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1.15 목 17:17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문화/미디어
     
왕조창업의 길을 닦았던 바윗길과 소나무들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서울과 경기도 경계에 있는 도봉산
2010년 10월 14일 (목) 13:59:06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넓고 둥근 바위 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
ⓒ 이승철
 

"산이 가깝다고 너무 게으름을 피운 것 아닌지 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 시간이 너무 늦어 걱정이 되는지 일행 한 명이 은근히 채근을 한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느지막한 시간에 도봉산 산행을 시작했으니 걱정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이어서 자연히 마음도 여유로워 산행도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금요일(10월5일) 1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려 도로를 건너자 골목길 좌우가 온통 등산용품점들이다. 평일인데도 길을 메우며 걷는 사람들은 모두 등산객들이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등산용품을 파는 가게들도 그렇게 성업 중인 것이리라.

도봉산 입구에 들어서자 조선조말 익종비로 책봉되었으나, 왕비는 되지 못하고 훗날 철종과 고종을 세우고 세도정치를 하기도 했던, 조대비의 별장터에 세워진 광륜사가 앞길을 막아선다. 그 앞길을 돌아 산길로 들어섰다.

모처럼 해맑은 하늘에 햇볕이 따가웠으나 바람기가 서늘하여 등산하기에는 정말 좋은 날씨다. 약수터를 지나자 곧 능선 길이다. 그 능선을 따라 잠깐 올라가자 다락능선이라는 표지가 나타난다.

"이 능선에는 바위들이 유난히 많은 편이구먼, 그런데 새하얀 바위 위에 웬 소나무들이 이렇게 많지?"

새하얀 바위와 소나무라? 정말 그랬다, 도봉산의 바위들은 하나 같이 하얀 빛깔이었다. 매끈한 화강암이 가을볕에 물기가 말라 더욱 하얀빛으로 깨끗한 모습이었다.

도봉산의 유래와 소나무

다락능선뿐만이 아니었다. 왼편으로 바라보이는 이 산 정상인 자운봉과 함께 3형제의 아우들처럼 그 아래로 우뚝우뚝 솟아있는 선인봉과 만장봉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것은 이렇게 바위가 많은 험한 산에 소나무가 유난히 많다는 것이었다.

"이 산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 것 같지 않아?"

매주 산행을 함께하는 일행들의 눈에도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것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도봉산 높은 지역 숲속의 망월사
ⓒ 이승철
 
"이 산은 태조이성계가 저 바위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조선왕조 창업의 길을 닦았다고 하여 도봉(道峯)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더구먼."

일행 한 명이 도봉산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또 다른 유래는 큰 바윗길이 산 전체를 이루고 있어서 도봉(道峯)이라는 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던데."  

다른 일행은 또 다른 설을 이야기 한다. 

"하여튼 그런 설이 생길만도 해, 저 봉우리들 좀 봐! 얼마나 대단한지, 이 다락능선에서부터 시작하여 포대능선과 주봉인 자운봉 등 세 개의 봉우리를 보면 충분히 그런 유래가 생길만 하지 않아?"

산이나 지명의 유래라는 것이 적당히 생긴 것은 없을 것이다. 모두 다 그만한 사연이나, 아니면 특별한 산세나 모양에서 비롯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도봉산이라는 이름의 도(道)는 꼭 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잖아? 도리나 이치, 그리고 무예나 종교적인 뜻까지 아우르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다. 한문자의 도(道)는 정말 꼭 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저렇게 전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바위 위에서 자라난 저 소나무들 말이야, 소나무는 변치 않는 지조의 상징이잖아, 더구나 바위 위에서 생존하는 소나무들은 그 상징성이 더욱 커 보이는데, 저 소나무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도봉산이라는 산 이름이 조선왕조 창업과 관련이 있다는 유래가 나오자 논리가 비약하고 있었다. 

"소나무의 변치 않는 푸른 지조는 바로 조선시대의 신비정신 아니겠어?"

듣고 보니 논리의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그것도 그럴 듯한 말이다. 

"이 도봉산의 이름이 갖는 유래가 조선창업의 길을 닦았기 때문이라면, 꼭 도봉산의 바위봉우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저 하얀 바위봉우리에 뿌리를 내린 늘 푸른 소나무의 선비정신과도 뜻이 맞아떨어진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그렇게 한참을 오르자 오른편 앞쪽으로 바위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원도봉산과, 그 높은 산자락의 숲속에 자리 잡은 망월사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바위봉우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널따란 바위봉우리 위에도 한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바위는 제법 넓고 둥그스레한 모습이 나무가 전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형태였는데, 소나무는 그 위에 당당히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것이었다. 

"이 소나무는 중국이 자랑하는 황산 바위 위의 소나무보다 훨씬 더 크고 당당하구먼." 

일행 중 엊그제 바로 문제의 그 중국 황산에 다녀온 친구가 우리 소나무를 칭찬한다. 바위위에서 자란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다 하여, 영화와 TV에도 소개되었다는 소나무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려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가짜소나무를 대신 심어놓았더라는 것이었다. 

   
다락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바윗길
ⓒ 이승철
 

산길에서 쓰레기를 줍는 노인 

그 멋진 소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간단한 간식을 들고 포대능선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어! 저기 좀 봐, 저 노인도 쓰레기를 줍고 있잖아?"

조금 올라가다가 일행 한 명이 앞쪽을 가리킨다. 정말 우리들이 가고 있는 앞쪽에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든 노인 한 분이 등산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면서 걷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일행 중에도 산에 오를 때마다 쓰레기를 주워 내려오는 친구가 있어서 그만큼 관심도 많았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른 점은 우리 일행은 내려올 때 쓰레기를 줍는데 노인은 올라가면서 줍는 것이었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걷는 노인보다 우리들이 걷는 속도가 빨라 곧 노인을 추월하게 되었다. 지나치면서 살펴보니 노인은 나이가 70세 전후쯤으로 보였다.

"산길에서 웬 쓰레기를 주우십니까?"

지나치면서 내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산에 오는 것 보다 쓰레기라도 주워 내려가면 산길이 깨끗해지잖아요?"

오히려 노인이 반문한다. 노인은 상계동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도봉산을 좋아하여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후론 거의 날마다 도봉산을 찾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등산을 했지만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거슬려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줍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도봉산을 오르다보니 도봉산 산길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하다는 노인은 나이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이었다. 

   
포대능선 바위 위의 소나무들
ⓒ 이승철
 

아슬아슬한 포대능선에서 등산의 묘미를 만끽하다 

노인과 작별하고 부지런히 일행들의 뒤를 좇았다. 일행들은 다락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바위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바위를 어떻게 올라가지?"

평소 약간의 고소공포증에 겁이 많은 친구가 망설인다. 급경사인데다 비좁은 바위에 쇠줄을 설치해 놓은 모습이 결코 만만해보이지 않는 바위절벽이었다. 

"쇠줄만 꼭 붙잡고 올라가면 전혀 위험하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한 번 올라가봐! 힘든 곳은 내가 뒤에서 밀어줄 테니까."

일단 그를 안심시키고 앞장 세웠다. 그가 쇠줄을 붙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몸이 상당히 비대한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바위였다. 

그는 힘을 내 별 어려움 없이 절벽 위에 올라서자 땀을 씻어 내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런 바위절벽과 쇠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길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막상 포대능선에 이르자 길은 대부분 아슬아슬한 바위절벽 길이었다. 

오르고 내리는 것이 하나같이 힘들고 어려웠다. 몸이 가벼운 일행들은 문제없었지만 비대한 친구는 달랐다. 발을 내딛기가 어려운 지점이나 비좁은 바위사이를 통과하는 것이 정말 힘겨운 모양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밀어주기도 하고 손을 잡아 끌어주기도 했지만 그는 힘에 겨워 비지땀을 흘렸다. 

속도가 너무 느려 뒤에 오는 사람등산객들에게 방해가 될 때도 있어서 비켜설 수 있는 곳에서는 뒷사람들에게 길을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는 걸, 팔에 힘이 빠져서 도저히 못 올라가겠어."

아직 한참을 더 올라가야 되는 지점에서 그가 주저앉았다. 그의 이마에서는 콩알처럼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한쪽으로 비켜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다른 일행들은 먼저 올라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5분 쯤 쉬고 나자 그가 다시 쇠줄을 잡고 일어섰다. 포대능선을 그렇게 힘들게 통과하여 신선대에 올랐다. 

정상인 자운봉은 오를 수 없는 봉우리였다. 자운봉의 바로 뒤편에 있는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기가 막혔다. 만장봉 너머로 바라보이는 수락산과 불암산의 풍경도 아름답다. 그 사이로 펼쳐진 서울북부와 의정부의 시가지도 멋있는 풍경이었다.
"역시 이 맛에 등산을 한다니까."

그가 주변의 조망에 감탄하다가 힘들게 올라온 포대능선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어렵게 올라온 만큼 그만큼 뿌듯한 자부심과 보람이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전에는 등산은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오늘 포대능선을 넘어 신선대 위에 올라서니 이제 자신이 좀 생기는 것 같구먼,"
몇 개월의 등산이력이 이제 힘들게나마 도봉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게 한 것이다. 

   
숲속의 새끼고양이와 바위 밑에 숨은 고양이
ⓒ 이승철
 
은 능선 길 숲에서 만난 산고양이들 

신선대에서 내려와 다시 간식을 든든하게 먹고 우이암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칼바위 능선을 돌아서자 저 앞으로 인수봉과 백운대가 위용을 드러낸다.

 

"아니 저게 뭐야? 고양이들이잖아."


정말 고양이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다섯 마리였다, 커다란 어미 한 마리와 아직 어려보이는 새끼가 네 마리였다. 녀석들은 능선길 숲속에서 우리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기 카메라를 꺼내들자 위험을 느꼈는지 다른 녀석들은 재빨리 달아나고, 어린 새끼 한 마리만 남아 나를 빤히 쳐다보는 보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인근의 서울변두리나 고양시, 또는 의정부시의 가정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일 것이다.
 
조금 더 내려오자 조금 전에 보았던 고양이 어미가 바위 밑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눈빛을 보니 적대감이 없다. 내가 다시 카메라를 꺼내어 들이밀었지만 별로 동요하지 않는 표정이 아직 사람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버린 고양이가 산고양이가 되었을까? 저들이 산에 있으면 산새들이나 다람쥐 같은 작은 짐승들에게 많은 위협이 될 텐데..."

일행 한 명이 고양이가 아닌 다른 약한 동물들의 걱정을 한다.

 

"저 바위 위에 서있는 소나무 뒤로 보이는 5봉 풍경 좀 봐! 정말 멋있지 않아?"

능선 길의 바위 위에는 예의 소나무들이 단단한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한 기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위 능선 길을 벗어나자 내려오는 길은 평탄하여 쉬운 길이었다. 길도 평탄하고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이다. 우이암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곳에서 왼편 보문능선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쉬운 길이다. 도봉산에서 가장 좋은 능선길이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산악훈련을 나온 한 떼의 회사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젊은이들이었지만 등산 실력은 우리 일행들보다도 한 수 아래인 것 같았다. 능선길에서 내려와 근처의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가의 도봉사 담장에는 기다랗게 그려놓은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가을 도봉산을 읊은 옛 시 한 수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박두진(1907~1998)의 시 <도봉(道峯)>모두-

 박두진 시인이 일제 말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암흑기에 발표한 작품이다. 시인은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상태의 고독감과 함께, 한 줄기 구원을 바라는 외로운 심정을 감미로운 서정과 애조로 읊어냈다. 모처럼 게으름을 피워 늦게 시작한 산행으로 어느새 우리가 지나온 보문능선에 시의 한 구절처럼 석양이 걸려 있었다.

 



 

이승철 시인의 다른기사 보기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극심해지는 中 기독교 탄압
서울동남노회 사실상 ‘분열’
인생승리(人生勝利)의 십계명
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
한국교회와 청소년 교육
교인들의 성질을 고치려는 노력(2)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
환난과 핍박 중에도
최근 올라온 기사
영화(부활)
필립핀 파이오이 성당
사도신경 해설-7 (“몸의 부활을 믿...
잠25강 12:15-28 공의로운 길...
위로하시는 하나님
마음 속에 가득 담고 있는 것과
어느 병실에 걸린 시(작시 미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통치자들
대법원 판결에 우려
"교단 소속목사 성추문 사건 깊은 유...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