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가을 한 파키스탄 남자가 서울 상왕십리동 왕십리중앙교회(담임목사 양의섭)를 찾았다. 그는 다짜고짜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양의섭 목사와 교인들은 낮선 이방인의 부탁에 망설였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어린 생명을 돕기로 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인연은 파키스탄 선교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

파키스탄인 나시르씨가 한국을 찾은 것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세살짜리 아들 샤미르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파키스탄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나시르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다 주변에서 “한국 교회에 가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군데 교회를 찾았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왕십리중앙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불쑥 찾아온 외국인까지 도울 여유가 없다”고 반대하는 교인들도 있었다.

양 목사는 고민했다. 넉넉지 않은 교인들의 경제사정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선뜻 도와주자고 말할 수 없었던 것. 기도와 고민으로 며칠을 보낸 양 목사는 “예수님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수많은 교회 중에 왜 하필 우리 교회였겠느냐”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기회”라고 교인들을 설득했다.

양 목사의 설득에 교인들도 적극 나섰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을 모아 1999년 1월부터 3월까지 1500만원을 마련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99년 3월 서울대병원 김용진 박사에게서 수술을 받은 샤미르는 5월에 건강한 몸으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사정을 들은 병원측에서 수술비를 받지 않아 입원비와 치료비,돌아갈 여비 등 정확히 1500만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나시르씨는 새 삶을 살게 된 아들을 위해 새 이름을 지어달라고 양 목사에게 부탁했다. 양 목사는 왕십리중앙교회에서 두 글자를 따 ‘왕중 샤미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이 하나둘 교회에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 그중에는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 와있던 민하스 목사도 있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왕십리중앙교회에서 친분을 다진 그는 귀국하면서 후원을 부탁했다. 왕십리중앙교회는 펀자브주 구지란왈라에서 빈민사역과 문서선교를 하는 민하스 목사를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매월 550달러를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양 목사와 교인 10명이 나시르의 초청으로 파키스탄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양 목사 일행은 파키스탄 방문을 선교 기회로 삼았다. 바도말리 지역의 목회자 15명에게 자전거를 전달했고 구지란왈라 노천빈민교회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빈민가의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기도와 구제사역을 펼쳤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난민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샬림 목사를 위해서 약 2000달러를 들여 특수 오토바이를 제작,곧 전달할 예정이다. 그리고 매년 파키스탄을 찾아 복음을 전할 계획이다.

양 목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몽골,이스라엘,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선교하고 있지만 원래 파키스탄은 대상이 아니었다”면서 “왕중샤미르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파키스탄에서 복을을 전할 수 있게 돼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2005년 7월 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