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010이 대세이다. 010 번호를 쓰는 휴대전화 가입자가 79%를 넘어섰다. 2003년 정부는 010 번호가 전체 가입자의 절대다수 즉 80%를 넘어서면 나머지 20%도 010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제 1% 남았다. 그러나 소비자 단체는 ‘왜 남의 번호를 바꾸려 드느냐’ 이러면서 발끈하고 있다. 미묘한 대립, 그 배경을 이야기해보겠다.

우선 왜 010을 만들었고, 왜 나머지 휴대전화 식별변호를 없애려 할까. 애초에 제기한 명목은 011, 016, 017, 018, 019를 010으로 통합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입업체를 변경하더라도 기존의 전화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4년 1월부터, 통신사를 바꾸더라도 번호는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했다. 의미없는 명목이 됐다. 그 다음은 휴대전화번호가 무려 5개가 차지하는데도, 삐삐 용도로 012와 015가 사용되고 있다. 013은 주파수공용통신 TRS용으로, 014는 유선데이터통신용으로 각각 지정돼 있다. 나머지? 하나도 없다. 다 꽉찼다.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런데 010으로 다 몰아넣으면, 010안에서는 다 소화될 수 있을까. 8자리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012와 015를 식별번호로 쓰는 무선호출기를 012로 통합하고 015를 010이 넘치면 쓰자’는 논의가 방송통신위원회와 각 이동통신사 번호정책관련 담당자들 사이에서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현재 각 이동통신사는 새로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식별번호로 010만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기존 이통통신 이용자들 중에는 번호는 그대로 두면서 스마트폰으로 기기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허용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반발하는 고객들도 적잖다.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라는 소비자단체가 있는 모양이다. 여기 가입자들은 ‘(010 강제통합은) 현대판 창씨개명이다’ ‘017도 스마트폰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격문을 내 붙였다. 사실 스마트폰이 개통된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010 번호 사용자 수가 39만 명 늘어났다. 기존 휴대전화번호를 포기하고 새 번호를 받은 사람 수, 또는 신규가입한 수가 이 정도라는 것이다.

휴대전화 번호는 개인 신분증 번호처럼 사적 재산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번호를 강제로 바꾸게 하는 건 소비자 권익의 침해라고 주장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소비자도 자신이 오랜 기간 동안 보유하던 번호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겠지? 세계 어디에서도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번호를 강제로 바꾸도록 강권하는 정책을 펴는 나라는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전화번호는 개인자산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자원이라는 반론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010 번호통합 정책 전담반’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기엔 부담이 많다. 난데없이 전화 바꾸라고 했을 때 좋아할 이용자는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당국이 좌고우면하는 바람에 010정책은 표류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가운데 통신사들의 기민한 고객 마케팅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KT가 3세대 010 번호로 전환한 가입자가 011 같은 기존 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부가서비스는 내놓기로 했다.

당연히 SK텔레콤은 “반칙”이라며 반발했다. 이러면 SK텔레콤 고객의 KT 갈아타기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SK텔레콤 011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9개월 동안 월평균 8만~9만 명 씩 빠져나갔는데, 이탈 고객 절반가량은 타사 3G 010으로 번호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스마트폰 가입을 위해 갈아탔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010으로 통합하는 거, 아예 포기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강제적 통합을 했다가 뜻하지 않은 여론의 역풍을 맞을까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다 소비자 편익을 위하는 거다. 그러니 순순히 번호 바꿔라. 안 바꾸면 강제로 바꾼다’ 이런 으름장을 놓을 수 있겠나. 이런 가운데 정책 당국을 향한 “어떻게 지켜온 번호인데. 양보는 없다”며 이용자들의 공세는 갈수록 수위를 높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