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목회는 경상도 산골의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 한 뒤 꼭 일주일 만에 새댁인 아내와 같이 작은 삼륜용달차에 이삿짐을 싣고 경상도 산골마을 무릉이라는 산촌교회에서 담임전도사로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35년 전 그날에 저는 달랑 5명뿐인 교인과 성부 성자 성령님, 그리고 우리 부부를 합하여 모두 10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 저의 목회여정의 첫 발은 들여놓은 것입니다. 그땐 전기도 전화도 없어서 밤에는 렘프불을 켜 놓고 예배를 드렸고, 바깥소식이라고는 우체부를 통해 하루 한번씩 전해지는 편지가 전부였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통학버스가 다녀갈 뿐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고 족히 2Km는 걸어가야 근처 간선도로에서 하루 다섯번 정도 정확한 시간도 지키지 않고 지나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서 탈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은 자전거였습니다. 그 자전거로 8Km 정도 떨어져 있는 함창이라는 면소재지에 가서 장을 봐 오기도 했고, 시장엘 갔다가 오는 아내를 간선도로까지 마중나가서 자전거 뒤에 태우고 힘들여 언덕길을 올라 교회로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를 시작한 첫해, 그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맞았던 그해의 성탄절을 잊지 못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기 몇주 전부터 줄판(가리방)을 긁어서 등사기로 찍어내는 동네신문 겸 교회주보에는 성탄절 특집이 실리고, 교회 천정까지 닿을 만큼 커다란 소나무로 성탄트리를 세우고, 각자의 집에서 가지고 온 솜조각과 색종이로 오려낸 종이장식을 주렁주렁 걸고, 교회 천정에는 이름도 잘 모르는 나라들의 얼룩덜룩한 만국기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왁자지껄 모여서 연기 나는 장작난로 가에 둘러서서 연극연습을 하고, 캐럴이라고는 찬송가 몇 곡과 “탄일종이 땡땡땡”, “루돌프 사슴” 등 몇 곡이 아는 것의 전부였지만 그것을 연습하는 아이들의 열심은 비장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소복소복 흰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던 겨울밤에 찬바람이 문풍지를 헤집고 들어오는 허술한 초가집 사택 안방 화롯불 주변에 둘러앉아 제가 직접 개사(改詞)한 “창 밖에 함박눈이 내리던 밤에” 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던 그날의 캐럴들의 감미로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 전야에 사택에 모여 수줍게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고 못 다한 성탄행사 준비를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눈길을 걸어 새벽송을 돌던 그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향수처럼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던 그 시골 마을에서의 그 성탄절은 누군가가 가져온 몇 알의 사탕과 삶은 고구마, 그리고 움막에서 꺼내 온 생무우가 간식의 전부였지만 그러나 그때는 참으로 즐거웠고 거짓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행복한 성탄절이었습니다.

그때의 성탄절은 유난히도 추웠고 새벽송 행렬을 따라 논두렁을 걷다가 얼음물에 발이 빠진 아이들을 부축하여 다니던 그 때의 따뜻한 체온이 지금껏 남아있는 듯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에 출석한지 6개월도 채 안되는 동네 청년들과의 나눔이었으니 목회를 시작하는 우리 부부에게 눈물이 나오도록 감사한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 아침, 하얗게 눈 덮인 앞산 위로 아침해가 눈부시게 떠오를 때의 감격과 온 동네사람들이 삼삼오오 교회로 모이는 성탄절의 축하예배는 눈물나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땐 동네사람들이 성탄절 축하 부조(扶助) 봉투를 들고 예배에 참석하는 온 동네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땐 정말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은 풍부했습니다. 그 성탄절을 기다리던 순수한 마음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쓰임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봉사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채 50명도 안 되는, 그것도 청년들이 대다수였던 교회였지만 온 성도의 순수한 하나됨은 저의 첫 목회의 큰 기쁨이고 열매였습니다.

35년이 지난 2009년의 성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기대도 헌신도 없이 물질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각박해지는 마음들을 보면서 35년 전 그때의 성탄이 다시 생각납니다. 그리고 하얀 눈처럼 순백한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