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SBS라디오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의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인터뷰 내용입니다. 출연에는 김용민 필진입니다.

MC: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늘 끝내 서거하고 말았습니다. 그 분이 남긴 수많은 어록은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큰 동력이 됐습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을 살펴봅니다. (인사)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달변가로 명성이 자자하지 않았습니까?

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써서 책으로 내도 하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맥 호응에 하자가 없는 것은 물론, 깊은 신념과 통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을 연대기별로 살펴보자.

MC: 언제 적 발언부터 살펴볼까?

1969년 7월 19일로 가보자. 당시 효창운동장에서 3선 개헌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3선 개헌은 이 나라 민주국가를 완전히 1인 독재 국가로 만들어 국체를 변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3선 개헌이 뭔가. 두 번 밖에 할 수 없는 대통령을 3번까지 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 아닌가? 하지만 3선 개헌은 성사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

MC: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때 박정희 대통령의 맞상대가 돼 출마하지?

그렇다.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던 이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거듭 예언적 발언을 했다. “만일 대선에서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면 정치체제가 총통제로 바뀌어 독재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이 발언은 적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선된 뒤, 이듬해 10월 유신을 선포하면서 영구적 집권이 가능한 간선제 대통령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런 박정희 대통령은 그로부터 7년 뒤 측근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게 된다.

MC: 그리고 이른바 1980년 ‘서울의 봄’이 열렸지?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재개하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 기간 동안 정말 어처구니없는 탄압을 받았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게 됐고. 일본에서 납치돼 대한해협에서 수장될 뻔 했었다. 그 엄청난 핍박을 이기고 1980년 광장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민들의 각성을 요구하며 목청을 높였다. "4.19는 5.16의 안티테제다. 4.19가 정의이면 5.16은 불의이고, 4.19가 민주이면 5.16은 반민주인 것이다"라고 했다. 이때가 4월 18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시 붙잡혀간다.

MC: 5.17 전국 비상계엄이 있었지?

신군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란죄를 뒤집어 씌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터무니없는 모략이고 억울한 누명임은 훗날 법원이 확인해줬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인의 체포에 항의해 시위를 벌인 광주시민이 총칼에 숨져간 사실을 훗날에야 알았다. 사면 된 뒤에 찾은 망월동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흘린 눈물은 백 마디의 어록을 누르는 울림이 있었다.

MC: 옥중서신은 이후로도 큰 화제가 됐었지?

한 두 개만 골라서 소개한다. “경쟁에는 형제적 경쟁과 적대적 경쟁이 있다. 전자는 경쟁자와 협력하며 남을 살리면서 또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경쟁한다. 후자는 고립해서 투쟁하며 남을 파멸시키면서 또는 남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경쟁한다. 전자는 자기와 남을 다 같이 성장시키고, 후자는 자기와 남을 다 같이 좌절시킨다.” “용기는 바른 일을 위하여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덕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감옥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지?

MC: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결국 석방됐지?

석방 조건은 미국 망명이었다. 미국으로 망명하는 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다. “이제 가면 언제 올까 기약 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돌아와 종을 치리. 자유 종을 치리라” 정말 돌아와서는 자유의 종을 치기 위해 직선제 개헌 투쟁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줄여서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게 된다. 또 한 명의 공동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우리의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선행조건이다"라고 했다.

MC: 이후에 현실정치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었지?

1992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진 다음, "이제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라고 했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세 번 나와 대통령 선거에 떨어진 사람이 네 번 나와 국민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라며 정계복귀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1995년 정계로 다시 돌아오지? 그때 "정계은퇴시에는 정치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으나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고, 이를 두고 논란은 한층 가열되기도 했다.

MC: 하지만 1997년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않았나?

그렇다. 많은 이들은 반세기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혹시 대대적인 정치보복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 이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을 둘이나 잡아넣을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런 건 못한다"라고 했고, “내가 기독교 신자를 포기한다면 몰라도 정치보복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 보복은 김대중 대로서 끝내겠다. 보다 밝은 미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어떠한 정치 보복이나 협량을 절대 배격하겠다”라고 했다. 과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기 말대로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작이 된 자서전에서 “신앙의 힘으로 전두환 씨를 용서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MC: 지역감정의 깊은 골도 넘어야 할 벽 아니었나?

그렇다. 지역감정과 관련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도 많았다. 대선 당시 부산에 가서는, "신한국당 최고지도자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는데 여러분도 나를 남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김해 金씨로 경상도 사람이다. 나의 두 며느리도 부산에서 태어났다"라고 했다. 또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은 망국의 길이고, 우리 민족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도 "지역주의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대통령을 못하면 못했지 절대로 동서분단을 방치할 수 없다"라고 했다.

MC: 대통령이 돼서 최대 업적은 남북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점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날, 개성 금강산 백두산 사업 문제가 모두 해결된 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남북화해국면을 조성한다면, 아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천만송이의 조화를 받는 것 보다 더 기쁠 것이란 생각도 든다. 햇볕정책과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감싸기도 하지만 음지에 있는 약한 균들을 죽이는 것도 햇볕이다"라고 했다.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억압과 고립화, 이런 것으로써 성공한 일이 없다. 그러나 개방으로 유도하고 대화를 하고 이렇게 해서 성공 안 한 적이 없다. 햇볕정책은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라고도 했다.

MC: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애썼던 발자취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외환위기 직후 나라를 넘겨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소수의 재벌에게 이익을 몰아다준 점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걸 이른바 ‘압축 성장’이라고도 표현하지. 그래서 취임 직전에 "이제 재벌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공언했고, 취임사에서도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시키겠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바퀴와 같다. 결코 분리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빅딜이건, 작은딜이건 기업을 개혁해야 한다"라면서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세웠다. 그래서 벤처기업을 집중 육성했다. 하지만 거품이 너무 커져 우리 경제의 짐이 됐지? 명암이 있었던 것이다.

MC: 차별해소를 위해서도 애썼다.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 땅에 차별로 인한 대립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호남에 대한 차별 해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1998년 경남도청에 가서는 "나도 실업계 고등학교 나왔어요. 실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지, 학교를 가지고 차별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 그의 시대에 차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말하는 이들은 없었지만, ‘우리 사회에 왜 누구는 우월하고 왜 누구는 차별받고……. 이래야하지?’라는 의문을 던진 것만큼은 틀림없다.

MC: 퇴임 이후에 줄곧 민주주의 걱정에 탄식이 많았지?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평생의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탄식했다. 서울역 분향소를 찾아서는 "나라도 그런 결단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또 한 번 울분을 나타났다. 그리고 올해 6월 11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느 역사를 보나 민주화를 위해서는 희생과 땀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 속에 뼈대로 살아있다. 동의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민주주의는 달성하는 가치가 아니라 지키는 가치라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