 지나 펑퍼짐한 산자락 양지쪽에 이르자 얼었던 땅이 녹아 질컥거린다. 그 산자락에 대궐터라는 막대기 팻말과 함께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대궐샘이 있었다.

 

“이곳이 대궐터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좁아 보이는군.”


정말 그랬다, 대궐터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집 한 채가 자리할 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 대궐터라는 곳이 번듯한 궁궐이 있었던 장소는 아니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말에 공민왕이 흉노족의 침공으로 피난했을 때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혜국사도 그때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대궐샘에서 서늘한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 능선이 나타났다. 이 능선을 따라 오른 편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깎아지른 바위절벽 사이로 문경읍내가 내려다보이는 협곡이 나타났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아니었다.

 

   
주흘산과 주흘영봉
ⓒ 이승철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풍경
ⓒ 이승철
 


주흘산에 올라서자 싸늘한 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땅도 아직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전망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산 아래 골짜기마다 자리잡고 있는 읍내와 마을들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리고 그 골짜기 너머로 줄기줄기 이어진 산들은 장엄하고 기세당당한 모습이다. 하늘은 또 얼마나 맑고 고운지, 월악산은 물론 저 멀리 소백산의 모습도 뚜렷하게 바라보인다.

 

“이 봉우리가 이 산의 정상인가?”


일행 한 사람이 묻는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주흘산이 해발 1075m로 정상은 아니었지만 산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으니 정상이라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진짜 정상으로 가는 거야.”


바람막이가 되어 있는 바위 뒤에서 잠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정상인 영봉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영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칼끝처럼 싸늘한 바람이 불어 모두들 모자의 귀 가리개를 내리고 옷깃을 다시 여몄다. 오른편 아래쪽으로는 아득한 절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능선길이라 힘은 들지 않았다. 길도 별로 험하지 않아 쉽게 영봉정상에 올랐다. 해발 1106m, 주흘산보다 31m가 더 높았다. 그러나 정상인 영봉은 높이만 높았지 아주 평범한 봉우리로 마주보이는 주흘산에 비해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제 제2관문 쪽으로 하산한다.”


우리들이 하산길로 나섰을 때였다.


“내려가시려고요? 전 제3관문 쪽으로 돌아 내려가겠습니다. 어르신들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이 시간에 저 사람 너무 멀리 돌아오려는 것 아니야? 괜찮을까?”

 

일행 한 사람이 조금은 염려스러운가 보다. 40대 중반쯤의 등산객은 혼자였다. 그런데 그의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힘이 넘친다.

 

   
주흘산과 이어진 연봉들
ⓒ 이승철
 

 

   
너덜바위지역과 돌탑들
ⓒ 이승철
 
 

추운 날씨임에도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바람처럼 날렵하게 걸어가는 그에게서는 저 멀리 줄기줄기 이어진 산봉우리들을 거침없이 돌아 내려오리라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영봉에서 제2관문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경사가 매우 급했다. 얼었던 땅이 녹은 곳이나 얼어 있는 곳이나 미끄럽고 위험했다. 일행들은 조심조심 매우 느린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곳곳에는 우리들보다 앞서 내려가던 단체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이날도 주흘산에는 40여 명씩의 등산객들이 두 팀이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자 제3관문 쪽의 바위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골짜기가 가까운 곳에 이르자 한쪽 산자락에는 오랜 옛날에 흘러내린 커다란 돌무더기들이 지천으로 쌓여 있는 모습인데, 그 돌무더기들 위에 수많은 돌탑을 쌓아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골짜기를 내려와 제3관문에 이르니 어느덧 짧은 겨울 햇살이 산 위에 비껴 있다. 옛날 영남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넘었다던 과거길 옆에 새로 넓게 만들어 놓은 고갯길은 흙길임에도 아스팔트처럼 매끈한 모습이다. 10km가 넘는 산길을 5시간 이상이나 걸어 다리가 풀려 있던 일행들도 이 길에서는 위험하지 않아 안심하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 길에는 많은 역사와 전설들이 유적들과 함께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길가에서 만나는 옛 유적들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여유롭고 평안한 길이었다. 아직 얼어붙지 않은 조곡폭포는 엷은 물줄기로 흘러내리고, 숲속의 주막집과 길가의 돌탑들도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오늘도 좋은 산을 찾아 하루가 흘러갔구먼.”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산을 내려와 옛 선비들이 걷던 길을 길으니 새삼스럽게 세월이 무상한 느낌이구먼.”
“오늘이라는 하루를 저 산과 길에서 살아낸 건가? 살아간다는 건 여행이나 산행이나 흐르는 세월에 바람 같은 것인지도 몰라.”


힘든 산행을 마치고 평안한 길을 걸으며 모두들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표정들이다. 길을 걸으며 문득 신석정의 옛 시구 한 구절이 귓전에 맴돌았다.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 신석정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중에서 -

 

   
식당 벽면에 가득한 명함들
ⓒ 이승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골짜기는 벌써 해거름이다. 한쪽 귀퉁이에서 과일을 팔던 할머니들은 짐을 꾸리고, 몇 대의 승용차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저녁은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근처의 식당을 찾아들어 소주 한잔을 곁들인 일행들이 얼큰한 포만감으로 기분이 매우 좋은 표정들이다.

 

“저 명함들은 누가 보라고 저렇게 잔뜩 꽂아 놓았을까? 다 부질없는 짓인데”


저녁을 먹고 나오며 바라본 식당 벽면에는 수백, 아니 수천 장의 명함들이 한쪽 벽면에 가득히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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