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담임목사 문제로 상담을 원하는 내용이었다.
‘목사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습니다.’
그때 나는 장로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임시 당회장으로 몇 달 동안 강단을 지키며 후임자 문제로 협의한 일이 있었다. 노회 총무라는 직책도 직책이지만 주일마다 설교자를 세워야 하는 교회이기에 겸사겸사 불러주셔서 몇몇 교회의 임시당회장을 맡을 때인 것이다. 성격상 이러자 저러자 하지 못하는 관계로 그저 바라만 보고 지냈는데 간혹 어떤 분을 모시는 것이 좋겠는가 물으면 내 대답하는 말이 ‘실패한 목회자를 청빙하시지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하는 말이 ‘깡마른 소 이야기’ 이다.

오래 전에 농촌에서 목회 할 때 교인들을 따라 우시장(牛市場)을 간 일이 있었다.
사방에서 모여든 소를 놓고 사람들은 흥정을 하게 된다. 살찐 암소도 있지만 깡마른 소도 더러 보였다. 물론 살찐 소는 값을 후하게 쳐 주어야 한다. 깡마른 소는 상대적으로 값이 낮았다. 그런데도 주인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통 사정을 한다. 된다 안 된다 밀고 당기다가 적절한 선에서 값을 치르게 되는데 파는 사람은 손해보고 팔았다 말하고 산 사람은 잘 샀다고 기뻐한다. 탈무드에도 두 가지 인정하는 거짓말이 있다. 결혼식장의 신부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것과 물건을 산 후 자랑하는 사람에게 그거 참 잘 샀다고 하는 것인데 그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일종의 에티켓이라고나 할까?

말이야 바른대로 학부와 신대원 과정을 마친 분이 설교야 못하겠는가? 거기다가 대학원과 박사과정까지 두루 섭렵하신 분이라면 어느 누가 봐도 우아하게 보이는 목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목사를 청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리는 것은 왜일까?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 있다. ‘목사면 다 목사인가? 목사라야 목사이지’ 하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은 아닐 터이다. 목사와 교인의 관계는 부부관계와도 같다. 연애시절의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결혼 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 때문에 얼굴 붉히고 막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목사 좋은 교인 관계라면 막말이야 할까?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아니 된다. 목회자가 교회에 부임하면 1년 동안은 설교로 승부를 건다. 2년차가 되면 인격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고 3년차면 생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며칠 전 지나간 영화 가운데 ‘워낭소리’를 감상하였다.
팔순 농부와 한 마리 소가 주인공이다,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최노인에게는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이다.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노인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다. 최고의 농기구이기도 하고, 유일한 자가용이기도 하다. 최노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늙은 소의 목에 달린 희미한 워낭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서 매일같이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될까 싶어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 영감이다. 최 노인의 늙은 소는 제대로 서지도 발걸음도 옮기지 못 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만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최 노인의 소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최 노인이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탓에 다리께며 몸 이곳저곳에 오물 칠갑이다. 죽기 얼마 전 우시장에 함께 갔다가 제 값을 쳐 주지 않는다고 ‘안 팔아, 안 팔아’ 하고 우기다가 결국은 밭 동산에 매장하고야 만다. 최 노인은 좋은 친구를 잃었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날, 최노인은 늙은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수의사에게서 듣고 결국은 땅에 묻은 것이다. 최노인과 늙은 소에게 있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소는 늙어 달구지를 끌기에는 힘이 부친다. 최 노인도 늙어 힘이 없어 저는 다리를 끌고 밭고랑을 만들고 소 풀을 베러 나간다. 소는 주인을 알고 최 노인은 소를 안다. 값으로 칠 수 없는 그 무엇이 두 사이에 있는 것이다. 깡마른 소라도 여물을 잘 먹이고 살을 찌우면 좋은 값을 칠 수 있는 소가 되련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냥 좋은 소만 고르려고 한다.

목회자를 소에 비유함이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모자라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치명적(?)인 실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성할 수 있는 목회자를 청빙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겉모양 허우대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의 부르심 곧‘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목회자라면 깡마른 자신을 청빙해 준 그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베푸는 환상적 목회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

지금 목회자를 찾는 교회가 있다면 깡마른 소를 고르시오!

/덕수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