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누구일까? 2003년,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다녀온 후, 장편 ‘검은 꽃’을 발표하였다. 근대 초기의 멕시코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이 소설, 출간 당시부터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해말 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이듬해에는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검은 꽃’말고도 ‘오빠라 돌아왔다’, ‘보물선’같은 작품으로 상이란 상은 싹쓸이했다. 한 작가에게 상을 몰아주지 않는 한국 문단의 관례에 비추어볼 때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소설가 김영하 씨 이야기이다.

요즘 김영하 씨가 자신의 문학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게 된 데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표해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산문 일부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검정교과서에 실렸다는 사실을 출판사에서 통보받고 지난 4월말 자신의 마이크로 블로그에다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인터넷 여론이 분분하다. ‘저자가 마땅히 취할 수 있는 입장이다’라는 의견과, ‘교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자기가 뭔데...’이런 반응이 부딪혀다.

그런데 교과서에 싣기 전에 연락한 게 아니라, 실은 후에 연락했다는 얘기이다. 어째서 이럴 수 있을까. 현행 저작권법 25조는 학교교육 목적에 필요한 교과용 도서에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작품을 실을 수 있게 돼있으며 수록할 때에는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설마 저작권자의 권익을 침해할 뜻이 있었겠나. 교과서 제작자에게 작품 선택을 폭넓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함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거에 대해 이의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 않나. 많은 작가들은 지금까지 소설이든 시든 국가 검정교과서에 글이 실리는 것 자체가 인지도와 작품성을 인정받는 훈장과도 같은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영하 씨는 무엇 때문에 이런 영광스러운 선택을 마다하고 있을까. "국어 교과서들은 시를 제외하고는 원문을 그대로 싣는 법이 거의 없어 작가가 추구했던 내적 완결성은 사라지고 결국은 입시 교육의 한 도구가 된다"고 했다. 이런 식의 부분 발췌라면 출판사가 자신의 정치의식, 미의식에 따라 얼마든지 저작권자의 뜻에 반해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작권법 25조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저작권 제한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교과서 편찬자들이 어떤 텍스트든 마음대로 사용해도 괜찮은지, 국가는 개인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징발, 편집, 수정할 수 있는지, 영리기업이 남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지, 사실상 처음 물어본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문제 제기는 도발적이면서도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과서라는 공공재와 작가의 인격권이 충돌하고 국가가 추구하는 공익과 개인이 지향하는 사익이 대결하는 구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또 하나의 우려점, 즉 원문의 뜻을 출판사가 자의적으로 오도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짚어보자.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교과서에 자주 실리는 작품들을 위주로 분석해봤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1930년대에 발표된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을 들었다. 이 작품,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국어 교과서에도 여러 번 수록된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표본으로 인식하지만 이런 단선적이며 일률적인 결론은 문제가 있다.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재혼을 포기당하는 억압적 상황은 온데 간데 없다. 이렇게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위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가장'(家長)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였던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 권위였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주인공으로 남는다. 이런 와중에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란 교훈만 있을 뿐이고, 이것을 교과서는 작품의 주요 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김영하 씨 주장대로 저작권자 동의를 일일이 다 구할 경우 발생할 문제는 없을까. 교과서는 당대의 문화적 자산이 총집결하는 곳이며, 누구든 후손을 가르치는 일에는 최고의 것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개인적 선택을 허용하면 최고의 교과서를 편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영하 씨는 교육에 동원되는 문학을 우려했지만 작가 자신도 많은 선배들의 글이 실린 교과서를 통해 문학을 배우지 않았던가 하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우리 국민이 평생 접하는 문학작품의 대부분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이라는 통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변형의 정도가 심해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가 아니면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교과서 참고서와 자습서를 만들면서도 저작자의 이용허락을 받지 않는 관행, 이건 문제다. 교과서 편찬자 역시, 검인정의 권위에 기대 손쉽게 저작물을 다루기보다는 작품의 취지를 살리고 저자의 인격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고의 교과서를 편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하 씨의 취지는 작품에 대한 권리보다는 작품이 갖고 있는 가치가 홀대받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에 이 문제는 쉽게 해결의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