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 지나면 추석 연휴가 된다. 이제는 고속도로 주행하는 동안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던 휴게소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민족의 정서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일부 고속도로 휴게소가 바가지와 불친절 때문에 시빗거리를 낳았다. 이제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요즘 잘나가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마디로 종합레저 공간에 버금간다. 전국 150개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는데. 판매하는 물건은 평균 4500개가 넘는다. 메뉴나 서비스가 천편일률적이지도 않다. 30㎞마다 하나 꼴로 휴게소가 있다 보니 경쟁이 붙으면서 휴게소마다 제 나름의 특색을 지니기 시작했다.

이색 시설,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이 가능한 휴게소도 여럿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향 대천휴게소는 서해안 일몰을 볼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했고,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추풍령휴게소처럼 자체 동물농장을 운영하는 휴게소도 곳곳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청원휴게소는 지난 3월말 전국 휴게소 가운데 최초로 PC방을 설치한 것은 물론 실내야구장까지 마련했다. 하행선 안성휴게소는 건강검진실을 열었다. 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 문산휴게소는 누에고치 체험장도 눈길을 끈다. 칠곡휴게소엔 국내 유일의 휴게소 갤러리가 있다.

아예 수면실, 목욕탕까지 등장했다. 잠깐 잠을 청하거나 샤워를 할 수도 있다. 화물차 휴게소가 그런데. 수면실·목욕탕을 갖춘 휴게텔 요금은 한 시간에 보통 2000원. 경부고속도로의 칠곡·언양·상행선 경산휴게소는 무료 샤워장을 운영한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휴게소에는 지하 207m의 천연 암반수가 나온다. 경부선 하행선의 옥산휴게처럼 이발소가 있는 곳도 3곳이다. 하지만 넓은 주차장, 넉넉한 휴식공간, 이런 휴게소의 기본적인 기능을 튼튼히 함으로써 승부하는 휴게소도 있다.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가 그렇다.

휴게소의 백미는 역시 음식이다. 먹고 가려면 휴게소 메뉴는 여전히 우동·라면이 압도적이다. 작년만 해도 이 두 메뉴가 비빔밥·오징어·국밥·김밥·백반·호두과자를 합친 매출보다도 많다. 하지만 이 메뉴를 제외한 다른 메뉴들은 휴게소마다 각양각색이다. 지역 특산물을 가공해 새 메뉴를 개발하는 게 붐일 정도다. 통영 대전 고속도로 함양휴게소는 직접 빚은 청국장을 끓여서 내놓는다. 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 진영휴게소의 진영단감 왕갈비찜은 소문난 별미 중 하나다. 한우로 유명한 횡성의 영동고속도로 인천방향 횡성휴게소는 한우스테이크가 유명하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는 금강에서 잡은 피라미 튀김인 도리뱅뱅이 정식이 유명하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전국 방방곡곡의 노동현장을 다니며 강연하는 탓에 아마 대한민국에서 물류나 운송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고속도로 이용도를 보이는 분일 거다. 하종강 소장이 남긴 ‘휴게소에서 얻을 수 있는 도움’이란 글이 눈길을 끈다. “화장실이나 식당에서 깜박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자신이 타고 온 고속버스를 놓치거나 했을 때는 즉시 안내소로 가서 도움을 청하면 된다. 놓쳐버린 고속버스와 연결될 수 있는 적당한 다른 교통편을 찾아서 태워주기까지 한다. 환자가 발생했을 때 근처 병원까지 태워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물건을 신고해 두면 나중에 찾았을 때 택배로 부쳐주기까지 한다. '설날'에는 운이 좋으면 아침 이른 시간에 떡국을 공짜로 먹을 수 있고, '추석'에는 송편을 받기도 한다.” 이거 많이들 모르셨을 거다.

명절 때 고속도로가 정체되면 휴게소 직원들, 속으로 웃을까. 일희일비가 있다. 휴게소 구간에 차량이 정체됐을 때는 매상이 평소보다 크게 오른다. 특히 정체됐다가 휴게소 앞에서 풀리는 상황이라면 금상첨화. 이럴 경우 주차장은 만차가 되고 매상은 30% 이상 올라간다. 그러나 휴게소를 지나서 정체가 시작되는 경우는 운전자들이 빨리 정체구간을 통과하려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매출은 떨어지게 된다.

요즘엔 휴게소의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과열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몇 년 전 내놓은 ‘고속도로 부대시설 이용실태조사’를 보면 따르면 1999년 휴게소가 올린 총 매출액은 4728억여 원에 달했다. 휴게소 매출은 2002년 6681억여 원까지 증가했다. 휴게소는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 2004년에는 141개에 달했지만 매출은 6621억여 원으로 되레 감소했다. 시장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데 경쟁자들만 증가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KTX가 빠르게 수송분담율을 높여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는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이것이 자칫 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그러나 휴게소의 핵심은 ‘고향 가는 길목의 쉼터’ 아니겠나? 인정을 모토로 한 승부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