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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염소, 어디에?”
2022년 07월 29일 (금) 11:37:16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태복음 25:31-46) 
 
1.
양과 염소, 외모는 비슷한데 그 이미지는 영 딴판입니다. 똑똑하기를 친다면 염소가 더 똑똑합니다. 재빠르기를 말한다면 염소가 훨 더 재빠릅니다. 보는 것도 염소가 훨씬 더 정확하게 봅니다.
 
양은 게으르고, 둔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넘어지기 잘하고 군중심리에 우르르 몰려다니길 잘합니다. 양은 소심하고, 그러면서도 고집은 엄청 셉니다.
 
이런 양과 염소, 그럼에도 선한 이미지 면에서는 염소가 양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양은 늘 선한 편입니다. 고집은 세지만 그래도 늘 순박합니다. 염소는 따지기 잘하고 들이박기 잘하고, 어쩌면 똑똑한 편에 속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미지로서는 염소보다는 양을 더 선호하십니다. 그러기에 목사 중에도 어느 목사가 훨 더 좋다? 염 목사, 양 목사?
 
2.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둘로 나누신답니다. 양과 염소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왜 양은 오른편이고 염소는 왼편일까요? 오른편은 긍정의 편입니다. 능력의 편입니다. 반면에 왼편은 부정의 편입니다. 종알댐의 편입니다. 그러면 오른편 양, 왼편 염소로 구분하는 근거가 뭔가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하나님께 마침내 인정받고픈가요? 복 받고픈가요? 간단합니다.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드리고, 주님이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주님이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해 드리고, 주님이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 드리고, 주님이 병들었을 때에 찾아가 주고, 옥에 갇혔을 때에 위문 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언제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는가요?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당할 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분명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리고, 내가 목마르고, 내가 나그네 되고, 내가 벗었고, 내가 병들었고, 내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이런 가난하고 병들고 아프고 힘들어하는 연약한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요? 이들을 붙들어 주는 것은 누구를 대접하는 거란 뜻인가요?
 
24년전, 즉 1998년 가을 어느 수요일 밤, 한 파키스탄 사람이 날 찾아왔습니다. 뭔가 하소연할 게 있는데, 찾아간 교회마다 목사님들과 영어 소통이 잘 안 되어 도움을 얻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군 시절을 부산 하야리야 부대의 43야전 병원 카투사로 보냈기에 그럭저럭 영어 소통은 하는데, 솔직히 백인 정통 영어는 못합니다. 나는 주로 검은 사람들과 어울렸기에 몸을 흔들며, ‘헤이 멘, 웟섶 맨! 하즈고잉 맨!’ 이런 영어만 합니다.
 
그런데 파키스탄 사람이 찾아와서 하는 영어는 나나 그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소통을 했는데, 사연을 듣고 나니 기가 막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3살짜리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한국의 교회를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해서 무작정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고, 그리곤 왕십리 골목까지 무작정 찾아든 것입니다.
 
아니 돈이 필요하면, 재정 도움을 받으려면 저 강 건너 강남, 압구정동 이런 부자 동네 교회를 찾아갈 일이지 하필이면 왜 가난한 왕십리 골목에서 이 사람이 헤매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나 어쩌겠나 도와야지. 그래서 경비 계산을 했더니 당시 천만 원이 넘습니다. 당회에 보고했더니 다들 돕긴 도와야 하는데, 재정이 없어서... 하면서 입을 다무십니다. 나도 별 재주가 없어서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하며 기도하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어느 새벽에 주님께서 내게 물어보시더라구요. “양 목사, 그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 내가 보낸 사람이다. 아니 내가 그 파키스탄 사람으로 너에게 찾아간 거다. 너, 여전히 돈 핑계만 대고 있을 거니?”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예수님이 보내신 사람이구나, 아니 예수님이시구나! 그래서 교역자들에게 얘기해서 얼마씩 다 내시오 강제로(?) 각출하고, 익명의 여러 교우들에게 도움을 받아 그 아이를 불러들여 서울대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에 의해 심장 수술을 받게 하여 잘 치료하여 돌려보냈습니다.
 
이 아이가 지금은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대학까지 나와 멋진 청년으로 잘살고 있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다고 자기 이름에 왕십리중앙교회의 약자 ‘왕중’을 넣어 개명까지 하여 ‘왕중샤미르’가 되었습니다. 옛 교우들께서는 기억하시겠지만, 뉴타운 이후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왜 우리에게 왔는가요? 주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왕중교회를 찾아가라. 양 목사를 찾아가라. 그러면 도와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너를 날 대하듯이 할 것이다’ 하여 보낸 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대접하고 싶다면 이들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토록 소중한 선행, 남을 돕는 것, 이에 드는 비용이 여러분의 생활비에선 얼마나 차지하는가요? 우리 자신을 주님의 나라에, 그것도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귀한 선행을 행하는 비용은 얼마나 되는가요? 다른 것, 십일조, 부모님께 드리는 것, 생활비, 오락비, 외식비, ... 다 미리 챙기는 데 성도로써 이웃사랑은 어떤가요? 부스러기, 찌꺼기, 남는 돈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요? 위험합니다.
 
내가 감사하는 것은, 우리 교회엔 이웃사랑 헌금이 꾸준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현재 3천백만 원 정도 적립되어 있습니다. 강조도 하지 않는데 이웃을 향한 사랑의 헌금, 자발적인 헌금이 꾸준합니다. 이들이 분명 베풂 속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이들일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헌금은 우리 교회에 계속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이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왜 우리 교회로 왔느냐고 했더니 왕중교회가 이런 돕기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찾아왔답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보다 큰 교회가 주위에 있음에도 이웃돕기, 선행에 있어서 왕중교회는 참으로 열심이다 라는 소문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큰 복을 받을 기회인 줄 믿습니다.
 
3.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은 양들은 자신들이 행한 선행,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37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새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한 선행에 대해 기억도 못 합니다. 도리어 의아해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리곤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어쩌면 이들은 선행할 때 그 대상이 너무 작은 자들이었기에 기억도 못 했는지 모릅니다. 그 선행 자체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늘 그 선행이 생활화되어 있고, 습관화되어 있기에 무심코 그런 선행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이들과 선행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선행을 생활화하십시오. 선행을 연례행사로 여기니까 기억이 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선행을 자기의 생활로 삼으십시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께 행한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남을 돕고 베풀고 섬기는 일에 성도는 더욱 힘을,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이름 내는 데 열심 내지 말고 지극히 작은 자를 돕는 일, 아니, 그 정도로 대단치 않은 봉사의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주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마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약속까지 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별 볼 일 없는 냉수 한 그릇, 누구를 준 지도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조차 주님께서 반드시 챙겨주시고 상을 주신답니다. 잠언은 이렇게까지 증언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 반드시 갚아주신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은 최후의 심판 자리입니다. 다른 것은 잘못했다고, 야단맞고 회개하고 돌이키고 다시 하면 되는데 이제는 안됩니다. 마지막입니다. 내 삶을 마지막으로 평가받는 아주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님 앞에 섰습니다. 초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날 보시더니 그럽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너희가 나를 이렇게 잘 대접하였으니라! 고맙다! 복이 있을지어다!” 한다면, 그 얼마나 기막힐까요? 난 너무 기가 막혀 졸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여러분, 이 축복은 꼭 받기를 축원합니다.
 
4.
염소들을 봅시다. 염소들도 주님의 말씀에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그런 거지들이, 가난한 이들이, 병자들이 주님인 줄 알았다면 대접을 안 했을 리 있겠습니까 하는 항의까지 합니다. 물론 알았다면 대접하였겠지요.
 
생각해 봅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자 염소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주님이 언제 우리에게 그런 상태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런 이들이 바로 주님이라고 언제 알려주셨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 주님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를 방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옷은 남루하지만 얼굴에 빛이 나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병은 들었지만 얼굴엔 거룩함이 느껴지는 그런 이가 아닙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가득한 그런 이가 아닙니다. 누가 보든지 추하고 더럽고 가까이하기 싫고 얼굴이 찡그려지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 추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이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입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나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이유를 대어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외면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옷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살펴주고, 찾아봐주고, ... 구체적인 선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염소들은 그런 이들을 귀찮다고, 더럽다고, 번거롭다고 이 이유 저 이유를 대며 다 돌려보낸 것입니다. 외면한 것입니다. 돕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대려면 백 가지도 넘게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요? 우리는 이유를 대는 이들이 아니라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인이 뭔가요? 좀 더 좁혀 그리스도인이란 뭔가요? 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고 기뻐하고 신령한 복을 누리는 것이며, 외적으로는 그 예수님의 심장과 사랑으로 남들이 못하는 선행을 감당하며, 남들이 감격할 정도의 베품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로만 예수 예수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돕고 섬기고 나누고 찾아가 주고 하는 이런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 교회는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본부에서 사랑의 밥상 봉사도 했고 노숙자들을 위한 밥 봉사도 했습니다. 시립병원에서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목욕 봉사도 했고 국립의료원에 정기적으로 찾아가 위로하는 봉사도 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 거택보호자들 섬김도 있고, 생일 축하 봉사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중단되었는데, 아마도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재개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전에 이 지역이 개발되기 이전, 149성전 시절에 거택보호자 말벗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홀로 계시는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 드리자고 시작한 것인데, 그분들이 오해를 하여 우리 봉사자들을 종 부리듯이 합니다. 무슨 잘못을 해서 벌 받으러 왔거나 또는 돈 때문에 봉사하러 온 이들인 줄 알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하대합니다. 청소를 시키고, 빨래를 시키며 심부름까지 시킵니다.
 
그럼에도 주님 섬기듯이 말없이 섬기고 봉사했더니 그 당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야함에도 가지 않습니다. 왜? 우리의 사랑을 잃을까 봐 안 가겠다고 하더라구요.
 
여러분은 얼마나 섬기고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얼마나 찾아가 봐 주고, 베풀고, 붙잡아주고, 도와주고 있습니까? 말로만 하지 말로 실제로 돕고 살핍시다. 그래야 주님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5.
양과 염소, 둘은 비슷합니다. 멀리서 보면 더욱 비슷합니다. 나는 아직도 외국에 나가면 양과 염소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보기가 쉽지 않아서, 늘 어릴 때부터 검정 염소만 봐왔기에 구분이 되지만, 해외에 나가면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참 신자와 사이비 신자, 역시 비슷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은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하나님께서 구분하십니다. 무엇으로 구분되는지 아는가요? 놀랍게도 믿음이 아닙니다. 생활, 그것도 나눔과 베풂, 섬김입니다. 찾아가 봐주고, 붙들어 주고, 도와주고, 나누어 주고, 심방해 주고, 대화해 주고, ... 구체적인 선행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합시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사이비는, 염소는 구별되어 쫓겨납니다. 모양만 흉내 내고, 늘 말로만 공자왈 맹자왈 하듯이 살지 말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예수의 향기 풍겨나도록,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심장으로 섬기며 삽시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도 우리 주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챙겨두십니다. 그날에, 그 엄격한 주님 앞에 섰을 때,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의 선행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런 복을 누리기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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