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3월 2일 라디오(러브FM, 103.5MHz) 일부 개편과 함께 신설한 <이승렬의 SBS전망대>에 본보 필진인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출연하고 있습니다. 김용민 평론가는 매일 오전 6시 39분 경 ‘신드롬 시대’ 코너의 연사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그 방송 원고를 전제합니다. ‘신드롬 시대’는 우리 시대의 문화 코드를 상세히 풀어보는 코너입니다.

MC: 오늘은 어떤 이야기 준비하셨나?

독립영화 '워낭소리' 이야기이다.

MC: 기염을 토하는 듯한 흥행몰이이다. 독립영화 사상 최대 규모라 하겠지?

지난달 15일에 개봉했지? 그 날 상영된 스크린은 단 7개였다. 시작은 이렇게 미약했다. 그런데 지금, 독립영화 사상 최초의 200만 돌파 기록, 또 사상 최대 흥행 기록을 세웠다. 나중은 창대해진 것이다. 그만큼, 40년 된 소의 워낭소리, 이 작은 소리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울림이 되고 있는 것이다.

MC: 많은 사람들은 저예산이란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1999년 외환위기 당시 처음 구상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기획으로만 5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여기에다 촬영 3년에, 편집 기간만 1년 6개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근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역작이었다. 카메라라는 물체 앞에서 자신의 삶을 노출하기 싫어했던 할아버지와 소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을 잡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흘린 땀방울을 제작비라고 치면, 아마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MC: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워낭소리’는 팔순의 최원균 할아버지와, 평균 수명인 열다섯 살을 훌쩍 넘겨 마흔 살이나 먹은 늙은 소가 나누는, 우정과 교감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침을 잘못 맞아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최원균 할아버지가 소와 함께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 이 모습은 수백마디 대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이었다.

MC: ‘워낭소리 신드롬’은 ‘아버지 신드롬’으로 돌려 이야기하지?

이 작품을 만든 이충렬 감독은,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며 밝혔다고 한다. 이충렬 감독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소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분이라고 한다. 그림을 참 잘 잡은 모양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장 떠오르는 대상으로 ‘아버지’를 꼽았다고 하니까.

MC: ‘워낭소리’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묘사되던가.

할아버지에게 소는 모든 것을 다 주었던 존재였고, 할아버지는 소를 사람 그 이상으로 사랑했던 대상이었다. 이충렬 감독은 “그 소가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바로 소”라고 이야기한다.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온전히 사랑했던, 모든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았던 서로였다.

MC: 경제위기 때면 아버지 신드롬이 유독 빛나는 것 같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당시 췌장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족에게 보이는 눈물겨운 사랑, 그 이야기를 다룬 김정현 씨의 소설 ‘아버지’, 많이 기억나실 것이다. 그리고, 2002년, 카드 대란 때문에 많은 이들이 또 한 번 경제 위기의 파고를 만났던 그 무렵,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조창인 씨의 소설 ‘가시고기’도 큰 화제였다. 요즘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다. 요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1위인 작품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MC: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는 평가도 있지?

늙은 소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죽기 전까지 온 힘을 다한다. 임종 직전까지도 쓸모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모습.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상징하는 것 같아 남 얘기같지 않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런 소가 운명의 순간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 즈음 평생 옥죄었을 고뚜레와 워낭을 풀어준다. 평생 소를 구속했던 노동의 짐을 내려주고 ‘이제 편히 쉬라’고 하는 것이다.

MC: ‘워낭 소리’ 신드롬이 오늘 이 시대에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살기 힘들어질 때면, 사람들은 응어리를 풀기 원한다. 이때 ‘감동’은 가장 훌륭한 촉매제가 된다. 그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재라면, 바로 ‘가족’ 그리고 ‘죽음까지 포괄하는 인생’일 것이다. 세파에 찌들어 있을 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생을 돌아볼 때, 우리는 퍽 진지해지지. ‘워낭 소리’가 이때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음이 되지 않을까?