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상대방에게 “당신 하루에 방귀를 몇 번 뀌는가”라고 물어보라. 질문한 사람을 아주 교양 없다는 듯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인류에게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건강한 성인은 방귀를 통해 하루 평균 14차례에 걸쳐 최대 1500㏄의 가스를 배출시킨다고 한다. 이 정도면 경승용차의 1회 배기량과 비슷한 양이다. 성분 가운데는 질소가 으뜸이나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최대 54%나 섞여 있단다. 만약 전 세계가 방귀 배출량이 많은 나라에 응당한 책임을 묻는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이럴 가능성은 아직 없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인간의 생리 욕구에 대해 의지적으로 관심을 끊다가,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화장실 갈 권리’이다.

얼마 전 종로 한복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근길 네거리 교통신호를 수동 조작하던 경찰관이 급한 볼 일 때문에 10분간 자리를 비웠다. 10분 동안 신호는 바뀌지 않았고, 결국 신호대기 차선에 있던 차들이 비상등을 켜며 사거리에 진출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많은 언론은 '얼빠진 경찰'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에 얼빠졌다는 표현은 좀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당시 네거리 주변 건물 화장실은 대부분 잠겨 있었고, 경찰관은 열린 화장실을 찾다가 시간을 지체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신호기를 자동 전환하지 않은 잘못은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다 경찰관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한 경찰서 정보관은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용변을 봐서 바지를 버렸다면, 표창이라도 줘야 하는 것인가"라는 반박을 한 신문에 실었다.

‘마음 놓고 화장실 갈 권리’를 누림, 공인과 사인의 차이는 없다. 기억나는가. 2008년 10월 9일에 있었던 사건인데. 지하철 기관실 문을 열고 용변을 보려던 한 승무원이 선로에 떨어져 마침 뒤따라오던 전동차에 치여 숨진 사고 말이다. 승무원들은 그동안 신문지를 갖고 다니며 기관실에서 용변을 봐 왔다고 한다. 버스기사들도 서너 시간의 긴 운행시간 내내 참아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용변 때문에 집중력이 저하되고, 급하게 몰다 보면 과속 난폭 운전을 하게 된다. 방광염이나 담석증에 시달리는 운전기사도 있다고 한다.

운수 근로자 뿐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들도 이런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1400여명을 조사한 결과, 방광염 등 비뇨기 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됐다. 화장실 스트레스를 방치하면 신장에 심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 질환이다. 임신한 여성이 요로감염을 자주 앓으면 아이의 몸무게가 정상보다 적은 아이를 출산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대변을 오래 참는 것도 습관이 되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 변비도 심해지면 장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고, 흔히 치질이라 하는 치핵과 같은 질환의 발생 가능성도 높인다. 여성이 이런 위험에 더 시달린다.

소변을 오래 참는 것은 몸에 해롭다. 방광이 지나치게 커져 수축력이 떨어지거나 신장 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소변이 많아지면 방광 내 압력이 높아져 소변이 신장에서 요관을 타고 방광으로 가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신장에 소변이 고여 탈이 생긴다. 어린이들에게 소변 참기를 강요하면 오줌을 잘 못 누는 '힌만 신드롬'에 걸려 각종 비뇨기질환을 앓을 수 있다. 전문의들은 배뇨기가 느껴졌을 때, 혹은 배뇨기를 느낀 후 조금만 참았다가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작년에 인권보도상 수상을 받은 기사를 보니, 축구장 넓이의 열 배가 넘는 대규모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150여명이 고작 네 칸뿐인 화장실을 나눠 썼다는 내용이 있다. 그나마 한 군데는 문짝이 떨어져 나갔고 한 군데는 문이 잠겨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하고. 게다가 또 다른 한 곳은 너무 더러워 문을 여는 게 겁이 날 정도라고. 결국 한 칸 갖고 해결하라는 것이다. 기업주의 화장실 인권의식, 무지막지 그 자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대형 할인 매장의 계산원들도 항상 용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도 담겼다. 두 시간 마다 쉬는 게 원칙이지만 손님이 많을 땐 이 원칙은 있으나 마나라는 것.

노동자에게 화장실에 갈 시간과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건강 문제이기 전에 인격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은 어떨까. 한 달 전인가 이스라엘 의회가 노동자들이 작업 도중 자유롭게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작업 시간에 급한 용무가 생기더라도 노동자들이 쉽게 화장실에 가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화장실 방문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미국은 직원당 화장실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정해 놓고 화장실 갈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규정 자체가 없다.

예전에는 용변은 물론 용변이란 말 자체를 멀리하다 보니 집과 떨어진 공간에다 화장실을 두거나 용변에 대한 언급을 삼가곤 했다. 유교식 사고 때문이다. 이런 허례허식은 인간에게 절실한 본능인 배변 욕구마저 누르는 야만성으로 확대됐고, 결국 화장실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됐다. 이제 양지에서 논의할 때이다. “우리는 모두 똥 싸고 사는 존재”라는 주제를 놓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