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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강 시편 7편 의로우신 재판장
2021년 10월 14일 (목) 10:40:43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우리가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판단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저래서 문제야 저 사람은 저래서 저런 어려움을 겪을 것이야 하기도 하지요. 그 판단의 언어가 맞을 때도 있지만 안 맞을 때가 더 많아요
 
우리가 살다 보면 참 미안한 게 저 사람은 왜 그래 그리고 내 눈 밖에 나서 정말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나중에 사정을 알고 나니까 아 그럴 수 있었겠다 그렇게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시시 때때로 그런 것을 느낍니다.
 
목사가 아직 덜 되어 가지고 아직도 그럴 때가 있어요. 내 마음에 맞지 않은 일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밖에 처신을 해 아 참 속상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내가 알지 못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똑 같은 상황이었겠다 그런 느낌이 든 적이 있지요.
 
우리는 조심해야 되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제대로 알기전에 판단해 버리고 만 것이 우리 시대에 폭력 가운데 가장 큰 폭력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어쩌면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선악과 나무 열매를 따 먹자 그들의 눈이 밝아 졌다고 이야기 하지요
 
그리고 숨겨야 할 것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었더니 나의 외부 세계가 생긴 것이어요. 이전에는 그냥 친밀했거든요. 그런데 나를 살피는 사람을 생각한 것이지요.
 
나를 살핀다 하는 것은 내가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나 또한 누구를 판단해요 그러니까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따 먹은 것이 우리가 타락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자기 식으로 판단해 버린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 될 이야기도 함부로 말한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시편은 시편 7편이어요.
그동안 우리가 읽어 왔던 시편에 비해서 다소 길이가 깁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 가지 번역으로만 한번 읽어 보고 싶은데 늘 말씀 드리지만 여러분은 낭송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그냥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무릎에 내려놓고 한번 들어 보세요. 낭송을 들어봐야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개정개역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나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속에 살게 하소서(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며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베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우리가 세 가지 번역본으로 성경을 낭독 했는데 급하게 읽으며는 마음 속에 큰 울림이 생기지 않지만 천천히 또박 또박 읽으니까 마음에 큰 느낌이 들어오지요. 이 시편 시를 읽은 것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서 이것이 시이구나 이 시편의 시를 보면 마음이 고요하고 그런 상태는 아니고 표현들이 격정적인 언어를 그만큼 삶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 시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싯가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싯시가욘이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싯가욘이라는 말에 대해서 미란씨가 몰라요 이야기 했는데 나도 모릅니다. 나 뿐 만이 아니라 학자들 대부분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짐작만 할 뿐이지요. 이게 애가 슬픔의 노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고백이 아닐까 혹은 다윗의 고백 다윗의 슬픔의 노래 보기도 하지만 짐작일 뿐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게 슬픔의 노래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볼 수 있겠지요. 그러면 보면 상황을 보니까 베냐민인 구시에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리는 노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구시가 누구인지도 잘 몰라요.
 
그 구시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옛날에 에디오피아 사람들을 구스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구시라는 것은 에디오피아 사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시라고 한 것은 아마 에디오피아 누구일 것이다
 
다윗과 에피오피 사람들이 마추친 것을 보면 압살롬의 반란이 요압 장군에 의해서 진압이 되었지요 요압 장군이 그 구스 사람은 전령으로 보내요 반란이 진정 되었습니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 그 구시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학자들은 그렇게 연구를 해 본 것입니다.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우리가 그 정도로 가야 하는 데 이 시인이 겪고 있는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가해진 고통은 물리적 고통 보다 어떤 것이 더 컸어요 사람들이 말로 하는 심적 고통이 더 컸지요.
 
때때로 그래요. 혀를 가지고 때리는 것은 여러분 몽둥이로 맞으면 멍이 드는데 혀로 때리면 여러분 뼈골이 부서지거든요 그런 것 아세요. 몽둥이로 맞으면 며칠 지나면 멍 가시면 괜찮은 데 차라리 매로 맞는 것이 낫지요.
 
혀로 몇 대 맞고 나면 이것이 평생 갈 때도 있어요. 우리가 말을 정말 조심해야 하는게 이런 데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니까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하고 말합니다. 내 하나님이라고 말하지요. 그 말은 여러분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켜 줍니까? 이 시인이 하나님과 상당히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 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도 기도할 때 나의 하나님하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만 대중들을 대표해서 기도할 때는 나의 하나님 그러면 안 되지요. 우리 하나님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개인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장면이기 때문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십소서” 하고 말합니다.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이냐 하면 주님이 아닌 누구에게서도 자기는 피난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것 같은 고통 상황인 것입니다.
 
나를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려고 사람들도 나를 두렵게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사방에서 나를 비난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나를 건져 낼 자가 없다고 한다면 저들이 나를 뜯고 찢을 까 하나이다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이어요
 
나를 물어뜯는 것이지요. 나를 물어뜯고 그런데 내 뒤에 누군가가 서 계신다고 한다면 나를 함부로 할 수 없겠지요. 그는 하나님 앞에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부터 5절까지 보면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또 무엇 무엇 했거나 거나 거나로 번역이 되고 있지요. 이것 여러분 영어로 이야기 한다면 만일 그런 말이어요. 만인 내가 이렇게 했다면 이 말이 생략되었지요 반복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런 행하였다면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이것을 다른 번역은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내가 불의한 뇌물을 받았거나 하는 이야기여요.
 
그러면 이 시인이 지금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있는가 하면 저 사람은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서 뇌물을 받아먹었어 그런 말이 막 돌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 그 다음에 “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하고 말합니다. 누군가와 화해를 한 다음에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어 우리 악수 합시다 그리고 저 사람이 방심할 때 안심할 때 모질게 앙 갚은 한 것이어요.
 
만약 내가 그렇게 한다면 그리고 이야기 합니다.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까닭없이 빼앗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를 가지고 누군가를 착취한 것이지요. 사회적 문제입니다. 인간관계에 지금 파탄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만약에 그런 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렇지요.
강한 가정이어요.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5절 “ 원수가 나를 잡아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속에 삭게 하소서”
여기 영광이라는 말은 명에라고 집어 던져도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3절에서 5절 사이에 이야기 하고 있는 내가 만약 무엇 무엇 했거든이라는 말은 5절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일을 했다고 하면 이런 재앙이 내린다 해도 나는 감수하겠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의 진실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나는 이렇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내 삶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무죄함을 그 때 여러분 사람들은 기가 막히지요 어떻게 해요 하나님 앞에 호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억울합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일을 판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6절부터 나오는 이야기인데
6절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소서 말하고 있지요 또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소서 말하고요 나를 위하여 깨소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여기 보면 몇 가지 동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일어나소서 그 다음에 깨소서 그 다음에 돌아오소서 일어나서 무엇을 해 달라고 하는 이야기 입니까? 진노하시고 진노해 주시고 대적들을 막아 주십시요 이게 일어나소서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깨소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깨서 무엇 하라는 것이지요 판결하소서
돌아오소서 여기에는 주님 앞에 민족들을 모으소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일어나소서 깨소서 돌아오소서 라고 하는 말은 이전에도 우리들이 공부한 적이 있는 데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을 치룰 때에 적들을 앞에 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좋겠다 해서 언약괘를 모시고 전쟁터에 모시고 왔지요.
 
그래서 언약괘를 모시고 오면서 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일어나소서 깨소서 돌아오소서입니다. 함성을 지르는 것이어요.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거룩한 전쟁의 맥락 속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거룩한 전쟁 지금 이 시편 7편은 거룩한 전쟁이라고 하는 맥락 속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음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시인은 하나님 일어나 주십시오.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 무리들과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셔야 하고 깨셔야 하고 민족들을 모아서 판단해 주어야 한다고 이 시인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판결하고 일어 났을 때 자신에게서 무엇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8절 “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자 이 시인은 저들만 심판해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게 문제가 있다면 일깨어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시인에게서 보아야 할 것은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 의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는 라이쳐스니스이지요 그러니까 내 마음에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가 하는 것이어요. 내 마음이 그러한가 한번 봐 주십시오.
 
그 다음에 나의 성실함을 따라하고 말하는 데 이때에 성실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성자를 이렇게 쓰지요 성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인데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성실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과 삶이 일치될 때 성이라고 이야기 한단 말이지요.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나의 성실함을 보소서 하는 이 말은 그 사람이 참 성실해 이런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실함은 이 말을 좋게 번역을 하자고 하면 나의 온전함을 보서서 그 이야기여요
 
온전함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함과 좀 다른데 완전한 것은 흠이 없는 상태이지요 온전함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지향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어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온전함 속에 있는지 봐 주십시요 그 이야기여요.
 
하나님 나의 의로움을 살펴 주시고 과연 나는 의롭게 살고 있는지 봐 주시고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향하고 있는 지 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내 마음이 정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살펴 달라는 이야기이지요. 우리 말 온전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두 길 보지 않는 것이지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개방하고 하나님 나를 봐 주세요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봐 주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무엇을 해야 되어요
9절부터 보니까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시인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은 결국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은 세우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어떻지요 세상은 의인을 넘어뜨리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어요. 아까 이야기 한대로 말의 폭력을 통해서 물리적 폭력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셔요 악인은 멸하시지만 의인은 세우시는 분이시다 곧게 세우시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이제 고백하고 있어요.
그런데 9절에 보니까 “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셔요 무엇과 무엇을 마음과 양심이지요.
 
원어를 보면 이 마음은 심장입니다. 자 심장이라고 하는 것이 히브리인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느냐 하면 이 심장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들의 생각과 결단을 관장하는 지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나의 마음을 봐 주십시오라고 하는 이야기는 나의 심장을 한번 살펴주십시오. 내 생각 그리고 내가 어떤 마음에 어떤 결정을 하고 살고 있는지 하나님 봐 주십시오 굉장히 신체적인 언어입니다.
 
여러분 양심은 어디 일까요. 여러분 상상을 잘 못할 것이어요. 콩팥 콩팥입니다. 신장입니다. 신장이어요. 그런데 이 신장 속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느냐 하면 여러분 인간이 가지고 누군가에 대한 감성적인 친화력 같은 것 따뜻함 그렇지요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그런 것들이어요.
 
그러면 여기에서 나의 마음과 나의 양심을 살펴 주십시오 하는 이야기는 나의 심장과 콩팥을 삺펴주십시오 하는 말은 나의 생각 결단 내가 가지고 있는 정감들 나의 감정들 이것 다 살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강력한 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제 마음 아시지요 그냥 이 단계가 아니어요. 하나님이 내 속 깊은 곳에 있는 내 마음의 동기까지도 전부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구절에 나오는 이야기가
 
앞으로 이 대목을 볼 때마다 마음 양심 이런 것 나오면 심장과 콩팥 하나님 그것까지 살피고 계신다. 그런데 정말 재미나는 것 창자라고 하는 것 창자로고 하는 것이 애거든요 우리 말로 애 끊는다 애 간장이 다 탄다 애 태운다 이런 말을 쓰지요 애를 부쳐서 이게 무엇이어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인간의 가장 깊숙한 감정이 머무는 자리가 창자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강력합니다.
 
성경의 언어라고 하는 것이 그러니까 이 성경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어요.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신체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내면적 깊숙한 것을 살피는 데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출발하는 모든 것을 살피십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살피시는 분이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시인은 비로서 그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고백하느냐 하면
 
1절에서는 하나님을 내 하나님 그랬는데
10절에 와서는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나내 방패 자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나의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이 곧 나의 방패이다. 악한 자들이 불화살을 당기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혀라고 하는 매체를 가지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막아 주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진로하심으로 일어서셔서 의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는 분이시다.
 
아까 거룩한 전쟁의 맥락에서 무엇이었지요. 일어나소서 깨소서 돌아오소서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 하나님이 돌아오면 이제는 나를 억울하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힘을 다 잃어버리게 될 그 때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결국 세워 주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의와 공의의 세계를 세워 주십니다. 의로운 세계 그래서 이 시편에 보면 의와 공의라는 단어가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시인이 마음속에 확신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인간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온 우주를 다 다스리시는 재판장이시다 여러분 하나님이 결국은 이 세상에 최종 심급을 맡고 있는 분이시다는 것이어요.
 
사람들이 칭찬 받고 때때로 저 사람 대단해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할 지라도 하나님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어요. 그렇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못 난 놈 할런지 몰라도 하나님이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주시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어요. 그렇지요 오늘 뒤집어 진체 우리들이 살고 있지 않아요.
 
하나님은 그래서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 분노하시고 격분하시는 분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2절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시며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나오는데 12절에 무엇과 무엇이 나오지요 칼
13절에 보니까 죽일 도구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죽일 도구 그 다음에 그 화살은 불화살
 
그러니까 하나님은 무기가 상당히 다채로와 쌍 칼만 들고 무엇 하시는 분이 아니어요. 하나님은 다양한데 그런데 여기에는 그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내가 경험을 해 보니까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는 도구 가운데 아주 절묘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알 것 같아요 무관심 그게 아니어요. 이렇게 이야기할께요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심판을 위한 심판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심판이 되는 것은 성공일 때가 많습니다.
 
성공 어떤 사람이 성공을 한 것이야 어떤 사람이 원하는 일이 다 성취된 것이야 돈이 많아졌어 인기가 높아졌고 권력의 자리에 갔어 결과적으로 무엇이냐 하면 성공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아지고 높은 자리에 갔기에 하나님 외면하고 살고 고통 받는 이웃들의 신음 소리가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아 그러면 그의 성공과 그의 권력과 그의 인기라고 하는 것이 그를 세워 준 것이 아니라 그를 망하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시무시한 불화살 그렇지요 검 이런 것들만이 활만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하나님은 미운 사람들을 성공 시킬 수도 있다 진자 무섭다. 무섭지 않아요.
 
여러분 정말 우리가 봐야 되는 것은 정말 두려워해야 되는 것은 내가 잘 되고 있을 때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다는 사실을 자꾸만 자꾸만 상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조금만 높아져도 내가 대단한 사람 된 것처럼 생각하지요. 나는 종종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때때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한번 승리하면 자기 오른 손 끌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잘했어 자기 스스로 격려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다 잘 될 때는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이것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해 주는 저 이야기 굉장히 추어주는 저 이야기 그것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를 지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성공이 심판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 그 이야기이지요 이것을 우리들이 명심하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구가 아주 많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이 직접 손을 들어 가지고 어떤 사람을 망하게 하실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대게는 악인들이 스스로 꾀에 빠지도록 하시는 경우가 대 부분이어요.
 
하나님이 무정하고 맞어봐 탁 때리고 그러기 보다는 그가 스스로를 죄를 짓는 것이어요.
14절부터 보니까 “ 악인이 죄악을 낳으며 재앙을 베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렇게 말합니다. 악인이 재앙을 낳습니다. 재앙을 베어서 거짓을 낳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어요. “ 자기가 파논 웅덩이에 자기가 빠집니다.” 자기가 빠진 함정이 자기가 빠집니다. 재앙이 그의 머리로 돌아갑니다. 그의 포악도 가의 정수리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말 번역이기도 하지만 절묘한 말이 있어요. 여러분 이 시라고 하는 게 암송하기 쉽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까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낳음이여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나서 죄악을 베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그리고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낳았도다 빠졌다도 낳음이여 만듦이여 빠졌도다 이렇게 라임을 바치고 있지요 기억하기 좋은 것이지요 똑 같은 구조가 반복되기 때문에 머리속에 세겨 진다는 멋이어요.
 
이게 시의 구조라고 볼 수 있는대요 하나님은 불의한 욕심에 빠진 자들을 직접 끌어다가 네 죄를 알렸다 하고 치시기 보다는 그를 자기 이익에 중독된 상태 속에 그의 명예에 취한 상태 속에 버려둠으로 그가 스스로 몰락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여러분 이게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것 정말 많이 경험합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기고만장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 안 계시나 어떻게 저런 사람을 놔 두나 그런데 하나님이 손대기도 전에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남을 해치는 재난이 자기에게 돌아가고 남에게 휘둘렀던 폭력이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나의 흐름을 한번 보실까요.
처음에 1절에서 이 시인은 내가 주님께 피합니다. 내 인생 너무 힘겹습니다. 사방에 적으로 외워 쌓인 체 나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고 있어요.
 
그랬는데 하나님 앞에 그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나를 살펴 주십시오 내 심장과 내 콩팥을 한번 살펴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았는지 하나님 앞에 성실한 존재인지 살펴 주십시오. 그런 후에 부탁한 것이 저 악인들을 어떻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시인이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내 문제를 온전히 맡겼어요 내 운명을
그리고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1절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내가 주님께 피합니다. 말했는데 내가 여호와 앞에 그의 의를 따라 그 앞에 감사하고 지존하신 여호와앞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기 여호와라는 것은 엘로힘이라고 하는 말인데 예루살렘에서 예배가 집중되기 전에 예루살ㄹ겜에서 최고의 신으로 숭상 받은 존재가 엘로힘입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묻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사람의 외적 조건이 바뀌었습니까? 안 바뀌었습니까? 안 바뀌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서게 되지요. 이것이 하나님을 상기하는 자들에게 얻을 수 있는 내적 평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내 문제를 가지고 섰을 때 나를 규정하는 규정이 약화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이 믿음의 신비입니다. 오늘도 이 시가 들려주는 신비가 많네요.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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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합동 57만명, 통합 4
교세 하락을 극복하려면
동강의 아름다운 가을풍경(2)
황금 혀를 가진 사람
너는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제5강 시4편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제 6강 시편 6편 나를 고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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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강 시편 8강 인간이 무엇이기에
한국의 야생화(1)
롤 모델 대통령
단풍 단상
가야 할 곳이 있는 달팽이처럼
은혜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코로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세속화 시대 정치 주술화, 어떻게 이...
노년기와 내려놓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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