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엄마는 암이 악화해 돌아가실 뻔했다. 의식을 잃어버리신 것이다.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간청했다. “인저리 타임을 달라”라고. 인저리 타임. 축구에서 후반전 45분이 소진되고 심판이 주는 추가시간을 말한다. 내가 엄마에게 걱정거리인 적은 있어도 엄마는 나에게 그러하지 않았다. 늘 씩씩했다. 이러다 보니 엄마에게 “존경하고 사랑해요”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돌아가실 분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무리겠지만 그래도 그 말만은 들려드리고 보내도 보내고 싶었다. 신은 나의 간청을 들으셨는지 엄마를 기적적으로 생환시키셨다. 기억력이 다 복원돼 날짜, 숫자, 사람 이름 또렷이 기억한 상태로. 염색하니 한창때의 씩씩한 외모 그대로.

 

나는 드디어 엄마의 손을 붙잡고 하려고 했던 말을 했다. 겸연쩍게. 엄마는 피식 웃더니 “됐네, 이 친구야”라고 하셨다. 마치 빚을 돌려받는 채권자처럼. 엄마는 가정에서나 밖에서 풀파워 에너자이저였다. 엄마의 호칭은 권사이다. 그 권사직은 교회 교인 2/3 아니 그 이상 압도적 득표를 받아 얻은 임직이었던 모양이다. 대단히 뿌듯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인인 엄마는 권사라는 직분으로 전부 설명이 안 된다. 담임목사였던 아버지의 ‘한 교회 33년 목회’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였다. 온유하시지만 선비 같은 분이었던 아버지 장기 목회는 사정이나 경우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교인을 섬기시던 엄마의 헌신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 교회는 대한예수장로회 통합 소속인 홍익교회. 아버지가 부임할 1975년 당시만 해도 50명이 안 된 교인끼리 마음이 나뉘어 대립했다. 아버지는 이 불똥을 맞아 교인 앞에 얼굴조차 드러내지도 못한 채 목사 청빙 ‘반대 4표’를 받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절벽에 비유될 ‘빈곤’이었다. 홍익교회는 청계천과 중랑천이 하류가 만나는 곳, 가난한 이들의 집성촌 한 중심에 있었다. 교인들은 가난하기에 병이 많았다. 압축성장의 나라로부터 낙오된 사근동 달동네 사람들의 고통을 돌보는 것은 홍익교회 목회자의 숙명이었다. 교사 출신인 데다 20대 중반이 던 엄마,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병을 앓던 교인들을 사실상 이고 지고 시내버스에 태워 삼각산기도원으로 모셔 갔다.

 

줄지어 기다린 다음에야 당대 최고의 병 고침 기도의 은사(능력)를 가진 현신애 권사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번을 하던 엄마는 의문을 품게 된다. ‘아니, 현 권사나 나나 똑같은 하나님의 사람인데 어째서 나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한가?’ 이때부터 엄마는 30평 안되는 교회당에서 40일 밤샘 기도를 했다. ‘나에게도 그러한 능력을 주소서’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40여 일 되던 시점이었던, 세탁소 하시던 집사님이 갑자기 떼굴떼굴 구르며 복통을 호소했다. 40일 기도로 영성이 충만했던 엄마는 ‘혹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것인가’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현신애 권사 코스프레를 하듯 기도했다. 그런데 집사님은 그림같이 깨끗이 나았다. 물론 이런 병 고침 기도의 은사에 대해 논란과 회의가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의료와 종교는 서로 침범할 수 없는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다. 그러나 돈도 없고 건강도 없으며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엄마의 손끝 기도는 그 자체로 복음이자 구원이었다. 이때부터 엄마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을 섬겼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던 천안 살던 자궁암 환자가 무대책으로 상경해 기도를 요청하자, 아예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먹여주고 재워주며 기도했다. 가족의 불편함은 엄마의 관심 밖이었다.

 

새벽 2시이든 3시이든 긴급한 방문을 요청하는 교인 집에 달려갔다. 나는 크고 두껍고 단단하지만, 유난히 하얗던 엄마의 손을 기억한다. 1월 20일 아침 거기서 더 핏기를 잃어가던 그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1월 19일, 전날 엄마는 다가올 설날 가족 맞이로 분주하셨다. 음식도 하셨고, 청소도 하셨다. 냉장고에는 명절은 물론, 이후에도 두고두고 먹을 반찬을 마련했다. 내가 좋아하는 진미채도 한 통 채우셨다. 그리고 당신과 남편의 옷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다림질하시고 서랍에 차곡차곡 쌓으셨다. 그날 밤에 아버지로부터 기초적 상처간호(드레싱)을 받으며 "남편의 사랑을 받으니 행복하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이생에서의 마지막 발자국이었다. 1월 20일 아침, 아버지의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하라고 한다”라는 문자를 받고는 어디서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의 황망한 마음으로 달려간 한양대 구리병원 응급실. 119에 실려 올 당시 입고 있던 엄마의 옷을 막 인계받은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한테 마지막 인사하러 가자”라고 하고는 응급실로 이끄셨다. 이미 숨만 쉬시던 엄마 앞에 섰다. 뇌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지듯 한 나의 입에서 ‘일생 하나님을 대리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살아온 엄마에게 이젠 영원한 평화와 천국 복락을 주시라’라는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목사만이 할 수 있다는 축도를 엄마의 양어깨에 대고 했다. 세 살 늑막염으로 죽을 위기에 놓인 어린 나를 안고 ‘당신의 종으로 살게 하겠다’라고 서원하신 엄마가 가장 기뻐할 환송의 방법이었다. 의식을 잃어버린 엄마는 내 기도에 반응했는지 숨을 더욱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75세의 인생을 멈췄다. 7월에 쓰러지셨다가 회복하셨고 이듬해 1월 운명하셨으니 신이 허락한 ‘인저리타임’은 정확하게 6개월이었다. ‘인저리타임’ 중에 나는 엄마가 간구했던 ‘목사 임직’도 받았다.

 

1월 20일 오후, 장례식장이 열렸다. 첫날 한양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5호실은 아무개의 모친상, 아무개의 장모상 빈소가 아니었다. 최재희 권사 본인상이었다. 환하게 웃은 엄마 영정에 눈을 맞춘 조문객 대부분은, 빈소 입구 신발 벗지 않은 상황부터 오열하기 시작한다. 걷기 불편하신 원로장로님부터 대학생인 젊은 여성까지, 엄마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었다. 눈물을, 흐르는 수돗물에 비유해도 과장은 아니리라. 아버지는 66세인 2007년 말로 후임 담임목사님에게 교회를 이양하고 떠나셨다.

 

누군가는 자식에게 맡겨야 교회의 평화가 유지된다며 세습을 정당화하지만, 아버지는 자신보다 훨씬 더 목회를 잘할 분이라며 진심과 긍지를 담아 담임목사직을 맡겼다. 그 뒤 아버지는 원로 목사이지만 담임목사가 부탁할 때 말고는 근처에조차 가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도 그러했다. 교인들과 끈끈한 정이 있었지만, 엄마는 부르셔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교회를 떠나고 15년의 공백이 있었다. 다 잊을 만도 한데 다 자기 삶이 바쁠 텐데 게다가 설 연휴인데 빈소에 모였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한 여성 교우가 펑펑 울더니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분의 삶은 박복했다. 아버지가 담임목사로 재직하실 당시, 무척 가난했던 것은 물론, 술 마신 남편으로부터 폭행도 당했고, 자식도 엇나갔다. 엄마는 이 교우의 집을 수시로 찾아가 기도와 위로로 함께 하셨다. 손찌검한 남편을 대면하시고는 죽비를 내리치시듯 혼을 내셨다. 자녀에게는 일대일 매칭 지도와 훈계로 바른길 옳은 길로 이끌었고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에 이르도록 도우셨다. 이 교우는 서럽게 우시면서 엄마가 없었다면 자신이 어찌 됐을지 모른다고 하셨다.

 

이분 말고도 최재희 권사로 인해 달라진 인생을 고백하는 이들이 우리 유족의 손 붙잡고 간증했다. 빈소의 시간은 그렇게 시계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2000년 전 갈릴리는 예수가 있었을 당시 이스라엘의 변방이자, 마이너리티의 집성촌이었다. 곡창지대가 있는 탓에 수탈과 압제가 당연했다. 그래서 갈릴리는 고개만 돌리면 버림받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 그리고 환자 천지였다. 이곳에서 예수는 공생애 대부분을 보내며 민중과 함께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누비던 사근동 달동네 엄마의 삶은, 갈릴리 예수의 노력과 관심과 열정을 가르치는 산 교과서가 됐다.

 

다시 1월 20일 아침. 사망진단을 받은 엄마는 얼굴이 천으로 덮였다. 엄마의 몸을 실은 이동식 침대는 응급실 옆 컨테이너 임시 건물에 와 있다. 한양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기기 위해 구급차는 도착했다. 누워계신 침대에서 응급차 들것으로 옮겨야 하는데 운전기사가 힘들어한다.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식어가는 엄마의 몸을 끌어안고 말했다. “엄마, 사근동 달동네로 어서 가요. 엄마의 갈릴리로 가야지요.”

 

감사합니다. 얼마 전 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며 완연한 회복을 알려드렸는데 하나님이 명절 연휴 전날 데리고 가셨습니다. 어제 화장하고 유골을 선산에 모셨습니다. 그러나 글을 올리는 지금도 어머니가 곁에 없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운 운명, 즉 하늘의 뜻이 땅에서 실현되고, 땅에서 육신의 생명이 멈춰도 하늘에서 그 혼과 영이 부활해 사는 생, 그래서 늘 희망이 생동하고 불의에 저항하다가 불이익 심지어 죽임당해도 즐겁고 그렇게 해서 기회주의에 맞서는 삶을 추구하게 되지요. 슬픔이 밀려올 때면 어머니를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그 소망으로 이겨내려고 합니다.

 

제 개인이 따로 부고를 하지 않은 것은, 평소 조용한 장례를 추구했던 상황에서, 마침 설에 바쁘실 시기에 소천받으신 터라 여러 지인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도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정을 알고 원근 각지에서 장례식장에까지 발길을 이어주시고 조의금, 조화, 조기로써 위로, 격려해주신 모든 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따로 알리지 않아 이 글로써 처음 아신 분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니가 가장 행복해하실 때 눈 감으셨음을 고합니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신 성경 구절을 남기며 인사를 갈음하겠습니다. 수시로 밀려오는 무력감을 이기고 이웃과 세상을 섬기신 어머니의 좌우명 같은 말씀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벙커1교회 담임목사, 평화나무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