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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27일 (수) 10:15:33 편집자 www.cry.or.kr

개인의 신앙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 가지 부문에만 집중하고 있는 일이 많지만, 성건전한 신앙을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이들 각 부문의 유기적인 관계를 배우는 일은 필요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신앙 현실의 유기적인 관계를 교리를 통해서 배우는 일은 무척 매력있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신앙의 확신만이라든가 하나의 교회 또는 신앙의 그룹의 결단 따위가 편협하게 하나의 부문에만 집중되는 일이 많으나, 좀 더 풍부한 신앙의 내용과 다른 부문과의연관의 깊이를 찾아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또 매력 있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기독교 사상의 역사에서 신학 체계로서 특히 유명한 것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쯤-1274)의 ‘신학대전’, 장 칼뱅(1509-1564)의 ‘기독교 강요', 칼 바르트(1886-1968)의 ‘교회교의학’ 등이 있다. 이상의 저서들은 무척 난해한 체계이지만 기독교 사상의 역사에서 최고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2) 체계와 믿음

살아 있는 신앙의 현실에서 수많은 교리가 형성된 일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대로이지만, 그것들의 교리 속에서 체계(시스템)를 이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신앙의 현실로부터 생겨나는 단편적인 사상도 있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사상 속에는 교리의 체계 전체에 크나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블레이즈 파스칼(1623-1662)의 '팡세’는 바로 단편적인 사상이지만, 신앙 이해의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며, 기성의 교리 체계의 형식에 치우친 면을 멋지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 외에도 필립 슈페너(1635-1705)의 ‘경건한 소망',죄렌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전율과 공포'와 ‘죽음에 이르는 병. 등,루돌프 오토(1869-1937)2) ‘거룩한 것’, 마르틴 부버(1878-1965)의 ‘나와 너’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에 열거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신학적 단편으로서 결코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신앙 현실의 사상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와 같은 단편을 주의 깊게 배움으로써 체계의 한 부문 속의 한 대목을 깊이 알게 되는 매력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의 힘(다이나믹)이다. 이 힘이 불후의 신학적 단편을 낳게 되고, 또 위대한 신학 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교리를 배우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이 믿음의 힘을 찾아내는 일이다. 한 개인의 생애를 건 믿음의 힘, 역사 속에 살고 있는 교회와 집단의 믿음의 힘, 이와 같은 힘의 표현이 교리에 넘쳐 있다. 우리는 싸늘한 논리에 떠받쳐져 있는 교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교리 속에 있는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믿음의 힘과 교회의 힘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요 또 절대적 진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궁극의 문제에 관한 진리는 차갑게, 밖에서, 객관적으로, 방관하는 자세로는 도달할 수 없다. 오로지 정열적인 탐구에 의하여 전체 인격을 기울이게 될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고 한 키에르케고르의주장은 교리를 배우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주장이라 할수 있다.

(3) 교리와 교의(敎義)

교리와 교의는 모순되는 사상의 넓은 바다와 같다고들 말한다. 사실 무수한 교리와 교의가 있어서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교리’(doctrine)의 어원 독트리나(doctrinal “가르침”이라든가 “지도”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제각기 신앙의 현실과 신앙 집단의 현실에 따라서 제각기의 ‘교리'가 형성되어 온 것이고 앞으로도 형성될 것이다. 그 교리 중에서 어느 교회에 의해 인정된 것을 가리켜 ‘교의’라 한다. ‘교의'(dogma)의 어원 도케인(docein)은 "생각한다”든가 "하나의 의견을 가진다”는 의미로서,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교파와 집단이 다른 교파와 집단과는 다른 독자적인 ‘생각’이나 ‘의견' - 즉 도그마-룰 가질 때 사용되어 온 것이다(‘도그마’라는 말온 원래 헬라 철학에서 플라톤 학파라든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하는 식으로 각 학파의 독자적인 생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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