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아내의 묘비를 세움으로 장례식 모든 절차를 마쳤다. 겨울 동안은 땅이 얼어서 묘비를 세우지 못하다가 날이 풀린 지금에야 절차를 마친 것이다. 소천한 1월 20일부터 날짜를 세워보니 50일째였다. 숫자를 세면서 은근히 49일이 아니기를 바랬다. 불교의 내세관에서는 사람이 죽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에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믿고 죽은 자가 좋은 내세로 갈 수 있도록 불공을 드리는 의식이 49재(齋)인데 이날을 피해 오순절에 묘비를 세웠으니 그 또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다 바쁜 가운데 원근 각처에서 참석했고, 춘천에 사는 동생이 모든 작업을 주관하고 목사인 매제가 예배를 주관하니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내는 자기의 장기 입원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이 더욱 영육 간에 하나가 된 것 같다고 아주 기분 좋아했었다. 여하튼 늦게나마 모든 장례 절차를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나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할 시간들이 되었다. 물론. 아내가 떠남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

 

평소 세무 관계나 은행 업무 등 제반 업무를 내가 도맡다시피 처리했을 뿐 아니라 지난 두 달 동안 가정부 일도 거의 내가 감당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내가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훌쩍 떠났다면, 반대로 내가 먼저 떠나고 아내 혼자 남았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아내의 대부분의 유품(遺品)을 영월에 있는 딸의 공동체에 보냄으로 집안에는 남은 물건들이 별로 없음에도 순간순간 아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내가 거하던 안방에서, 주변 노인 목사님들을 위해 열심히 요리하던 주방에서, 불편한 몸으로도 청결 위해 청소하던 화장실에서 아내의 모습이 느껴진다. 때로 혼자 차를 타고 읍내 거리를 오갈 때, 가까운 병원을 지나갈 때, 심지어 오늘같이 묘비를 안치하기 위해 춘천을 가다가 가평휴게소에서 들렸을 때 아내는 편의점에서 묘비 작업을 위해 수고하는 식구들을 위해 이것저것 사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은퇴한 후에는 아내가 거의 집안 살림을 주관했다. 덕소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 아내는 혼수품을 장만하듯 많은 가구와 물품을 구입했다. 40여 년 전 시집올 때 혼수품을 제대로 못해 온 것에 대한 한풀이 같았다. 너무 과하게 구입한다고 핀잔을 주는 나와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때 아내는 말하기를 “지금까지 40년 목회하는 동안 목회의 대부분은 당신이 주관했다면 은퇴한 이후부터의 가정 살림은 내게 맡겼으면 합니다.” 그 말이 합당한 것 같아 그때부터 나는 집안일에 대해 거의 간섭을 피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일은 일일이 아내에게 묻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다가 혼자 남으니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처음에는 어찌할지 난감했다. 때로 누가 “요즘 외롭지 않냐?”고 질문하면 대답하기를 “아직은 외롭다는 생각은 사치하다고 느껴집니다.”라고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하루 종일 종종걸음하며 아내를 여러 가지로 치료해주고 세 끼 식사를 차려주고 때로 휠체어로 아파트 주변이나 마트를 다녀오고는 했다.

 

그렇게 분주 다망하게 살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중단되다 보니 몸은 무거운 큰 짐을 벗은 것처럼 자유로왔으나 마음은 ‘이렇게 한가히 지내도 되는가?’라는 초조감이 엄습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지금 모든 아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가장 평안하고 기쁨이 가득한 하늘나라에서 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러면서 요즈음 뉴스거리로 계속 등장하는 잘못된 요양원들의 불법적인 횡포를 시청하면서 아내가 그런 곳까지 가지 않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양원들의 횡포 중에 가장 귀에 들어오는 것은 환자들을 묶어두거나 수면 유도제를 통해서 계속 잠만 재움으로 병을 더 악화시킨다는 뉴스이다. 어느 기자는 그런 곳은 수용소와 같아서 죽어야 빠져나올 수 있다고 혹독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런 일은 이미 아내가 중환자실이나 처치실에서 겪었던 쓰디쓴 경험들이다.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아내는 양손을 묶인 채 몇 주간 지내던 일들을 회상하고 몸서리치면서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들을 겪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내게 말했다.

 

3월부터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한다면 작년 같은 일들이 다시 반복되고, 더 나가서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아내를 훌쩍 데려가심으로 이 모든 위험들을 피하게 하셨다고 우리 식구들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이제 자녀들의 염려는 홀로 남은 나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더 이상 염려하지 않도록 나는 독립할 때가 왔다. 아내가 건강할 때는 한강로를 함께 산책하곤 했는데 몸이 아픈 뒤에는 나마저도 쉬고 있다가 지금은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아내를 간병하던 분이 일주일에 한 번 와서 밑반찬, 청소, 빨래를 해주지만, 멀지 않은 때는 내가 도맡아야 한다. 처음 며칠간은 혼자 식사하면서 너무 어색했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여러 가지를 넣을 수 있는 식판에 반찬들을 담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하고 다시 냉장고에 다시 넣으면 되고, 막내아들이 자기 회사 비비고의 제품을 보내줌으로 국거리도 해결되었다. 혼자 먹는 어색함도 TV나 유튜브를 보면서 먹으니 해소되고 식당에 가고 싶을 때는 포장해 오는 것으로 족하다.

 

심심할 때, 영화는 넷플릿스나 위디스크로, 고수(高手)들의 바둑 시합을 한국기원 TV로 보는 맛도 꽤 쏠쏠하다. 이제 봄이 무르익으면 승용차로 다니면서 사진 작품을 만드는 등, 혼자 사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점점 다양한 요령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보람된 일에 몰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팔순(2020년)에 출간하려던 원고를 더 다듬고 보충하여 금년 상반기에 출판사에 넘기려고 한다. “주여, 남은 생애 동안 노욕에 빠지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 더욱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강하게 붙들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