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발견하는 것이지? 그런데 병을 발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신약물학과 윤리학을 연구하는 크리스토퍼 레인 교수가 쓴 책 ‘만들어진 우울증’이란 책이 요즘 화제이다. 이 책을 소개한 한 신문의 예화가 아주 흥미롭다. “정신적 고통의 가치를 웅변했던 에밀리 디킨슨이 요즘 사람이라면 항우울제 처방을 받았을 테고, 과묵함을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삼았던 너대니얼 호손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나는 사회 공포증 환자다”로 커밍아웃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과거에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문제가 지금은 약을 써야 하는 병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저 개인의 특성이나 장점으로까지 평가되던 수줍음이 어떻게 된 것인지 사회공포증, 회피성 인격장애로 바뀐다. ‘개구쟁이’ ‘악동’으로 불렀을 극성맞은 아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환자로 판단된다. 불평이 많은 어머니는 ‘피학성 인격장애’가 내려졌다. 이와 함께 예전에 “사내 답다”라고 했던 행동이 요즘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로 불린다. 운전중 사소한 일로 욕하고 싶다면 ‘간헐적 폭발장애’를 염려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미국 인구의 절반이 잠재적 정신병자가 돼 버린 것이다. 요즘 TV나 인터넷을 보면, 연예인들의 우울증 고백이 인터넷 뉴스를 장식한다. 간혹 보면, ‘저렇게 활달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정신장애라니’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환자를 양산하도록 조장한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일까. 크리스토퍼 레인 교수의 생각은 그렇다. 사회공포증이 정식으로 장애증상이 돼 등재된 때가 1980년이다. 이때 미국정신의학협회가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제 3 판’을 냈는데, 1968년 2판 때 열거됐던 180개 질환 카테고리에서 무려 112가지의 새로운 장애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1994년 캐나다 시민 526명을 무작위로 조사했더니 ‘사회 불안 장애’ 비율은 하룻밤새 4에서 20%로 다섯 배 늘어났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레인 교수는 이건 병의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고 규정한다.

병이 많으면 의사들도 환자를 뜻하는 이른바 ‘손님’이 많아져서 좋다는 이야기인가 본다. 그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아오는 손님이 많으니 약사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약업계에는 그래서, 이런 경구가 있다고 한다. ‘약을 팔기 전에 먼저 병을 팔아라’ 이러다보니 근래 미국에서는 행복하지 않거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일의 미진한 성취까지 정신병으로 몰아가 약 한 알의 해결책으로 홍보하는 제약업체가 적지 않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건데, 약을 줄이거나 끊은 다음 더 지독한 증세가 나타나는 ‘반동 증후군’이란 게 있단다.

그래도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면서 과거와는 달리 정신질환자가 늘어난 면도 있지 않을까. 그런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이란 것은 자연치유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 속에서, 풍부한 독서, 또는 신앙의 힘으로도 이겨낼 수 있다. 약보다는 이런 방편이 훨씬 더 좋은 치유 방법 아니겠나? 다행히 요즘에는 ‘장애들의 진입조건을 엄격히 하자’는 일부 학자들의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약 과용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양심적인 의사와 약사들도 “약 드실 일은 아닙니다”라며 약 찾는 분들에게 남용을 자제하도록 당부하고 있는 점, 이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우울증 환자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의료가 산업화되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요즘 병원과 약국마다 붐비는 신종플루 신드롬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신종플루 파문에는 이른바 음모론이 따라붙는다. 치료제를 많이 팔기 위해 바이러스의 위험을 부풀렸다는 얘기는 기본이고, 올 4월 인도네시아의 시티 파딜라 수파리 보건장관은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신종플루가 (선진국 제약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겠지?

근거는 많다. 세계 최대 제약사인 박스터. 이 회사는 신종플루가 창궐하자마자 바로 세계보건기구로부터 백신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따내는 한편, WHO와 대유행 관련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유행이 선포되자 막대한 부를 확보한 상태이다. 타미플루를 생산·판매하는 로슈 역시 ‘병 주고 약 준다’라는 제약사 음모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타미플루 특허권을 가진 미국 생명공학회사인 길리드사의 대주주가 미국 국방부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이기 때문이다. 조류 독감(AI)이 처음 나타났을 때 전세계 미군에게 타미플루를 일괄 지급하라고 명령했고, AI가 창궐하자 타미플루 사재기가 일면서 돈벼락을 맞았다. 그러다 최근 AI가 진정되면서 로슈와 길리드의 이익이 줄어들자 때마침 신종플루가 나타나면서 그의 주머니도 다시 불룩해졌다. 냄새가 난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이런 의혹은 어디까지나 인도네시아 보건장관이 제기한 것이다. 사실 산업화의 좋은 점도 적지 않지만,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일에는 산업의 가치 그 보다 더 우월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다. 뭐가 사실이고 뭐가 허위인지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제와 어제 제가 들른 병원은 사람으로 인산인해였다. 병원과 약국, 요즘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실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