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엘 다녀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판문점 입구의 초소 앞까지 다녀왔습니다. 노회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가 6.25를 기하여 판문점 기도회를 계획하고 노회장인 저의 동행을 강권함으로 순전히 의무감을 가지고 안구기증운동협회 이사회 설교 등 여러 바쁜 일들을 다 취소하고 판문점행 전세버스에 올랐습니다. 빈자리 하나 없이 45명이 빼곡히 탄 버스는 임진각을 지나 비무장 지대로 들어가 통일촌교회에 가서 저의 설교로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고, 장단 콩마을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처음 들른 적십자사 남측 본부사무소에서는 소장이 직접 나와 안내를 하고, 대통령이 앉아 브리핑을 받는다는 자리에 앉아서 브리핑을 받고, 기밀에 속한다는 남북전화통지문을 교환하는 통신시설까지 들러보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이 관리하는 공동경비구역(JSA) 초소 앞에서는 사정이 사뭇 달랐고 정말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분단의 아픔과 서러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신원을 파악하겠다고 버스에 오른 카추사 이등병은 원칙대로 할 뿐이라는 완강한 태도로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하며 지루한 검색을 하더니 나를 포함한 9명은 공동경비구역(판문점) 방문을 불허하니 다른 일행이 방문을 하고 나오기까지 버스 안에서 대기하라는 황당한 선고를 했습니다. 신원조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판문점 방문을 위해서는 사전에 인적 사항을 통보하여 신원조회를 받아야 하는데 저를 비롯한 9명은 사전에 명단이 통보되지 않아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노회 대표로 설교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참석을 했으므로 신원조회 문제로 거절당할 것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일행 중에 전 국가기관 출신의 장로님이 백방으로 연락을 하고 관록을 앞세워 힘을 썼지만 원칙을 내세우는 이등병의 요지부동의 태도 앞에는 무력했습니다. 급기야는 연락을 받은 적십자사 남쪽 대표가 달려왔지만 허가권자인 유엔군 사령관 부관이 자리에 없고, 재량권이 없는 이등병이나 초급 장교인 초소장의 권한으로는 불가함으로 결국 우리 9명은 판문점 방문을 포기하고 다른 일행이 판문점을 방문하고 돌아오기까지 판문점 입구 초소앞 주차장 나무 그늘에서 그야말로 한담(閑談)을 나누어야 하는 억지 휴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야 이미 JSA를 몇 차례 방문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래도 위로를 받았지만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현장을 사진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할 기대와 호기심으로 찾아갔던 다른 분들은 적잖은 실망을 가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수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노회 남북한통일선교위원회 임원들이 갈 형편이 안 되는 나를 그렇게 데리고 가려고 애를 쓰면서도 신원조회를 해야 하는 원칙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국가기관에 근무했고, 그곳에 근무하는 국가기관 사람들을 잘 아는 사이이고,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하여 인솔한 자신의 관록으로 신원조회 없이도 설마 몇 사람이야 통과시키지 못하겠는가? 하는 자만심의 실수였습니다. 혹 고위직들은 융통성 있는 결정이 가능할지 몰라도 이등병에게 융통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자유로를 달려 서울로 돌아오면서 저는 이다음에 제가 찾아갈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천국에서 내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면, 내 신원이 천국에 통보되어 있지 않는다면, 천국 문지기가 “당신은 천국백성 명단에 없다”고 나를 거절 한다면…….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났습니다. 내가 신양교회 목사였다고 내가 수많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다는 내 관록이 통할 수 있을지……. 저는 방문이 거절당한 것이 JSA 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 신원이 천국에 더욱 더 확실히 통보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다짐을 했습니다. 천국의 신원조회를 생각했습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